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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결코 같지 않으리! (1)

내일까지 써야 하는 글의 첫번째 단락...ㅜㅜ

 

 

다중의 전위적 기획인가? 국민의 공화주의적 기획인가?

지난 주 종교인들의 ‘감동적인’ 동참, 그리고 이어지는 7월 5일의 대규모 ‘평화집회’는 두 가지의 서로 모순된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부의 끈질긴 버티기 혹은 공안탄압에 의해 지쳐가고 있던 촛불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다중의 전위적 활력과 차이의 생산을 거세하는 ‘국민화’ 기획의 완성이기도 했다.


물론 이 기획은 지난주에 갑작스럽게 탄생한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두 가지 기획 - 다중의 전위적 기획과 국민의 공화주의적 기획(이하 전위적 기획과 국민화 기획) - 은 삶정치를 매개로 지속적으로 부딪히면서 공존해왔다. 5월 2일의 청소년들의 봉기, 24일의 대책위 주도의 집회로부터의 이탈과 거리행진, 갖가지 구호로 무장한 대중의 다종다양한 ‘자기 표현’으로서의 가두시위의 모습, 막으면 돌아가는 떼 지성의 흐름, 지도에 대한 끊임없는 거부 등이 전자의 한 예라면, 대형무대의 설치, 구호의 단일화, 방송차의 행진 지도, 각종 ‘국민 대토론회’, 시위대를 호명하는 ‘국민’ 호칭, 조금씩 시도되는 것으로 보이는 정부와의 협상, 국회등원요구 등은 후자의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기획의 수행자는 결코 분명하게 나뉘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때로는 전위적 기획을 수행하고, 다른 때는 국민화 기획을 수행하기도 한다. 또 동시에 두 가지 기획이 함께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두 기획은 명시적이고 언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근본에서 작동하는, 말하자면 ‘힘(혹은 욕망)의 흐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화 기획의 완성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촛불봉기 내에서 ‘국민화’의 기획을 이끌어 온 “국민대책위”가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이 그 기획을 완성시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만큼 촛불봉기에서 ‘국민화’의 기획이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라는 초월적 수준에서가 아니면 도저히 ‘국민’으로의 통합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6월 10일의 대규모 행진으로 본격화된 이러한 국민화 기획은 정부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촛불봉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부는 대규모의 촛불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자마자 전열을 가다듬고 농성전과 공안탄압에 나섰다. 그것은 여러 방향으로 흐르던 힘이, 그래서 어디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힘이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6월 10일에 크게 한 번 터져나온 외침 이후로도 대형 집회는 이어졌지만 상황을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지리한 반복일 뿐이었다. “대형집회하면 명박산성 쌓으면 되고, 촛불의 ‘숫자’가 줄어들면 공안탄압하면 되고~♪” 경찰 측의 오바스런 폭력행위가 종교인들을 끌어내긴 했지만 그것이 전반적인 흐름을 역전시키진 못했다. 촛불봉기는 이제 국가에 대항하는 저항적 ‘국민운동’으로 단일화되었다. 젠장!(요건 본 글에선 뺄 말.ㅋㅋ)

 

 

coming soon..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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