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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기

26일 6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여섯번인가 일곱번...

부산역에는 조석현 선생님과 아오야기 교수님이 아버님과 함께 계셨다.

간단한 음주 후 취침.

 

1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민주공원.

어머님을 뵙고 가족들도...

행사의 시작은 내가 만든 간단한 영상이었다.

부끄러웠다. 늘 그렇듯이...

 

다른분들의 인사말씀, 모두들 미안함을 얘기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인듯...

 

영락공원.

추모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형률씨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아버지의 무덤을 장례 후에 한 번 밖에 못 간것이 마음에 걸렸다.

화장을 원했던 아버지를 나는 땅에 묻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매장과 화장.

 

편집을 하다보면 형률씨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듯이

 

살아있다는 것, 죽었다는 것.

나비가 꿈을 꾼 나인가, 내가 꾼 나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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