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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 등록일
    2005/03/12 14:10
  • 수정일
    2005/03/12 14:10
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이진옥 기자
2004-08-15 19:00:21  
한국의 가족계획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가족계획어머니회의 존재다. 몇몇 여성학자들은 제3세계에서 진행해 온 인구정책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실행되기 위해선, 여성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모임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그 가능성 여부를 살펴보게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가족계획어머니회

1968년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스웨덴이 보급한 다량의 경구 피임약과 미국 국제개발처의 원조를 받아 당시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있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그 해에 1만6천868개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했다. 가족계획 어머니회의 주 목적은 ‘피임약과 콘돔을 나눠줄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 현장요원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며, 피임약 사용을 권장한다’, ‘각 마을에 가족계획 교육과 정보전달 통로로 기능한다’, ‘수치 달성을 위해 새로운 수용자 발굴을 돕는다’, ‘마을의 여성지도자들이 가족계획사업에 우호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한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기본적으로 동네 이장들에 의해 추천된 중등교육 수준을 지닌 여성들 중에서 7-8명 가량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어머니회 대표들은 읍 단위 사무소에서 상황 보고와 정보 입수, 훈련 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각 보건소에 파견돼 피임약을 공급하고 수용자를 감독하고, 후속작업 등에 대한 기록을 책임을 지는 139명의 경구약 행정관과 지역 관리관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봐, 가족계획어머니회는 남성들에 의해 기획되고 관리되는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1970년에는 수직적인 조직 체계가 마련된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면장 협회에서 선출된 어머니회 대표로 구성된 군 지도자회를 결성한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관료적인 위계체계로 통합되어 있는 것을 미뤄봤을 때, 어머니회 또한 수직적 관리 형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상의하달의 통제방식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조직 체계에 참여한 여성 개개인의 지위는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에 대해 연구한 정경균씨는 “어머니회 지도자들의 동의 없이 마을의 어떤 행사나 정치적 활동도 계획되고 실행되기 어려웠다”는 한 면장의 진술을 인용한 바 있다.

유신선포 후 강제성 띤 새마을부녀회로 전환

정경균씨는 연구논문을 통해 어머니회가 가족계획 사업의 문화적 저항감을 피하고, 어머니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며, 지역개발을 위한 협동을 증진시키고, 이런 활동들을 통한 가계수입 창출 등의 효과를 낳는 활동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족계획어머니들의 무노동 자원봉사가 부족한 가족계획 요원을 보충하는 인력으로 사용된 측면이 있지만, 당시 기혼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봉쇄된 것을 고려하면 여성 지위향상 또한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가족계획 자체를 기피하는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어머니회의 활동은 가족계획 사업을 넘어서 무임금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개발에 이바지한 바 크다. 각 마을에 어머니회의 관리를 위해 분배된 기금으로 집단적 소득을 창출하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거나 부엌 위생시설을 개선시키고, 노인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거나, 빈곤한 이웃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했다. 이는 어머니회가 구성원의 활발한 참여로 이루어졌고 당시 여성들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여성들의 공적인 활동에 우호적이지 않은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이익을 환원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을 안착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지역 개발에 공헌한 성과는 정부의 주의를 끌기 충분했다.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어머니회의 효율성과, 여성의 지역사회를 위한 무임금 자원봉사, 수직적 관리체계 하의 여성조직이 국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이들이 가족계획어머니회의 활동이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는 1972년 대통령령으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규정을 제정했다. 이는 유신체제 선포 이후 당시 여촌야도의 정치적 기반 위에, 어머니회의 적극적 활동을 정권유지를 위한 전국적 계몽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중 멤버십을 허용하며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강제성을 띠었던 새마을부녀회로 전환했다.

한국가족계획연구원이 1978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당시 가족계획 사업에서 기층 단위들이 국가 기구와 철저히 통합돼 있어 위계적인 관료 체계 하에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가족계획사업 조직구성도를 보면,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있을 자리에 ‘새마을부녀회’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논리 맞서 인구정책에 여성의 이해 피력해야

“누구의 이해를 위해, 누가, 무엇으로, ‘필요’를 정의하는가?” <난폭한 습관: 현대사회이론에서의 권력과 담론과 성>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는 ‘필요담론’(needs talk)이란 불평등한 자원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필요에 대한 각자의 이해를 설파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투는 가운데 생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재원이 경제논리로 동원되고, 정권이 시민사회 위에서 기능할 수 있는 힘을 장악한 박정희 체제하에서 여성의 필요담론은 국가에 의해 선점됐다. 따라서 여성의 이해는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말았다. 또한 가족계획의 성공신화는 다른 여타 국가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여성건강권 운동을 한국사회에서는 상당히 지연시켰다.

2004년 현재 한국사회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정관, 난관을 묶는 수술을 보험적용에서 제외하고, 정관, 난관을 푸는 수술을 보험적용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국가적 위기담론은 국가경쟁력 하락을 우려한다는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경종과 그리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지금의 시기엔 과거의 전철-여성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여성들이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보장 받지 못한 채 국가의 경제논리에 의해 통제되었던-을 밟지 않기 위한 여성들의 대항적 ‘필요담론’이 시급히 요청된다.

사회가 먼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양육뿐 아니라 가사노동과 부양노동을 여성에게만 짐 지워선 안 된다는 것, 결혼제도의 틀 안에서만 출산과 입양, 인구정책을 논할 것이 아니라 비혼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담론을 과거의 상황과는 구분 짓고, 여성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여성운동의 역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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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tton : The fibre of freedom

  • 등록일
    2005/03/12 14:04
  • 수정일
    2005/03/12 14:04

from vshiba.net

Cotton: The fibre of freedom
(A Diverse Women for Diversity Campaign trade and tear)

Cotton is the fibre that has clothed humanity through most regions of the world and through most of our history.

Yet cotton is also the fibre that led to colonization and slavery and is now leading to recolonisation and ecological disaster.

The first industrial revolution was based on the mechanization of spinning and weaving. Three continents were colonized to transform cotton from a fibre of freedom to a thread of colonization. India was colonized to destroy its highly evolved textile industry. Its was transformed from being a producer and exporter of fine calicos and chintzes to Europe into a seller of raw material – Indigo and cotton – produced under slave conditions, and a buyer of factory produced textiles from Lancashire and Manchester. Africa was colonized to provide slave labour and the Americans were colonized to provide the land, to grow cotton for England’s hungry mills.

Cotton exports from US jumped from 400000 boles in 1820 to 4 m boles in 1861. This was made possible by the slave labour that worked on the plantations in the Southern states. That mentality that assumes slavery is now ruling the world. And cotton is again playing a role in the new imperialism.

Colonisation and the Spinning Wheel 

The mechanization of textile manufacture was the leading technological transformation of the first industrial revolution. By the time that technological innovations made full impact on the British textile industry in the early 19th century, England had gained full political control over resources and its markets of its colonies; including India. India until then had been a leading producer and exporter of textiles in the world market. The industrialization of England was based in part on the deindustrialisation of India. The development of England was based on India’s underdevelopment. It is no co-incidence that India’s independence movement was based in large measure on seeding liberation from the control on resources and people of Third World that were part of the process of Europe’s industrialisation. Two symbols of India’s independence struggle were the ‘Champaran Satyagraha’ and the ‘Charkh’. The Champaran Satyagraha was a peaceful revolt against the forced cultivation of indigo as a dye for the British textile industry. The ‘Charka’ or spinning wheel was the technological alternative that created self-reliance instead of dependence, and generated livelihoods instead of destroying them.

While the rapid technological innovations in the British textiles industry were made possible only through the prior control over the resources and the market, the stagnation and decay of this industry in India was a result of the loss of political control first over the market and later over the raw material. The destruction of India’s textile industry necessitated the destruction of the skills and autonomy of India’s weavers. Often this destruction was extremely violent. For instance, the thumbs of the best Bengal Weavers were cut off to cut off market competition when Indian hand woven textiles continued to do better than the British mill products. The impact of the violence manipulation and control of the English merchants on the Indian weavers started when the East India Company become a territorial power by defeating Nawab Sirajuddaula in the battle of Palassi in 1757. Before that the Indian weavers were independent producers and had control over their produce. The East India Company replaced the indigenous merchants by a ‘body of paid servants receiving instructions from them with coercive authority over weavers that none had before. They had virtual monopoly of the market and had effectively exercised control over raw materials and began to extend this control over the weavers’ tools. Under the company weavers had virtually become wage workers on terms and conditions over which they had no control.’

In the context of such erosion of the control on resources and the market, the traditional weavers of India were displaced. There was an exodus out of the weaving trade. New textile technology was imported into India from England in the mid-19th century by the cotton traders of India who were involved in export of cotton to England. This new group of powerful merchants turned mill owners competed with the handloom weavers for the common market and the raw material base. The establishment of textile mills in Lancashire and later in India deprived the Indian weaver both of the market and the raw material. When the American cotton supply to the English textile industry was disturbed by the American civil war, the famous cotton famine of 1890s broke out and the English instantly reacted by grabbing the cotton in India. The cotton famine was transferred to India.

A government survey of 1884 gives the following picture of the production and supply of clothing:

It is evident that the whole population must be far nearer a state of pristine nudity than ever before. Every poor person stints himself to an inconceivable degree in his clothing and every purpose to which cotton is applied. He wears his turban and breach cloth to rags, dispenses with his body clothing and denies himself of his annual renewal of his scanty suit”

There was also a devastating impact of the new textile mills opened in Indian on the handloom weavers.

“The growth of the industry began to impinge on the handloom industry…. This incursion of mills into areas hitherto considered the special reserves of the handloom industry had a many sided effect…and led to unprecedented worsening of the conditions of the handloom weavers…Actual unemployment was seen as in the statistics of idle handlooms; this was estimated at 13% in 1940 by the fact finding committee (of Handlooms and mills)

Gandhi’s critique of the industrialisation of India on the western model was based on his perception of the poverty, dispossession and destruction of livelihoods, which resulted from it.

‘Why must India become industrial in the western sense?’, Gandhi has asked ‘what is good for one nation situated in one condition is not necessarily good for another differently situated. One mans’ food is often another man’s poison… Mechanization is good when hands are too few for the work intended to be accomplished. It is an evil where there are more hands than required for the work, as is the case in India.

It was to regenerate livelihoods in India that Gandhi thought of the spinning wheel as a symbol of liberations and a tool for development in that period of early industrialisation. However, the hunger of mills for raw-material and markets was the reason for a new poverty, created by the destruction of livelihoods either by diverting land and biomass from local subsistence to the factory, or by displacing local production through the market.

Gandhi had said that ‘anything that millions can do together, becomes charged with unique power’. The spinning wheel had become a symbol of such power. ‘The wheel as such is lifeless, but when I invest it with symbolism, it becomes a living thing for me.’

When Gandhi described the Charkha in 1908, in Hind Swaraj as a panacea for the growing pauperism of India, he had never seen a spinning wheel. Even in 1915, when he returned to India from South Africa, he had not actually seen a spinning wheel. But he saw an essential element of freedom from colonialism in discarding the use of mill woven cloth. He set up handlooms in the Satyagraha Ashram at Sabarmati, but could not find a spinning wheel or a spinner, who were normally women. In 1917, Gandhi’s disciple Ganga behn Majumdar started a search for the spinning wheel, and found one in Vijapur in the Baroda State. Quite a few people there had spinning wheels in their homes, but had long since consigned them to the lofts as useless lumbers. They now pulled them out, and soon Vijapur Khadi gained a name for itself. And Khadi and the spinning wheel rapidly become the symbol for India’s independence movement.

The spinning wheel symbolized a technology that conserves resources, people’s livelihoods and people’s control over their livelihoods. In contrast to the imperialism of the British textile industry, not labour displacing. It needed people’s hands and minds, instead of treating them as surplus, or as mere inputs into an industrial process. This critical mixture of decentralization, livelihood generation, resource conservation and strengthening of self-reliance were essential to undo the waste of centralization, livelihood destruction, resource depletion and creation of economic and political dependence that had been engendered by the industrialisation associated with colonialism.

Gandhi’s spinning wheel is a challenge to notions of progress and obsolescence that arise form absolutions and false universalism in concepts of science and technology development. Obsolescence and waste are social constructs that have both a political and ecological component. Politically, the notion of obsolescence gets rid of people’s control over their lives and livelihoods by defining productive work as unproductive and removing people’s control over production in the name of progress. It would rather waste hands then waste time. Ecologically, too obsolescence destroys the regenerative capacity of nature by substituting manufactured uniformity in place of nature’s diversity. This induced dispensability of poorer people on the one hand and diversity on the other constitutes if the political ecology of technological development guided by narrow and reductionist notions of productivity. Parochial notions o productivity, perceived as universal, rob people of control over their means of reproducing life and rob nature of her capacity to regenerate diversity.

 Ecological erosion and destruction of livelihoods are linked to one another. Displacement of diversity and displacement of people’s sources of sustenance both arise from a view of development and growth based n uniformity created through centralized control. In this process of control, reductionist science and technology act as handmaidens for economically powerful interests. The struggle between the factory and the spinning wheel continues as new technologies emerge.
Extracted from: Dr. Vandana Shiva’s The Violence of the Green Revolution

Unfair Trade as tool for recolonisation

In September 2003, the WTO Talks in Cancun collapsed. Cotton was at the core of the breakdown.

While free trade had been sold as producing a “level playing field’, the rules of WTO were in fact rules of forced trade which forced Third World countries to open their markets to dumping by removing trade barriers while the rich countries subsidies kept increasing, artificially lowering prices and thus destroying the livelihoods of peasants.

Four tiny countries – Benin, Burkina Faso, Chad and Mali made cotton subsidies the main issue in Cancun. The US is subsidizing its 20000 agribusiness farms up to $4 billion, and dumping cotton on world markets. According to the World Bank 15 million growers of cotton in African countries are losing $ 250 million each year due to the false law prices of US cotton. In 2001, the cost of cotton in US was $ 0.9313 / bushel, and the export price was $ 0.39 68/ bushels, a dumping of 57%. From 1995 to 2001, dumping jumped form 17% to 57% in the case of cotton.

As the African countries said at a press conference in Cancun:

“Africans came to Cancun hoping for solutions to the problems faced by some 15 millions cotton producers.

African cotton producers received good words. But 24 hours before the end of the Ministerial Conference, the countries which submitted the Cotton Initiative did not receive a response to their problems.

                       They had been told “trade not aid…”

The cost of cotton production in Western and Central Africa is among the lowest in the world. But producers cannot anymore live with their earnings and they could be excluded from the world market to the benefit of producers with higher productions costs receiving massive subsidies.

Cancun provided a unique opportunity for lifting millions of people out of poverty and, at the same time, bringing coherence between the aid and trade policies of industrialized countries. But no solutions has been found yet because the interest of a few. Have to be preserved.

If Africans leave Cancun without practical results, they may not return because so much efforts have led to so little.”

The fact that a Korean farmer Lee Kyung Nee had taken his life in Cancun, showed that trade negotiations in WTO have laterally become a life and death matter for millions. As Lee had stated:

“My warning goes to all citizens that human being are in an endangered situation that encontrolled multinational corporations and a small number of big WTO members/ officials are leading an undesirable globalisation of inhumane, environment distorting, farmer killing and undemocratic. It should be stopped immediately otherwise the false logic of neoliberalism will perish the diversities of agriculture and prove disastrous to all human beings”.

On 10th Sept, Lee climbed the barricades with his banner which read “WTO kills farmers” and ended his life.

 Seeds of Suicide

Suicides among Indian farmers began in 1997, when global corporations like Monsanto started to buy up Indian seed companies and sell hybrid and genetically engineered seeds. The epidemic of suicides fast spread in Warengal in Andhra Pradesh and Bhatinda in Punjab where the new cotton seeds spread. In Warangal, cotton jumped form 0 hectares – 1986 to nearly a 100000 hectors in 1997, displacing diversity of jowar, bajra, green gram, red gram, house gram, black gram, sesame, groundnut. Hybrid cotton us the most pesticide intensive crop. The Bhopal factory of Union Carbide, which killed 3000 people in 1984 and has killed 30000 since then made “carboryl” a pesticide, used primarily cotton.

  • B Ramanamma belongs to Gangapur village in Jadcherla in Mehboobnagar District of Andhra Pradesh. She and her husband cultivated 20 acres of leased land. Taken in by the marketing hype of seed companies, they replaced paddy with cotton. This proved beneficial at the beginning, but demanded intensive irrigation, for which they took a loan of Rs.50000. the subsequent crops failed. Burdened with loans and accumulating interests Ramanamma’s husband consumed pesticide and committed suicide. Ramanamma and her son are today working as construction workers in order to survive.

  • Kottula Yakayya, of village Samudrala in Staton Chanpur Mandal committed suicide in 1999. His family owns 4 acres of land. On 2 acres of land chilies were sown and remaining two acres cotton was frown. Last year for cultivating cotton he burrowed as sum of Rs.25,000/- on loan basis. With interest it totaled to Rs.60,000/-. Moneylenders started pestering him for payment of their interest. Not getting proper price for the cotton in market and unable to know how to clear the heavy debt, the farmer got agitated and consumed insecticide and committed suicide.

  • Pacchikeyala Kameshware Rao of Akinepalli village of Mangapeta Mandal, unable to bear the financial problems committed suicide same year. Insects intensely attacked the cotton crop cultivated by him. Use of many insecticides could not stop the spread of insects. Due to this the crop got completely destroyed. Due to lack of advice from the scientists and agricultural officers he got completely disillusioned and consumed poison in the form of insecticides and committed suicide.

There are may cased of suicide where the lack of scientific advice by the concerned agricultural departments led to suicides of Indala Ayilayya, Malotu Danja, Tallapalli Lakshamayya, Pentala Odelu.

More the 25000 Indian peasants have committed suicide over the past 6 years.

In 2002, Monsanto manipulated a clearance for its genetically engineered BT cotton.

Bt. Toxins are a family of related molecules produced in nature by a soil bacterium, Bacillus thruigniensis (Bt.) Farmers and gardeners have used natural Bt. As an organic pesticide for more than 50 years. Bt. genes are now being genetically engineered into crops so that the plant produces toxins throughout most of its life.

Genetically engineered Bt. crops are being offered as a sustainable pest control strategy. However, the Bt. crops are neither ecological nor sustainable. They are not ecological because internalizing toxin production in plants is not a toxic free strategy – it merely makes toxics internal to plants rather than applied externally. The ecological impacts of this strategy of internalizing toxics have not been looked at, though indications are emerging that genetically engineered Bt. is harmful to beneficial insects such as bees and ladybirds.

The Bt. crop strategy is not a sustainable method for pest control because Bt. plants release toxins continuously. Constant long-term exposure of pest populations to Bt. encourages survival of individual pests that are genetically resistant to the toxin. As Margaret Mellon and Jane Rissler of 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state in their report “Now or Never”.

Over many generations, the proportion of resistant individuals in pest populations can increase, reducing the efficacy of the Bt. toxin as pesticide. If resistance evolves, Bt. toxins will cease to be effective both for the users of the new transgenic plants and those who have relied on Bt. sprays for decades. Scientists have estimated that widespread use of Bt. crops could lead to the loss of Bt’s efficacy against certain pest populations in as far as two to five years (Fred and Bruce, 1998).

The primary justification for the genetic engineering of Bt. into crops is that this will reduce the use of insecticides. One of the Monsanto brochures had a picture of a few worms and stated, “You will see these in your cotton and that’s O.K. Don’t spray”. However, in Texas, Monsanto faces a lawsuit filed by 25 farmers over Bt. cotton planted on 18,000 acres which suffered cotton boll worm damage and on which farmers had to use pesticides in spite of corporate propaganda that genetic engineering meant an end to the pesticide era. In 1996, 2 million acres in the US were planted with Monsanto’s Bt. transgenic cotton called Bollgard, which had genes from the bacteria Bacillus thuringensis (Bt). The genetically engineered cotton generates a natural toxin to kill caterpillars of their pest: cotton bollworm, tobacco budworm and pink bollworm.

However, cotton bollworms were found to have infested thousands of acres planted with the new breed of cotton in Texas. Not only did the genetically engineered cotton not survive cotton bollworm attack, there are also fears that the strategy will create super bugs by inducing Bt – resistance in pests. The question is not whether super-pests will be created, but when they will become dominant. The fact that Environment Protection Agency (EPA) of the US requires refugia of non-engineered crops to be planted near the engineered crops reflects the reality of the creation of resistant strains of insects.

The widespread use of Bt. containing crops could accelerate the development of insect pest resistance to Bt., which is used for organic pest control.
Extracted from: Seeds of Suicide

Instead of less pesticide use, genetically engineered BT cotton used more pesticides, and as the Indian experience shows, gives lower yields. Instead of 1500 kg, BT cotton gave 200 kg/acre as the average. Instead of Rs.10000 addition incomes, farmers lost Rs.6400/ acre. Besides pushing farmers to debt and suicide Monsanto’s BT cotton is contaminating the environment and creating inhuman health risks. These risks are unnecessary because there is an alternative – organic cotton.

Organic cotton frees the environment and our bodies of pesticide pollution, frees farmers of debt and slavery. Cotton can still be a fibre of freedom. But we will first have to free cotton of corporate control, of toxics, and of false and forced trade rules.

Campaign:

  1. Join the movement to get Agriculture out of WTO and create a fair trade agreement.

  2. Demand an attend to cotton subsides to US agribusiness.

  3. Boycott Monsanto’s BT cotton and clothing made from it. Demand GMO free, Monsanto free cotton from your clothing stores.

  4. Support the promotion of organic cotton in the Third World.

  5. Support fare trade in organic co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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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6,70년대 가족계획의 실체를 보자

  • 등록일
    2005/03/12 14:02
  • 수정일
    2005/03/12 14:02

일다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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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대 가족계획의 실체를 보자 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1 이진옥 기자 2004-08-08 18:17:15 <출산과 피임, 임신중절, 가족계획과 관련된 이슈들은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권리와 건강권, 재생산권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선 근대화 정책이나 경제성장 논리에 가려져 제대로 논의되지 못해왔다. 일다에서는 1960~1970년대 국가주도의 가족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여성들의 이해관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최근 가족 해체, 출산율 저하를 국가적 위기로 간주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논의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2002년 한국의 출산율 1.17은 그 동안 무시해 왔던 여성이 경제활동 여건을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법제 마련에 대한 논의를 끌어냈다. 한편 한국의 출산율 저하 현상을 ‘여성이 몸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낙태 용인되는 한국은 여성의 재생산권 보호국? 미국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세계에 끼친 많은 해악 중 하나는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와, 이와 관련된 단체들에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이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 낙태 합법화를 위한 투쟁으로 상징된 여성 건강권 운동(women’s health movements)이 성취한 여성 재생산권의 선택 범위를 제한하며, 다시금 이 문제를 수 십년 뒤의 상황으로 후퇴시키는 것과 다름 없는 조치였다. 그렇다면 낙태가 용인될 뿐 아니라 권장되는 면까지 있는 한국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호하는 국가라고 볼 수 있는가? 1994년에 출판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와 함께 낙태율 세계 최고 순위를 놓고 경쟁한 바 있고, 여태아 살해(femicide)로 인해 1979년 유엔에 의해 채택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제거를 위해 만들어진 협약(CEDAW: the Conventions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의 5항에 따라 인권침해 국가로 분류된 바 있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미혼모의 증가나, ‘아기 파는 국가’로도 악명이 높은 한국을 여성의 재생산권 옹호국가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가족계획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세계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아 왔다. 1960년 전체 출산율 6.0이 1990년에 1.5으로 감소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1993년 가족계획에 투자된 세계 각국의 정부 노력 평가에서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2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출산력 감소가 단지 경제성장이 가져다 주는 사회 변동의 결과로 나타났다기보다, 출산력 통제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의 경제발전 논리로 출발한 산아제한 정책 출산력을 감소시키려는 본격적인 노력은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인구 증가가 가난의 핵심적 이유’라는 맬서스의 진단을 수용하고, 인구정책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국책사업에 통합시키면서 시작된다. 이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획득한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세우고자 한 발전주의 논리에서 산아제한이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정권은 이전에 피임약과 피임도구의 수입을 금지했던 법을 1961년에 폐지했고, 그 이듬해에 보건사회부 관할 하에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했으며, 민간단체인 대한가족계획협회 또한 보건사회부 관리 하에 두었다. 1961년에서 1979년까지 박정희 정권 하의 가족계획 변모를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가족계획 초기에는 전국의 보건소에 가족계획 요원들을 파견하여 의식향상 캠페인을 하고 경구피임약을 보급했다. 1964년에는 자궁 내 피임기구(IUD)를 도입했으며, 주로 간호사와 조산사로 구성된 가족계획 현장요원 수를 늘려 읍과 읍 단위의 1천473개 부설 보건소에 파견하고 외진 곳까지 미칠 수 있는 기동팀을 구성했다. 1968년에는 스웨덴 국제 개발국이 경구 피임약을 공급하고, 미국 국제개발처에서 상당한 자금을 지원한 것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했다. 이는 한국이 세계인구개발전략의 수혜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국여성들이 스웨덴이 ‘덤핑’한,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피임약의 수령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1973년엔 여성이나 태아가 치명적인 건강 상태에서는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통과되었고, 이후에는 병원 프로젝트, 산업단지 프로젝트, 도시빈민 프로젝트, 인구교육 프로젝트 등 국가 사업에 여성불임을 포함했다. 1976년에는 두 명 이하의 자녀를 가진 가족들에게는 소득세를 면제하거나, 불임술을 시행한 가족에게는 공공주택 우선권을 주는 등 적극적 사회조치(incentives/disincentives)가 도입됐다. 강요에 의한 불임 등 몸에 대한 통제권 잃어 이러한 정책들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이 끝날 때까지 인구증가율 2.9%에서 2.5%로, 제2차 5개년 계획(1967~1971)이 끝날 때까지는 2.0%로 내리겠다는 목표 설정 하에 도입된 것이다. 수치 달성의 임무가 할당된 가족계획 사업에서 여성의 몸과 출산에 대한 여성 개개인의 권리가 고려되었을 리 만무하다. 특히, 적극적 사회조치의 도입으로 불임수술 수용자 수가 1974년 3만5천에서 1977년 23만5천으로, 단 3년 동안 7배로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자녀 출산 후 불임술을 하면 국가의료원에서 그 자녀 출산비용을 무료화했고, 불임을 한 부부에겐 주택융자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빈민에게는 무료로 불임술이 시술됐고 현금으로 보조금이 제공됐다. 남성이 불임을 택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의 특혜를 제공해, 불임술을 받은 남성의 70%가 민방위 훈련 장소에서 그것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임사업은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어, 불임을 택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에 비해 3배가 훨씬 넘어섰다. 조형 교수(이화여대 사회학과)는 연구를 통해 일부 농촌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피임용 자궁 내 고리(loop)를 이식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그들이 이웃이나 방문하는 가족계획요원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요 받았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임신중절은 한국가족계획연구원으로부터 급격한 출산감소의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주된 피임수단으로 인지되기까지 했다. 또한 월경규제(menstrual regulation)라는 일종의 임신중절이 임신 8주 미만의 여성에게 권장됐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말기인 1979년에는 전체 출산율과 낙태율이 2.9로 같은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는 법적으로 낙태가 악화된 건강상태의 여성에게 제한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낙태가 불법적으로 시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계획 둘러싼 국가의 이해와 여성의 이해 이 같은 사실들은 국가가 어떻게 여성의 몸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왔는지 보여준다. 이는 발전주의 국가가 단지 수출지향 산업에 젊은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방식뿐 아니라, 강제적인 수단을 이용해 여성의 출산력을 통제, 조작함으로써 경제성장에 이용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면 여성 또한 스스로 출산력 통제의 수단을 획득하게 되길 바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피임의 선택권’을 갖는 것은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오래된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피임도구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그것을 활용하게 된 것은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국가의 이해였지만, 또한 여성의 이해이기도 했다. 1977년의 가족법 개정과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는, 남아선호사상을 산아제한의 걸림돌로 진단하고 개선해보려는 정부의 실천적 제스처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들 간의 차이와 연관성을 규명해야만 한국사회의 여성 재생산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 기사 예고: 가족계획어머니회의 활동과 그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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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이 밉다

  • 등록일
    2005/03/12 14:00
  • 수정일
    2005/03/12 14:00

웰빙이 밉다

- 매닉


요즘에는 상품에 ‘웰빙’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물건을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웰빙푸드, 웰빙 아파트, 심지어 웰빙 바캉스까지 떡 하니 한 상업 잡지의 섹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건강에 좋지 않기로 유명한 각종 페스트푸드점들도 호밀빵이니, 유기농이니 하며 상품의 가격을 올리고 있다.
한번은 캐나다 친구와 어느 유명한 패스트푸드 햄버거집에 들어갔는데, 계산대에서 이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마구 웃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린 포크”라는 문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글로 직역하면 “푸른 돼지고기”라는 뜻인데, 싱싱한 고기라는 뜻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반대로 “상한 돼지고기”라는 뜻이란다.


가끔 피자매연대 활동을 하면서 대안생리대를 웰빙쇼핑몰에서 팔지 않겠느냐, 대량생산하지 않겠는냐하는 제의를 받곤 한다.
이럴 때마다 마구 짜증이 나고 괜시리 사람들이 미워진다.
여성의 몸이 상품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시작한 대안생리대 운동을 다시 상품으로 포장하려는 상술이 미워서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웰빙 상품이라는 게 그동안 일궈왔던 여러 가지 생태운동과 환경운동들의 성과를 돈과 시장체계가 가져 가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가져가는 건 좋은데, 원래 하나인 것을 마구 쪼개고 쪼개진 일부를 떼어다가 전부인 양 얘기하는 게 더 밉다.


가령 대안생리대의 경우에는 대안생리대운동이 기반하고 있는 여러 가지 맥락들이 있다.
일회용생리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나무를 벌목해 펄프를 만들고, 그 펄프를 엄청난 양의 물을 이용해 가공하고, 화학약품처리를 하고, 표백하고, 상품으로 생산하고, 소비자인 여성들이 사용하고, 휴지통에 버린다.
이렇게 자원을 대량채취해서 대량생산하고 그것을 대량소비하고 대량폐기하는 과정에서 그 굽이굽이 마다 발생하는 엄청난 환경파괴와 착취와 억압이 있다.
대량채취는 이른바 선진 산업국들인 북의 국가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못산다는 남의 국가들에서 행해진다.
제3세계 민중과 여성들이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숲이 펄프 목재를 위한 플랜테이션이 되어버리면서 공장 같은 농장의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도시로 떠나 슬럼가를 전전하게 된다.
기업과 정부는 이런 것을 바로 “개발”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며 자기들 배불리기에 바쁘다.
북의 소비자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나온 일회용생리대를 보며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환경파괴와 착취의 비용을 생각할 리 만무하다.
그만큼 “그들”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또 서로 찢어져 있다.


웰빙상품이 된 면생리대가 미운 것은 이런 얘기들은 다 지워버리고 그저 “내 몸”에 좋으니까, “우리 환경”에 좋으니까 사서 쓴다는 생각만 심어주기 때문이다.
내 몸에 좋은 거, 우리 환경에 좋은 거까지는 좋다. 하지만 내 몸 아닌 거, 우리 환경 아닌 거에는 굉장히 무관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느 생리대 회사는 마치 순면감촉과 똑같다는 일회용생리대를 내놓았는데, 이 회사의 모토는 “우리강산 푸르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엔 남의 강산을 파괴해서 우리강산 푸르게 하자는 논리밖에는 안되지 않나 싶다.
“웰빙”이 내 건강이랑 남의 건강을 찢어놓는 식으로 모든 강산을 “우리 강산”과 “남의 강산”으로 찢어놓는 거, 바로 이런 게 미운 거다.
또, 어머니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창안한 알록달록한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면서 만들어낸 갖가지 생리대를, 상품이 될 만 하니까, 마치 개인 소유인 양 가져다 특허니 실용신안이니 하는 독점권을 낸다.
이런 식으로 대안 운동이 웰빙 상품이 되면, 어설픈 바느질이나마 찢어졌던 조각들을 연결하려 했던 풀뿌리들의 노력이 또 다시 독점되고, 또 다시 생산과 소비로 찢어진다.


또 한가지 미운 게 있다.
‘웰빙’자만 들어가면 다들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쇼핑몰에서 파는 면생리대는 보통 10000원에서 30000원을 호가한다.
7-8개 세트를 모두 장만하려면 비싼 것은 30만원 이상 줘야 한다.
슈퍼마켓에 가면 유기농 원료를 이용한 것은 다른 것에 비해 두, 세배가 값이 더 나간다.
웰빙은 확실히 2000원 하는 콩기름 대신 8000원 하는 올리브유를 선뜻 집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만은 틀림없는 듯 하다.
동시에 여태껏 일반적으로 먹어온 콩기름은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되고, 돈 없는 사람들의 먹거리로 ‘전락’한다.


굳이 웰빙을 예로 들지 않아도,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물을 사먹기 시작해서 지금은 먹는 물 하면 사먹는 생수를 떠올리게 되었다.
또 언제부터인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여름을 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의례 광목이나 옥양목으로 만들어오던 생리대가 새하얀 일회용생리대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지 않았던 것들을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서 먹고 쓰고 버리고 있는 것의 목록은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원래 우리 모두의 것이었던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맑은 숲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포장된 물, 포장된 공기, 포장된 숲의 향기가 팔리고 있다.
우리 것이 오염되니까 남의 것을 쓰려다 보니, 그것 마저 망가지고 파괴되어 신음을 한다.
물이 그렇고, 시골이 그렇고, 제3세계의 자연과 민중의 삶이 그렇다.


작년 여름 휴가 때 이 지긋지긋한 도시의 여름을 탈출하고자 부안에 간 적이 있다.
부안은 핵폐기장 건설 반대로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
정부가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건설하면서 선전하는 문구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웰빙에너지’쯤 되겠다.
근데 문제는 도시 사람들에게나 웰빙이지, 막상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 세워지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심각한 생존권과 생활권의 위협이라는 거다.
좀 어려운 말로 정리하자면 환경파괴의 비용을 지역과 외부로 떠넘기면서 계속 에어콘화, 자동차화, 도시화, 산업화하겠다는 거다.
이런 개발 욕망의 이면에는 개발이 파괴한 깨끗한 공기, 물, 자연을 바라는 욕망 또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웰빙”이란 자동차를 타면서 깨끗한 공기를 원하고, 에어콘을 틀면서 깨끗한 에너지를 원하는 이 도시인들의 정신분열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편, “웰빙”이라는 말을 따지고 보면 정말 좋은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게 웰빙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웰빙을 미워할 이유는 없는 거다.
아마도 내가 미워하는 이유는 그 속에 분리와 차별 숨어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의 웰빙은 소비만 웰빙이다.
돈 있는 사람들만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자는 거다.
하지만 돈으로 아무리 웰빙을 사도 그건 진짜가 아니라 모사품이라는 데 사람들은 곧 허탈해질 것이다.
진정한 웰빙이란, 돈없고 빽없고 힘없는 사람들도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때 가능해지는 거다.
그러니까 자동차, 에어콘 쓰지 말고, 개발과 산업화를 포기하고, 그렇다고 애꿎은 시골이나 지역을 건들지 말고, 도시 스스로가 갱생해야 할 일이다.


최근 일산 풍동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현재 풍동에는 여남은 명의 철거촌 주민들이 용역깡패들의 침탈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폭격기가 쓸고 간 자리처럼 폐허가 된 동네의 한 가운데에는 주민들이 연립주택을 개조해 만든 골리앗이 홀로 솟아있었다.
내가 간 날에는 몇 명의 젊은 사람들이 무너진 담벼락과 건물 더미에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그곳에서 상추 모종을 심는 사진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웰빙이 아닐까 싶다.
돈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파괴해가며 이윤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 대항해서 우리들의 권리를 탈환하고자 맞서는 진짜 웰빙운동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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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서 펌]힐러리에게 암소를

  • 등록일
    2005/03/12 13:16
  • 수정일
    2005/03/12 13:16
약골이 퍼 놓은 글을 보려고 녹색평론에 들어갔다가 이 글을 읽게 됬습니다. 집에 가다가 꼭 이 책을 사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리아 미즈라고 하면 반다나 시바와 함께 <에코페미니즘> 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지요. 여성과 어린아이, 자연을 다소 물신화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감동적인 글들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힐러리에게 암소를 - 세계화 경제를 넘어 '자급'의 삶으로
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센

     이 글은 최근 국내에《에코페미니즘》의 공저자 중의 한사람으로도 소개된 바 있는 독일의 생태여성주의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 그 동료 베로니카 벤홀트-톰센(Veronika Bennholdt-Thomsen)과 함께 집필한 새로운 책 Eine Kuh für Hillary:Die Subsistenzperspektive(1997)의 영어판 The Subsistence Perspective:Beyond the Globalized Economy(1999)의 서문을 옮긴 것이다. "Subsistence Perspective"는 성장 . 개발 . 세계화 경제의 이데올로기의 지배 밑에서 지금 벼랑끝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에 필요한 진정하게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근년에 유럽, 특히 독일의 생태운동가들 사이에 관건적인 화두로 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새로운 개념이 근본적으로 제3세계 풀뿌리 민중의 삶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열쇠말인 subsistence는 기초적인 생존수준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잠정적으로 '자급의 삶'으로 번역하였다.

  1995년 4월 북경에서 '유엔 세계 여성회의'가 열리기 몇달 전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하였다. 그녀의 방문목적은 방글라데시 시골마을들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어온 '그라민은행'(Grameen Bank=풀뿌리 민중의 자립적 삶을 지원하기 위해 가난한 시골마을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소액의 사업자금을 무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 . 운영중에 있는 은행 ― 역주)의 사업이 정말 소문대로 잘되고 있는지를 몸소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은 방글라데시에서 농촌여성들의 상황을 놀랄 만큼 향상시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클린턴 부인은 정말 이 여성들의 힘이 소액대출 때문에 커졌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라민은행이나 개발지원 기관들에게는 '여성의 힘이 커진다'는 것은 한 여성이 자기자신의 소득을 가지고, 얼마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마이샤하티 마을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그곳 여성들의 상황에 대하여 몇몇 여성들과 회견을 가졌다. 여성들은 대답하였다. "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수입이 있어요." 그들은 얼마간의 '자산'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암소, 닭, 오리 등이라고 했다.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클린턴 부인은 만족스러웠다. 마이샤하티 마을에서 여성들의 힘은 분명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하는 사람이 방글라데시 여성이 되고, 힐러리 자신이 대답을 해야 될 차례가 되었을 때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과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어요?"
  "아뇨, 나는 암소가 없는데요."
  "아파, 당신은 자기 소득이 있어요?"
  "실은, 전에는 내가 직접 벌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돈버는 일을 그만두었답니다."
  "아이들은 몇 있나요?"
  "딸 하나예요."
  "아이들을 더 갖고 싶진 않나요?"
  "네, 하나나 둘쯤 더 갖고 싶긴 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딸 첼시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마이샤하티 마을 부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참 안됐네! 힐러리 부인은 암소도 없고, 자기 소득도 없고, 아이도 딸아이 하나뿐이라는군." 방글라데시 농촌여성들의 눈에 힐러리 클린턴은 결코 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암소 한마리와 닭 몇마리와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스스로 힘이 있다고 느끼는 방글라데시의 농촌여성들과 힐러리 클린턴 사이의 인터뷰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여성들이 어째서 힐러리에게 동정심을 느끼는가? 힐러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방글라데시의 농촌여성들은 단지 순진하거나 무지한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성들은 클린턴 부인이 '부유한'나라에서 왔고, 많은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위의 에피소드는 힐러리 클린턴과 방글라데시 마을 부인들이 갖고 있는 관점의 차이를 요약적으로 드러낸다. 이 여성들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은 '밑으로부터의' 관점, 즉 자급의 관점이다. 이런 시각에서 세상을 볼 때, 모든 사물과 관계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특히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다. 그것은 좋은 삶이 가능하려면 돈이 많아야 되고, 물건이 많아야 되고, 사치품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좋은 생활은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와 세계도처의 부유계층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클린턴 부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북반구의 부유한 여성들의 관점과 전혀 다른 것이다.
  아마도 방글라데시 시골에서의 그 회견은 클린턴 부인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십중팔구 시골마을 부인들이 공손한 태도로 얼마간의 사업자금을 요청하고 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남자의 아내인 자신을 우러러보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시골마을 여자들은 힐러리의 '위로부터의'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인터뷰 동안, 그들은 부와 가난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수입상품으로 가득찬 슈퍼마켓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구인들이 갖고 있는 빈곤과 부와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드러내주었다.
  아마도 클린턴 부인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인가 결핍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자기 나라의 엄청난 부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이 아직 갖고 있는 어떤 것일 것이다. 자부심, 위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는 능력 ―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우리는 그것이 '자급의 관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급의 관점은, 스스로의 생명(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서며,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의 모태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자급의 관점이다. 우리도 힐러리 클린턴처럼 부유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부의 모델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이런 형태의 '좋은 삶'의 욕구가 초래하는 파괴 ― 자연의 파괴, 외국인의 파괴, 민중의 자립과 존엄성의 파괴, 아이들의 미래의 파괴,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것의 파괴 ― 때문이다. 우리는 항구적인 상품, 서비스, 돈의 성장을 노리는 '위로부터의' 관점으로는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궁지에서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배적인 패러다임과의 근원적인 단절과 새로운 관점, 새로운 비젼의 모색이 불가피하다.

  우리가 자급의 관점의 윤곽을 그려나가려는 노력에 있어서, 방글라데시 농촌여성들은 우리의 스승이 된다. 그들이 힐러리 클린턴과 나눈 대화는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세계도처의 모든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생존을 확보하는 일이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부인들에게서 5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밑으로부터의 관점이다. 우리가 현실을 볼 때,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여성의 관점 특히 남반구의 농촌여성과 가난한 도시여성들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는 일상생활과 그 정치, 삶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들의 전략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밑으로부터의 관점은, 사회 '꼭대기층'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삶의 이미지라고 하는 믿음이 얼마나 그릇된 망상인가를 알려준다. 이러한 망상에서 벗어나옴으로써 우리는 이런 식의 이른바 좋은 삶이라는 것은 오직 소수에게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그것도 타자 ― 자연, 타인, 여성, 아이들의 희생 위에 가능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자급의 관점은 돈, 교육, 지위, 특권이 아니라 기초적 생존수단, 즉 한마리의 암소, 몇마리의 닭, 아이들, 땅, 그리고 얼마간의 독립적인 현금수입을 확보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공동체 역량이다.
  셋째, 바로 이러한 독립적인 생존능력을 스스로 갖고 있다는 데 대한 깨달음이 마이샤하티 마을의 여성들에게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를 단지 그들의 '나이든 자매'로서 대등하게 대할 수 있는 자부심과 위엄과 용기를 부여한 것이다. 그들은 남의 도움으로 빌어먹는, 비굴한 거지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발로 서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배운 네번째의 교훈은 이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엿보이는 정신자세는《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의 끝에서 프레데릭 엥겔스가 언명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은 그 지배계급이 속한 사회전체에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질문은 그 반대를 가리킨다. 즉, "방글라데시 마을 여성들에게 좋은 것은 전체사회에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것은, 사회주의적이고, 성차별이 없고, 비식민주의적이고, 생태적이며, 정의롭고 좋은 사회는 지배계급의 생활양식 ― 예컨대, 모든 사람이 빌라와 캐딜락을 소유한 ― 을 모델로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급에 토대를 둔 기초적 생존양식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엥겔스의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역사적 기획이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결국 붕괴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섯째, 우리는 세계를 '제1'과 '제3' 부분으로 나누는 정신분열 증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여성들도 이러한 구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과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 사이를 갈라놓는 간극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구분과, 이 구분에 따르는 갖가지 차별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힐러리 클린턴은 무엇보다도 '나이 든 자매'이자 한사람의 여성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본적 삶의 필요와 욕구 ― 즉, 자급적 삶의 수단('암소')과 얼마간의 독립적 소득(남편으로부터 독립된)과 아이들 ― 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급의 입장이 그들 자신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마을여성들과 같은 의견이다. '자급의 관점'은 이른바 개발도상국들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들과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도 꼭같이 타당하다면 그것은 '새로운' 관점일 수밖에 없다. 이원적으로, 위계적으로 나뉘어진 두개의 경제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물론 이른바 '경제'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도전한다. 만약 '경제'가 산업의 끊임없는 팽창, 상품의 생산 및 소비, 자본축적의 계속적인 확대를 목표로 한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경제'는 자급의 관점과 양립할 수 없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이 시스템은 경제를 조직하는 유일하게 가능한 모델로서 장려되어왔다. 우리는 흔히, "대안이 없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부재'의 신드롬에 감염되기를 거부하면서, 우리는 이 책에서 새로운 '경제'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이것은 여성과 타인들과 자연에 대한 계속적인 식민화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경제시스템보다도 더 오래되고 동시에 더 젊은 경제개념이다. 이 새로운 경제는 생명과 이 지상에서의 삶의 산출과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경제 및 사회활동의 중심에 두지, 돈이라는 죽은 물질의 끝없는 축적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자급'이라는 개념은 보통 가난과 후진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자급이 의미하는 것은 생존의 가장자리에서의 고된 노동과 삶뿐만 아니라 삶속의 기쁨과 행복과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이런 식으로 '자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스스로의 것 ― 일, 문화, 자기자신의 능력 ― 을 과소평가하는 습관을 멈추고, 또 좋은 삶이란 '꼭대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물론, 자기자신의 것에 대한 이러한 과소평가의 습관은 강요된 식민화와 천격화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성들을 포함하여, 모든 식민화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왔다. 스스로 자신의 것을 낮게 보는 이러한 습관은 나아가서, 우리가 '따라잡기 개발'과 '따라잡기 소비주의'라고 부르는 또하나의 환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환상은 사회적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식민화된 사람들도 때가 되면 꼭대기의 사람들 수준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약속에 뒷받침되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따라잡기' 경제모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계화되고, 계속 팽창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경제의 밑바닥으로부터 보는 관점은, 어떤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절망감을 낳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진정으로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러한 삶을 위해 필요한 진정한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방글라데시와 기타 다른 남반구 국가들의 농촌여성들은 백악관이나 그밖의 다른 부유한 세계로부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한 여성들이다.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등에서 억압자들이 떨어져나가는 일이다. 자기 사회내부의 가부장적 남성들, 다국적기업들,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이러한 국제자본의 후견인들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자국내 관료들이 바로 그러한 억압자들이다.
  우리의 자립적인 삶에 필요한 진정한 힘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내부와 둘레에 있는 자연과의 협력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이 힘은 돈이라는 죽은 물질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상호의존 속에 있지, 경쟁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자주적인 행동에 있지, 수동적인 소비생활에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 속에 있는 것이지, 개인주의적 이해관계와 시기심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이 힘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우리의 친척이라는 우리 자신의 깨달음 속에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독자들과 우리 자신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지배적 경제시스템이 결코 어떤 불변의 자연법칙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수세기 전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대안부재'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더러 믿으라고 하는 것처럼 대안이 결코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급의 관점이야말로 대안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오늘날 이른바 경제의 세계화라는 것은 전적으로 새롭고 특이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필수요건을 구성해왔던 식민화와 '원시적 축적'의 불가피한 연장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이 계속되어온 식민화와 그 파장은 북반구의 산업국가들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북반구에 있어서의 점증하는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지금 산업화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 . 경제위기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갑자기, 북반구 산업국가들에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방글라데시의 농촌여성들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아직 커다란 양적인 간극이 있지만, 그러나 구조적으로 볼 때 북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은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과 더이상 다르지 않다. 이러한 갑작스런 깨달음 앞에서, 대부분의 북반구 사람들은 사실을 부정하려 들거나 아니면 공포를 느끼고 있다. 경제전문가들과 정치가들은 늘 그들에게 자본주의 이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북반구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따라잡기 개발을 통해서, 남반구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지속가능한' 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따라잡기 개발이란 것이 하나의 신화일 뿐이며, 한쪽의 부와 진보, 다른쪽의 빈곤과 퇴보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고, 둘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은 지배적인 경제시스템의 안정성이라는 게 결국 대부분 허풍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갈수록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는 현실에 수반하여, 필연적으로 북반구에서조차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점점더 빈곤해지고, 일자리를 잃게 되어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시아와 러시아의 금융 . 경제위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돈과 자본이 안전한 삶을 위한 견고한 토대가 못된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토대는, 최근의 타일랜드에서처럼, 하루아침에 붕괴할 수 있고, 은행가라 할지라도 일시에 거지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계를 금전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이 세계의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앞에 블랙홀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경제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 물질적 안전의 끝을 의미한다. 방글라데시의 여성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암소 한마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방글라데시 마을여성들 ―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하는 ― 의 시각으로 세계를 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종말론적 절망의 기분에서 벗어나 있게 된다. 그런 절망감은 북반구의 소수 응석받이들의 사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절망감은 그들로 하여금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특히 그들이 누려온 특권이 약탈에 기초해 있으며, 모두에게 좋은 삶이란 ― 즉, 자급적인 삶 ― 그러한 특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한다. 자급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또한 외부나 위로부터의 힘으로부터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에 따라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급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 생태적, 경제적, 여성주의적, 반(反)식민주의적 관점에서 ― 또한 이 새로운 관점이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도처에서 시작되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나아가서 이 새로운 관점이 언젠가는 '모든' 기본적 사회관계 ― 남녀간, 세대간, 도농간, 여러 계급들 및 사람들 사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 를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모든 경제 및 사회적 활동의 중심적 관심사가 죽어있는 돈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삶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면,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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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폰과 일회용생리대가 과연 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 상징일까요?

  • 등록일
    2005/03/12 12:55
  • 수정일
    2005/03/12 12:55
저는 키퍼와 면생리대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불편하지 않구요. (일회용 생리대도 여행할 때와같이 필요할 때는 씁니다.) 면생리대라 하면 예전에 할머니께서 쓰시던 그런 두툼한 옥약목 생리대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여성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개발해낸 대안 생리용품들을 보시면 그런말씀 안하실거예요.
링크를 클릭하면 면생리대와 키퍼(일종으로 고무로 만든 탐폰같은 것입니다.)를 볼 수 있습니다.  

탐폰과 일회용생리대가 여성의 몸에 어떤 식으로 나쁜지는 앞에서 얘기했으니깐 여기서는 생략할게요. 또 하나, 생리대는 소각되지 않는 거 아시죠? 엄청난 인구가 내놓은 생리대쓰레기를 생각해보세요. 결국 대자본이 여성에게 "편리"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구미 백인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오해하지 마세요. 일부의 백인!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입니다.)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마치 일회용생리대가 여성해방과 무슨 연관이 있는냥 떠들어댔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리대를 만들기 위한 다국적 기업의 펄프산업이 제3세계의 숲을 파괴시킵니다. 혹시 인도의 칩고 운동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숲을 근간으로 해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다국적 기업의 자연파괴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고 시위를 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 숲을 베어내어 생리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매년 열리는 월경페스티벌은 마치 생리대, 탐폰회사의 잔치같아요.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너무 좋은 생각이예요. 그동안 친구끼리 생리대를 주고받을 때 남자들 모르게 쉬쉬하는 것도 질릴 때가 됬죠. 이젠 떳떳하게 보여주고 말할 수 있어야죠. 하지만 거기서 여성 해방의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여자가 남자처럼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그래서 사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건 결국 남자보스를 여자보스를 바꾸는 것 밖에는 아니잖아요. 위계적 자본주의 국가 시스템은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그걸 위해서 자연환경, 여성 자신의 몸, 제3세계 주민의 삶까지 해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그 "편리함"의 소비주의적 신화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것이야 말로 결국은 마초적 자본에 편승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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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월경, 맨스

  • 등록일
    2005/03/12 12:54
  • 수정일
    2005/03/12 12:54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성의 "생리"라는 말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여성의 월경을 위생학의 포장으로 감싸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 의사가, 탐폰회사가, 생리대회사가
관리해주어야할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 드는 단어란 말이다.
또 뭔가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한 대상을 좀 완곡학 지칭하기 위해서
그런 소독약 냄새나는 단어를 쓰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신문기사, 방송맨트, 공문서 등등에서 쓰는 그런 말들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리대란 말도 다른 말로 바꿔야한다.
일본어로는 생리대를 뭐라고 할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월경대라는 말이 보였다.
월경대가 좀더 자연스럽고 덜 수치스러운 느낌이 든다.
말만 바꾼다고 뭐가 어찌된다고는 절대 믿지 않지만
어쨌건
생각해보니 처음월경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속삭이듯 "맨스"라는 말을
아주 느끼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알고보니 그런 기억을 다른 친구들도 갖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느끼했던 것일까?
맨스라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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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반다나 쉬바, 제3세계, 여성, 어린이의 입장에서 세계화에 저항하기

  • 등록일
    2005/03/12 12:53
  • 수정일
    2005/03/12 12:53
반다나 쉬바(www.vshiva.net)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이것 저것 많은 걸 얻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미 <에코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책이 나와있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아나코페미니즘의 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http://jukisalki.pe.kr/ 자료실에서 퍼왔습니다.

- 반다나 쉬바 인터뷰 전문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
우리는 퇴보해 있다고.
우리의 머리는 더 나은 것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여기 수많은 강 둑 위에 무엇들이 있습니까?
당신의 망원경으로 우리의 환희를 들여다 보세요.
여기 이 삼베 위에 놓인
5백여개의 다양한 감자들의 씨들로부터 나온
5백여개의 다양한 꽃들을.

당신의 눈은 저 다양한 5백여개의 꽃들이
나의 머리와 나의 살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다나 쉬바의 저서 '녹색혁명의 폭력` 중에서---


내가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를 알게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불과 2년전,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에 개탄을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고 있을 즈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에코페미니즘>. 그렇게 나는 반다나 쉬바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생태운동이라고 하면 환경운동을 생각한다. 환경운동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극히 부분적이고 죽어있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 환경운동이라는 말보다 생태운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권유한다. 왜냐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우리의 일상에 걸쳐있는 것들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어낼 때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조화로운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변혁운동이 될 것이다. 반다나 쉬바는 바로 그러한 생태주의 변혁이론가이자 활동가인 것이다.

반다나 쉬바 , 전 지구적으로 특히 제3세계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그녀와의 만남, 전세계적으로 제아무리 유명한 매체라도 10-15분의 인터뷰 시간만을 고집한다는 그녀의 원칙은 깨져 버렸다.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결하고 명쾌한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그녀가 설립한 생태공동체 대학(Bija Vidyapeeth)과 내년 3월에 개교를 하는 '녹색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였고, 지금 준비하는 매체 발간 즈음 민주노동당과 각 시민환경단체가 연합하여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반다나 쉬바의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생태적 사유가 어떻게 관통되는 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나의 질문에 대해 그녀의 간결하고도 명쾌한 응답, 어투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열정, 그녀를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직도 전율이 내 몸에 흐른다.  .  
  
그녀와 만난 사무실, 벽면 걸개에 쓰여진 시에 대해서 묻자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서 일어났던 생물 다양성 운동에 대한 것으로 자신의 '녹색혁명의 폭력`이라는 책에 실린 것이라고 하였다. (위의 시)                

다음은 반다나 쉬바와의 인터뷰 내용을 각 주제별로 정리해보았다.  

생태운동가로서 지금까지의 생애를 돌아보며
--- 선생님은 핵물리학을 전공하시다가 생태운동가가 되었는데 '과학`의 어떠한 문제점이 있어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요? 또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지요?

: 당신도 잘 알겠지만, 나는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잘 나가는 물리학 분야가 핵물리학임을 알고 핵물리학자 되기로 했지요.
그때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핵물리학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지요. 그러다 방학 때 의사인 언니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대해 얘기하다가 방사능위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핵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핵물리학자로서 그것을 통해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과 방사능이 생태시스템(인간, 식물, 지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지요.

대부분의 과학이 오로지 한쪽 눈만을 가지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어떤 것을 할 것인가에 대한 눈은 있지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눈은 없어요. 그래서 나는 핵물리학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론물리학자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물리학을 좋아했거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유명한 1970년대 초 여러 유형의 산림보호 운동 중 하나인 칩코운동(산림 보호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성들이 히말리아에 있는 나무들을 끌어안는 시위를 했지요.
그리고 1982년 환경부에서 나의 고향에서 나에게 광산 연구를 하라고 요청해왔는데, 이미 그 때 고향인 뱅갈 지역에서 광업에 대한 연구와 강단에 있던 내 상황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터였지요. 나는 광업에 대한 연구를 그만두고 대학강단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녹색운동을 지원하는 독립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학, 기술, 생태`라는 연구재단을 만들었어요. 1997년, 유전조작과 생명특허라는 매우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9개 씨( nine-seeds)를 의미하는 '나브다니아(Navdania)`라는 새로운 운동을 펼쳤어요. 이것은 씨들을 구하는 운동이었는데 유기농을 권장하고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곡물을 제공하는 운동이지요. WTO로 연구영역을 확장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요. 지난 30년 동안 나의 열정은 바로 농업과 생물의 다양성 운동,  '나브다니아` 에 바쳐왔지요.

히말리아 유기농장에서 재배된 유기농산물을 2-3일 이내에 델리로 가져옵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민들을 위해 직접거래 방식의 유기농작물 판매시장을 델리에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어요. 델리 하트(Delli Haat)이지요. 델리 하트는 아주 아름답고 유명한 시장이 되었어요.  5-6년 전에 '씨의 다양성과 어떻게 그 문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생물의 다양성이 어떻게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는가?` 관한 전시회를 했지요. 그 일은 델리 관광부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지속적인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나에게 요청했어요. 그래서 '델리 하트`는 우리의 농부들로부터 생산되는 유기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장소로 되었지요.
나는 핵물리학을 그만 둔 뒤로 퀀타(Quanta 양자)에 파묻혀 열심히 연구하는 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나는 쌀과 밀 더미에 앉아 있을 겁니다. 그것이 내 인생이지요.

대안문명, 대안과학과 기술에 대하여
--- 다른 사회를 건설하고 휴머니즘을 실현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무엇인지요?  
우리는 두 개의 문명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석유, 화석 연료에 기초한 문명으로 기후를 파괴하고 오염을 발생시키고 전쟁을 만들어내지요. 만약 미스터 부시(Mr. Bush)가 이라크의 석유를 앉아서 받을 수 있다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을 겁니다.
석유는 민중들과 지구에 반하는 폭력이지요. 지난 세기동안 모든 과학기술은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개발되어왔어요. 우리의 밭에서 사용한 비료가 그랬고 ,우리의 옷을 만드는 직물시스템이 그렇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도 그러하지요. 이것은 화석연료문명으로부터 나온 것이지요.
화석연료의 대안은 생물의 다양성입니다. 생물의 다양성은 19세기까지 인류를 유지하도록 할 수 있었지요. 인간이 필요한 것들은 모두 얻을 수가 있지요.
'나브다니아`는 단지 유기 농작물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브다니아`는 생물 다양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플라스틱이 필요없어요.  쥬트(jute-섬유의 일종)는 물건들을 포장하는데 최고의 물질입니다. 종이는 생태 자원에서 생산됩니다. 델리 하트에 있는 나브다니아 시장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종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염된 강을 가질 필요도 없고 무자비한 오염에 노출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거대한 직물을 제공해왔습니다. 자연은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에게 영리한 머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고 무지한 인간이고-그것은 원시적인 인간입니다. 생태적 기술을 훈련받지 않는 원시적인 인간입니다.

여성운동에 대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여성적 가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자본 권력과 지구와 여성을 억압하는 폭력이 함께 결합한 것이지요. 다른 사회를 만들어내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자연의 창조성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자연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면서 자연을 억압해왔습니다. 오염물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들의 역할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가지지 않았어요. 우리는 화학재료 없이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독성없는 옷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험이 없는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지요. 자연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아주 현명합니다. 비폭력과 여전히 비폭력적인 인간성을 기억에 남아 있는 여성들이 함께 할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성들 그들의 개인에게 남겨진 기억들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여성은 비폭력 진화라는 미래입니다.
우리는 자본과 대기업에게 의존하도록 강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폭력 진화에 대한 미래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우리의 지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 종류의 다양하게 진화된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여성입니다. 여러 종류의 곡물시스템처럼. 진정한 지성은 진정한 창조성에 있습니다. 생태적 위기에서 자연과 인류 사이의 균형만을 복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즉 여성의 진정한 정체성 그리고 남성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성안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고, 여성안에도 역시 두 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려는 남성들이 자기 자신의 인간 본성에서 여성성을 제거해 버렸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미스터 부시는 아주 사악한 인간입니다. 그는 비인간적인 사람이지요.  그는 이라크 뿐 아니라 미국 민중과 자기자신에게도 지독하게 나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성활당제나 지명제, 적극적 차별정책은 남성의 전리품에서 얻는 것으로 여성의 주변화는 계속된다고 하셨지요. 여성운동의 내부에서 '남성따라잡기`식 경쟁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흐름이 적지 않게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는?

생태주의는 변화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아요.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델을 추종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자본주의 속에 가두어 놓고 거기에만 주저앉은 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서 반드시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구가 생태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바라보고, 궁국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아닌 우리가 염원하는 사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운동가들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자본주의 틀 속에서 오히려 자본주의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그 틀을 없애버리는 것에 목적을 가져야만 합니다.

--- 여성운동가들에게 정말 충고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나는 대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또한 나는 정책을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매우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이런 저런 것을 할 수 있도록 소외된 중간계층의 여성을 위해 법을 만들 수 있어요. 여성들의 꿈과 대안, 전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것이 일부 여성들이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고, 대학에서 강의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상황 속에 있으려는 이유입니다. 즉 그런 여성들은 변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고정된 것도 중간적인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행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 여러분들의  참여, 여러분들의 말, 여러분들의 행동에 의해 판단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분야든 여러분들의 생각을 올곧게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여성운동가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가난이라는 것이 박탈과 몰수의 결과인 가난의 물질적 경험으로서의 가난과 생계유지 생활에 대한 문화적 개념의 가난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 박탈로서의 가난을 가장 철저히 실현하고 있는데...한국과 인도의 경제기반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산업노동자 중심이라면 인도는 농민중심의 농업경제입니다. 지난 4월에 한국 정부는 발전소를 민영화함으로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의 위기로 몰아넣으려는 데 맞서 긴 기간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세계화 정책하에서 치루어지는 고통은 인도, 제3세계의 농민들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노동자들,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을 벌인 그것이 중앙집권적이고 반생태적인 발전에너지 산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노동자 파업에 방관하였습니다.이러한 괴리는 어디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해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고용과 생태주의 사이에 모순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생태적인 모든 것은 고용을 창출합니다. 생태주의는 자연을 보존합니다. 그리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은 고용을 만들어내기에 노동자들은 자원보존에 모두 나서야 합니다. 단기적인 성장은 환경을 파괴하고 일자리를 빼앗아갑니다. 모든 문화를 보세요. 산업생산에 있어서 환경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일자리를 파괴하는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요?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거나 ,사람들을 자원들로 대체되어 사용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더 많은 가난을 만들어왔고 지구를 파괴해왔어요.

짧은 기간동안, 자본주의는 가난을 만들어내지 않은 것처럼 은밀하고 교묘한 제도를 만들어서 가난을 조장하고 왜곡하는 상황을 만들어 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공장으로 몰아내고 더 많은 임금을 받도록 경쟁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가난하게 된 것이지요.

노동자들은 의도적으로 희생당하고 그 희생된 보상을 받는 거예요. 전력생산 공장으로 던져진 노동자들은 민영화라는 제도에 던져짐으로서 계속 희생만을 요구받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야말로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본성, 진정한 가난이라는 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가 직면한 상황과 교육이라는 인식의 페러다임의 전환을 위하여

---- 인도는 문맹률이 높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민중들은 여전히 생존 그 자체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불가촉민들은 교육자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는데...이러한 정치경제사회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문맹타파의 교육운동이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100% 비문맹률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근거자료도 있어요. 모든 마을에는 그 마을에 맞는 교육시스템이 있었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영국인들이 이러한 교육시스템을 해체시키고 자신들의 교육시스템을 강제로 이식시키기 시작했어요. 인도인들을 영국 식민주의에 부합되는 일꾼으로 만들기 위하여 식민지 교육을 받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문맹 상태로 나누도록 하는 이원화된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것이 문맹률이 높은 한 이유가 되었지요.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지요. 일반적으로 교육에 대하여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 인디언식(인도다운 것)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주 좋은 토론이 있었지요.
인디언식 교육이 무엇인가? 땅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디언식 눈을 가지도록 어떻게 교육을 행할 것인가? 내 관점 속에서의 인디언식 교육은 바로 '생태화`라는 것입니다.
히말리아에 대해서는 히말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속에 있는 사람만이 그 환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모두 무시하고 정치적인 기회를 얻기 위하여 종교 근본주의라는 이슈로 이것을 돌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왜곡된 교육제도를 더더욱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맹이라는 것이 지난 수세기동안 만들어져왔을 지도 모르지만 지식이라는 것은 완전히 배타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주도했던 칩코운동, 그들은 비록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생태주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태주의에 대해 그때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오늘날 생물다양성에 대한 모든 작업을 서류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품제조회사에서 사용하는 지식은 대학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시골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의 지식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나는 읽고 쓰는 것과 지식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지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진 지식은 더욱 좋지요. 지식이 없는 읽고 쓰는 정도의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단순히 문맹률을 없애기 위한 읽기 쓰기 교육이 아닌 참다운 지식이 있는 인디언식 교육 그것이 중요한 관건이지요.

국제연대를 위하여
---- 한국의 진보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민주노동당 당원들, 그리고 제 시민환경단체 활동가들녹색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등 한국의 민중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의 도전을 똑같은 얼굴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수년 전에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을 보아라! 얼마나 발달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 지."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금융위기, 민영화, 실업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국민중들이 매일 거리로 시위에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인도는 똑같은 이슈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자원을 보호하고 고용을 창출할 것인가.`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다같이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기술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민중들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경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중들은 결코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고통받는 민중들이여 우리 함께 힘을 모아 싸우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만들어나갑시다.  


  
*녹색대학은 반다나 쉬바가 설립한 Bija Vidyapeeth(비야 비데피스, 지속적인 삶을 위한 국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이 대학의 설립 취지문과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탐욕과 경쟁, 속도와 무휴, 오염과 생태적 파괴, 전쟁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본 대학은 지속성과 다양성의 원리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예술과 과학을 탐구하고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본 대학은 평화롭고 오염이 안된 둔 벨리(Doon Velley)에 있는 나브다니아(Navdaya)에 유기농 농장이 위치해 있는 곳에 있습니다.

본 대학은 우리 시대에 선구적인 지성인들과 상호교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속가능성이라는 한 이념으로의 통찰력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하는 생명력있는 삶, 명상, 조사 그리고 역동적인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본 대학에서 공동체 생활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지속성에 대한 훈련과 공동체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배웁니다. 참가자들은 요리, 정원가꾸기, 요가, 조립, 작곡, 음악과 영화 제작을 배우게 됩니다. 가능한 현장여행을 통해 공동체간의 상호교류도 추진할 예정입니다.

주요 교과 과정으로는 비즈니스 윤리와 지속가능성, 비폭력 문화 창조-간디와 세계화, 생물 다양성과 생태기술 그리고 생물해적질, 살아있는 물, 공평한 부-지속성과 정의를 위한 부에 대한 재규정, 식량 등이 있다.

-반다나 쉬바의 약력-
*반다나 쉬바는 1952년 인도출생으로 핵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을 공부했으며 생태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 활동가이다. 그녀는 인도 과학,기술,과학 생태연구재단을 설립하고 제3세계 생태운동과 여성운동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올해 지속적인 삶을 위한 국제생태공동체 대학인 Bija Vidyapeeth를 설립했다. 그녀는 세계화의 물결이 지적재산권을 앞세워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서 제3세계 민중들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하고, 반세계화운동과 대안사회운동에 왕성한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살아남기>(staying alive-솔출판,1998), <에코페미니즘>(마리아 미즈 공저, 창비 2000),<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biopiracy-당대,2000)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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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워크샵

  • 등록일
    2005/03/12 12:40
  • 수정일
    2005/03/12 12:40
피자매연대, 투쟁과 밥 친구들이 지난 일요일(16일)에 풍동에서 아주 특별한 워크샵을 열었다. 이주노동자 농성단에서 해외 네트워크에 기사를 보내는 일을 맡고 있는 독일인 친구과 캐나다인 친구와 함께 백석역에서 내려 약 10분정도 택시를 타고 어느 벌판 입구에 내렸다. 이미 다른 지역은 새 아파트로 들어차 있었고, 그 곳만 마치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뻥 뚤린 폐허였다. 경찰이 입구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바람에 약 5분간 다소 쓸데없는 실갱이가 벌어졌고, '백인 외국인'을 의식해서인지 결국엔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경찰을 만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사방에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넓은 벌판에 사방이 길이다. 우리가 만들면 길이다...)

풍동은 철거현장은 여기저기 흙과 깨어진 벽돌, 쓰레기, 가재도구들, 흙에 범벅이 된 인형, 부서진 가구들이 즐비한 것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건물 몇 채만 남기고 집들이 다 부셔져 있었는데, 그 남은 몇 채 마저도 이미 창문가 문이 다 뜯기고 골격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멀쩡한 집이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가고 있는 풍동 철대위 골리앗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들은 얘기로, 용역들이 기거하며 침탈준비를 할 때 사용한 집이다.





(폐허 속의 산타)



(또 산타)



(또 산타)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한 고요함과 폐허, 그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함께 간 친구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위에서 누구냐고 묻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이 옥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말로만 듣던 아나키스트 블랙블록이 아닌가! 잠깐 의심하던 사이, 육중하게 잠겨있는 문이 열렸다. 골리앗은 약 6개월 전 철거가 시작되자마자 11가구의 철대위 주민들이 4층짜리 빌라를 점거해서 그 위에 망루를 쌓아올린 일종의 저항의 "요새"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안은 매우 컴컴했다. 계속된 침탈 때문에 건물내에 있는 창문이란 모든 창문은 두꺼운 판자로 꽉꽉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빛도 없고 전기도 끊긴 어둠 속에 고립되어 이들은 무엇을 희망삼아 이토록 오랫동안 투쟁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주민들은 주택공사가 던져주는, 방한칸 전세값도 안되는 700만원을 들고 풍동을 떠난지 오래인데...

방에 들어서자 철대위 위원장님이 약간은 어색해 하며 우리를 반긴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침탈 이후에 MBC니 오마이뉴스니 하는 매체들에서 인터뷰들이 나오니 조금은 얼떨떨한 모습인 듯.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여성분들 중 반 이상이 60이 넘는 노인분들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방 안 곳곳에 매직으로 쓴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여느 캠페인이나 행사, 시위 등에서 흔히 보는 세련되고 매끈하게 인쇄된 플랭카드니 포스터들과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아주머니들 다섯 분과 함께 워크샵을 시작했다. 먼저 대안달거리대의 취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견본을 몇 개 보여주었더니, 덧버선 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새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한분은 철대위 남자분들과 함께 공동생활 하고 있기 때문에 달거리대를 빨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챙피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빨자... 운운했을 터인데, 이 날만큼은 나중에 농성 끝난 다음에 사용하시라는 완곡한 어법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들의 바느질 솜씨는 역시나 대단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평소 2시간이 걸리던 워크샵이 1시간 남짓 마무리가 되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아주머니 한 분이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 농담조로 생리도 안하는 분이 무엇 하러 배우시냐고 핀잔을 주니, 나중에 손녀에게 가르쳐 주신다며, 대학 디자인과를 진학한 외손녀가 솜씨가 좋다는 자랑을 한참 늘어놓으신다. 눈이 침침하신 할머니가 바늘에 실을 못 꿰고 있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자신만의 특허라며 바늘 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아주머니 이마는 지난번 침탈 때 용역깡패가 쏜 쇠구슬에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빨갛게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침탈 때 구슬을 맞고 피 흘리는 아주머니)



(여기저기 길에 널부러져 있는 구슬들을 모아놓은 사진. 아이들의 구슬이 깡패들의 손으로 들어가 사람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워크샵이 끝나고 몇몇 함께 간 친구들이 맛있게 부친 야채 부침개를 먹고 나서 건물을 나왔다. 다른 투밥 친구들이 페인트를 가져다가 불에 그을린 건물들 벽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글씨와 그림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와 죽음과 폐허의 장소라고 느꼈던 풍동의 벌판은 왁자지껄한 생명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경찰을 만날 때부터 답답했던 마음이 다소나마 환하게 뚫리는 듯 했다.  











지금 풍동은 한참 풍동 문화제 준비로 들떠 있다. 주공과 정부가 풍동에게 안겨준 것은 이윤추구를 위한 이런 저런 방식의 죽음과 파괴이다. 그래서 우리의 저항은 자연스레 이런 저런 방식의 삶과 이런 저런 다른 방식의 연대와 축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돌아가신 일본의 아나키스트 무까이 꼬오의 말을 되새겨 본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승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지고 또 져도 지지않을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늘 동일한 식으로 지는 게 아니라 방법을 그때 그때 바꿀 것, 다시 말해서 지는 방법을 바꿀 것, 체념하지 않고 바꾼 방법으로 계속 대처할 수밖에 없다. 잠이 들려고 할 때 귀찮은 파리나 모기 같은 것, 방법을 차례 차례로 조금씩 바꾸는, 와글와글 떠드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재미거리로 즐기는 것이다.”



철거민연대투쟁위원회(준) http://sangdo2.cyworld.com

풍동 지지모임 홈페이지: http://nobreak.gg.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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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병! -웰빙과 소비병과 피자매연대에 대해서

  • 등록일
    2005/03/12 12:39
  • 수정일
    2005/03/12 12:39
피자매연대(http://bloodsisters.gg.gg)의 느림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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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보니, 20대 여성들이 카드빚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어간다고 나온다.
대학생들의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고 있지만, 그들의 소비습관까지 바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할 때면 고민을 하든, 하지 않든 카드를 긁는다.
가슴에 아무리 번민이 가득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이것이다.
소비를 피하지는 않는다는 것. 어느새 소비 그 자체가 우리들 삶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반 자본주의 어쩌고 하면서 제아무리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를 욕하면서, 청렴결백을 떠는 듯해도,
나 자신조차 이 소비습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사야만, 그것이 가치있는 재화로 내게 다가오고, 또 나는 돈을 지불하는
그 관계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슬슬 옥죄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 역시, 인사동 등지에 가면 잠잠했던 소비병이 도진다. 우습게도,
가장 기품있고 우아해보이고, 삶의 질과 연관되는 이른바 웰빙의 골목에서
나는 엄청나게 소비를 조장받는다. 이것도 사고싶고, 저것도 사고 싶고.
저 예쁜 한지 편지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평소에 생각나지 않던 사람도  떠오를 정도이니까.
나는 나의 욕망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르고 한지가게에 들어갔다.
창호지 두 장을 2천원 주고 둘둘 말아 손에 드니, 왠지 아직도 손이 비어있는 느낌이다.
거리를 배회하며, 각종 귀걸이, 목걸이, 반지, 인도 옷들, 희안한 장신구들을 바라본다. 원래 인사동 그런 곳 아니었냐고?

인사동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난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이 골목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 때, 인사동 골목의 80%는 화랑이었다.
화랑은 언제나 공짜로 들어가 걸려있는 그림을 구경하고 나오면 되는 그런 공간이었고,
나에게는 신기하고 고마운 곳이었다. 지금은 찻집인지 밥집인지 술집인지 하는 곳으로 변한 건물에, 예전에는 ‘그림마당 민’이라는 화랑도 있었고, 지금 단성갤러리만 살아남은 그 주변도 온통 조그만한 화랑들이어서, 들어가서 쓱 한번 보면 그집 그림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뻘쭘함을 무릅쓰며 그런 곳에 들어가는 일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돈이 좀 되면, 화랑을 나오면서 팜플렛 하나 천원 주고 사서 집에 들고오는 마음이 행복했었다.
그런 행위들은 소비가 줄 수 없는 어떤 뿌듯함을 나에게 주었고,
나는 조금은 엄숙하기도 한 그러한 의식을 치르면서 성장해왔다.
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서른 군데가 조금 넘는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었고,
골목 골목에도 작은 화랑들로 아기자기했다. 내 기억에 90년대 중반 이후,
급작스럽게 ‘오, 자네왔는가!’ 따위의 인위적이기 그지없는 전통업소들이 들어왔고,
스타벅스가 들어왔을 땐, 인사동이 변해간다는 것에 대한 회의도 흐지부지해졌던 것 같다.
요즘엔 인사동에 한지를 사러 가거나, 구경거리가 없나 둘러보긴 하지만,
그림을 보러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한 2년동안, 중심가에 있는 단성에도 한 번 안들어간 것 같으니까.

  이제 인사동은 웰빙족들의 호사스런 소비공간이 되었고,
그 부유한 자들의 틈에는 나같은 가난뱅이들의 허영심을 채워줄 싸구려 물건들도
곳곳에 진열되어있고, 몇 천원짜리 쪼만한 장식들이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좋은 그림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래도 인사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만.

  우리 시대에, 웰빙이란, 건강식품, 다이어트상품, 유기농채소와 면생리대로 대표된다.
공통점은, 정신의 풍요를 강조하면서 하나같이 비싸다는 것인데, 원래 몸에 좋은 것은 비싸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 우리시대의 웰빙이다. 우리 시대의 웰빙상품 소비는,
그 물건들이 왜 비싼지, 생산과정이 어떠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지도 별로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몸과 영혼과 행복은 서로 분리되어있고, 이 모두를 소비를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먹어왔던 것, 입어왔던 것, 생활 속에서 노동을 통해 얻고 누리며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것이,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비싸고 몸에 좋은 것으로 둔갑을 하는 것을 보면
소비병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소비병에 걸린 사람들은 아직도 풍요(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차원에서)가 노동과 생산과
생활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모른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자신의 몸에서 소비의 병을 치유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인데,
몸을 쓰지 않고, 무조건 간단하고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고 가련할 따름이다.
몸을 쓰긴 쓰되, 몸짱이 되기 위해서 헬쓰클럽에 나가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가 우리의 육체를 관리하고 감독하고 다스리는 힘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영혼과 대화를 하긴 하되, 요가 비디오 빌려서 따라하고 곧 잊어버리는 기억 상실증에
또 한번 그 위력을 깨닫는다.
일러주지 않으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정신구조 또한 참 아슬아슬하다.
모두가 병들고 모두가 치유하고 싶어하지만, 모두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편리하고 쉽게만 하려 한다.
홈쇼핑도 생기고 인터넷 쇼핑몰도 마구마구 생기니, 돈만 있으면,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유기농 채소를 기르려고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생리대를 만들어서 쓰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웰빙은 무슨. 자신의 병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계속 구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토마토와 고추, 쑥갓 등 묘목을 심어놓고 보는데, 날마다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그 초록 잎사귀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고요하고도 활기차다.
뒷산에서 흙을 퍼오고, 화분을 정리하고, 옥상에 낑낑대며 화분을 날라놓고, 날마다 계단을 올라
그네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잎사귀를 만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날씨를 예감하는 일은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소비의 병이 이렇게 고쳐지는 것임을 안다.
나는 요즘 물도 적게 쓰기 위해 오줌을 눌 때는 좌변기에 앉지 않는다.
물론 밖에 나가면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는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시원하게 일을 보고
한 바가지 물로 씻어낸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좌변기에 앉기도 했는데, 점점 바지 내리고
엉덩이를 깐 상태에서 다시 화장실 바닥으로 엉금엉금 걸어와 소변을 보는 일이 잦아졌고
이젠 조금씩 정착이 되가는 추세이다. 그러자, 습관적으로 휴지로 밑을 닦았던 것도 한 두 번씩
물로 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찬물로 씻는 것은 두렵고도 생경해서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최근, 피자매연대 사람들이 휴지 쓰지 말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자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은 휴지들을 쓰는 지 알게 되었다. 아직도 휴지를 들고 다니지만,
곧 가제 손수건을 들고 다닐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손수건 빠는 재미도 느낄 것이고,
손수건 빨아 너는 재미도 느낄 것이고, 손수건 마르기를 확인하면서 아직 눅눅한 손수건을
만지작 거리며 명상도 할 것이다. 진짜 좋은 삶(well-being)이란 무릇 이런 것이리라.

요즘 피자매 달거리대가 확 뜨긴 떴는지,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웰빙 쇼핑몰에서 같이
하자고도 연락오고 아주 난리인데, 좋은 현상이면서도 조만간에 판매가 확 줄었으면 싶은 마음도 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어온 사람들이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것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면생리대 만들기 워크샾을 여러 번 해나가면서, 매번 놀라운 체험하게된다.
처음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나와같이 소비의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참 씁쓸하기도 한데, 더 무서운 것은 나이가 어릴 수록 그 증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달거리대를 전시해놓으면, 일단 와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확인하고 바로 하는 말이
“와, 예쁘다. 근데 얼마에요?”인데, 왜 좋은지, 왜 써야하는지,
어떻게 만드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든 별로 없다.
우리가 막 설명을 하면, 나이드신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시고,
아주머니들은 쑥스럽게 웃으시면서 꼬치꼬치 물으시고,
젊은이들은 관심있게 살펴보고, 잘 들으며,
십대 중에서도 중고딩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또래 애들과 수다떨기에 정신이 없으며,
초딩쯤 되는 애들은 그저 살지 말지를 고민한다. 참나, 이래서야 되겠느냐 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바느질을 시작하면 그토록 고요하고도 활기차게 변한다는 것은
보지 않으면 믿기도 어렵다. 그들은 집중을 해서 바느질을 하고,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잘 떠들고 논다.
손이 천을 만지는 감촉에도 몰입하고, 바늘의 단단하고도 부드러움에 몰입하고,
길다란 실과 좁은 구멍과 나풀거리는 먼지들까지 몰입을 하고,
그들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머리카락도 그 순간 고요하다.
난 이런 순간에 어떤 기운들을 느끼는데, 그래서 나도 가만 있지 못하고 결국엔 바느질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나는 또 한 번 놀라는데,
모두들 훨씬 예뻐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얼굴에선 빛이 오르고, 어떤 사람들의 얼굴에선
쫒기는 사람의 뭔가 흐트러진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곳에서 각자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자본주의의 두꺼운 가면이 금가고 녹아드는 모습을 본다.
소비병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그래서 밝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아무리 피곤하고
목이 쉬어도, 워크샾을 하고 나면 기분이 아주 상쾌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최근, 면생리대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들이 막 생기고 있다.
뭐, 자신들은 좋은 일을 한다고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웰빙에, 좋은 물건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고 현실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 업체들도 필요하긴 할 것이다.
아직 이 땅에는 소비병에 물든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당신들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 대량생산을 좀 맡겨주시오.’하는 부탁 아닌 부탁은 좀 안해줬으면 싶다.
피자매연대가 나날이 발전하고, 여기 저기 알게 모르게 워크샾이 퍼져나가면서 달거리대 작업팀도 늘고, 튼실해져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좀 잘 알아줬으면 한다.
대량생산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사람들에게
클릭 한 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직접 만들면서 명상도 하고, 삶의 여유도 느끼고,
소비의 병을 치유하고, 조금씩 소량생산, 자급자족의 패러다임을 확산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수고로움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피자매연대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즐겁게 느끼고,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피자매연대에서도 아직 만들기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면생리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에서 판매를 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천막농성단을 지원하기 위한 행동에 돈이 필요하고,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도, 풍동 철거민들의 투쟁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도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일회용 안쓰기로 가길 바라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길로 가길 바라고 결국에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소비는 줄 수 없는 수고로움의 행복을 체득하기를 바라며,
결국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시스템을 부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피자매연대 활동은 여성의 생리라는 작은 영역(물론 아주 작은 영역이라고 보기도 힘들지만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진실되고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피자매연대가 ‘피자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자매연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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