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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설립 법적검토

두동강난 다리를 어떻게

* 미류님의 [두 동강나는 이주노동자]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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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아노아르 침탈항의 이주투쟁

이주탄압

새 민중언론 창간 제안문과 제안자 명단입니다.

새 민중언론 창간 제안문과 제안자 명단입니다.


(* 안녕하세요. 새 민중언론 창간준비위 실행단 유영주입니다.
새 민중언론 창간 제안자 님께 보내드리는 동보메일입니다)

- 새 민중언론 창간 제안문과 21일까지 추가된 창간 제안자 명단입니다.
- 13일 제안자모임 이후 실행단을 구성, 리플렛 제작, 세부 조직 계획, 홈페이지(블로그) 제작 등 세부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23일 오픈할 예정입니다. (http://blog.jinbo.net/newsmaker)
- 명칭은 현재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없어서 일단 공모를 거치기로 했습니다. 공모는 23일부터 미디어참세상과 새 민중언론 홈페이지 등 팝업을 통해 진행합니다.
- 임시 대표 메일을 newsmaker@jinbo.net를 사용합니다.
- 조만간 5월 1일 창간까지의 세부 활동계획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힘있는 창간이 되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 이하 창간제안문과 명단입니다. (파일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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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민중언론 창간 제안문

2005년 5월 1일
새 민중언론을 함께 만듭시다


전쟁과 무한 경쟁, 이성 잃은 세계


○ 오늘날 세계는 보편과 상식, 이성과 인권의 가치를 상실한, 무한 착취와 경쟁의 시대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 공세가 그것입니다.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아동과 여성의 삶을 착취하고, 소수 인종과 약소국의 주권을 박탈하고, 노동 유연화를 위해 세계의 모든 노동자를 억압과 고통의 현장으로 몰아 질식시키는 반인륜적 범죄 프로젝트입니다. 약육강식과 제로섬게임, 승자독식의 정글법칙으로 호명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 민중의 피를 부르는 착취와 폭력의 난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 지금 이 나라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세계화를,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합니다.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어서 저항하고 거스르는 일은 더 이상 부질없고 무모한 것으로, 심지어 위해하고 위험한 것으로 몰아세웁니다. 그들은 가볍게, 쉽게 말합니다. 개방통상정책은 선진국가로 가는 필수 선택이고, 교육, 의료, 문화의 상품화는 선진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들은 미국의 침략 전쟁에 스스럼없이 동참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니라 이 나라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생각과 행동입니다.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해 민중의 의식주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장으로 내모는 그들의 행각이야말로 보편과 상식을 거스르는 위험한 물결입니다.

○ 날이 갈수록 사태는 심각해집니다. 개발이익에 눈먼 사람들은 도룡뇽의 눈빛과 생명의 가치를 헤아리지 못 하고, 갯벌의 생명이 곧 자신의 생명임을 인지하지 못 하고, 방폐창 정책이 금세 우리 모두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합니다. 자본에 중독된 사람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치료받고 병 고치는 일을, 여행과 레저와 생활의 모든 환경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이윤을 더 늘리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은 봉건적 억압에서조차 자유롭지 않은 여성을 저임금의 노동시장으로 내몰아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강요합니다. 낡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신앙으로 삼는 사람들은 동등하게 교육받고, 이동하고, 일할 권리와 문화적 자유를 누려야 할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청소년과 소수자를 금기와 순종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 신자유주의 개혁은 노동현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자본이 저지른 외환위기에 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처방이 이루어졌고, 이 땅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 폐해에 따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이라는 노동자의 삶의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실업과 비정규직의 확산, 정규직 노동자의 생존 위협도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본은 정규직을 해체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서 떨어지는 이득을 고스란히 챙기더니 이제는 정규직에게 그 공백을 메우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합니다. 양극화는 10대 90의 극단화를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며, 자본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이 무한 극단화 사태의 해결 방책에 대해 기만과 함구로 버티고 있습니다.

역사의 전진 되돌리는 신자유주의 개혁

○ 87년 6월 항쟁, 7월, 8월, 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18년,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격변의 세월이었습니다. 부패와 부정을 바로 잡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반공-개발 우익세력을 비주류로 몰아내는 승리의 역사였습니다. 무릇 수많은 민주인사와 열사의 피와 땀, 죽음으로 맞바꾼 소중한 성과입니다. 바야흐로 전대협과 386세대로 일컬어지는 세력들은 열린우리당의 주력이 되었고, 민주노조운동을 지휘하던 수장들은 참여정부의 주축 세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노동자 투쟁에 기반한 대중정당의 노력은 민주노동당 의원 10석의 성과로 이어졌고, 시민운동은 환경, 여성, 교육, 문화 등의 영역에서 개혁의 나팔수가 되어 한 시대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87년으로부터 18년,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전진해온 거대한 지류가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도했던 희망의 물결이 역류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상품을, 공동체보다 시장을, 보편과 상식의 민주주의보다 착취와 억압의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세력들이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전대협과 386 출신의 리더들이,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들이, 다수 시민운동 세? 쨉湧?이 대열에 나섰습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어느새 민중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 조중동과 싸우던 한겨레는, 대안언론을 자임하며 등장한 오마이뉴스는 한때 민중의 희망이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금하듯 만들어진 한겨레신문이 지난 18년간 민주주의와 개혁 언론의 산증인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종이신문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게릴라 대안언론 오마이뉴스가 언론 지도를 다시 쓰는 쾌거를 이룬 것에 대해 폄하할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이력이 바탕이 되어 지금 종이신문 한겨레신문과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는 개혁언론의 대표 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겨레신문은 민중의 목소리 대신 자본이 노동에게 하는 발언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운동을 길들이는 역할을 자임하기까지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자유무역협정을 홍보하고, 이라크 파병에 침묵하고, 민중의 투쟁을 정직하게 알려내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개혁세력이 신자유주의를 품어 안고 역사의 전진을 뒤로 되돌리듯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의 선전선동 매체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 방송과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약보합을 이루는 반면 인터넷신문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실시간 보도와 젊은 세대의 인터넷 활용의 영역과 범위가 커지면서 이제 인터넷신문은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인터넷 매체는 여론을 형성하고, 담론을 생산하며, 속보 체계를 통해 민중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언론법 개정으로 인터넷 매체도 법적으로 종이신문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랜 민주주의 투쟁 성과에 따라 미디어의 주류, 공공 영역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지금이 민중언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입니다. 힘이 있는, 규모가 있는, 주장이 있는 민중 자신의 매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수언론과 신자유주의 개혁언론이 쓰레기 같은 정보와 주장을 쏟아내는 전쟁터와 같은 현장에, 민중이, 민중의, 민중을 위한 매체를 당당하게 등장시킬 때가 되었습니다.

변혁의 밭을 갈고 씨뿌리는 민중언론

○ 새 인터넷신문은 변혁의 밭을 갈고, 씨뿌리고, 물꼬를 트는 민중언론입니다. 오늘날 민중운동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작은 실리에 쫓겨 큰 대의를 저버리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 생존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민중의 저항이 중단된 것은 아니며, 민중은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저항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릇 민중 스스로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진실이 깨진 것은 아니며 그것이 깨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새 인터넷신문은 해방의 길에 나선 민중과 함께 근본적 변혁의 꿈을 키우는 매체가 될 것입니다.

○ 새 인터넷신문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지배담론과 논리와 주장에 맞서 싸우는 언론입니다. 민중의 몸을 망가뜨려 온 개혁 담론과 논리와 주장 대신, 민중이 온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민중의 삶, 저항, 투쟁의 담론과 논리와 주장을 싣는 민중언론의 출현을 부릅니다. 새 인터넷신문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대안 담론을 선도하는 언론 △투쟁하는 민중의 생활매체, 정치매체 △미디어의 공공영역을 개척하는 언론 △변혁적 민중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언론의 위상을 갖고 세상에 그 이름을 내놓을 것입니다.

○ 새 인터넷신문은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청소년, 소수자의 언론입니다. 새 인터넷신문은 노동자의 생존과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논의와 토론 공간을 자임할 것입니다. 노동자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모든 종류의 교섭과 투쟁을 소중하게 다룰 것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노동자를 분열하는 밀어붙이기식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주장도 분명히 할 것입니다. 새 인터넷신문은 여성의 이야기를 우선 싣고,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의 삶을 가장 높이 이야기하고, 청소년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낼 것입니다. 새 인터넷신문은 개방통상정책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의 몰락을 경계하며, 우리 사회 교육주체와 보건의료, 문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농민과 빈민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시나브로 상식과 보편의 가치로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대안세계화, 사회화와 평등의 가치를 지키고 확산하는 민중언론이 될 것입니다.

5월 1일, 새 민중언론 탄생에 힘을 실읍시다

○ 2005년 5월 1일, 변혁을 꿈꾸는 모든 민중의 목소리가 살아 숨쉬는 매체, 민중의 생활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는 살아있는 매체를 만듭시다. 부디 새 인터넷신문의 탄생을 위해 지지와 연대를, 그리고 큰 힘을 실어 주십시오.

2005년 3월 21일
- 창간 제안자 -
강내희(중앙대) / 강동진(사회복지와노동) / 고정갑희(여성문화이론연구소) / 고종환(민주노총서울본부) / 구권서(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 / 김도형(변호사) / 김상복(노동운동가) / 김세균(서울대) / 김수행(서울대) / 김예준(전자통신연구원 해고자) / 김의열(사무금융연맹) / 김일섭(대우자동차노조) / 김정명신(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 김정수(공무원노조) / 김정환(시인) / 김진순(노동자교육센터) / 김진업(성공회대) / 김창남(성공회대) / 김하경(소설가) / 김학노(계명대) / 김흥현(전국빈민연합) / 김희준(만도노조) / 남희섭(변리사) / 단병호(국회의원) / 문헌준(노숙인복지인권실천사람들) / 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 박기범(동화작가) / 박성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 박장근(노동자의힘) / 박준(민중가수) / 박하순(사회진보연대) / 배인정(노동자뉴스제작단) / 백원담(성공회대) / 서관모(충북대) / 손호철(서강대) /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 심상정(국회의원) / 안와르(평등노조이주지부) / 양경규(공공연맹) / 양규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양기환(스크린쿼터문화연대) / 양한웅(한국통신해고자) / 오세철(전연세대)! / 원영만(전교조) / 원영수(국제연대센터) / 원용진(서강대) / 유덕상(한국통신해고자) / 윤호재(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 / 이경수(민주노총충남본부) / 이득재(대구카톨릭대) / 이민석(변호사) / 이상욱(현대자동차노조) / 이영섭(민주노총충북본부) / 이은우(변호사) / 이정원(사무금융) / 이종회(진보네트워크센터) / 이필두(전국빈민연합) / 이호동(발전해고자) / 이훈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임성규(평등사회전진활동가연대) / 장창원(목사) /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 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 정용건(사무금융) / 정진상(경상대) / 정성진(경상대) / 조돈희(울산해고자협의회) / 조문익(이윤보다인간을) / 조이여울(일다) / 조주은(어머니급식당번폐지모임) / 조희주(전교조) / 주경복(민주화교수협의회) / 지금종(문화연대) / 최갑수(서울대) / 최병두(대구대) / 최영묵(성공회대) / 최용준(민중의료연합) / 최형묵(천안살림교회) / 현정희(서울대병원노조) / 홍성태(상지대) / 황상익(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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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이주노동자 투쟁의 구심을 만들어내자!

명실상부한 이주노동자 투쟁의 구심을 만들어내자!- 380일 동안의 명동농성투쟁단 활동을 돌아보며
노동자의힘 노동자의힘기관지 (http://pwc.or.kr/maynews/)
기사원문: http://pwc.or.kr/maynews/readview.php?table=organ&no=2175
첨부사진/동영상: cover_death.jpg
380일이다

명동 들머리에 천막을 치고 '단속추방중단 미등록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에 돌입한지 380일 만에 해단식을 한 농성투쟁단은 이제 지역으로 돌아갔다. "노동비자 쟁취하고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쟁취되지 못했다. 1년이 넘는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결국 지난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을 발표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강도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지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은 곧 "농성투쟁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2003년 11월 15일

11월 15일 최종점검회의 동안에도 동력이 점검되지 않았다. 얼마나 올까? 초조한 마음으로 명동 들머리에 섰다. '단속추방 박살내자'라는 구호에 맞추어 지역별로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명을 넘었다. 세 개면 충분할 것 같았던 천막이 모자랐다. 이주노동자들의 눈빛은 빛났다. 명동성당으로 모여든 이주노동자들은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명동성당은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다. 이미 96년 11명의 네팔출신 산업연수생이 "때리지마세요"라는 요구를 걸고 쇠사슬을 몸에 감았던 곳이 명동성당이었고, 2002년 평등노조 산하 이주노동자 지부에서 '집회결사의 자유의 쟁취, 단속추방분쇄,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로 농성투쟁을 한 곳도 명동성당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2004년 8월 17일 시행되는 고용허가제의 사전정지작업으로 11월 15일부터 고강도의 합동단속이 예상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려웠던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시작된 단속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은 한국 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직감하게 했다. 명동성당으로 200여명, 그리고 전국 각지의 쉼터로 1,0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결집했다. 더 이상 숨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집단으로 저항하겠다는 투쟁의 의지를 모아냈다. 1996년의 농성이 사회적 이슈화에 그쳤다면, 그리고 2002년의 농성투쟁이 소수의 선도적인 문제제기였다면, 이번에는 이주노동자 대중의 힘으로 정부를 향한 투쟁전선이 그어진 것이다.

쉽지 않았던 공동투쟁전선

02년, 03년을 경과하면서 고용허가제 도입이 가시화되자 평등노조 산하 이주노동자지부를 필두로 선도적인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위력적인 대정부 투쟁전선을 그어내기에는 여전히 한계적이었다. 고용허가제철폐 투쟁전선의 복원을 위해서는 11월 단속추방 국면을 통해 투쟁을 결집시켜 내야만 했다.

02년 자진신고 거부투쟁을 비롯한 고용허가제에 대한 입장 차와 이주운동의 분화과정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을 축으로 이주지부와 외노협은 함께 공동투쟁을 모색했다. 논의의 시작부터 농성단의 명칭과 요구, 의사결정구조 및 집행체계에 대한 이견이 팽팽하게 대립됐다. 그러나 당면과제였던 '단속추방을 중단, 합법화를 쟁취'를 통해 고용허가제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한다는 목표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를 가지고 공동의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목표했던 합법화의 상과 내용이 달랐음은 곧 드러나게 된다.

공동투쟁전선의 유실

그 동안의 갈등과 고용허가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결국 농성투쟁 첫날 외노협을 중심으로 한 성공회 농성단과 명동의 민주노총 농성단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농성장이 분리됨에 따라 공동투쟁전선 또한 유실될 위기에 처했다. 명동농성투쟁단은 공동투쟁을 유지하는 가운데, 공세적인 투쟁계획을 배치하고 다른 농성장과 쉼터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견인한다는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나 공동투쟁은 몇 번의 공동 집회와 기자회견으로 끝났다. 농성투쟁을 사회적 쟁점으로 여론화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일정 성과를 낳았으나,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결국 출입국관리소 앞 집회, 정부종합 청사 및 노동부 항의 집회는 명동농성투쟁단만의 독자집회를 넘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농성투쟁 초기에만 해도 이주운동의 지형상 명동농성단이 전체 이주운동에서 주도력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2004년 1월 17일, 정부는 합동단속이 성과를 얻지 못하자 2월 말까지 자진출국기한 연장을 발표했고, 자진출국자에 한해 산업연수생제도 또는 고용허가제로의 재입국 안을 발표한다. 명동 농성단을 제외한 다른 농성장에서는 정부의 안을 농성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정부의 안을 받아들였고, 끝내는 농성투쟁을 정리했다. 결국 합법화의 방안은 자진출국 후의 재입국 이상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었다.

그러나 명동 농성투쟁단의 이주노동자들은 1월 18일 총회를 통해 정부안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한국 땅에서 노동허가제로의 합법화'로 요구를 명확히 했다. 공동투쟁전선은 유실되었고 홀로 남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대중투쟁의 가능성에 대한 확인

고립될 위기에 직면하여, 그 동안 다른 농성장과의 공동투쟁에 집중하면서 방기해왔던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농성투쟁의 고립을 막기 위해서는 농성투쟁을 거점으로 하는 대중투쟁의 기획이 절박했다. 농성단은 표적단속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방문하여 '자진출국거부 선언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자진출국 후 재입국안이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라는 판단이 주효했다. 이미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안의 기만적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명동농성 투쟁단은 정부협상안을 거부함으로써 투쟁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자신출국거부 선언을 위한 서명은 2,000명을 넘어섰고, 신문광고 모금액은 800만원에 달했다. 이제 지역에서도 명동농성단은 명실상부한 투쟁의 구심으로 서게 되었다. 집회 동력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비록 '불법'이라는 딱지에도 불구하고 대중투쟁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정부의 말려 죽이기 작전

홀로 남겨졌던 명동 농성투쟁단이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자진출국거부투쟁으로 통해 투쟁이 확산되자, 정부는 농성투쟁단 대표 샤말 타바를 강제로 납치하면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인도네시아, 네팔,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들로만 구성된 농성단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다른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이미 보호소 내에서 단식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깨비, 헉 동지를 비롯해 샤말 타바, 그리고 농성장 내의 4인으로 구성된 단식단은 연행된 이주노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월 21일 '한국인과 연계하여 집회에 참가하는 불법체류자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래도 2월 22일 100일 투쟁에 1,000여명 참가, 2월 29일 안산지역 결의대회에 500여명이 참가하는 등 집회 동력은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연행자 구출을 위한 단식투쟁이 30여일 계속되면서 지역과의 관계가 다시 이완되는 즈음 3월 2일 정부가 강력한 4차 합동단속, 특히 투쟁에 결합력이 높은 지역에 대한 표적단속을 실시하면서 지역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고 집회동력은 줄어들었다. 30일 넘게 진행된 단식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4월 1일 농성단 대표 샤말 타바를 강제출국시킴으로써 한국 정부는 농성투쟁에 대해 타협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농성투쟁

정부에서는 자진출국정책이 실패했음을 스스로 시인했고, 고용허가제 시행에 대한 불안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국면에서는 자진출국거부를 뛰어넘은 투쟁의 목표를 제시하고 대중투쟁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했다. 노동허가제 쟁취를 구호로 외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지역에서부터 조직하는 기획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31일간의 단식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제추방으로 귀결되는 현실을 보면서 지역에서는 투쟁에 대한 회의가 만연했다. 4차 합동단속으로 얼어붙은 지역은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투쟁은 확장되지 못했다. 동력을 모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5월 30일 200일 집회투쟁 대오는 100일 투쟁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다.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농성장에서도 월1회 전국 집회와 지역집회를 여는 것 이상의 투쟁의 기획은 나오지 않았다. 투쟁의 피로도가 쌓이고, 농성단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노동허가제 입법투쟁과 전국 투쟁위원회 건설을 목표로

5, 6월 어렵게 농성투쟁 대오를 재정비한 농성단은 농성투쟁의 전망논의에 들어갔다. 고용허가제 실시를 전후하여 대량해고 및 체불임금 등 현장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노정되었고 단속추방은 계속되면서 또 한편에서는 산업연수생과 고용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 도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농성투쟁의 전망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면서 명동 농성투쟁단은 향후 과제로 노동허가제 입법안 쟁취 투쟁을 진행할 것과 농성투쟁의 성과로서 전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을 지향하는 전국투쟁위원회 건설을 결의했다. 이를 위해 명동성당이 집중적으로 활동해 왔던 수도권 지역에서는 지역 거점 형성을 위한 활동에 집중했다. 이때가 7월이었다.

그러나 동력이 계속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허가제 입법을 위한 투쟁동력은 조직되지 못했다. 입법안 제출자체가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력마저 뒷받침되지 않아 노동허가제 입법투쟁은 추진력이 붙지 않았다. 농성단 내부에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심리만 만연했다. 그러나 투쟁동력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오히려 민주노총은 외노협의 고용허가제 수정안 제출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 외노협과 이주인권연대를 입법안 관련 논의의 자리로 끌어내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2002년 노동허가제 관련 입법안을 만들고 이미 노동허가제로 정리되었던 민주노총의 입장은 일보 후퇴해서 좌충우돌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좌충우돌은 또 다시 농성장의 혼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380일이 남긴 과제들

380일간의 투쟁은 '단속추방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쟁취' 투쟁을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전선으로 끌어올렸다. 이것은 이미 1월 18일 농성단 총회에서 정부의 협상안을 거부함으로써 마련된 투쟁의 교두보이며, 향후 확장되어야 할 전선이다.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 대중들 사이에서 농성투쟁단은 실질적인 투쟁의 구심으로 설 수 있었고 인정받게 되었다. 이주지원단체 운동이 중심이었던 과거는 전변되었고 이주노동자 주체들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주체로 선 것이다.

이제 이주노동자 투쟁에서의 당면과제는 고용허가제 개정이 아니라 노동허가제 쟁취임을 명확히 하고 2월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허가제 입법'을 향후의 목표로 하는데 이견을 제기할 단위는 없다.

그러나 380일의 농성투쟁을 통해 '명실상부한' 대중적 전국적 이주노동자 운동의 구심이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민주노총이 380일간 손놓지 않고 함께 해 왔고, 이주노동자 운동을 포괄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을 뗐다. 그러나 노동허가제 입법국면에서 보였던 좌충우돌은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향후 이주노동자 운동의 주체로서 명동성당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이주노동자 운동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주노총은 과거의 관계가 현재의 투쟁을 지배하고 있는 이 지독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있어서 단호한 자기입장의 결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 이주노동자 운동의 주체들이 결집하고 운동의 주체로서 스스로 책임 있게 결의하고 나서야 하는 것은 전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성투쟁의 성과로 결의되었던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 건설'뿐만 아니라 그 현실적 경로로서 '수도권이주노동자노동조합' 또한 힘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네팔 투쟁단의 경우 일부는 평등노조 이주지부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또 일부는 네팔 투쟁단에 남아있어 내부적인 단일한 전망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또한 농성투쟁에 결합한 동지들을 중심으로 내린 판단이어서 총회결정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농성투쟁과정에서 결집된 지역별 이주노동자 모임도 농성 해소를 기점으로 이완될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2월 노동허가제 입법투쟁을 위해서는 시급히 수도권 지역에서부터 재정비 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9월 노동허가제 입법투쟁에서 보이듯이 대중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과제와 맞물려서는 현재 네팔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활동가들에 머물러 있는 국가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더 넓게 각 국의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전전으로 결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내부에서 국가의 장벽뿐만 아니라, 연수생과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의 단결도 아직은 요원한 과제이다. 이번 농성투쟁에 결합한 주요 이주노동자 대오들은 '합법화'를 요구로 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들이었고, 등록, 미등록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미등록과 등록의 문제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연수업체를 이탈하는 순간 벌어지는 이주노동자 현실의 양면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착취에 맞선 현장의 투쟁을 통해서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농성투쟁을 통해 민주노총 지역본부와의 연계가 강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농성투쟁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성과이다. 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한국 땅 노동자의 현실을 투쟁으로 극복하기 위한 연대의 단초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주체의 강력한 결의를 통해 명실상부한 이주노동자 대중투쟁의 구심으로서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투쟁단 건설, 나아가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을 넘어 출신국가를 넘어, 등록과 미등록의 구분을 넘어 끊임없이 한국운동의 보편성과 이주노동자 운동의 특수성을 감안한 이주노동자 운동의 전형, 대중투쟁의 전형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의 전형이 만들어 져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주노동자 대중투쟁의 불길이 타오를 그 날을 향해 투쟁!

변정필 | 노동자의 힘 회원 200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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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붐바이 제4회 세계사회포럼 참가 여행기

인도 붐바이 제4회 세계사회포럼 참가 여행기

 

장창원 목사

(KNCC인권위원, 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 대표)

 

  인도 붐바이 제4회 세계사회포럼은 자본을 넘어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주제를 가지고 2004년 1월 16일- 21일까지 중앙 아시아 붐바이 고레가온 공단 지역에서 열렸다. 반전, 반미의 자주적 흐름 속에 전세계 민중들의 열망을 담고 지리적으로 인도 중서부의 중심지역이며, 오랜 경제, 상업중심지, 서구의 식민지가 들락거린 길목. 인도 최대 항구, 공업도시, IMF로 폐허가 된 고레가온 철공단 지역에 자연식으로 특별 설치한 포럼공간과 무대 속에 세계132개국에서 약 10만명이 참가하였다.

 

  반신자유주의·반군사주의란 분명한 목표 아래 전쟁반대와 평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응, 소수족의 인권, 여성, 부시의 제국주의 횡포, 카스트와 인종차별 등의 큰 주제아래 미디어, 정보, 지식과 문화 민주주의, 노동의 세계와 생산·사회적 재생산에서의 노동. 공공부문 - 식량, 보건, 교육, 물 - 그리고 사회보장. 소외, 차별, 존엄성, 권리와 평등 등 수백 여개의 소 주제와 돌아보기도 벅찬 분야별 부스가 있었고 사회활동가들이 세계민중들을 대표하여 뜨겁게 열변을 토하였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외쳐야할 구호들이 만발하였다.

 

  한국대표단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팀과 인권단체,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학생단체 등 약350명이 참가하였다. 나는 풀뿌리 노동자의 국제연대활동을 아시아, 태평양 노동자연대(APWSL) 한국위원회 대표로 1월 13일부터 30일까지 인도와 태국을 방문하였다. APWSL은 오랫동안 한국교회가 참여한 산업선교, 노동선교, 민중교회운동의 연장선으로 지난해 4월부터 인도포럼 참가를 계획하여, 뭄바이 사회포럼에서 변화된 시대 상황 속 국제노동운동의 연대 방향과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과 역할을 나누는 역사적 만남이었다.

 

  APWSL은 1982년에 결성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16개( 파키스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홍콩), 대만, 일본, 남한, 호주, 뉴질랜드, 피지) 국가의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로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며 진정한 노동조합운동 건설. 국제 노동자 연대, 특히 풀뿌리 수준의 연대강화. 우리 자신의 활동과 보다 광범위한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의 성적 평등실현.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의 인권 지킴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예언자의 마음으로 결정하여, 2004년 1월 13일 오후 출발하였다. 14일 저녁까지 태국에서 하루를 머물며 갈아 탄 인도항공기는 뉴델리를 거쳐서 15일 이른 새벽에 뭄바이 도착예정 여객기였다. 탑승객의 절반 이상이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는 승객으로 서로 인사를 하며 밤을 세웠고, 전통악기를 치며 노래도 부르고 짧은 연설도 했다. 사회포럼 참가와 기대를 이야기하며 뉴델리 공항에서 이미 세계사회포럼의 축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15일 오후 황혼 무렵, 비행기 창으로 공항주변의 빈민들의 천막촌이 보이는 붐바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인도사회의 정취가 넘치는 호객 꾼들, 삼륜 오도바이(룩샤), 검은 황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진한 자동차 매연을 먹는다. 남대문 시장 같은 인파를 속을 곡예처럼 달리는 붐바이 생활이 시작된것이다. 숙소는 한국 3명, 태국 2명, 뉴질랜드 1명, 일본활동가 30여명이 함께 묵었다.

 

  우리는 고레가온지역에 도착하여 대회장을 돌아보았다. 여러 APWSL동지들과 만남을 갖었고 한국에서 참석한 운동가들과 인사도 했다. 이미 동지들은 부시낙선운동 선전전을 땀흘리며 진행하고 있었고, 미국의 침략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의 깃발을 들고 행사장 분위기를 한국인들이 뒤집고 있었다. 행사장은 IMF로 철강제조공장이 패망한 자리에서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의 대안을 논의하며 발표하고 행동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꾸미어져 있었다. 큰 운동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는 인도 가수와 아프리카 민속음악 드럼이 울리고, 세계문화활동가들의 사전 문화행사가 2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우리 근처에는 한국운동가들과 WCC. CCA. NCCI 등을 대표한 사람들이 모여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몇 분의 어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인도 붐바이지역(NCCI) 루터교회의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초기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의 시작에도 이번 붐바이 포럼에도 세계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상징의식으로 대회구호를 꾸민 풍선을 하늘로 올리며 대회의 개막을 알렸다. 인도의 지성들이 환영사를 하고 이라크와 팔레스틴을 대표한 사람들이 미국의 전쟁과 폭력을 증언, 고발했다. 노벨상을 탄 사람도 있었고, 세계사회포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2시간 가까이 개막행사의 연설을 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제국주의 미국의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민중들의 국제연대는 폭력적인 자본과 전쟁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일반적인 사회단체들의 주 관심은 어린이교육문제와 물 자원의 문제, 그리고 소수종족의 독립과 인도사회의 달릿 계급해방문제가 초점이다. 현장운동가들에게 지탄을 받아오던 말뿐인 잔치자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첫날부터 곳곳에서 예감이 되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탄압의 문제를 알리고 국제행동을 조직하는 가두선전 장소를 우리의 부스로 정했다. 목이 쉬어라 소리치는 열정적 한국인들의 홍보는 세계인들, 인도인들에게 적극적인 투쟁성과 활동성을 보여 주었다. 한국이주노동자 국제행동 선전본부가 참가자들의 관심과 언론들의 취재대상이 되었고 대회 공식 초청자, 홍근수목사를 비롯하여 한국인들이 반전평화와 신자유주의 반대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APWSL이 참가한 포럼은 신자유주의 반대 , 전쟁반대, 여성노동자포럼, 이주노동자포럼, 다국적 진출기업문제포럼, 인터넷정보인권포럼을 관심점으로 하여 ATTAC과 APWSL이 주최한 WTO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포럼에 참가하였다. APWSL각국대표단 회의는 미국의 폭력적인 전쟁과 횡포의 만행으로 평화가 깨어지고 있는 미국중심의 제국세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한 소박한 만남이었다. 붐바이 복잡한 시내의 예약된 작은 회의장소에 20여명이 둘러 않아서 진지하게 회의를 했다. 스리랑카, 태국, 뉴지랜드, 네팔,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대표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불참국의 현황과 상황을 점검하였다.

 

  회의는 총무가 전체 조직 상황설명과 아시아시민문화개발협의회(ACPOD)의 미지급 펀드의 문제점 해결의지를 듣고, 각국의 상황은 한국위원회가 준비한 리포트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현안문제에 관해서는 언어와 의사소통의 문제, 재정의 문제, 젊은 노동자 교육프로그램과 여성지도력 초청훈련프로그램, APWSL 2005년 정기총회계획에 대해 논의를 했다.

 

  한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어린이교육포럼, 인도의 URM선교포럼 등을 열었지만 아주 작은 모임이었다. 민중들의 관심 밖의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사람들이 각 단체 속에 흩어져서 활동하다보니 종교포럼은 큰 의미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한 분이 세계종교포럼을 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 2004 세계사회포럼이 본 대회장 입구의 큰 도로 건너편 공원에서 열리고 있었다. 투쟁적이고 혁명적인 또 하나의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전투적인 레지스탕스포럼 참가자들의 소식과 분위기를 들을수 있었다. 진정한 사회혁명과, 무장투쟁 분위기하며, 자본의 냄새가 없는 세계 투쟁가들의 포럼이었다. 인도에서 댐 건설을 반대하며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소수종족의 독립투쟁, 막스레린 혁명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남반구투쟁지원단체들이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북조선지원부스도 설치되어 있었고, 체게바라의 기념품들이 헌금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21일에는 마무리 행진이 폐막식과 함께 열렸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기차를 타며 거리행진을 위해 집결하는 시내의 한 운동장으로 갔다. 이색적인 인도도심의 거리행진이 흥미롭게 열의를 가지고 이루어 졌다. 참가한 한국인들은 반전, 반세계화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했다.

 

  우리는 24일 뉴델리로 이동, 27일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28일에는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국이주노동자문제 국제항의시위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태국 노동부 건물 앞에서 일본기업의 관리자가 노동자를 폭행한 것에 항의하는 태국노동자들의 집단항의 방문단을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YCW 회원들의 모임을 참관하고 그들의 안내하는 거리식당서 코끼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회원들의 활동공간을 돌아보았다.

 

  29일은 방콕의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ACPOD이사회의에 참석하여 기금 횡령을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대표자가 태국에서 존경받는 의사라는 말에 화를 멈추고 자료를 제출하고 돌아 나왔다. 우리는 스리파이가 소개한 오랜 노동운동친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시간의 방문이었지만 바닥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충분하게 나누는것은 노동자 연대와 협력의 유산이라고 할수 있다. 노동자, 민중들이 적은 수의 사람들일지라도 예수의 열두 제자처럼 살아간다면 역사의 변혁은 가능할 것이다.

 

  제4회 붐바이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여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열매를 갖고 돌아온 보람있는 여행이 되었다. 역사 속에 부서진 인도와 아시아의 역동적인 전통문화유산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달릿 계급이 해방을 기다림같이 노동자, 민중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기다려 본다. 체념적인 내세관으로 빠지지 않은 동양의 발달된 영성과 가난 속에도 탐욕하지 않는 영성의 사람들, 영성의 나라 대부분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거대한 땅과 인구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로 집약되는 힘을 이제부터라도 민중들에게 돌려야 한다.

 

  우리는 아시아와 세계사회속에 다른 국가의 경제, 정치, 군사 문화적으로 침탈을 더 이상 용인 할 수 없다. 핵 보유국가로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인도사회가 더욱 바닥민중들의 소리를 모아내고 첨단과학기술자의 양성으로 그리고 영어의 잠재적인 산업화를 새로운 지식산업으로 시도하여 IT산업의 발달에 미래의 전망을 가지는 인도의 경제발전이 민중들이 자유와 달릿이 해방되는 일과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또다른 세계를 위한 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다른 세상을 위해서. 평등과 해방으로 기뻐 춤추는 민중들의 세상을 열어가기 위하여. 바닥의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사회변혁의 역사적 순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풀뿌리 민중들의 실질적인 연대와 교류가 빈번하여서 이것이 국제연대의 중심이 설 수 있기 위해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세계노동자들이 살아가게 하소서. 지금 민중들의 자주적 교류와 연대가 큰 줄기로 자리잡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세계사회가 이루어지도록, 국내노동자와 똑같은 권리를 이주노동자가 누리는 이 땅에 평등세상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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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Friends & colleagues,Respected and Honorable King the Royal of Nepal,

To The Monarch, Home Minister and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he Honorable King
The Royal Palace
Katmandu
Nepal
homehmg@wlink.com.np; fmo@mofa.gov.np; fso@mofa.gov.np

Respected and Honorable King the Royal of Nepal,

We the members of Osan Migrant Workers Union send you greetings,
All along we cherished free communication and mutual help and solidarity with the trade unions of many countries in Asia and Pacific region. Especially the Nepal labour unions have been in constant solidarity with the labour unions in South Korea and also with the APWSL. Many times we benefited the labour leaders meetings and programmes in Nepal.

We are shocked to hear about the difficulties caused to the Labour leadrs in Nepal due to the present situation of Emergency. We urge that the emergency may kindly be lifted as early as possible and our labour welfare communications and activities may be restored soon. We are sad to hear that many of the labour leaders are under imprisonment. It hindered much to the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exchange of labour moment in Asia.

The Migrant Workers from Nepal who are working in Korea are in solidarity with many labour unions in Korea. And we work well for the mutual welfare.

Therefore We urge that the human rights may be given high priority in the present rule and your highness may kindly release the labour leaders from the imprisonment and help the trade and labour unions to have free access for corporate well-being of the labour force in Asia
With best wishes

Rev.Jang Chang Woen
APWSL Cordinator
South Korea


Dear Friends & colleagues
Warm Greetings

As you know from the media, democracy and constitution have been heavily attacked in Nepal. For you kind info two files are attached which explain the current situation

We need your support and solidarity as in past.

In favour of multiparty democracy, human right & labour right in Nepal

You can send protests to the Monarch, Home Minister and Minister of Foreign Affairs through the following email-adds:
homehmg@wlink.com.np; fmo@mofa.gov.np; fso@mofa.gov.np

You can pressure Governments & UN Agencies to pressurise Government of Nepal for immediate restoration of multiparty democracy
You can request donor agencies not to assist technically & financially the present autocratic government of Nepal

Your support will be highly significant for poverty stricken, suppressed & victimised people and workers of Nepal

Best regards

U Upadhyaya

On behalf of Joint Initiatives of Trade Unions in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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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 하느님 나라의 역사화 또는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은유

 

공(公), 하느님 나라의 역사화 또는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은유


최형묵 (본 연구소 운영위원 / 천안살림교회 목사)


1. 민중신학적 사회윤리의 가능성  


윤리적 사고를 하지 않은 이에게서 윤리 사상을 이끌어내는 일이 도대체 가당한 것일까?

안병무는 ‘기존 체제’ 또는 ‘이미 정착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로서 윤리 내지는 도덕 관념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도대체 윤리, 도덕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정착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가 아닌가? 그러면 누가 이 질서를 만들었는가? 그것은 언제나 강자 즉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윤리는 지배자의 논리로써 피지배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설정된다. 그것을 보다 심화시키면 도덕이 되고, 더 나아가 강제화하면 법이 된다. 그러므로 도덕, 윤리, 법, 그 모든 것이 지배자의 도구가 되어 피지배자에게 무조건적인 순종 또는 복종을 정당화한다.”1)

그러니 바로 그런 의미에서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운운한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 될 것이다.

대가의 사상을 후학들이 계승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흔한 하나의 방법이



  그의 사상을 요리조리 해체 분석하여 재구축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학의 역사 자체가 그렇다. 성서가 구원론을 말한 바 없는데, 신학자들은 당연하게 성서의 구원론을 말한다. 예수가 교회론을 말한 바 없는데 역시 예수의 교회론을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말하는 것도 그러한 시도에 해당할 것이다. 장본인은 그저 ‘육담’으로 말한 것뿐인데, 후학들은 그것을 논리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논을 만들어낸다. 이를 어쩌나? ‘우리는 성서가 말하는 것만 말한다’는 식의 태도2)를 전제할 것 같으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해석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면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적어도 민중신학자로서 안병무의 사상을 논하는 데서는 그렇다. 안병무는 명백히 탈윤리적 탈도덕적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텍스트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원래 텍스트의 맥락과 다른 맥락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언제나 가지고 있다. 이 때 재해석이란 말하여지지 않은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 말하여진 것을 다른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전제에서이다. 그런 전제에서 말할 때 안병무의 민중신학 사상은, 우리가 ‘윤리적’이라 말할 만한 발상의 실마리를 분명히 내장하고 있다.

 ‘윤리적’이라? 안병무 사상에서 그 단초가 무엇인지 말하기에 앞서 우리가 사용하는 ‘윤리적’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밝혀야겠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회윤리’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때 사회윤리란 인간 실존의 필수불가결한 틀인 사회적 질서 구조의 큰 맥락에서 제반 윤리적 관계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 실존의 모든 관계 속에서 책임적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개인, 집단, 사회 등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촉진시키는, ‘제도에 의해 매개된 구조적 질서’를 문제 삼는 것이다.3) 물론 이 경우 사회윤리는 그것이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지 그 자체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배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고, 탈지배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안병무가 지배자의 논리로서 윤리를 배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말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탈지배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해방의 윤리에 해당하는 셈이다.4)


2. 하느님 나라의 역사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서 윤리 사상을 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는 것은 ‘공’(公)이다. 물론 그와 같은 이론적 개념적 장치가 없다고 하여도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질서 구조의 맥락에서 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 근거 삼아 충분히 안병무의 윤리 사상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안병무는 ‘공’ 개념으로 민중신학적 윤리의 확실한 징검다리를 마련해 주었다. 안병무에게서 ‘공’은 돌발적 상상의 소산이 아니다. 1980년대 중후반 어느 순간부터 빈번하게 등장하는 ‘공’ 개념은 당대 민중운동과의 깊은 교감에서 나온 심각한 고심의 결과이다. 민중신학에서 하나의 사회윤리적 거점으로서 ‘공’이 갖는 의의는 다음과 같은 안병무의 주장에서 시사되고 있다.

“나를 그 동안 지배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엄청난 민중사건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를 ‘국시’라도 되듯이 굳혀가는 마당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민족통일이라는 민중적 염원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공’(公)이라는 사상이다. 우리 민중은 ‘공’을 사유화한 것과 싸우고 있다. 그것이 독점 세력과의 투쟁이다. 공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발생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폭압이 자행된다.”5)

자본과 권력이 독점화된 당대의 현실에서 민중적인 염원을 집약한 것이 바로 ‘공’이었다. 그런데 당대 민중들의 염원으로서 ‘공’은 사실 신학적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민중신학은 “하느님 나라는 곧 민중의 나라”라는 인식을 매우 당연시하고 있지만, 당연시하는 만큼 그 관계가 그렇게 자명한 것은 아니다. 안병무는 그 자명하지 않은 관계를 깊이 유념했던 것 같다. 사실 안병무가 보기에 예수에게서 그의 본질적 메시지였던 하느님 나라는 민중의 나라와 동일시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자명하지 않게 된 데에는 예수 자신에게서 그 양자 관계가 자명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중사건 안에서 민중과 동일시된 예수에게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구체상을 구구하게 해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그 당대 상황에 처하지 못한 후대의 해석자의 입장에서 양자 사이는 여백의 지대로 남게 되었다. 바로 그 대목에서 안병무는 서구 신학의 책임을 묻는다. 서구 신학은 묵시문학과 하느님 나라 표상을 동일선상에 놓고 해석하였고, 동시에 묵시문학을 상대화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마저 상대화해버렸다고 본다.6) 서구 신학은 그렇게 하느님 나라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사실상 그것을 제거해버렸다. 그 까닭은 그 하느님 나라가 안락한 삶을 비판하고 깨뜨리기 때문이었다.7) 여기에서 서구 신학은 하느님 나라를 역사 피안으로 돌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삼아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 나라 때문에 자신의 삶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민중들의 염원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려 애초 예수에게서 자명했던 그 관계가 불투명해져버렸다.

안병무가 ‘공’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바로 그와 같은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현재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공’이었다.8) 그래서 안병무는 하느님 나라를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하느님 나라가 실제로 뭐냐? 그것은 公을 公으로 돌리는 것이다. 사유화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나 모든 걸 포함해서 사유화함으로써 분열되고 찢겨진 그것을 다시 공으로 돌리는 일은 하느님 나라의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거예요. 하느님 나라를 자꾸 정신화해버려서 피안적이고 관념화된 그런 하느님 나라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있을 필요도 없어요.”9)

안병무가 보기에 주기도문은 자명한 하느님 나라의 요체를 집약해주고 있다. 주기도문에서,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늘의 뜻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과 빚을 탕감 받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있다.10) 그 염원은 매우 물질적이다. 물론 여기서 물질적이란 역사적ㆍ사회적 관계의 차원을 함축한다.11) 그러니까 독점적인 사유화에 기초해 있는 제반 사회적 관계가 ‘공’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 곧 하느님 나라의 구현이 된다. 한마디로 ‘공’은 하느님 나라의 역사화이다. 그것은 물질과 권력을 본래의 생산자에게 돌림으로써 민주주의적 제도와 공유제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 공영하는 생태학적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전망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전망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불어 이 세계를 창조한 하느님이 그 동반자로 일하는 인간을 선택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분명한 고백에서 비롯된 것이자 동시에 그 하느님의 주권은 민중의 주권으로 구체화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12)

‘공’(公) 개념으로 하느님 나라를 역사화하고 있는 안병무의 이와 같은 전망은, 앞서 말한 대로 1980년대 민중운동의 시대정신을 공유한데서 비롯되었다. 특별히 매우 급박하게 대안을 요구하였던 당시 민중운동과의 깊은 공감 가운데서 형성되었다. 안병무는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느님 나라는 교회라든지, 어떤 사회체제라든지, 어쨌든 기존의 어떤 것과도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싸움 속에서 지금 그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고 또 그 싸움 속에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민중들이 느끼고” 있는 현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사람은 동적인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상(像) 즉 스테투스(status)를 원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 안목에서 ‘구체적인 상(像)’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3) 이것은 분명히 당대 민중운동의 현실을 직시한 데서 나온 견해이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비단 1980년대 민중운동의 현실에서만 비롯되는 발상은 아니다. ‘공’으로 표상될 수 있는 제반 사회적 관계의 상이 이미 예수시대 예수 자신과 민중에게서 자명했다는 견해는 그러한 전망이 민중의 원초적 염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민중의 염원이란 일종의 가시적 대안의 요구이다. 그것은 ‘제도에 의해 매개된 구조적 질서’의 구체상으로서, 현실의 제반 관계를 지배하는 독점적 사유화를 해체하고 공유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민중들의 언어 자체가 곧바로 ‘공’으로 표출된다는 뜻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빚진 죄인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그 염원을 안병무는 ‘공’으로 표현하고 그 밑그림을 그렸다. 이로써 땅의 사람들에게 한동안 범접 불가능해 보였던 하느님 나라는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는 개념상 ‘공’을 매개로 역사 안에서 그 구체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역사 안에 있는 인간들의 행위 규범으로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3.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은유


신학적 윤리란 인간이 역사적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한계를 승인하는 데서 형성된다.14) 하늘의 계시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불가불 역사적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수용된다. 안병무가 민중이 바라는 바 ‘구체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 표상으로 ‘공’을 제시한 것도 사실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신학적 의미에서 그 인간 유한성의 표현인 윤리가 절대성을 참칭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그 때 윤리는 안병무가 말했던 대로 ‘지배자의 도구’가 된다.15) 하느님 나라의 역사화 내지는 윤리적 거점으로서 ‘공’은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는 위험이 없을까? 그 위험성이 있다. 사실은 하느님 나라 자체가 그런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서구신학의 역사에서 단지 부차화되거나 배제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존하는 교회 또는 지배체제와 동일시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공’의 이념 또한 그와 같이 될 가능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실제로 공유제의 이상이 거꾸로 지배이념이 되어 인민을 배반한 근대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그런 전도가 가능한 것일까? 하느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 역시 일종의 공백의 기표다. 사실 공백의 기표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오히려 의미를 지닌다. 이미 기존의 것으로 충족된 현실을 비판하는 근거로서 그것은 제 몫을 다한다. 그러나 그 공백의 기표는 끊임없는 유혹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 그 공백을 누군가 전유하러 든다. 기어코 그 공백에는 어떤 대체물이 채워진다. 하느님 나라가 현실의 교회와 동일시되고 지배체제와 동일시된 현상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안병무는 그것을 독점적 사유화에 저항하는 민중이 그것을 전유하도록 ‘공’으로 설정했다. 공백의 기표를 민중의 입장에서 선점한 셈이다. 그러나 인민의 이름으로 행해진 독재의 역사적 경험은 그것마저 안전한 장치가 되지 못한다는 회의를 제기한다. 그것 역시 다양한 해석, 심지어는 상반된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일종의 또 다른 하느님 나라의 은유인 탓일까?   

우리의 고민은 바로 이 점이다. ‘공’으로 하느님 나라의 구체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중의 난관에 봉착했다. 그 난관은 한편으로는 ‘공’ 역시 그 자체로 구체성을 지니지 않는 일종의 또 다른 하느님 나라의 은유라는 데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역사 안에서의 구체성의 표상인 ‘공’이 절대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이 난관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신학적 윤리의 거점으로서 ‘공’의 의의는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 탈/향(脫/向)의 인간사와 ‘공’(公)


사실 안병무의 사상을 단순하게 집약했을 때, ‘공’은 그 자체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 위치가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 민중신학자로서 안병무의 사상적 기저를 읽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편 가운데 하나로 나는 “탈-향의 인간사”16)를 주저 없이 꼽겠다. ‘탈’(脫)은 과거와 단절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는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는 행위다. 그것은 소유에서 탈출하는 것이고 삶의 보장을 내던지는 것이다. ‘향’(向)은 궁극적 목적을 말한다. 그러나 ‘향’은 목적지에 도달한 상태가 아니다. ‘향’은 도상의 존재를 나타낸다. 목적을 가진 나그네의 길, 그것이 ‘향’의 형태이다. 결국 ‘향’은 ‘탈’과 마찬가지로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삶의 양태를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정착자의 윤리’는 설자리가 없다. 서두에 이미 밝혔듯이 안병무가 윤리와 도덕을 배격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공’은 명백히 궁극적 목적에 해당하는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은유로서 성격을 지닌다.17) 그러나 한편 ‘공’은 가시적인 상을 요구하는 민중의 염원의 표상으로서 성격을 지닌다. 이미 지적한 대로 안병무가 그와 같은 착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1980년대의 시대적 ‘압박’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러한 착상이 시대적 요구만이 아니라 민중들의 원초적 염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껄끄러운 이물질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결국 하느님 나라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동적인 ‘탈향의 길’에서 정적인 관계의 차원 혹은 ‘제도에 의해 매개된 구조적 질서’의 구체상으로서 ‘공’의 의의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이다. 어쩌면 우리가 ‘난관’이라 불렀던 ‘공’의 이중적 성격 또는 그 위치의 불안정성 자체가 신학적 윤리의 거점으로서는 무척 다행일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구체상을 지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구체상의 절대화를 방지하는 모순적 기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은 한편으로는 이 땅 위에서18) 펼쳐지는 운동의 궁극적 목표이자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야 할 사회적 관계를 지시하는 표상으로서 이중적 성격이 훼손되지 않을 때 신학적 윤리의 거점으로서 진가를 지닌다. 적어도 논리적으로 그 이중적 성격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강조점이 어디에 주어져야 할지는 미리 확정지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적 조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결정될 일이다.

이 주제에 접근하는 동안 내내 나의 뇌리를 맴도는 하나의 기억이 있다. 30여 년전 우리 가족의 탈향(脫鄕)의 기억이다. 고향을 등지라고 누가 등을 떠미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것은 명백히 강제적 이탈이었다. 이촌향도(離村向都), 그것은 자발적 선택의 결단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살아갈 근거를 다 잃었기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 때 온 가족을 사로잡은 꿈이 무엇이었을까? 빚 없이, 먹고살 것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막내둥이 나에게는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독려가 있었다. 나는 정말 걱정 않고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질 턱이 없었다. 서울 생활 내내 한 집에서 춘하추동을 살아보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소년에게 걱정이 떠날 턱이 없었다. 그만 하자! 자발적 선택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에게는 순례 그 자체가 커다란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몰려 이리저리 방황해야 하는 이에게는 정착지를 만나는 것이 기쁨이다. 송곳 하나 꼽을 땅이 없는 민중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민중의 염원으로서 ‘공’은 그런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나는 이 ‘공’에서 안병무의 이중성을 본다. 지식인 신학자로서 안병무와 민중의 증언자로서 안병무의 동요와 갈등을 본다. 궁극적 목적으로서 ‘공’의 성격이 지식인적 고민의 표현이었다면 민중의 염원의 구체상으로서 ‘공’의 성격은 민중의 대변자로서 고민의 표현이었다. 그 이중성은 학자로서 불처저성 내지는 모호성을 말한다기보다는 민중적 지식인으로서 진지성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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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운동을 위한 제안

 생명과 평화운동을 위한 제안

                              김용복(한국생명학연구원장)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생명이 파괴되고 죽어가는 일이 더욱 더 많아지고 있으며 더욱 더 심해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빈곤과 폭력과 전쟁과 생명파괴의 세력이 인류 역사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하게 생명과 평화질서를 위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속에서 생명은 신음하고 있다.


우주의 생명은 신음하고 있다.


그대는 생명의 신음소리를 듣고있는가?


1. 굶주림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굶주린 어린이들이 아우성을 치고 신음하면서 죽어가고 있다.


로마정상회담에서 시장은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하였다. 시장은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여 기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도 세계의 기아의 문제는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대륙에서도 죽음의 신음소리가, 아프가니스탄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절규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북한의 어린이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의 신음소리는 남녘에까지 들리고 있지 않은가?


1989년 이래 동구국가들로 받던 원조도 끊어지고 미국의 경제적 봉쇄로 세계와 교역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남북한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지 못하여 북한주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미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의 침공위협에 대비하여 막대한 군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2. 오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지배질서는 냉전체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전멸전과 총력전을 실시하고 있다. 전멸전(Omni-cidal Warfare)이란 모든 생명을 전멸할 수 있는 무기와 군사전략을 사용하는 전쟁을 의미한다. 총력전이란 군사적 전쟁 뿐만아니라 경제, 문화, 종교적 차원까지 총체적으로 전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전쟁은 인간생명 뿐 아니라 자연의 생명까지도 전멸할 수 있는 전쟁이다.


코소보의 전장터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전장터에서, 그리고 이라크 전쟁터에서 무수한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통곡과 신음이 들려오지 않는가? 미국이 선포한 테러에 대한 전쟁(War on Terror)은 총력전으로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반 테러 전쟁은 새로운 군사주의를 일으켜 인권을 침해하고 정치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파괴한다.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반 테러 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남북이 냉전체제의 유산으로 군사적 대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죽임과 죽음의 대결이다. 우리는 우리 삼천리 강산에 이 무서운 전쟁의 불씨와 탄약고를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지배를 위하여 군사경쟁과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살상과 희생은 동북아에서도 전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곳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훨씬 더 파괴적이고 잔학한 전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대량의 살상무기를 동원, 배치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군비경쟁, 군사대립을 강화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수백만의 인명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파괴될 것이다.


3. 오늘 지구화과정 또는 세계화과정이 조성한 시장경제질서는 초국적 기업과 같은 거대한 경제 권세 즉 자본이 무한한 생산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하고 작동하고 있다. 이 지구시장은 투기적 금융투자를 통하여 국가경제를 재정위기에 빠트리고 인민을 가난하게 하며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며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이 지구시장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식량을 상품화하고 의료를 상품화하며 문화를 상품화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생물학적 과학기술을 통하여 생명산업을 일으키고 식량생산 증가를 위한 유전자조작을 감행하고 있으며 유전자조작을 통하여 인간의 의료와 건강을 시장적 서비스로 교화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시장이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왜곡하고 결국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전자 공학을 통하여 식량을 증산하여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인간을 치유한다고 하지만 이는 최종적으로 이윤극대화의 논리에 의하여 좌우된다. 따라서 생명이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산업발전 즉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자원이 무차별적으로 탈취되어 자원의 고갈이라는 상황과 생태계의 훼손과 오염에 도달하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농산품생산과정에서 토양은 살충제, 제초제 등에 의하여 오염되었고, 유전자공학적 조작에 의하여 생물학적 오염도 심각한 상황에 도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생명체가 파괴되고 왜곡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지구시장은 생산과 분배를 고도의 과학기술주의적 체제로 형성하고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도외시 할 뿐 아니라 자연을 객관화, 대상화하여 생태계를 탈취하고 파괴하고 오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구시장이 전개시키는 산업사회는 자연자원을 고갈시키고 있으며,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생명공학으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질서는 자연과 생명을 정복한다.


과다소유를 통하여 자본을 극대화하고, 과소비를 조장하는 소비주의를 조장하여 가능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시장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한다. 이런 시장질서는 무한경쟁질서이며 이것은 사회적으로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질서를 낳는다.


최근 동북아의 경제권은 지구시장의 자본체제에 의하여 포위되고 침투되고 지배되어 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세계시장체제에 통합되고 있다. 한반도도 이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적 경제적 희생을 감당하여 왔다. 북한도 이 소용돌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경쟁은 치열하다. 따라서 그 경제적 희생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동북아시아의 생명의 희생은 단순한 빈곤과 기아 뿐 아니라 자본의 횡포와 빈부격차의 구조와 근원의 권세들에 의한 지배에 의한 것이다.


4.. 지구시장의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심화하고, 가속화하고 치열하게 한다. 이 지구시장에서 계급과 계급의 갈등, 여성과 남성의 갈등, 인종간의 갈등, 국가 간의 경쟁과 이해관계의 갈등 등이 심화되어 국가사회 내외로 심각한 폭력적 사태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정의가 붕괴되고 사회경제적인 약자, 신체적이고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약자는 그 생명의 억압과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심화되고 사회관계가 폭력화되는 상황에서는 생명의 기본조건인 협동과 공생과 화평이 붕괴된다. 모든 생명체의 공동체적 질서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과 갈등, 폭력의 악순환은 우리 교육체제에서는 경쟁적 시장적 교육으로 나타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의 상실과 연속되는 사회적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한국사회에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위협의 대상이 되어 가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5. 생명문화의 파괴는 심각하다. 생명은 문화적, 정신적, 감성적 실체이다. 생명공동체에는 언어가 있고 표현이 있고 배움이 있다. 생명은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의사소통하고, 지혜를 축적하고 배운다. 생명은 노래하고 즐거워하고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생명은 슬퍼 울고 신음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생명은 시적이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다. 생명은 물질이 아니다. 생명은 단백질이 아니다. 생명은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지구시장은 생명이 가진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고 감성의 세계를 잠식하고 “식민지화”한다. 시장이 광고나 선전을 통하여 소비주의문화를 주입하고 생명문화의 정체성을 허물고 있다. 생명은 진리의 세계, 가치의 세계, 미의 세계를 가꾸고 있는 데 이를 파괴하고 왜곡하고 흐리게 한다.


우리는 생명의 지혜를 담고 있는 우리민족문화의 정체성과 가치, 우리문화의 맛과 멋, 냄새와 향취를 상실하여 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의 의식과 감성의 세계는 시장의 선전과 소비문화의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다. 문화의 창조를 위한 문화적 주체로서의 정신적 예지와 감성적 예민함은 질식당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6. 오늘 현대문명과 지구화는 종교적 신앙의 세계를 미신으로, 전 근대적으로, 애매모호한 세계로 치부해버렸다. 생명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차원을 없애 버린 것이다.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풍토를 만들었다. 여기에 대항하여 기성종교들은 위협을 느끼고 근본주의적 경향을 띄우고 각기 종교집단들의 생존을 위하여 권력을 쌓고 기존의 정치세력과 무력을 행사하기도

하면서 생명을 파괴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전쟁과 분쟁이 종교적 성격을 띄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전쟁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분쟁 등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의 양상을 띄기도 한다.


생명은 종교적 신비, 초월적 차원을 가지고 있어 생명의 원동력을 형성하여 주는 데 이를 파괴하여 버리거나 왜곡하여 버리고 있다. 특히 종교신앙이 권력과 금권과 제휴하여 이데올로기가 되면 이는 생명의 근본이 되기보다는 생명을 파괴하는 독이 된다. 우리 한국에서도 세속적 태도가 종교신앙을 경시하는 가하면,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들이 금권과 권력에 물들어 가고 있고, 종교적 집단이기주의와 배타주의의 올무에 매여있기도 하다.


7. 인간이 그 생명의 파괴로 말미암아 신음할 뿐 아니라 인간은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악역을 담당하여 왔다. 인간중심주의적인 금권과 권력은 우리 지역, 우리 나라, 우리 대륙, 우리 지구, 우리 우주에 있는 많은 살아있는 생명들을 대상화하고 탈취하고 억압하며 파괴하고 있다. 이 생명들이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통곡과 신음이 들리지 않는가? 벌목되는 나무들, 화학비료와 약품에 희생되는 식물들, 인위적인 조작과 통제의 과학실험의 대상이 되는 미생물들, 무차별 살상되는 동물들.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는가? 이 생명들은 인간생명의 친구들이고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데 인간이 적대시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의 생명관과 그 내면에 깔려 있고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금권의 탐욕과 권력의 횡포 때문이다. 우주의 생명은 파괴되어 가고 있다. 생명의 많은 종들은 멸망하고 있어 생명의 다양성이 붕괴되고 생명공동체가 파괴되며, 생명들의 내면세포와 유전자까지도 통제되고 조작되고 있다.


우리 남한은 지난 40년 동안 초급속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생명계가 많이 훼손되었다. 이제는 우리 생명의 둥지가 파괴되어도 생명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생명불감증까지 심각한 증세로 나타나고 있다. 새만금개발과 부안핵페기장 문제가 단적으로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의 토양은 이미 화학비료와 농약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의 산업은 생명산업으로 질주한다고 한다. 아직 생명윤리법안도 입법되지 않았고 입법된다고 해도 생명불감증에 걸린 시장과 정치권은 우리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지 못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생명권도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공해산업을 수출하면서 생명권을 훼손하여 왔다. 이제는 중국산업화가 급진전되면서 동북아시아의 생태생명권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동북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나고 핵폭탄이 터질 경우 그것은 동북아 생명의 전멸상황을 가져 올 것이다.


생명과 평화질서의 비전


1. 우리 민족은 삼천리 금수강산을 생명의 동산으로 선물 받았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생명역사 과정에서 많은 생명의 지혜를 축적하여 왔다. 생명의 종교 문화 사상 전통을 일구자. 이 생명의 지혜는 우리 지역공동체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혜가 완전히 잊혀지고 파괴되기 전에 재 발굴하고 가꾸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생명의 비전을 가꾸어가자. 우리는 전통적으로 신선도/서방정토/청학동/輔國安民과 廣濟蒼生/생명의 정원과 같은 생명공동체의 비번을 향유하여 왔다. 이것이 삼천리금수강산을 생명의 동산으로 가꾸어 온 지혜들이다. 생명사상의 기초를 다지자는 말이다.


우리는 서구의 생명사상과 근대과학과 생명과학을 변혁하고 융합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생명파괴의 근대적 인식론과 시장주의적 횡포를 극복하며 신자유쥬주의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생명이 풍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 기업의 자유 뿐 만아니라 생명의 주체성, 생명의 상생과 공생성의 철학과 사상을 구축하여야 할것이다.


2. 이러한 생명관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생명의 정치경제를 지구시장의 대안으로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생명의 정치경제는 생명의 주체를 확고히 하는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건설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지역의 생명경제는 상생적이며 공생적인 경세제민으로서 모든 생명이 주체로 참여하는 경제이다. 우리 민족사에서도 정약용 선생의 여전제(呂田制)라든지, 두레라든지 하는 민중경제적 지혜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생명경제의 지혜는 풍요롭게 발굴되고 창조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리하여 민이 중심이 되고 지역생명공동체가 주축이 되는 태평성대의 생명경제를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3. 오늘 현대국가는 자유주의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세계경제질서는 국민의 주권을 약화 내지는 와해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명권(生命權)을 위한 정치체제를 창출하여야 한다. 인권과, 사회경제권과, 평화로운 삶을 위한 생명안전권을 포괄하는 생명권정치를 장려하여야 한다. 우리는 생명의 주권을 위하여 지구적 생명권 헌장을 제정하고, 헌법에 생명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며 모든 하위의 법과 지방자치의 조례를 생명권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고 개정하여야 한다. 이는 세계시장의 금권과 제국의 세력과 정치권력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와 제도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생명권정치는 지역생명공동체에서 출발하고 지역생명공동체에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참여적이고 연대적인 생명권정치는 지역민주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하고 이것은 국가적 차원, 동북아의 차원으로 연대적 확산과 결합이 필요하다. 생명권을 위한 지역생명공동체간의 연대정치는 모든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연대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4. 전쟁은 가장 파격적으로 평화를 파괴하고 생명을 죽인다. 생명운동은 전쟁을 근절하여야 할 뿐 아니라 모든 군사체제는 생명의 공동안보체제로 전환되어야 하며 모든 군대는 평화군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단순한 군축, 단순한 전쟁근절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더 나아가서 모든 군사 과학기술체제를 해체하여야 한다. 모든 지정학적 사회적 안보 안전체는 국가사회의 안보에서 인간안보, 생명안보체제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상생 공생의 원리에 근거하여 “적대의 논리(Logic of Enmity)를 사랑의 지혜로 교체해야 될 것이다. 이것이 곧 평화를 만드는 자, 원수를 사랑하는 자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로마제국의 평화(Pax Romana)가 아니다. 미국의 군사적 헤제모니는 지구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사랑과 정의를 기초로 하는 평화가 생명보전의 근원이 되어야한다.


5. 우리는 생명공동체를 위하여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한 사회정책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계급 간의 사회관계를 정의롭게 하며, 성적 차별을 위한 가부장제의 철폐, 인종과 문화적 차별을 철폐하는 인종, 문화다원주의 등 기존 사회정책운동을 하여 왔다. 이제는 생명의 상생과 공생을 핵심으로 하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사회정책실현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이 생명사회정책도 지역생명공동체가 주체가 되고 이 지역생명공동체는 자립적이고 자생적이고 자율적어야 한다. 국기기관이나 국제적 연대는 이 지역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부가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정의는 평화를 지향하고 협동과 선린우애의 생명사랑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평화는 생명의 기본조건이며 정의와 사람을 바탕으로 한다. 평화운동 없이 생명운동은 있을 수 없다. 생명운동은 곧 평화(Shalom:온전한 생명과 삶)운동인 것이다.


사랑이 생명운동의 기반인 것은 생명은 서로 사랑하면서 공생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서 정의를 기둥으로 하면서 평화의 집과 살림살이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6. 생명은 주체다. 생명은 스스로 태어나고 생명은 스스로 자란다. 생명은 스스로 양육하고 스스로 배우고 교육하며 생명은 지역을 고향으로 삼고 정체성을 구축하며 살림살이를 한다. 생명은 둥지와 복음자리를 고향에 둔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운동은 생명의식화, 생명감성화를 위한 문화운동, 문화창조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탐욕과 권력으로부터 해방될 뿐아니라 감성의 식민지화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새로운 차원의 문화운동이 요청된다. 생명존중과 생명감성과 생명의 신비를 체득하는 문화적 창조운동이 필요하다. 생명의 주체성을 체득하고 생명의 창조성을 배우며 생명의 고통과 신음에 예민한 감성적 영적 감성을 개발하여야 한다.


7. 생명은 우주적이다. 지역적 공동체일 뿐 아니라 우주적 공생체이며 인간생명은 모든 생명체와 상생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자연을 개관하는 이원론적인 인식론(Homo Sapiens)을 극복하고 자연을 수단으로만 보는 자연관(Homo Faber)를 극복하고 인간은 자연 안에 있고 자연은 인간 안에 있다는 상생의 도를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은 생명을 위한 사역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상생의 도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진화론을 극복하고 사회진화론 즉 상생속에서 생명이 진화한다는 새 생명과학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주를 영적인 생명체로 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나 각 대륙의 원주민들은 우주생명의 영적 차원을 철저히 경험하면서 살아왔다.


8. 생명과 평화에 대한 신앙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종교신앙에서 찾게 된다. 우리는 기존 종교의 반생명적 껍데기를 벗기고 생명의 원동력을 회복하고 생명의 지혜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 아시아의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그리고 원래적으로 생명종교이다. 불교는 탐욕에서 해방되는 생명을, 힌두교는 영원히 순화하는 생명의 원리를, 회회교는 생명의 근원을 정의와 사랑에서, 도교는 생명의 道와 氣에서, 유교는 仁義의 실현인 태평성대에서, 동학은 광제창생의 인내천론에서 그 생명사상과 생명신앙의 기원과 열매를 찾고 있다.


맺는 말


기독교는 하나님을 우주생명 창조주로 믿고 이 생명을 구원하시고 해방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믿으며 성령을 생명의 원동력으로 믿으면서 생명의 영원함과 풍성함을 추구한다. 기도교신앙은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계약을 맺고 모든 생명들을 생명의 주체로 동역자로 세움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이 생명과 생명의 정원을 가꾸는 생명의 사역자로 세우셨다. 그래서 생명운동은 기독교복음의 핵심이며 그 열매이다. 기독교신앙공동체는 생명운동체이며 교회는 생명목회, 생명디아코니아, 생명선교를 전개하여야 한다.


기독교는 생명종교로서 기독교 자체를 개혁할 뿐 아니라 생명운동의 현장에서 생명운동의 주인 예수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운동과 신앙적 차원에서, 사상적 차원에서, 문화적 차원이서, 정치경제적, 지정학적 차원에서 연대하고 협동하여야 한다. 생명운동은 상생적이고 공생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우주의 생명이며 우주의 평화이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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