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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사람의 이름을 찾아 묻는 한 해가 되려고요.

 

이렇게 슬쩍 관리 들어감.. ^^

 

 



 

 나무와 사람의 이름을 찾아 묻는 한 해가 되려고요.


 작년 봄. 활동가 명함을 처음 들고 나선 뒤, 꽤나 많은 사람한테 뭐가 제일 힘드냐는 질문을 꽤나 받았습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쉽게 쉽게 이야기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제일’ 이라는 말에 제법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제 막 7개월이 넘어선 초짜활동가에게 ‘활동’ 과 ‘삶’ 이라는 만만치 않은 사연중 하나를 골라보라는 일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입니다.

바삐 가는 사람들, 행복에 겨운 연인들, 제 자식 손잡고 갈 길 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세상이 좀 더 착하게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일 말이죠. 여러 가지 사안, 여러 가지 행사에서 익숙해질 만도 하겠지만, 쾡-하거나 때로는 차가운 그들의 눈을 볼 때마다 그 거리에서 미아가 되곤 합니다. 등이라도 돌려 가버리면 괜찮을 것을 외계인 보듯 한참을 눈 맞추고 있게 될라치면 지구상에 그 사람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활동가들끼리 모이면 가끔 하는 푸념 하나가 있습니다.

 “대중을 믿냐..”

한 선배 활동가는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믿는다.”


 실제로 여론이 움직이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론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고 갖은 노력 끝에 알려내더라도, ‘다 알겠는데.. 꼴사납고 혐오스럽게 시리.. 꼭 저런 방법으로 해야 하느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활동가들이 긴급하게 대중 행사를 기획하고 치러내는데 비해 그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지요. 돌아와 평가하는 자리에선 조그맣게 ‘찻잔 속 태풍’ 이라고 모르게 낙서했다가 지우곤 합니다. 지워 놓고 나선 이내 ‘그러니까 힘든 일.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 이라고 고쳐 적으며 다시 힘을 내는 게 활동가의 일상입니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친척이나 오랜 친구를 만나면 사는 이야기를 물을 여유도 없이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호소할 때 경찰병력은 방음벽이 되고, 교통체증으로 얼룩진 헤프닝이 되고, 결국 인터넷 기사의 덧글에 잔인하게 밟혀 잊혀지는 현실이 서글프지 않느냐고. 폼 나게 PD수첩이나 무슨 스페셜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고시패스하기보다 어렵고, 세련된 글을 써서 출판하기는 별을 따는 것만큼 불가능하니 모여 외치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이죠.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건 책임을 져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억눌린 사람들의 삶을 담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던지는 그들이라도 긴 얘기 끝에는 어깨를 맞대고 술잔을 쳐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조급한 마음에 지쳤다고 광고하냐며 한마디 하는 것 같아서 머쓱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큰 무기를 얻고 온 것처럼 으쓱하기도 한답니다.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이름을 모르면 나무는 나무일 뿐입니다. 나무가 나무이면 나는 나가 되고, 너는 너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 습관적으로 길가에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을 묻고 기억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좀 더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에는 게을렀다는 반성을 하곤 합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11살 헬렌 헌트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일’ 이라는 학교 숙제에, “내 옆에 3명에게 도움을 주면 된다” 고 했던 말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 3명이 각 3명에게 감동을 주면 9명이 되고, 27명이 되고, 81명이 감동하게 되는 거라고 말이죠. 결국 주인공 헌트가 만난 3명에서 시작된 보이지 않은 릴레이는 결국 주인공의 가까운 누군가에게로 이어져 그 아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새로 뜨는 해만큼이나 조용히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하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착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지치지 않고 더 많은 나무 이름 을 기억하고,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저나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받으시는 여러분에게도 가장 가까운 것에서 감동받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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