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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9 눈꽃과 주목의 하모니 태백산
  2. 2008/12/16 법대로 독거실 사용 원했더니 징벌방에 수용?
  3. 2008/11/26 [속보11:30]콜텍 노동자들 특공대에 의해 전원 연행
  4. 2008/11/24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5. 2008/11/23 경북의 소금강 청량산에 오르다.
  6. 2008/11/16 대야산... 만만히 봤다가 큰코 다쳤다.
  7. 2008/11/13 단양군수 “(주)단양버스, 문제 해결 안하면 버스 환수하겠다”
  8. 2008/11/13 충주시의 미온적인 대처에 노동자들 뿔났다
  9. 2008/11/11 묘봉! 그 살벌한 암릉에서 뛰어놀다. (1)
  10. 2008/11/05 이용대 부본부장 실형 1년 4개월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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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과 주목의 하모니 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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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사매표소 - 1.9Km - 유일사 - 1.4Km - 태백산 정상 3Km - 문수봉 - 0.4Km - 소문수봉 - 1.7Km - 문곡동갈림길 - 1.9Km - 당골 매표소

총 소요시간 : 4 시간 총 소요거리 : 10.3 km

 

 

큰맘 먹고 욕먹을 각오하고 24일 휴가를 낸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정으로 인해 산을 가지 못했다. 24일을 쉬니 4일의 연휴가 생긴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산을 가기로 한다.

 

그 첫 산이 태백산이다. 산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몇 달도 안되 해돋이 산행을 한 바 있다. 그것도 1월에... 새벽 3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하 15도에 황소바람을 맞으면 오른 태백산. 아무것도 못보고 랜턴에 비친 앞사람 엉덩이만 기억나는 산. 또하나 방풍자켓이 투습이 안되어 땀이 얼어 너무 추워 온몸이 쥐가 났던 기억. 아! 해도 역시 못봤다. 최악의 산행이었고 장비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악몽만 떠오르는 그 산을 다시 간다.

 

전날 차를 달려 당골에서 차를 대놓고 하룻밤을 거한다. 밤새 황소바람 소리가 기를 죽인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유일사 매표소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9시 좀 못미쳐 길을 출발한다. 크리스마스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산에 매달려 있다.

 

역시나 오늘도 태백산은 영하 8도에 황소바람을 불어댄다.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15도는 되는 것 같다. 안면이 칼로 난도질 당하는 기분이다. 다행히 지난번 산행 후 큰맘먹고 마련한 오버트로져 덕분에 몸은 좀 견딜만하다.

 

 

유일사까지 가는 길. 별로 재미 날 것도 없는 임도다. 그런데 엥 아홉 살짜리 계집애가 그 바람을 맞으며 올라오고 있다.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오른다. 몇차례 오른 경험이 있단다. 기특하긴...

 

유일사 입구를 지나자 마자 만난 주목군락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올곧게 서있다는 주목이 눈을 희롱한다. 지난 산행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장관이 아침해를 받으며 펼쳐진다. 감탄에 감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못보고 지나쳤다니 너무 억울하다. 눈과 주목이 어우러져 펼쳐진 설원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또한 정상에 가까워 질 수록 펼쳐지는 상고대는 겨울산행의 진미를 보여준다. 탄성과 사진기 셔터소리로 내 마음이 가득하다.

 

 

이윽고 오른 정상. 세 개의 천제단에서 안전상행을 빌며 소주한잔 붓고 백두대간의 한 줄기 문수봉으로 가는 능선을 따라 간다. 능성길이라 더욱 바람이 심하다. 바람을 피해 설원의 한 구석에서 라면을 끓인다. 아뿔사 취위와 바람을 피하느라 수평을 잡지 못해 그만 라면을 엎어버린다. 겨우 겨울 주워담아 아쉬운 점심을 때우고 소문수봉을 거쳐 하산길을 잡는다.

 

 

하산길은 눈이 꽤 쌓여 있다. 아마 등산객들이 이 길로는 하산을 않고 중간에 빠진 탓이리라. 눈길은 다져지지 않으면 상행길은 두배의 힘을 필요로 한다. 푹푹빠지며 빠진 다리를 빼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행길은 무릎의 충격을 눈이 흡수해 주어 훨씬 편안하게 내려올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매다. 잽싸게 배낭 속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른다. 너무 멀어 잘 잡히지도 않고, 반대 방향을 사라진다. 너무 안타깝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야생매를 직접 본게 오늘까지 총 다섯 번이다. 특히나 요즘은 더욱 힘들다. 아쉽다.

 

당골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놀러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엥 이사람들 산은 안오르고 여기서 뭐하나?

 

 

 9살짜리 꼬마 여자아이

 주목군락이 시작이다

 

 

 

 

 

 이쁜 상고대. 눈꽃이 만발했다.

 

 

 

 

 

 천제단 가는 길

 정상이다.

 문수봉에서 본 함백산. 뒤로 보인다. 길낸다고 산 다 망가뜨렸다.

 매다.

 가는 길에 들른 촛대 바위

 

강원도 명물 오징어가 마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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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9 10:25 2008/12/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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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독거실 사용 원했더니 징벌방에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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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독거실 사용 원했더니 징벌방에 수용?

충주구치소의 내멋대로 법 적용 인권탄압 논란

 

천윤미(moduma@cmedia.or.kr)

 

충주구치소의 재소자 임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충주-음성 대표자협의회 백형록 사무국장은 12일 충주구치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충주구치소에 수감된 화물연대 조합원이 법에 보장된 독거실 사용을 요구했으나, 교도관들이 두 차례에 걸쳐 ‘입실거부’로 처리하고 재소자를 징벌방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독거실 사용을 요구하다가 징벌방에 수용된 재소자는 화물연대 소속 정영철 조합원. 그는 구속노동자후원회로 보낸 편지를 통해 “수감생활 중 혼거생활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는지 생각만 해도 미칠 것만 같다”며 “세수는커녕, 양치질도 안하고 옆 사람에게 풍기는 냄새까지도 토할 것만 같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밤에 깊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정 조합원은 천안소년교도소에서 왼쪽 무릎 관절부위를 다치기도 해 약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20여년동안 야간 화물운전을 한 탓에 밤낮이 바뀐 그는 불면증과 두통으로 인한 수면제, 진통제 등을 복용해 왔다.

때문에 야간에도 잠을 자는 것이 힘들어 “옆 사람의 숨소리조차도 저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로 쌓인다”는 그는 충주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충주구치소 사동 담당주임과 관구계장에게 독거실 사용을 요구했으나, 구치소 측은 이를 거부하고 정 조합원을 두 차례나 징벌방에 수용했다.

정 조합원이 두 번이나 수감됐던 충주구치소의 징벌방은 난방시설이 되지 않는 곳이며 7시 기상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모든 침구류를 빼가는 곳이다. 심지어 천정에 달린 감시 카메라는 24시간 움직임을 감시해 정 조합원은 “내가 무슨 살인이라도 저지른 강력범”처우를 받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이에 대해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은 “현행 행형법 11조 1항에는 독거실 사용을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구치소 측은 정 조합원에게 독거실 사용을 왜 못하는지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무조건 징벙방에 수용했다”며 “재소자에게 TV나 난방도 안되는 징벌방에 수감하고 모든 접견을 금지시킨 행위는 명백히 충주구치소의 인권탄압”이라고 비판했다.

또 민주노총 충주-음성 대표자협의회 김태수 의장은 “구치소는 구속영장의 집행을 받은 미결수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러므로 구치소에서 이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이며, 엄연히 법에 명시된 것조차도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 안했다 하는 것은 구치소의 횡포이며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구치소 측과 만나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 방도를 논의하고자 했으나 구치소 측은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충주-음성 대표자협의회는 “재소자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구치소 측이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여 어이없다”며 “지역에서 이를 알려내고 구치소 규탄 집회를 이어 가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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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09:18 2008/12/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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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11:30]콜텍 노동자들 특공대에 의해 전원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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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11:30]콜텍 노동자들 특공대에 의해 전원 연행

"너희가 폭력으로 대화를 거절한다해도 우린 끝까지 싸운다"

 

 

결국 콜텍 노동자들은 오전 10시 30분경 경찰이 투입한 특공대에 의해 연행되었다. 이들은 각각 구로, 양천구 경찰서로 이송 되었다.


조민제 지부장(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이 연행되는 과정에서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콜텍 노동자들은 나오는 순간 까지도 “우리는 박영호 사장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고 절규했다. 이들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경찰에 갇힌 동지들에게 힘차게 “투쟁”을 외쳤다.

이날 매 시간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경찰 병력은 콜텍 본사 앞에 있던 금속 노동자들을 방패로 밀어내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뒀다. 특공대는 사다리차를 이용해 본사 건물 3층의 유리창을 깨며 진압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이에 맞춰 본사 건물 2층과 3층 출입구 역시 특공대에 의해 열렸으며 소방호스와 소화기가 투입되었다.

 

 

경찰특공대는 사다리 차량을 이용해 (주)콜텍 본사 3층 유리창을 깨고 진입, 농성중이던 노동자들을 진압했다.


본사 내부에서 경찰의 진압이 본격화 될 때쯤 본사 밖에서도 노골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취재 기자들을 경찰 병력으로 둘러싸고 “초상권 침해다. 사진을 왜 찍냐? 이거 기자증 맞아?”라는 등의 말과 사진기를 손으로 쳐내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계속해 기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특히 각 기자별로 경찰을 배치해 노골적으로 사진기를 손으로 가리거나 현장 밖으로 쫓아냈다.

농성중이던 노동자들이 모두 연행되자마자 (주)콜트-콜텍 본사 이희용 관리부장이 본사 앞 노동자들의 천막을 뜯어내고 있다.


10시 30분경 본사 내부에서 투쟁하던 콜텍 노동자들이 외부로 끌려 나온 후, 현장을 배회하던 (주)콜트-콜텍 본사 이희용 관리부장은 본사 외부에 위치해 있던 천막 농성을 뜯어냈다. 이를 바라보고만 있던 경찰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합원들이 항의하자, 그때서야 사측 사람들을 저지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합원들은 본사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조민제 지부장과 콜텍 조합원들이 이송된 경찰서로 항의 방문을 갈 예정이다.

장석천 콜텍지회 사무장은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조합원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09:50 현재] 경찰특공대 투입, 콜텍노동자들 전원연행


9시50분 현재 콜텍본사 3층으로 경찰특공대 100여명이 투입되어 콜텍노동자들을 무차별적인 욕설과 폭력으로 진압중에 있다. 여성노동자들과 콜텍남성노동자들이 건물내에서 저항을 하고 있지만 진압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한편 건물밖 1층에서는 금속노조 대충지부 노동자들이 200여명의 경찰과 전의경에 둘러쌓여 꼼짝을 못하고 있다.

[08시 현재] 경찰 본사 진입, 농성중인 노동자들과 대치 중


날이 밝아진 오전 7시 30분경이 되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이들은 소방차 3대와 사다리차 1대를 이용해 본사 건물을 에워싸고 있다. 본사 1층에서는 경찰들이 집기로 막아 놓은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소방호스와 소화기를 콜텍 노동자들에게 분사하고 있다.

또 3층으로 직접 투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사 뒤편에 추락방지용 안전 매트를 설치하고 있다.

본사 3층에 있는 콜텍 노동자들은 “타협은 없다. 콜텍 사측은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고 민중의 지팡이라 일컫는 경찰들은 폭력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선전물을 뿌리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콜텍 노동자들이 완강히 저항하자, 경찰은 병력을 매 시간마다 추가하고 있다.


농성 중이던 콜텍 조합원들이 창밖으로 뿌린 선전물.


이에 앞서 오전 6시 30분경, 현관문을 지키고 있던 대전충북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콜텍 노동자들이 왜 점거를 할 수 밖에 없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냐? 우린 경찰과 싸우려는게 아니라 콜텍 사장과 만나서 교섭을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항의 했으나, 이들은 전경에 의해 본사 맞은편 가로등 밑으로 끌려가 꼼짝도 못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경찰이 한 시간도 안돼 도착할 수 있나? 경찰이 아니라 콜텍 박영호 사장 개인 경비업체인가?”라며 항의했지만, 강서구 경찰 관계자들은 “당신이 뭔데 난리냐? 가만 있어라. 전원 연행될 수 있다”고 답했다.

한편 기자의 사진 취재를 가리거나 “공평하게 찍어라, 왜 저쪽 편만 드냐”는 등의 발언으로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속보5:00]콜텍 노동자들 본사 점거
"사장과의 교섭이 열리지 않는 한 죽어도 못 나간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서울 등촌동에 위치한 본사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대전충북지부 조민제 지부장을 포함한 이들 노동자 수 십여 명은 25일 새벽 4시, 본사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이 본사 점거를 하게 된 이유는 그간 수차례 실질적인 대표인 박영호 사장과의 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본사 점거 농성을 선택한 것이다.

조민제 지부장은 “콜텍 노동자들은 사측과의 교섭을 위해 목숨을 걸고 1만 5천 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가 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 박영호 사장은 콜텍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 조차 무시하고 있다. 교섭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몸으로 부딪쳐 교섭을 열겠다”고 밝혔다.


콜텍지회 조합원들 역시 “교섭이 열리기 전까지는 죽어도 못 나간다. 지회장은 단식으로 인해 온 몸이 망가진 상황이지만 여전히 박영호는 떵떵거리며 지내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 몬 박영호가 나쁜 것이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우리가 나쁜 것이냐”며 본사에서 나오지 않을 작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본사 3층에 농성장을 꾸리고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 체 박영호 사장과의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이들이 본사에 들어간 직후 출동한 사설 경비측은 “들어간 사람들의 신분을 밝혀라, 밖에 있는 사람들도 주민증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5시경이 되면서 경찰들이 출동했으며 이들은 "언제든지 뭐 좀 하면 검거하는 거다"라며 본관 출입구를 막아선 노동자들을 향해 위협적인 말을 던졌다.
현재 경찰 병력 2개 중대가 콜텍 본사 앞에 대기 중이다.

본사 정문 앞에 대치중인 노동자와 경찰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moduma@cmed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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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3:58 2008/11/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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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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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땅에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수고가 있기에 그나마 작은 희망은 꺼지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나 잊혀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올때 구속노동자후원회로부터 편지와 함께 보내준 후원은 절망의 망망대해에서 작지만 큰 구조의 손길처럼 느꼈습니다” -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용근님의 글

 


몇차례에 걸쳐 이곳에 내 빵살이를 실었더니, 나름 인기가 있었다는 천윤미 기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다시 옥살이를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쓰지 않았던 옥살이 동지들의 아픔을 써볼까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동지들이 옥살이동안 밖에 있는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면회장에 나와서는 밝은 모습을 하고 걱정 말고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쪽 팔릴까봐? 아님 힘든 모습을 보이면 밖의 동지들이 더 힘들어 할 까봐? 아님 정말 즐거워서? 셋중 하나일테지요. 어떤 마음일지는 동지들이 판단해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저는 참 행복한 빵살이를 했습니다. 지역에서의 활동도 오래했고, 나름 동지들이 끔찍이 생각을 해주어 거르지 않고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천길 만길 이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있던 청주교도소 1사는 2층 복도 끝에서 보면 면회를 마치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면회를 마친 나이든 노모가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청주흥덕서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어 가던 날. 당당해 지자던 다짐과는 달리 훤히 켜진 형광등(교도소는 제소자의 자해행위 등의 방지를 위해 하루 종일 불을 켜 놓는다) 밑에 눈을 감고 있노라면 주마등처럼 많은 것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그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가슴터질 듯한 분노와 질식속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서야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분출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그렇게 싸워나갑니다.
하루하루의 단식 역시 참 우울했었습니다. 단식을 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단식이란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반드시 상대는 있는 법, 저놈들이 쪼는 기세라도 보여야 할 맛이 나는 것이니까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일때는 혹시 질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저놈들이 소위 ‘간’ 보는 과정이랍니다. 그래 니가 공안수라고 깝치는데 얼마나 버티나 보자. 제풀에 꺽이겠지... 이 고비를 넘어서면 공안수로서의 대접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잡범취급 당하며 절절매야 한답니다. 다행이 저는 그 선을 넘었나 봅니다.

공안수가 항상 넘쳐나는 서울구치소를 빼고는 많은 우리 동지들이 빵투쟁에 대한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집단이 아닌 홀로 생활을 하다보면 우왕좌왕 하다가 억울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특히나 각오한 빵살이가 아닌 집회 투쟁 등을 하다 현행범으로 들어온 동지들은 더 합니다. 그럴때 주위에서 제대로 빵 수발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빵투쟁은 고사하고, ‘내가 잊혀져 가고 있다’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밖에서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라도 안에 있는 동지들의 크건 작건 그 두려움이 항시 존재합니다. 미결수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경우 더욱 심하겠지요. 이런 어려움 속에 교도소 측의 간보기에 걸려들면 질 수 밖에 없고 험란한 빵살이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스스로의 투쟁에 대한 회의와 더 나아가 패배주의로 스스로를 죽여갑니다. 실제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동지가 심각한 우울증과 패배주의로 출감이후 운동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동지들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지들의 투쟁은 정당했고, 이렇게 우리는 밖에서 동지에게 빚지지 않게 열심히 싸우고 있노라고. 동지를 믿고 힘있게 빵투쟁 하라고... 스스로 가슴속에 다짐만 말고 보여주셔야 합니다. 면회가고, 힘들면 요즘 인터넷 빵빵 터지지요. 법무부 홈페이지가서 인터넷 서신 한통씩 보내시면 됩니다. 서신 한통 한통이 안에 있는 동지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절망의 교도소가 희망의 노동자 학교가 됩니다.
이 ‘잊혀져 간다’는 두려움만 극복하면 빵생활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이후 빵에 들어갈 동지들에게 헤메이지 않을 길잡이를 조금이나마 제시하고자, 그리고 밖에 있는 동지들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함 입니다. 양손을 다 뻗을 수 없는 0.75평 독방에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딱 그만큼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딱 그만큼입니다. 설혹 안에 있는 동지들이 편협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섭섭해 말고 이해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아! 출감해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응하는 시기에도 이해하려고 노력 바랍니다. 저는 나와서 6개월동안 편협한 사고로 인해 주변 동지들 참 힘들게 했습니다. 동지들이 잘 받아주어 다행이었습니다.

오늘도 어렵고 힘든 빵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관심과 동지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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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12:54 2008/11/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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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소금강 청량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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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방에서 주왕산과 어울려 대표적인 암산으로 산세는 크지 않으나 연이어 솟는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혔다는 청량산에 간다. 870m의 아담한 산이지만 이쁜 산이리라.

청주에서 네명의 일행이 세시간을 넘게 달려 10시 도착이다. 벌써 많은 산사람들이 산에 매달려 있다. 입석에서 시작이다. 정면에서 해가 비쳐 산세를 미쳐 돌아보지 못했는데 30여분 경사를 올라 웅진전을 지나니 청량사가 나온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다는 청량사다. 암산에 둘러싸인 청량사는 나같은 무지렁이가 보아도 기가 펄펄 살아 나는 풍수지리속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곳에서 도를 닦으면 세상사를 모두 잊고 살 것 같다.

 

웅진전이다. 기암절벽 아래 위태위태하게 서있다.

 

청량사.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조 서예가 김생이 수련했다는 김생굴 

청량산에서 바라본 기암절벽 

일제 말기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V자로 껍질이 벗기워진 소나무 

 

청량사의 자태를 구경하고 다시 자소봉으로 오른다. 자소봉으로 오르는 도중 조선시대 대표적 서예가 김생이 서도를 닦기위해 기거했다는 김생굴을 지난다. 굴이라 칭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김생을 기리기 위해 돌탑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깔딱고개를 넘어 자소봉이다. 도립공원인데도 국립공원 못지 않게 잘 정비되어있다. 표지판부터 곳곳의 안정 펜스까지... 자소봉의 봉우리에는 커다란 쌍안경까지 설치되어 있다. 경북도의 산사랑이 느껴진다.

자소봉에서 바라본 청량산  줄기

다시 내려올 길 오르지 않는다며 자소봉에 오르지 않고 쉬고있는 일행들...

저멀리 구름다리가 보인다. 죽었다.

 

30분정도 완만한 능선을 타고 탁필봉과 연천봉을 지나 정상으로 다가간다.

윽 죽음이다. 산행기에 없던 구름다리다. 올 5월에 완성되었단다. 정말이다. 구름다리 죽기보다 싫다. 80m 국내 최대란다. 저걸 건너야 한다.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은 구름다리를 앞만보고 달린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정체가 되지 않는다. 중간에 바람이 분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다스리며 옆은 보지도 못하고 걷는다. 일행중 한명이 장난질이다. 중간에 가로막아선다. 이런데서 장난하면 안된다. 정말 죽을듯 뛰다시피 다리를 건넌다.

저걸 건너가야 한다. 죽음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자란봉에 도착한다. 이제 한고비 남았다. 그런데... 일행들이 힘들다고, 돌아갈때는 다시 이길로 와야 한다고 포기한다. 제길... 어쩔수 있나. 혼자 투덜거리며 길을 재촉한다. 족히 100m는 직각으로 내려간다. 죽음이다. 이따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길 거의 70도는 되는 것 같다. 철계단이 아니었다면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을텐데...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을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헥헥대며 오른 정상. 장인봉이란다. 조선조 서예가 김생선생이 직접 썼단다. 주변은 나무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아 바로 아래 전망대가 있단다. 100m 내려간 전망대. 눈앞이 탁 트인다. 최근 운무로 인해 산정상에서 아무것도 못봤는데 지금은 저멀리 소백산까지 다 보인다. 너무 좋다.

 

정상이다. 장인봉에서 찰칵

정말 맑다. 저 멀리 우뚝솟은 소백산 국망봉이 보인다. 

기암절벽 아래  기가 팍팍 솟는 청량사

 

다시 자란봉으로 와 일행과 합류 점심을 먹는다. 하산길은 뒷실고개 삼거리에서 청량사 방면이다. 한명이 무릎이 아프다며 빨리 하산을 하잖다. 어.... 하산 빨리하면 무릎이 더 아픈데... 그냥 빨리 가자고 한다. 좋다. 거의 뛴다. 그런데 하산길 정말 장난아니다. 흙길이 가물어서 먼지가 폴폴 날리고 문제는 미끄럽기가 장난이 아니다. 몇 번을 넘어질 뻔 했다. 운동화를 신고왔던 일행중 한명은 아애 엉덩이로 길을 쓸고 내려온다.

4-5시간 걸린다는 코스를 세시간만에 완주했다. 정말 무식한 산행이다. 이런 산행 문제가 많다. 산은 즐기고 산과 함께 동화되기 위함인데 마라톤을 했으니... 절대 이런 산행 하지말자 다짐을 한다.

여기까지 온거 금어기에서 풀린 대게를 먹으러 영덕 강구항으로 향한다.

멋진 산행과 대게. 나름 참 잘 어울린다.

 

강구항에 자리잡은 삼사 해상공원의 경북대종

킹크랩을 보여주시는 강구항 대게 센터 사장님

돌아오는 길에 봉화의 얼음골 얼음폭포

주산지다. 물이 말라 볼품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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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3 20:11 2008/11/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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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산... 만만히 봤다가 큰코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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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 - 월영대 - 촛대재 - 대야산 정상 - 밀재 - 다래골 - 월영대 - 용추 (총 4시간)

 

 

최근 설악 공룡능선, 속리산 묘봉, 천태산 등 살벌한 암릉을 타고 다녔더니 대야산이 만만하게 보였다. 작년 초 약간이 고생은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산으로 기억했다. 계룡산을 가자는 산동지의 말을 꺽고 대야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만만한 대야산으로...

 

 

함께 간 분이 오늘은 그럼 빡센 코스를 타자고 한다. 뭐 빡세봐야 거기서 거기지 했다.

용추에 도착했다. 용추폭포. 정말 아름다운 폭포다. 태조왕건 드라마에서 견훤이 죽던 마지막 장면을 찍어서 더욱 유명해 진 곳이란다. 달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月影臺)를 지난다.

 왕건 촬영장으로 유명해진 용추폭포

 달이 머문다는 월영대

 

 

어... 지난번 갔던 길이 아니네. 다래골이나 피아골 느긋한 계곡으로 가야 하는데 월영대에서 오른쪽으로 오른다. 그러더니 능선으로 오른다. 약간 깔딱 고개를 오르니 촛대재란다. 아... 여기는 백두대간 등반로다. 위험하다고, 산을 보호한다고 등반이 금지된 곳이다. 이런.... 그런데 백두대간에 이런 길이 참 많다. 대간 종주자들 대부분 벌금 50만원에서 몇백 만원씩 각오해야만 한다. 제길...

 

 

대야산에 올랐다는 사람들 거의대부분 이길을 가보지 못했을 거다. 피아골이나 다래골로 올랐을 거다. 그래 가보자. 죽기야 하겠나? 눈앞에 대야산이 보인다. 어... 장난 아니다. 저걸 어떻게 오르나? 끔찍하다. 시작이다. 한시간여 장난아닌 깔딱으로 오른다. 윽 잘못했다. 밧줄을 타려다 옆을 봤다. 장난아닌 낭떠러지다. 그걸 보고나니 고소증이 솟아난다. 어질어질 다리가 후들후들... 그렇게 거의 직벽을 50m정도를 오르고 또 오른다. 전체적으로는 공룡이나 묘봉에 비할데 아니지만 단기코스로는 절대 아래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하면 더했지 장난이 아니다. 정말 만만히 봤다가 죽을 뻔했다. 대야산 정상(931.7m)에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같이간 형님은 밧줄타느라 젓가락질도 못하겠다고 죽을 상이다.

 

 고인돌오 아니고 뭐나? 정말 누가 올려놨나?

 이쁜 산죽길이다.

 저걸 올라간다. 제일 약한 절벽이다. 죽을 뻔 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정경. 그런데 운무로 안보인다.

 

 

그렇게 오른 정상. 오늘도 운무로 인해 그 좋은 경치를 보지 못한다.

한달간 금주를 하기로 해서 정상주도 못먹고 밀재방면으로 나간다. 다행히 릿지화를 신어 이어진 바위능선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다. 정말 재미있다. 암릉타기도 참 많이 재미있다. 그 묘미를 오늘 밀재로 가는 길에서 톡톡해 본다.

 - 정상이다. 역시 좋다.

 까마득한 대야산 정상. 이게 제일 쉬운길. 그길도 저걸 밧줄타고 올라가야 한다.

 

 

또다시 멋진 바위다. 관문바위(?)란다. 대야산으로 가는 관문에 떡하니 자리잡은 관문바위를 지나니 이제는 널널한 흙길이다. 그 흙길을 뚫고 내려와 맛난 점심을 먹고 머리위로 자란 산죽군락을 지나 계곡을 내려간다. 올 가을은 가뭄으로 인해 단풍이 말라버렸다. 빨간 단풍은 간데 없고 온통 말라버린 단풍잎만이 남아있다. 단풍이 제대로 든 계곡은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

 

 

여름 계곡도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 한번 여름이나 물이 풍부한 가을에 꼭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하산을 한다.

 

밀재 하산길도 이렇다.

 

관문바위다.

 

 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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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6 19:38 2008/11/1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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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 “(주)단양버스, 문제 해결 안하면 버스 환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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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 “(주)단양버스, 문제 해결 안하면

버스 환수하겠다”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modum@cmedia.or.kr)

 

부당해고와 부당인사, 방만한 운영으로 문제가 되었던 (주)단양버스가 전국운수노동조합 단양버스지회와의 교섭을 시작했다.

이는 충북지역 노동자들의 잇따른 경고를 받아들인 김동성 단양군수가 “11월까지 사측이 적극 노사교섭에 임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군이 지원한 버스 16대를 (주)단양버스로부터 즉각 환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초 단양군은 (주)단양버스에 2006년에는 8억6천 만원, 2007년에는 11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사측이 소유한 22대의 차량 중 16대의 차량구입비 전액을 보조했지만, 허술한 관리감독으로 단양버스 노동자들의 아픔을 외면해 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군수의 동생이 (주)단양버스 사장과 만나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는 목격자들이 있어 “군수와 (주)단양버스 사장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김 군수의 발표가 알려지자,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군수의 올바른 결정에 환영하며, 사측의 성실한 교섭으로 단양버스 노동자들의 고통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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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09:51 2008/11/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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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의 미온적인 대처에 노동자들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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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의 미온적인 대처에 노동자들 뿔났다.

노인요양시설 중원실버빌리지, 정상화 촉구

 

조장우 미디어충청기자 (youthtree@nate.com)

중원실버빌리지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와 지역의 노동자들은 12일 오후 3시 충주시청에서 지난 10월 16일에 시설폐쇄된 노인전문 요양시설인 중원실버빌리지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중원실버빌리지 이재숙분회장은 이 자리에서 ‘충주시는 보은재단의 입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정상화를 위해 즉각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참가한 노동자들은 시설정상화에 대한 충주시의 미온적인 대응에 울분을 토했고, 시장 면담을 하러 시청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를 막던 충주시청 공무원, 전경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회전문으로 들어가려던 여성노동자들을 힘으로 밀어 부쳐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고, 몸싸움을 말리지는 않고 사진만 찍다가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시장 만나러 왔다!!" 경찰은 회전문으로 들어가려던 여성노동자들을 힘으로 밀어 부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몸싸움 끝에 시청 로비 안으로는 진입했으나 전경들에게 막혀 결국 대표자들만 면담을 들어갔고, 시장은 외출 중이어서 부시장과의 면담을 가졌다. 노조측 대표들의 조속한 사태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 부시장은 ‘행정절차를 밟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면담 참가자들은 20분 정도의 면담 속에서 부시장의 행정 편의적인 이야기만 들었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면담보고 후에 노동자들은 다음 투쟁을 결의하며 자리를 마쳤다.

몸싸움 끝에 시청 로비 안으로는 진입했으나 전경들에게 막혀 결국 대표자들만 면담을 들어갔다


한편 이날 집회에서는 중원실버빌리지 노동조합에 충북 전교조와 공공노조가 투쟁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20분 정도의 면담 속에서 부시장의 행정 편의적인 이야기만 들었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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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09:39 2008/11/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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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봉! 그 살벌한 암릉에서 뛰어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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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네슬레 간부들이 묘봉을 간다고 한다. 극기훈련 차원에서 전임자들까지 모두 휴가를 내고 간다고 본부에서 같이 갈 수 없냐교 묻는다. 당근 OK다. 묘봉. 그리도 가고 싶었는데 너무 험해서 혼자서는 절대 가서는 안된다고 말려서 못갔던 산이다. 사고가 많아 개방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산. 드디어 간다.

 

 

이른 아침 체육관에 모여 출발한다.

코스는 용화 묘봉 두부마을 식당 앞에서 출발, 토끼봉, 상학봉을 거쳐 묘봉 정상(879.m)에서 미타사 방면으로 내려와 용화 버스종점까지다. 5시간코스로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인데 아래에서 볼때부터 우람한 암벽들이 주눅을 들게 한다. 특히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더 심하다. 25명의 간부중 2명을 빼고 모두 나왔다. 몇 명이나 낙오되려나 하는 우려도 생긴다. 워낙 산이 험하다.

 

 

오르는 길 후미가 신정리로 잘못 빠져 한참을 기다린다. 한시간여를 올라 도착한 토끼봉 바로 아래 너럭바위. 아찔하다. 시원한 맥주한잔 하고 배낭을 놓고 토끼봉으로 오른다. 드디어 시작이다. 밧줄에 매달려서, 토끼줄로 기어서 헉헉대며 오른다. 정말 끔찍하다. 낙오 한명 없이 다 오른다. 아니 그 험한 바위사이를 훨훨 뛰어다니는 이도 있다.

 

 

다시 너럭바위로 내려와서는 온통 험준한 바위능선을 간다. 십수미터 직벽을 밧줄하나에 매달려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떨어지면 죽음인 바위사이를 폴짝 거리며 뛰어 건넌다. 올라가는 건 팔힘도 좋겠다 위만보면 되니 잘 올라간다. 그런데 내려가는건 아래를 보면서 가야되니 죽을 맛이다. 바위사이를 뛸때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면서 도착한 상학봉. 까마귀들이 밥좀 달라고 머리위를 배회한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주변 관경을 본다. 운무를 뚫고 멀리 문장대와 천왕봉이 보이고 희양산 구병산이 보인다. 멋지다. 산은 자신에게 허락된 자만 이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좋다.

 

 

다시 바위능선을 타고 묘봉으로 간다. 묘봉. 마지막까지 죽을 맛이다. 살벌한 암릉과 막판 직벽은 진을 쪽 뺀 다음 자태를 드러낸다. 묘봉정산. 고상돈 산악인을 기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희말라야를 우리나라 처음으로 오른 이. 그 이가 한강 이남의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격찬하며 암벽훈련을 했던 곳이 묘봉이라 한다. 그래서 이 정상에 그이를 기리는 표지판이 있다. 오늘 그 산을 함께 했다. 너무 좋다.

 

 

묘봉을 돌아 편안한 흙길을 걸어 하산한다. 대단하다.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하긴 위원장이 맨 뒤에서 두눈 부릅뜨고 오니 낙오자가 생길 수 있나. 원점 회귀도 아니니 돌아가도 차를 탈 수 없고... 어쨌든 대단한 간부들이다. 다른 산도 아닌 묘봉을...

나중에 안 사실... 그 험한 암릉지대 우회로가 있었다. 일부는 산대장 몰래 그길을 걸었단다. 우씨...

 

 

산행 Tip. 묘봉을 오를때는 필히 빨간 반코팅 장갑을 껴야 한다. 안그러면 손 다 까진다.

 

 

묘봉 개념도 

토끼봉, 상학봉, 묘봉이 드러낸다. 

 애구 죽겠다.

 아주 사람을 잡는다. 잡아

토끼봉 정상에서 한컷

 

토끼굴로 기어내려오고, 밧줄타고 내려오고

 상학봉이다.

 저런걸 오르고 내린다. 미치는 줄 알았다.

 묘봉 정상이다. 이쁘다. 그런데 저 절벽을 올라가야 한다.

 멀리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이 보인다.

 살벌한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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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0:38 2008/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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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 부본부장 실형 1년 4개월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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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 부본부장 실형 1년 4개월 확정

 

탄탄한 조직을 지키고 다듬어 자본과 정권 탄압에 철저히 대비할 것 주문

 

이용대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부본부장 (건설노조 충북건설기계지부 前지부장)이 10월 24일(금) 열린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확정, 집행이 유예되었던 6개월까지 합쳐 총 1년 4개월을 복역해야 돼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용대 부본부장은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 투쟁과 이랜드 홈에버 투쟁을 힘차게 전개한 바 있으며, 충북 청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노사 합의사항에 대한 사측의 불이행에 맞서 격렬히 투쟁하였고 이로 인해 지난 2월 15일 구속 된 바 있다.

 

이용대 부본부장은 덤프노동자로 덤프연대 창립전 준비위원장을 역임하며 충북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업자협의회를 노동조합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활동했고, 2005년 12월 19일 덤프연대 충북지부를 결성하고, 충북지역 곳곳에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는데 초석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건설현장에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건설기계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수많은 투쟁을 전개해왔고, 이런 투쟁의 결과 10여년 제자리 걸음이었던 운반비 인상, 운반비 어음 지급 근절, 과적 강요 금지 등을 쟁취해 나가며 현장을 바꿔내 왔다.

 

 

 

 

이용대 부본부장은 형 확정이후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의 재판을 "신뢰성도 공정성도 결여된 형식적인 법집행"이라며 비난하고 "이제서 막 노동조합과 동지들을 알아 갈 즈음 죄도 죄 같지도 않은 것을 갖고 철저하게 엮이여 적들의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또한 "경제는 경제대로 망쳐놓구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부분들까지 단숨에 20년전 30년전으로 후퇴" 시키고 있다며  현 정권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어 "조직해서, 단결해서, 학습해서, 무장해서, 준비하자던 선배들의 외침에 현실에 안주하며 빵 한 조각에 모가지 내걸고 품팔이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며 질타하고, "더러운 현실 헡으루 보지 말구 진정성을 갖고 탄탄한 조직 지키고 다듬어서 어줍짢은 세력들의 반격과 탄압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훗날 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맘 속에 남아 있는 분노를 토해낼 그날을 기약" 했다.

이용대 부본부장은 현재 대전교도소에 복역중이며, 형 확정 이후 이감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이영섭 前본부장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김기연 조직부장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김용직 교선부장 벌금 500만원, 정근원 금속노조 前지부장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조남덕 前사무장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되었다. 이들은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투쟁, 한미FTA 투쟁, 이랜드-홈에버 투쟁 등으로 재판을 진행중이었다.

 

이용대부본부장에게 편지를... 왼쪽을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대전교도소 '839번 이용대'를 입력하고 서신을 쓰시면 됩니다.

 

 

 

 

이용대 부본부장의 서신 원문

 

민주노조 동지들 보시유

자본가 정권의 충직한 홍위병들 앞에서 지지리도 못나게 발가 벗기운체로 온갖 난도질을 당하면서 가증스런 재판의식을 끝냈습니다. 그런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심장이 터질듯 요동칩니다. 드런놈들 감이 누가 누굴 심판해.

노동조합 맹길어 투쟁다운 투쟁도 활동다운 활동도 못해보구 이제서 막 노동조합과 동지들을 아아 갈 즈음 죄도 죄 같지도 않은 것을 갖고 철저하게 엮이여 적들의 철창에 갇히게 되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모든 신뢰성도 공정성도 결여된 형식적인 법집행들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가증스런 쓸데없는 짓이지요. 피 같은 국세 낭비인 게지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조직해서, 단결해서, 학습해서, 무장해서, 준비하자고. 예부터 선배 동지들이 외침과 실천이 있었는데도 우리 노동자들은 항상 현실에 안주하며 빵 한 조각에 모가지 내걸고 품팔이 하는 것에 만족해하며 상대적으로 소외계층인 노동자들의 모호한 태도가 지금의 적들에게 기고만장을 심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제를 경제대로 망쳐놓구 인권인 민주주의니 하는 부분들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을 통해 개선돼 오는 듯 하더니 이 정권 온후 단숨에 20년전 30년전으로 후퇴를 시켜놓았지요. 온갖 기관들 동원해서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거칠 것 없는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세상 바꾸어 보겠다고 일어선 진보진영의 사람들 입으로 구호만 뒤지라고 외쳐 댔지 실천이 따르지 않으니 당연히 돌아오는 것은 탄압과 억압인 게지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날 재판장에서 충직한 시녀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부쳐 짖어 대더니 결국 기각이라고 합디다.

그러니 약간의 기대를 했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지요. 그 불쌍한 놈들에게 자존심 굽히면서 기대 했다는 것이 그렇게 분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민주노총 동지들 모두가 더러운 현실 헡으루 보지 말구 진정성을 갖고 탄탄한 조직 지키고 다듬어서 어줍짢은 세력들의 반격과 탄압에 철저히 대비해야 될 것 입니다.

이러한 시련들이 실천하는 노동자들이 겪어야 될 시련이라면 당당히 견뎌 내구 살아서 나가야 되겠지요. 그러나 이런 일들이 최소화 되게 하는 전술도 준비해야 되겠지요. 정규직군과 비정규직군이 확연히 구분돼서 선이 그어져 있는 노동계에서 서로를 포용하구 보듬어야 될 노동조합이 서로를 불신하구 내치고 결국은 분열로 가고 그런 이합집산의 노동계를 적들은 이때다 싶어 탄압으로 모든 것을 무력화 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잘 아실 겝니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는 노동조합들이 많으니 큰일이지요.

 

그래서 항상 탄압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이지요.

속히 노동자성 인정해야 되는 부분인데도 법안조차 폐기되었으니 새로 시작해야 되겠지요.

올해 이런저런 벽을 허물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슬로건을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정말 하나로 가는 길의 초석을 다지려고 계획 했었는데 이렇게 잽혀서 정말이지 분한 맘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다행히 남아 있는 우리 특수 고용직 상근 동지들이 지부장의 구속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며 정말 불철주야 대단한 노력들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견뎌내구 있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충북건설기계 상근동지들 지부장 구속후 조직확대 사업을 통해 말도 더럽게 안 듣는 굴삭기 놈들을 조금씩 묶어냈구요

감옥 동지를 위한 면회투쟁을 매일같이 조직을 해냈습니다. 지금까지 9개월 거의 있는 것인데 불과 수일정도 빼놓고 거의 매일 면회투쟁을 해낸 것이지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저는 동지들의 따뜻한 동지애를 느끼면서 편안하게 잘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지역의 동지들 대충강 동지들 전국의 우리 동지들 지루하고 역겨운 재판 준비며 면회투쟁 등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징그런 투쟁 마치고 나가면 동지들에게 갚을 수는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밖에 있을 때 책장 한 장도 넘기질 못했는데 이곳에서 많은 책들을 접했습니다. 훗날 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맘 속에 남아 있는 분노를 토해낼 그날을 기약해 봅니다.

우리 빵잽이 용지기 동지의 투쟁 방법들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과부 맘은 과부가 안다고 빵에 다녀온 사람이 모든 방법을 알고 있더군요.

 

사랑하는 민주노조 동지들

심란하고 더러운 세상이지만 각자 자리에서 신념으로 살아내십시오.

건강도 챙기면서요.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아마 나도 다른 교도소로 이송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 11. 3

대전교도소에서 이용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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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13:18 2008/11/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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