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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계를 싫어한다

 

난 기계를 싫어한다


며칠 전 남부 터미널에서 송탄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사람이 표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팔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야 천 원짜리 두 장을 차례로 요금 구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송탄 누름 단추가 있고 그 옆에 두 사람 세 사람 등 단추가 있어 표를 한 장만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망설였다.

나는 약간 똑똑하기 때문에 표하나만 사려면 송탄 누름 단추만 누르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다음에 천 원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하나씩 요금 구멍에 넣었는데 첫 번째 것은 순조롭게 들어갔고, 두 번째 놈은 어쩐지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다시 넣었지만 또다시 나왔다. 몇 번을 만복한 다음 나는 공학박사는 아니지만 혹시 돈이 삐둘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 원짜리를 살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쪽이 접혀 있어 그것을 바르게 편 다음 다시 넣으니까 잘 들어갔다.

5분 정도 지나서야 나는 마음 놓고 한숨을 쉬며 표가 나오는 기적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는 나오지 않았다. 이 엉뚱한 괴물이 두려웠지만 나는 화가 나서 주먹을 힘껏 쥐고 기계를 두드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큰소리에 놀랐는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순간 내 행동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그리고 거스름돈이 땡, 땡, 땡, 3백 원만 나와야 하는데 7백 원이 나왔다. 기계가 미안해서 많이 주었나?

그런데 표가 나오는 구멍은 텅 비어 있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고’를 중얼거리는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파란색 상의에 넥타이를 맨 직원이 나타나 기계처럼 별 표정없이 주머니에서 엄청나게 많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기계 앞판을 열어 떨어지지 않은 표를 무표정하게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죄인처럼 빨리 터미널을 떠나, 죄를 저지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로 빠져 나갈 때쯤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계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었는데 자동판매기가 기계를 싫어한다는 걸 아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쾅쾅 쳤지만 다음에 남부 터미널에 가면 어떻게 기계에 사과해야 할지, 혹은 기계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때려도 죄가 되지 않는지 지금까지 궁금하다. 또한 거스름돈보다 4백 원이 더 많이 나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갚아야 하는지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하여튼 나는 기계를 싫어한다.

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시골도 시끄럽다. 기계 때문이다. 트랙터는 경운기보다 덜 시끄럽지만 너무나 무거워 논두렁에 깊은 바퀴자국과 함께 길을 망쳐놓고 무너뜨린다. 트랙터자국 때문에 자전거 몰기가 힘들어지고 걷기조차 불편하다. 트랙터가 너무 무거워서 논밭에 들어가면 드러내 놓고 흙의 생명을 질식시킨다고 한다.

몇 주일 전부터 농부들이 논을 갈고 있었는데 한 논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에 경운기나 트랙터가 들어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농부는 소를 끌고 쟁기를 지게에 지고 나섰다. 마을 가게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주인은 사진기를 재빠르게 들고 나와 지나가는 농부와 소를 찍었다. 그도 이 광경이 마지막임을 알고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것 같았다.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좀 섭섭했다.

나중에 그 농부와 옛날식으로 논을 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소를 이웃에서 빌렸으나 몇 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는 논에 들어가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기술’이 떨어져 쟁기 끄는 요령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여튼 시끄럽다. 지금 논에 나가면 자가용 ․ 오토바이 ․ 트랙터 ․ 트럭 ․ 갤로퍼 ․ 무쏘 등이 다니고 있다. 모랫바람이 심한 곳은 먼지가 솟아나고 사막처럼 길 앞을 보지 못할 정도다. 곳곳에서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덤프트럭이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며, 레미콘 ․ 대형 덤프트럭이 동네나 학교 앞을 직주하는 걸 qrhh 있노라면 ‘아! 참으로 기계는 사람보다 중요하고 귀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모내기와 뜬모가 끝났으니 조행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웃 밀밭에서 밀을 쪼아먹는 참새 떼를 향해 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는 기계를 세워놓고 새벽부터 펑! 펑! 펑!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 하느님! 우리에게 인간을 위하여 기계를 쓰기 위한 지혜를 주시고 욕심과 과속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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