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나보고 어느 산이 힘들지 않으면서 이쁘게 감상할 수 있냐고? 난 망설이지 않고 ‘도명산’이라고 대답한다. 정말이지 이쁜산이다. 그 산을 다시 간다. 4시간 정도 산행에 정말 멋진 암벽과 계곡을 감상할 수 있는 산. 도명산을...
느긋하게 9시 30분 산행을 시작한다. 이른시간인지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화양동계곡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이 아홉 곳이나 된다고 해서 ‘화양구곡’이라 부르고, 조선시대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조정을 물러나와 은거하던 곳이란다.
2곡은 운영담과 3곡 읍궁암을 지나 4곡 금사담과 암서제를 지난다. 아침 일찍 상인들이 손님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드디어 화양3교다. 이곳부터 산행 시작이다. 도명산도 죽을 듯 한 깔딱고개로 시작한다. 작년에는 없던 철계단이 밧줄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단풍이 메마른 날씨로 인해 피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너무 안타깝다. 한시간여를 땀으로 목욕하고 오른다. 515봉이다. 살 것같다. 높다란 바위위에 오르니 솔개 한마리와 까마귀 네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다. 숫적으로 우세인데도 까마귀들이 도저히 솔개를 잡지를 못한다.
이어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 칼바람이 땀을 몽땅 식혀 버린다. 으그 춥다.
10시 30분 643m의 정상은 슬쩍 안개가 끼어 있다. 젠장... 오늘도 안개 때문에 절경을 놓쳐 버렸다. 안타깝다. 어렴풋이 화양동 계곡과 군자산, 칠보산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대하산, 남쪽으로는 낙영산, 주봉산, 멀리 속리산 능선과 묘봉이 들어온다.
시원한 배에 정상주를 한잔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400m정도를 내려오니 아! 마애불이다. 고려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최고 30m나 되는 수직암벽에 각각 세분의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중간 가장 큰 부처님의 발끝에서는 물이 샘솟고 있다. 젠장. 그런데 누군가 여기에서 굿을 했나보다. 촛농에 음식물 쓰레기에... 너무한다.
슬슬 사람들이 몰려 오기 시작한다. 하행길도 깔딱은 깔딱이다. 사람들 죽을려 한다. 이런때가 좀 못됐지만 쾌감을 느낀다. 난 널널한 하산길, 넘들은 죽을 듯한 고통의 오르막길....
널찍한 바위를 구해 컵라면에 김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8곡 학소대로 내려온다. 정말 사람 많다. 만만한 화양계곡을 따라 사람들이 몰려온다. 7곡 와룡암과 6곡 능운대, 5곡 첨성대를 지나 다시 원점회귀다. 아 아쉽게 9곡이 파천을 못봤다. 1곡 경천벽은 차로 내려오면서 구경한다.
3시간여의 산행. 옅은 안개로 인해 아쉽지만 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도명산은 진달래가 산행길을 장식해 준단다. 내년 봄 도명산의 진달래 품에 안겨봐야겠다.
낙엽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낙영산, 주봉산, 멀리 속리산 능선과 묘봉이 들어온다.
마애불이다. 잘 찾아봐라.
1곡은 경천벽. 층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하 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라 이름지어졌다.
3곡은 우암 선생이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통곡했다는 읍궁암이다.
4곡 화양구곡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금사담. 반짝이는 금빛 모래가 깔려있는 곳으로 넓은 암반 위에 우암 선생이 서재로 사용했던 정자(암서제)가 있다.
오서산. 도보여행을 하면서 꼭 한번 오겠다고 약속했던 산이다.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서는 천수만에서 군산 앞바다까지 모두 보인다고 한다. 마침 가을이라 억새가 활짝 피었다고 하니 절호의 기회다. 아침 7시 일찍 집을 나선다. 두시간 반 만에 광천읍에 도착한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가득 가득하다. 단풍철을 즐기려고 모인 등산객들이다. 그런데 이중 절반 정도는 산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우그...
상담마을 주민들이 전부 다 나온 것 같다. 정암사로 가는 방면 시골길에는 주민들의 좌판이 펼쳐져 있다. 가시오가피, 헛개, 마늘, 생강 등 마을에서 생산 한 것은 다 나온 것 같다. 하기야 이런 날 한몫 잡아야지.
정암사 일주문까지는 널널한 농로길이다. 그러더니 윽... 죽을 듯한 깔닥바위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가는 그 험한 길을 갔던 나인데도 죽을 것 같다. 30여분을 깔딱 깔딱 하다가 숨이 턱 터지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아... 해무가 자욱해서 바다가 보이질 않는다. 안타깝다.
정상이 보인다. 능선길에 늘어선 갈대숲. 멋지긴 한데 기대에는 약간 못미친다. 가뭄때문인지 갈대도 풍성하지 못하다. 바위는 참 이쁘다. 드디어 전망대. 정말 사람 많다.
막걸리 종이컵 잔술이 1000원이다. 우와 장난 아니다. 맛난 상을 편다. 일단 라면을 끓인다. 같이 간 형님이 집에서 바리 바리 반찬을 싸오셨다. 김치에 깍두기, 절인 고추, 가지무침, 짱아찌... 정말 과분한 점심이다.
다시 오서산 정상으로 향한다. 해발 791m의 산인데 다행히 안개가 조금 걷힌다. 멀리 서해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뚜렸한 서해를 보려면 겨울에 와야 한단다. 하산길은 임도를 택한다. 우와 이 산을 임도를 타고 산악자전거로 올라오는 인간들이 있다. 정말 대단하다.
돌아가는 임도를 피해 다시 급경사 산길을 탄다. 오후 3시 다시 상담마을 이다. 간에 좋다는 헛개열매를 산다. 중국산이라고 말리는 형님들을 뒤로 하고 믿고 사본다.
조카들이 다시 왔다. 중간고사를 보고 꼭 산에 한번 데려간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시험 끝나자마자 내려왔다. 이왕이면 산속에서 야영하며 산행을 즐기려 했는데 너무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민박을 하기로 했다. 이그... 애덜 침낭 빌리고 삼겹살에 상추, 고추까지 다 준비했는데...
이른 아침 일어나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아파트 형님과 동행, 출발이다.
애들의 체력을 생각해서 계룡산으로 잡았다. 그리 높지도 않지만 나름 암산의 비경을 느낄 수 있는 산으로 적격이리라. 동학사로 들어가지 않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천정골로 들어간다. 동학사 산행을 처음하는 분들은 거의 동학사로 2000원씩 내고 들어가 남매탑으로 오르는데 이길이 돈들지, 깔딱 고개라 힘들지...
동학사 초입에서 우측으로 돌면 돈안들고 좀 편하게 산행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꼭 그리로 가보길... 왠지 문화재관람료는 삥 띧기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8시 10분. 큰배재 까지 2.4Km. 금방 오를 것 같은 완만한 오르막인데 동생이 벌써 쳐진다. 땀이 비오듯 하고 숨이 턱까지 찬다. 10분만에 쉬어가잔다. 오늘 갈길 약 10Km 5시간 코스다. 나 혼자면 3시간 반이면 완주하는 코스 인데... 최소 여섯시간 이상은 걸릴 것 같다. 무리하지 않고 애들에게 맞추기로 한다.
큰배재에서 땀을 말리고 남매탑으로 간다. 아직까지는 단풍은 무리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 사람들 모두 비켜주면서 간다. 큰배재에서 잠시 이어지는 능선길에 애들이 신이 난다. 그러다 막바지 깔딱에 또 울상이다. 근근히 올라온 남매탑에서 다시 삼불봉. 오늘의 B난이도다. 애들은 죽는데 어른들은 참... 땀이 날만하면 쉬고 하니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남매탑에서 함께... 좌측이 박세준 (초등 4), 우측이 박세호 (중 1)이다.
삼불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양이 한가족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없다. 이놈들 어디로 갔나? 본격적인 능선이다. 자연성능. 계룡산의 진면목을 한껏 보여준다. 아... 700고지가 넘어서니 간간히 단풍이 붉게 드러난다. 좋다. 연신 감탄사를 하며 능선을 타는데, 앞에 큼지막한 고양이 한 마리. 저 놈이 어찌 여기까지 왔나? 나머지 놈들은 어디갔지?
참 많이도 왔다. 고양이 한놈이 이제 산꾼이 다 됐다.
마지막 관음봉으로 오르는 깔딱고개. 오늘의 A난이도다. 10분을 죽을 듯 말 듯 오른다. 못간다고 할까 우려하는데 다행이 잘 올라간다. 꿀맛같은 컵라면에 햇반 반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좀 힘이 난다.
이제 하산길이다. 더 위험하다. 이놈들 설설 긴다. 죽을 맛이다. 그래도 안전이 최고. 최대한 천천히 가라 이른다. 지난 번 왔을때 이길에서 한사람이 구르며 옆사람까지 함께 굴러 헬기가 떴었다. 조심해야 한다.
자연 성릉. 어른도 아찔 아찔 하다.
저꼭데기 까지 올라 가야 한다. 죽는다. 죽어
다 올라 왔다. 관음봉이다.
오후 세시가 되어 동학사로 내려왔다. 동학사 구경을 하자니 씩씩하게 내려왔던 큰놈이 그냥 가잔다. 힘들다고... 동생 때문에 힘든 내색않고 부지런히 걷어니 힘들긴 힘든가 보다.
온 김에 외할머니댁에 들렀다 가기로 하고 공주로 향한다. 어... 백제문화제 기간이란다. 잘 됐다. 누나에 전화해서 하루만 더 데리고 있다가 올려보낸다고 통첩한다. 애들이 좋아 죽을라고 한다. 초등 4학년, 중 1학년 애들이 매일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야 하니 죽을 맛 일 거다.
덕분에 나도 십 몇년 만에 백제문화제 구경했다. 가장행렬과 연등행사, 야시장 까지...
다음날 일찍 애들 올려보내니....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맙다. 겨울방학때 또 부탁하마” 우씨...
새벽 3시 30분. 어제의 피로와 술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도 가야한다. 간단히 씻고 이른 아침을 먹고 설악동으로 간다.
오늘은 다시 공룡이다. 새벽 5시 랜턴을 밝히고 간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른 것 같다. 어둠에 신흥사를 지나고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 초입에 들어선다. 금강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도저히 오르지 못한다. 지난번 오르려다 포기 했다. 오늘도 포기다.
6시 30분 날이 서서히 밝아 온다. 아... 다 보인다. 저렇게 생겼었구나. 정말 감동이다.
그렇지만 곧 죽어간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정말 죽는다. 대여섯 분이 내려온다. 벌써 공룡을 타고 내려오시나? 너무 힘들어 포기 하고 내려오신단다.
마등령에 오르니 우리가 가야할 공룡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오늘도 반만 보여주시려나 보다.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데. 덕팔이(D-80)를 부담스럽지만 목에 걸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댄다. 그러다 보니 일행과 현저히 뒤떨어 진다. 상관없다. 오늘 12시간을 목표로 잡았다. 지난번엔 아무것도 않보여 9시간만에 완주했던 길이다. 여유있게 간다.
왜 공룡능선을 최악(?)의 코스라 하는지 타보면 안다. 그런데 요즘은 길이 워낙 잘 정비되어 있어 웬만큼 타는 사람은 무지하게 힘들지만 타긴 탄다고 한다. 몇 개가 되는 지도 모를 공룡 등짝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정말 죽을 맛이다. 곳곳 위험한 곳에는 로프가 매달려 있다. 여성분들은 정말 죽으려고 한다. 11시 30분 갑자기 안개가 날아온다. 금방 보이던 용화장성이 없어져 버린다. 다행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 안개 역시 절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대장치로소의 몫을 톡톡히 한다. 안개속에 다시 라면에 밥한덩이를 먹고 정상주 한잔을 하고 희운각 대피소 쪽으로 간다.
어제의 피로와 숙취가 좀 가신듯 하다. 발걸음이 좀 가볍다. 오랜만 인것 같다. 경치에 취해 그 경치를 감상하고 산행을 하는 것이다. 좋다.
하행길이다. 천불동계곡을 들어선다. 너덜바위에 무릎이 시큰 거린다. 계곡의 비경이 통증조차 잊게 해준다. 경치에 취해 내려오는 하산길 다시 비선대에 선다.
어... 비선대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암벽을 탄다. 대단하다. 난 죽어도 못한다. 고소증은 치유불가능이다. 동동주와 파전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4시 30분 하산한다.
이 아래는 산이 파랗다. 산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단풍의 절경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비도 왔단다.ㅎㅎ 산은 고통을 함께 나눈 이들에게만 자신의 자태를 보여준다. 너무 좋다.
설악산... 유난히 나를 거부해왔다. 한번은 울산바위 간다고 갔다가 폭우로 인해 흔들바위에서 내려왔고, 귀때기청봉 갔다가는 점심먹고부터 비와서 죽쓰고, 공룡능선 타러갔다가 역시 장마로 인해, 또한번은 소중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8월 말 맑은 날씨를 기대하며 기상청을 믿었는데, 새벽 3시부터 비가 와서 9시간 동안 비쫄딱 맞으며 비구름속에 공룡능선을 뛰었다. 아무것도 못본체...
다시 그 길을 간다. 10월 3-5일 못 믿을 기상청은 날씨가 화창하단다.
2일 퇴근 하자마자 일행들과 함께 차에 오른다. 좋다.
백담사코스를 선택한다. 비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로 한다.
새벽 4시 30분. 설레임에 모두 눈을 뜬다. 이른 아침을 먹고 백담사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데... 단풍철이라서 첫차가 7시가 아닌 6시에 출발한단다. 6시 10분 급히 정류장에 가니... 세상에 벌써 10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장난 아니다. 1시간을 넘어 7시 20분 드디어 백담사에 도착한다. 절구경은 내려와서 하기로 하고 뛰기 시작한다.
이사람들 정말 뛴다. 영시암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데 1시간도 안돼서 도착한다. 입었던 방풍우의를 벗고 티셔츠 하나 입고 다시 달리다. 이미 설악산은 단풍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계곡 물은 가뭄으로 말라 있었지만 기암괴석과 어울린 단풍으로 눈이 휘둥거려 진다.
11시 20분 봉정암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저 사람 엄홍길 대장 아냐?’
엥? 정말 엄홍길 대장이다. 희말라야 14좌를 등반한... 산꾼들의 대장.
염치 불구하고 사진한방을 부탁한다. 에구 이번 산행은 정말 운이 좋다. 비도 않오지 엄홍길대장도 만났지. 캡이다.
오세암으로 가기위해 사리탑에 오르는 순간 아... 눈앞에 펼쳐진 설악은 감탄사를 절로 내온다. 정말 끝내준다. 이렇게 비경을 보여주며 나를 품어 안은 설악산신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계곡에서 간단히 라면에 밥말아 먹는다. 물론 취사는 금지지만 어쩔수 없다. 흔적만 않남기면 된다.
여기서 산행 수칙 하나. 사과 등 과일은 던져주면 다람쥐나 동물들이 먹지만 귤껍질은 절대 않된다. 농약 때문에 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썩지도 않느다. 그리고 제발 먹고 버리지 말자. 우리 아이들이 다시 다닐 산이다.
멀리 용화장성이 보인다. 부지런히 영화배우 강수연이 머리를 깍았던 오세암으로 간다. 사람들 참 많다. 주로 예불을 드리러 오신 분들이다. 물 한잔 먹고 다시 출발이다. 셔틀버스를 기대려야 해서 부지런히 간다.
오후 3시 백담사에 다다른다. 일단 한명이 줄을 서고 백담사 구경을 간다. ‘전두환 대통령이 계시던 곳’ 이란다. 기가 막힌다. 계시던 곳이 아니라 귀향살이 하던 곳이다. 수백명의 광주 시민을 죽이고 민주화 세력을 수없이 구속시기고 고문해 죽인 원흉이 귀향살이 하던 곳이다. 제발 정신차리자. 기분 좋은 산행 마지막에 잡쳤다.
6시 외옹치항에서 회 한접시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절경에 취해 세명이 소주를 아홉병을 마셨다. 내일 죽었다.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이 미친 듯이 몰아치고 있다. 세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시위진압 전문 기동대를 만들고, 1인 검거시 5만원의 수당을 거는 등 상식을 초월한 초 강경 진압으로 촛불을 꺼뜨리고 있다. 촛불에 대한 공안 탄압은 구속 49명의 구속자와 30여명의 수배자를 양산했다. 이런 공안 탄압에 맞서기 위한 제56차 촛불집회가 10월 1일 탄압의 심장 충북도경찰청 앞에서 열렸다.
촛불을 탄압하는 이명박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촛불에 대한 탄압과 쇠고기 정국이 식어감에 따라 50여명이 조촐하게 모인 가운데 참가자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촛불탄압 중단'과 '명박퇴진'을 외쳤다.
첫발언에 나선 정남득씨는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을 만나려다 검찰에 불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집회에 대한 강경탄압뿐만아니라 소비자운동을 벌인 누리꾼, 시위대와 전경사이의 방패막이 되었던 예비군에 이어 유모차 아줌마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이명박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촛불탄압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어서 장민경씨는 "이명박 정부가 민간차원의 교류사업을 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 실천연대 등 통일운동단체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탄압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사업 뿐만 아니라 촛불정국에서 가장 열심히 참여한 단체다. 역사속에 사라져가던 구시대 악법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오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독재자들이 어떤 말로를 걸었는지, 우리 민중들이 독재세력에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를 알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다.
교육 불평등 심화하는 일제고사 중단
김기연씨는 이어진 발언에서 "주성치의 영화를 보며 홍콩 사립학교의 끔찍한 빈부격차와 교육환경을 보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그 치떨리는 현실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 서울의 영운초등학교란 사립학교는 1분기 수업료가 168만원이다. 1년에 1000만원이 들어간다"며 교육의 불평등을 꼬집고, "10월 8일 아이들을 줄세우는 일제고사가 진행된다.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160억원을 들여 시행하는, 사교육비의 부담만 늘리는 일제고사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이웅재씨는 "옛부터 호랑이가 출몰하는 위험한 동네에도 세금이 낮으면 사람들이 몰려살았다. 부자들만 배불리는 종부세 완화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정부의 세금정책을 비판했다.
전세계 민중의 네트워크로 신자유주의 분쇄
이어 미디어충청에서 준비한 "지구촌 또는 약탈촌"이라는 시사영화를 상영했다. 영화는 독특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가미하며 세계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전세계를 재편하려고 하는 초국적 자본에 맞선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전세계 민중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거인 거인 걸리버와 같은 신자유주의를 꽁꽁묶는 릴리풋족(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소인족이) 될 것을 촉구하였다.
56회를 맞이한 촛불문화제. 이후 촛불은 잠시 멈추지만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민중이 깨어날때 다시 온세상을 밝힐 것을 다짐하며 참가자들의 촛불을 껐다.
옥살이라는 것. 솔직히 징글징글하다.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살아본 사람은 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교도소라는 곳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폐쇄공간인지 그 안에서 인간대접 받는 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다. 그만큼 정말 사람 피를 말리는 곳이 교도소라는 곳이다.
2004년 말 하이닉스 사내하청지회가 창립되면서 조직부장 이었던 나는 구속을 각오해야만 했다. 아니 어차피 구속될 거 한방 제대로 터뜨리고 들어가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거대자본과의 한판 승부는 자본을 비호하는 경찰과 맞장 뜨는 투쟁으로 이어져 갔고 마침내 2005년 노동절 제대로 붙었다. 일명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불리는 노동절 투쟁은 청주시내 핵심 관통대로에서 미친 공권력에 맞서 주유소를 배수진 삼아 쇠파이프로 무장한 노동자군대가 10시간 가까이 야간 혈투를 벌였다. 이 투쟁으로 미친 공권력에 의해 수십 명의 동지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고, 대오를 지키기 위해 나는 신나를 몸에 붓고 투쟁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 투쟁으로 즉각 수배되고 구속이 됐다.
어차피 각오한 빵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소위 빵투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갑한 상황 속에서 일단 ‘무식이 최고의 무기다’라고 믿고 그냥 밀어붙였다. 뭘 요구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소장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을 들어갔다. 역시 단순한 게 최고 였다. 단식 열흘 만에 보안과장을 만났다. 요구사항은 별로 없었다. “그냥 건드리지 마라” 였다. 그랬더니 정말 건드리지 않았다. 위는 다 해결이 되었는데 아래는 또 그게 아니었다. 요놈의 행형법이란게 정말 웃긴다. 규정을 내리려면 제대로 내려놓던지 운동시간은 1시간 이내, 면회시간은 30분이내.. 이딴 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에서는 자신들 편의에 따라 운동 30분, 면회시간 10분, 이런 식이다. 역시 무식이 최고다. 그냥 시간이 지나도 운동한다. 면회한다. 그러면 짬밥이 되는 부장급 교도관들은 슬쩍 모른 척 하는데 요놈의 담당급 교도관이 문제다. 젊은 혈기에 덤벼들면 멱살잡이까지 간다. 그러면 관구계장은 ‘징벌’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 요기서 밀리면 끝이다. 그냥 들이박고 맘대로 하라고 들이댄다. 십중팔구는 꼬리 내린다. 그러면 내 운동시간과 면회시간은 내가 하기 싫을 때까지 한다. 그리고 행형법이란게 교도관은 “평어”를 쓰도록 되어있단다. 평어? 참 힘든 단어다. 간단하다. 내가 들어서 불쾌하면 그건 평어가 아니다. 그런데 교도관들 요걸 핑계 삼아 반말에 심하면 욕지거리다. 똑같이 하면 된다. 반말 쓰면 나도 반말하면 되고, 존댓말 쓰면 나도 존댓말 쓰면 된다. 그럼 딱 두 마디 하고 나면 존댓말을 쓰게 된다. 요런게 몇 차례 되면 서서히 교도소 내에 소문이 퍼진다. “공안수 한놈 있는데 건드리지 마라. 엿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소장-보안과장-김용직’이라는 소위 교도소 내 넘버 쓰리가 되었다. ㅎㅎ 싸움의 기술?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必死卽生 아! 밖에 있는 동지들. 가끔 안의 빵투쟁 소식 접하면 슬쩍 집회신고서 한장 던져놓으면 더 편하다.
1년 6개월의 빵살이. 힘든 때도 있었다. 항소심때 그냥 실형 살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사는데 접견온 변호사가 집행유예로 나갈 수도 있다는 한마디를 던졌다. 쓸데 없는 기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나갈 수 있다며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조급해지고, 그러다 막상 실형이 떨어지니 정말 절망 속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다.
빵살이 정말 중요한 수칙. 빨리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일찌감치 버려라. 그리고 넉넉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우리 같은 사람들. 어차피 각오하고 싸우는 거니까, 내가 투쟁한 만큼 형량이 떨어지는 거니까, 제대로 싸웠다 싶으면 ‘아! 1년 6개월 (검찰이 거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건다. 이게 최하형이다)이구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편하다. 그러다 중간에 나오면 좋구.
틈틈이 동지들과 교류도 열심히 해라. 지금은 밖에 나와 열심히 투쟁하는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동지와 유성기업의 엄기준 동지 등. 빵살이 하면서 같이 편지도 주고받고, 같이 투쟁 시기 시기 동조 단식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줄줄 흘러간다.
빵살이 수칙 또 하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빵살이가 헛된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으니 스스로 철의 규율로 살아야 한다. 내 경우 시간표 딱 짜놓고 치열하게 살았다. 기상과 더불어 한시간 요가하고, 아침 먹고 신문보고, 한시간 동안 달리기 하고, 한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점심 먹고는 컴퓨터 배우러 가고, 돌아와서 공부하고, 저녁 먹고 TV시청 후 한시간 공부하고 취침. 뭐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나만 이리 산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노동쪽 공안수들은 치열하게 운동하고 공부한다. 1년 6개월이면 배에 王자는 새겨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수칙. 넉넉하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 담배 끊지, 술 끊지. 주기적으로 단식해서 몸의 노폐물 빼내지, 나오는 음식은 나름 웰빙식으로 보리밥에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건강은 끝내주게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밖에서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한 책을 일주일에 두권 이상은 읽을 수 있지, 정기적인 운동으로 몸짱되지. 컴퓨터도 가르쳐 주니 컴도사 되지. 이렇게 맘 편히 살아야 한다. 아. 그리고 옥담 밑에 텃밭도 가꿔보면 좋다. 상추, 치커리,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등등 가꾸는 재미도 있고, 수확물이 나오면 사동의 다른 수용자들 나눠먹으며 인심 써서 좋다.
빵살이 정말 지긋지긋 하다. 그렇지만 나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면 그나마 살만해 진다. 단. 투쟁한 만큼만 그 댓가가 다가온다. 제대로 싸우면서 즐겁게 넉넉하게 어쩔 수 없는 빵살이 즐기며 살자. 빵생활 노하우 배울 동지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란다. 정리된 노하우 E-mail로 전수해 줄 수 있다. 요거 가지고 많은 동지들이 나처럼 좌충우돌 헤메지 않고 초반부터 빵살이 편하게 하고 있다.
6개월의 연수휴가가 오늘로 끝이다. 그런 휴가가 있다는 자체에 놀라면서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민주노총이 신의 직장이라...
하기야 6개월의 휴가는 내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없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면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 이 엿같은 휴가체계 투쟁으로 바꿔야 한다. 육개월까지는 아니더래도 최소 2주에서 한달정도의 여유있는 휴가가 절실하다. 그럴때 스스로의 노동력을 재정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지금처럼 연월차 있어도 제대로 사용못하고 그놈의 돈 몇푼으로 대처하고, 좀 여유있는 정규직노조의 경우에나 그나마 일주일 하계유급휴가가 있는데 이것도 애들 데리고 강원도 한번갔다오면 휴가철 길막혀서 이틀은 차에서 보내야 하는 휴가도 아니다. 유럽처럼 최소 한달이상의 하계휴가가 보장된 경우 일년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새롭게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 우리노동자들도 반드시 이런 휴가 쟁취해야 한다.
내경우도 역시 그동안 10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내 모든 것은 ‘노동자’에 걸어왔다. 1500만원이 넘는 벌금과 수차례의 연행과 1년 6개월의 실형... 우스게 소리로 전과 10범이라며 흘려 보내지만 그만큼의 무게로 내 어깨를 짓누르기도 했다. 이번 연수휴가는 그 10년의 무게를 털고 새로운 나자신을 만들어갈 소중한 시간이었다.
6개월 동안 도보여행과 가고 싶었던 거의 모든 곳도 가고, 삼촌으로 해주지 못했던 조카들과의 여행도 해보고, 정말 다 해봤다. 이곳에 많은 자취를 남기려 했지만 천성이 게을러서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다만 정말 아쉬운 것. 청주지검 공안검사의 말도 안되는 출국금지 조치로 인해 그리도 가보고 싶었던 쿠바와 독일, 캐나다, 안나프르나를 못가본게 한이 된다. 꼭 가보고 싶었었는데... 언제 가보려나.
신성한 노동이 자본가의 아귀같은 이윤추구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죽은노동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신성한 노동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바로 그 아귀같은 이윤추구를 근절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노동자의 몫으로 온전히 가져올 때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불가능하다고? 아니 절대로 가능하다.
수많은 이들이 그 길을 가고 있기도 하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쿠바가 그러하고 독일이 그러하다. 아니 이미 그 명을 다했다는 소련과 중국 민중들의 가슴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그려지고 있을 수도 있다.
기륭전자, ktx,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의 가슴속에 간직한 세상이 조금씩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너무 조급해 하지말자. 장기적인 관점속에 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삶의 구석에 내몰린 소외된 비정규, 영세 노동자들,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파괴하는 잘못된 습관을 버리자.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건강해야 그 끝을 볼수 있는 거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기자. 이미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면 동지들과 어깨 걸고 여유롭게 당당히 나가자.
운동도 건강해야 할수 있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공고한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잡초의 근성으로 자본의 벽을 뛰어넘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로 다시 시작하자.
진나라 주왕의 전설이 배어있다는,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3대 암산으로 자리한, 주변의 주산지와 함께 아름답기로 유명한 주왕산. 그럼에도 경북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한다는 청송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가보지 못했던 주왕산을 간다.
저녁 늦은 시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번은 들른다는 주산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는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진으로 보던 그 아름다운 절경이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에구... 재수도 없다.
늦은 시간 주왕산 야영장에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는다. 국립공원 관리원들이 퇴근한 이후라서 공짜야영을 한다.
일찌감치 아침을 해결하고 주왕산으로 오른다. 산 초입부터 웅장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당당히 선다. 초입 주왕이 은거하며 적장과 대치할 때 대장기를 세웠다는 기암이 대전사의 연꽃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연꽃을 접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대전사에서 마치 산보하듯 걷는 산행길은 탄성의 연속이다. 신라시대 왕위를 양보하고 은거한 이의 식수를 위해 계곡의 물을 길러 올렸다는 급수대, 사람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는 시루봉, 1,2,3 폭포, 함께 어우러진 소와 담, 암봉 모두 장관이다. 오늘 눈이 참 호강한다. 불과 4km정도되는 이 산행길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답다. 경사도 거의 없고, 아이들과 어머니, 아버님들 역시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길이다. 꼭 한번 와볼만 하다.
산행길이 이제 주왕산으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의 산보와 달리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30분 가량 가자 후리매기 고개가 나완다. 후리매기를 지나서 능선을 타다가 곧바로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룰루랄라하던 산행이 여기서는 온몸의 땀을 쪽 빼낸다. 그런데도 시원한 능선 바람으로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다. 1시간여의 고행끝에 칼등고개에 오르고 거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20분도 채 되지 않아 주왕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은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시야가 막혀있다. 실망이다. 그런데 하산길 곳곳에서 주왕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탁트인 전망대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 길 장난이 아니다. 계속 45도의 내리막이다. 거꾸로 산행코스를 잡았으면 '악' 소리 났겠다.
산 중간 중간 등반로를 정비하는 분들의 구슬땀이 곳곳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등산객들의 안전과 산림의 홰손을 막기위해 설치되는 계단은 그 의도와는 달리 눈살을 찌쁘리게 한다. 주왕산의 기암을 보며 내려오는 하산길은 거꾸로 땀을 절절 흘리며 오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즐거움까지 더해 날아갈 것 같다.
4시간 30분 정도의 산행. 코스 선정은 오늘 코스를 거꾸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갔다. 주왕산까지 급경사를 1시간 반정도 온몸의 찌꺼기를 땀으로 배출하고 능선길 걷다가 피로한 심신을 제3폭포부터 시작된 비경에서 풀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폭포 아래서 운이 좋다면 알탕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거다. 알탕이 어려우면 족탕이라도... 산행의 피로가 확 풀릴 거다.
두달간의 도보행을 마치고 발이 풀리지 않아 푹 쉬었다. 그러면서 차로 내가 지나온 길을 지나봤다. 참 많이도 걸었다. 그런데 차로는 4박 5일만에 완주를 끝냈다. 약간은 허무했다.
그러던 중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조카놈들이 내가 지나온 길을 보고 그 길을 걷고 싶다고... 박세호 중학교 1학년, 세준 초등학교 4학년. 참고로 어려운 것 모르고 자라서 많이 힘들거라고...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이놈들에게 해준 것 하나 없어 이번에 세상사는 것 한번 제대로 느껴보자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코스는 고민 고민 끝에 통일전망대에서 역으로 환산해서 잡기로 했다. 처음에는 하루 25km정도를 잡으려 했는데 첨 걷는 애들에게 무리라는 중론으로 인해 20km로 줄여 3박 4일 약 80km의 코스를 잡았다. 이 역시 무리라 했지만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7월 28일 (20.7km) 새벽 3시 김밥하나 먹이고 하조대로 출발한다. 9시 하조대에 도착한다. 다행히 주차비가 무료란다. 4일치의 식량과 텐트, 침낭을 나누어 30L, 40L, 80L 배낭을 매고 씩씩하게 출발한다. 이번에도 내 배낭은 머리위로 불쑥 솟았다.
35도 가까이 되는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의 지열에 땀은 비오듯 한다. 이놈들 매어준 머리띠는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물을 짜내야 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2시간정도 씩씩하게 걷는다. 그러더니 역시 양양공항을 우회하는 도로부터는 슬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도저히 이 상태로 쵸코바 하나 먹이고 길을 가는 건 무리다. 마침 막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막국수 한그릇 먹고 나니 힘이 절로 난다.
설악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양양 남대천에 이르러서는 죽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바로 앞에 낙산사가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잔다. 허허... 그래 그 고통 안다. 알아. 일단 목표를 완주로 잡고 구경은 나중으로 미루자.
저녁 6시 오늘의 목적지 물치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정말이지 힘들게 왔다. 텐트를 치고 모기장이 쳐진 방갈로 2만원에 빌려 저녁식사를 한다. 꿀맛같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애들에게 기본적인 도보행의 수칙들을 숙지시킨다. 그리고 고통속에 이룬 성취의 기쁨을 위해 힘들더라도 꼭 완주할 것을 다짐받는다. 근데 이놈의 해수욕장이 바로 길 옆이라서 그런지 밤새 차소리와 취객들의 폭죽소리에 잠을 못이루게 한다.
둘째날인 29일(25.6km) 새벽 6시에 눈이 절로 뜨인다. 아침해가 뜨는 동해바다이니 벌써 훤하다. 처음먹어보는 냉동건조 비빔밥에 신기해 하며 열심히 먹는다. 오늘도 35도가 넘는 불볕더위란다. 죽었다.
오늘은 돈이 좀 들더라도 탈진을 예방하기 위해 물이 아닌 이온음료로 물통을 가득 채운다. 맘씨좋은 슈퍼아저씨 애들 챙기라며 구운소금을 챙겨주신다. 이놈들 난생처음 소금을 생으로 먹어가며 뜨거운 하루를 시작한다.
연신 헉헉 대는 세준이가 거의 죽을 지경이다. 덜컥 겁이난다. 귀한 자식 데려다 몸상하면 큰일인데, 더욱이 며칠전 도보행을 하던 여대생이 죽었다던데... 1시간 걷고 10분 쉬던 패턴을 30분 걷고 10분 쉬는 것으로 바꾼다. 그래도 장난아니다. 그나마 세호는 형이라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기특한 놈.
활력은 엉뚱한데서 나온다. 다 죽어 가던 애들이 속초 초입에서 뱀을 보고는 난리다. 하기야 난생처음 뱀을 그리 가까이서 봤으니 당연하겠지. 다행히 풀뱀이라 위험하지는 않다.
뱀에 힘을 받고 속초로 들어선다. 북한 실향민이 모여산다는 아바이 마을을 지나며 특미라는 순대를 먹는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 순대. 참 맛있다. 그런데 세준이가 더위를 먹었나 영 먹는게 시원치 않다. 그래도 어쩌냐 갈길을 가야지. 동네 명물인 갯배를 타고 다시 갈길을 간다. 이놈의 더위는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큰일이다. 더욱이 세준이가 사타구니가 쓸리기 시작했다. 온통 베이비파우더 범벅을 만들어 가며 강행군이다.
청간정, 청학정 그 아름다운 정자도 1km정도를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다. 그래 완주가 목표다. 가자. 힘들긴 힘든가 보다. 거의 초주검이다. 내 종아리는 소금으로 뒤범벅이다. 목표지점에서 약 2km전인 삼포해수욕장에 짐을 푼다. 도저히 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세호와 내가 발에 물집이 잡혔다. 바늘로 수술(?)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둘을 텐트에서 재우고 해먹에 몸을 뉘인다. 동해라서 그런지 제법 쌀쌀하다.
30일 (20.8km) 해수욕장의 느긋함을 깨고 또다시 도보행을 시작한다. 세준이 눈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하다. 그런데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누나에게 연락을 해보니 오늘 맑단다. 이거 기상청 영 믿음이 안간다. 그래도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송지호 철새도래지를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슬비라서 무리는 안된다. 간성읍을 코앞에 두고 빗줄기가 세어진다. 음.... 일단 좀 기다려 보는데 누그러질 태세가 아니다. 우비를 입고 행군이다. 그런데 빗속을 걷다보면 비맞는 것보다 차들이 지나가면서 뿌려대는 파편이 더 힘들다. 다행히 앞에서 내가 서행을 유도하면 서행해주고, 덤프의 경우 옆차선으로 피해가는 등 배려를 해준다. 그런데 이놈의 시내버스들... 안중에 없다. 그냥 100km 가까운 속도로 쌩쌩 지나친다. 정말 너무한다.
간성읍. 맛나게 먹었던 항아리 자짱면집에서 영양보충을 한다.
오늘의 일정은 반암해수욕장이었는데, 비속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게 영 개운치 않다. 애들과 상의를 해본다. 좀 힘들더라도 거진읍까지 가서 난생처음 여관이라는데서 자보자고 꼬신다. 사실 내가 비를 맞아 찝찝해서 더 강조를 한다. 세호는 해먹에서 자보고 싶어 텐트를 주장했지만 삼촌말에 복종을 한다.
좀 무리를 한다고 하지만 애들에게는 많이 힘든가 보다. 세호 녀석이 비몽사몽 차가 오는 것도 못보고 찻길쪽으로 쏠린다. 아찔하다. 좀 따끔할 정도로 혼냈다. 위험천만이니 어쩔수 없다. 마지막 밤. 거진의 목욕탕에서 푹 찜질도 하고 시원한 에어컨 속에 단잠을 청한다. 그런데 에어컨 리모컨 배터리가 다 되어 22도 설정속에 셋이 침대에서 꼭 껴안고 자야 했다.
31일 (12km)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12-14km정도 남아있어 쉬엄 쉬엄간다. 매형과 누나가 통일전망대로 마중을 나오기로 해서 그 시간대도 맞춰가기만 하면 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벌써 길이 막힌다고 2시에 만나기로 했던 것을 늦추기로 한다. 그런데도 이녀석들 행로 바로 옆의 이승만,김일성별장, 해양박물관 들어가자니 차라리 쉰다고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깔끔떨던 녀석들이 이제는 풀썩 풀썩 아무데나 주저 앉는다. 이승만 별장앞에서 해먹을 치고 번갈아가며 쉬기도 하고 강원도 명물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며 느긋한 도보를 한다.
그래도 힘들긴 힘든 법. 3-4일째가 가장 힘들다. 통일전망대 신고소를 2km 앞두고 내 장난에 세준이가 골을 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찌 보았는지 매형의 차가 옆을 지나가자 더욱 심해진다. 그러다 보니 앞의 차를 보지 않고 간다. 마지막으로 따끔하게 주의를 주고 마지막 길을 간다. 100m앞 누나와 막내 세민이가 오색테이프로 종점을 알려준다. 이녀석들 어디서 힘이 나는지 뛰어간다. 허허.
기특하다. 79.1km. 난생 처음 해본 도보행. 정말이지 중간중간 포기해야 되나 많이 고민했다. 이 녀석들도 포기하고 싶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련을 거치니 마지막 뛰어갈 힘이 나는 거겠지. 아마 많은 것을 느꼈을 거다. 그 느낌들 꼭 기억했으면 한다.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 도보행을 하면서 들은 두가지 말들.
“아빠가 참 대단하다. 애들 인내심 키워주려 그 고생을 하다니...” Vs “아빠가 너무한거 아냐? 애들 다 죽이겠네”
어떤게 되었던 아빠가 되었다. 울어야 할지... 그래도 좋다. 완주를 했으니. 그동안 못했던 삼촌 노릇 한방에 만회했다.
전국의 엄마, 아빠들! 애들 애지중지 어려움 없이 키우지 말고 올 여름 도보행 한번 시켜보소. 정말 애들한테는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화양구곡 있는 그 산이 도명산이로군요... 가을 풍경도 예쁘네요... 짬 내서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