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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23
    추억이란...(1)
    라울-1
  2. 2005/09/11
    [펌] 왜죠??
    라울-1
  3. 2004/11/07
    부시가 당선된 이유..
    라울-1
  4. 2004/10/02
    이치로도 해냈다.
    라울-1
  5. 2004/09/24
    달려라! 이치로~
    라울-1
  6. 2004/08/16
    [펌]이치로, 오늘도 안타! 안타!
    라울-1
  7. 2004/07/29
    '킹' 델가도의 고독한 싸움
    라울-1

추억이란...

오랜만에 학교다닐때 다녔던 동아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일본에 있던 한 선배가 나의 결혼을 앞두고 남긴 글을 보았다. 추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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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식이 너 마저도???!

   


드뎌 태준식이도 교론를 하는구나... 쉬바 상큼한 우리의 청춘도 어느샌가 다 가고 노총각 소릴 들어가는 나이에 짝을 찾아 가는군. 따지고 보면 졸라 길었던 청춘이고 상큼함과는 담쌓고 살았지만.

 

오늘은 태준식과의 만남에 대해 썰을 풀어볼까. (준식이형이 이 게시판에 들르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예정대로 팔자좋은 방위로 끌려가서 예상도 못했던 뺑이를 치던 와중에, 바닥을 기던 햇살은 일대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니... 성호형과 정훈이형을 투톱으로 내세우고 아무 생각없는 익구가 리베로를 맡아 햇살의 중흥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던 축구협회와 서포터들은 몰지각한 일군의 마이너리티가 주사파라고 경멸하던 무리들이였나니... 그리고 역시 별 생각없던 나는 군생활 초기의 정신없던 시기에 그 마이너리티에 물들고 말았다. 당근 우리 집 햇살에의 출입은 점점 더 고역스러운 방문이 되었다. 남의 집 애들이 죽치고 있는 곳에 주인인 내가 눈치밥을 먹어야 하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닌가. (물론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사람 공부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퇴근한 방위가 갈 곳이 어디있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 햇살로 나와서 삐대곤 했다.
제대를 앞둔 여름이니 91년 여름방학이였을 거다. 햇살에선 영화핵교란걸 한다고 수선이고, 그 틈에 어영부영 성환이형이나 준식이형, 그리고 장우영(얜 지금 뭐한다냐?) 등이 햇살에 들어왔다.

 

"잠깐 토막상식"-- 조선 후기에 신분제의 몰락과 상업의 발전으로 평민 등이 족보를 사거나 위조해서 대거 양반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가문을 중시하는 명문가에서는 이 수상한 일족들을 '별보'라 해서 본래 족보와는 따로 기록해서 관리를 했는데... 신분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조선이 멸망하면서 본래 족보와 별보는 섞여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조선 초기엔 인구 3%에 지나지 않았던 양반이 오늘날 한국사람 90%의 조상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의 고향~~; 결론. 우리의 태준식이는 햇살 별보 출신이다. 그리고 공고 출신이다.^^;

 

좌우간 그 여름에 햇살이고 찾아오니 늘 그렇듯이 낯선 얼굴이 제 집처럼 햇살에 앉아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영화랑도 안어울리고 '학습'과도 거리가 먼 그 투박한 외양을 보고서 '이 넘, 또 축협에서 나온 단무지로군.'하고 졸라 티꺼운 인상을 받았다. 화양리 삐끼들의 오야붕 정도 되는 세숫대야인 주제에 여드름 자국이 수두룩하던 그 티껍던 넘이 우리의 태준식이다. 그 티꺼운 인상을 기초로 '이 넘들에겐 말을 놓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고, 지금도 '넘을 형'이라고 부르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아직도 존대말을 쓰는 햇살 후배들은 기본적으로 '별보출신'들이다.(흥미로운 언어적 혼란의 사례가 아닌가?)

 

첫인상과는 다르게 성실하게(또한 단순하게) 햇살 일에 열심이고, 나름대로 재롱부리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그 푸짐한 살집이, 머리를 빡빡 깎며 엽기노선을 추구하다 군대로 끌려간 익구의 '대체재'로서 충분했기에 모든걸 용서하기로 했다. 나도 곧 소집해제를 명 받아 완존 백수가 되어서 시간이 남아돌기에 자주 만나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졌다. 언제부터 이 넘과 맘이 통하게 됐는지 기억은 안나지만(그러니깐 별다른 계기는 없다) 좌우간 당시에 다른 어떤 넘들보다 태준식이랑 맘이 제일 맞았고, 제일 많은 시간과 정력(?)과 돈(!)을 때려박았다. 그러니깐 결혼하더라도 그 살의 절반은 내 소유이다~ (참고로 지금 내 위장병은 내 밥도 못먹고 이 넘들 밥과 술을 공양하는라 얻은 병이다. 말그대로 살신성인이다)

 

반드시 그 때문은 아니지만 넘은 축구협회랑은 거리가 멀었고, 굳이 족보를 따지면 나 같은 마이너리티랑 공통점이 많았고, 그걸 핑게삼아 졸라 많은 고민과 사소한 음모의 공범자가 됐다. 총선이나 대선 때 밤을 새워가며 벌였던 '그들만의 리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군.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를 비지엠으로 쓴 총선 홍보 비디오를 학생회관에서 틀었는데(나래이션을 준식이 목소리로 깔았으니 말 다했지), 완성도도 형편없고 축구협회얘들 보기도 그렇고, 좌우간 서로 얼굴 보기도 민망해 하면서 숨어서 지켜보는데 (게다가 웬 단무지가 때려엎기라도 하면 안되잖아~) 건대부고 고삐리들만 모여들는걸 보니 웬지 허탈하면서도 안심이 되더군. 그래도 생각해 보니 이게 넘의 첫 다큐멘타리(풍) 작품이 되는 셈인가?

 

그렇다고 늘 죽이 맞았던 건 아니다. 가장 크게는 내가 정치에 아주 약간의 무게 중심을 두었던데 비해서, 넘은 상당히 영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있었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였고, 당시에 유행하던 정치주의자 vs 영화지상주의자의 대립은 아니였다. (준식이형은 기억하고 있쑤? 둘이서 어느 '스탈린주의적 정치주의자'를 낄낄거리며 씹던 일을?)
성향 때문에 나는 요새 말로 잡화섹트들을 기웃거리다가 결국 학교를 나가서 무슨집단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영화 혹은 햇살에 목숨걸고 있던 넘은 그런 나를 졸라 섭섭해했다. 정말이지, 마누라 두고 집나가는 서방 보는듯한 눈으로 흘겨봤다...
그 무슨집단에서 삽질하면서 당시 닥쳐온 대선에 징발되어 나갔는데, 거기는 나같은 행정병은 필요없고 당장 나가서 총 쏠 수 있는 보병이 필요했다. 조직을 위해 목숨은 못바칠 망정 눈물을 머금고(사실은 대의를 위해 사소한~ 의리를 팽개치고) 총알받이로 준식이형을 소개시켰는데, 대선 끝나고 보니깐 넘은 나보다 더 정치적인 노뉴단에 입적을 했더군. 한마디로 바람나서 집나갔다 돌아오니 마누라 배가 불러있더라는 이야그.(참고로 넘도 방위출신이다. 바로 우리 옆 당나라 부대 조교 출신이다)

 

오히려 같은 처지에 있게됐으니 어느때 보다 할 말도 많고 할 일도 많았을듯 한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내 멋대로 판단하자면, 비록 내가 '집단'에 속했지만 어느정도 상대적인 객관성을 유지했던 반면에 넘은 노뉴단의 입장에 기울어서 '집단'은 물론 나까지 재단하려들었다. 넘은 그런 외곬수 성향이 있고 지금도 여전한 듯 하더군. 그래서 이번엔 내가 섭했다...
서로가 그렇게 바쁘고 거리가 생기고, 게다가 나는 지금도 정리가 안되는 심각한 상황에 빠진채 '판'을 정리하고 4년 전에 일본에 와서 지금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넘이랑 동거동락하던 시절은 그리 길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가장 치열하고 힘겹고 한편으론 '아름다운 청년'이던 시절에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벌써 5,6년 가까이 예전에 그랬듯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번 제대로 못했지만(전에도 나만 졸라 떠들고 넘은 건성인채 밥이나 술을 우적우적 홀짝홀짝 먹어댔다), 여전히 넘이 그립다.
학교시절부터 그다지 개인적인 얘기는 못하고 살았는데, 막상 결혼한다니 언뜻언뜻 들었던 연애사건들의 후일담이 새삼 궁금하기도 하고. (흐흐흐, 결혼에 초를 칠까부다)
넘의 소중한 결혼식에도 못가보고, 그보다도 넘과 나의 인생행로가 예전처럼 가깝게 겹쳐질 일 또한 없겠지만, 내 청춘의 가장 중요한 공범자로서 넘에 대한 기억은 잊혀질리 없을 것이다. 멀리서 나마 진심으로 축하하고, 언제나 격려하고 성원하면서 변함없는 애정(음... 결혼한다니깐 우정으로 표현을 바꾸지, 뭐)을 보낸다.

 

아~ 넘 뿐만 아니라 다들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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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왜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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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당선된 이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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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도 해냈다.

 

나도 해낸다~ 멋진 이치로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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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이치로~

 


 

오늘 9월 24일 현재. 10게임 남았는데 11개만 치면 84년만의 기록이 깨집니다.

달려라!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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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이치로, 오늘도 안타! 안타!

                                     

 

난 참.. 왜 이렇게 동시대성이 떨어지는지.. 올림픽이라 난리쳐도 난 야구가(정확히는 메이저리그) 재밌다. 일본의원 몇몇이 야스쿠니 신사참배했다고 거품 물어도.. 난 이 일본인 선수를 맘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오늘도 제국 양키스의 에이스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내 버렸다. 대단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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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오늘도 안타! 안타!

 

슬램덩크라는 농구 만화를 보면 주인공 강백호가 자신을 천재라고 부르며 코트를 접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만화는 허구에 불과하지만 실제 스포츠에서도 강백호처럼 만화 같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있다. 농구 황제였던 마이클 조던, 환상의 개인기를 선보이는 호나우도, 1루까지 조깅하는 베리 본즈 등 종목 마다 꼭 몇 명씩 놀라운 선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앞서 언급되었던 야구의 신 본즈, 괴물 앨버트 퓨홀스, 그리고 야구천재 이치로 등이 있다.


이치로는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 좌완투수인 미네소타 트윈즈의 요한 산타나와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오늘 경기에서도 2안타를 뽑아내며 홈구장을 찾은 40,142의 관중의 성원에 보답했다. 경기는 4타점을 올리며 맹활약한 저스틴 모노와 7이닝을 7삼진 1실점으로 막은 산타나의 활약으로 미네소타가 승리하며 지난 오클랜드전 부터 이어진 4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한편 마무리로 9회 마운드에 오른 조 네이썬은 18개의 공으로 세 타자를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시즌 33세이브째를 거뒀다. 그의 방어율은 0.85로 올시즌 1세이브 이상을 거둔 메이저리그 모든 투수들 가운데 홀로 0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블론 세이브는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


오늘 2안타를 보탠 이치로는 181안타로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인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192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에 76개를 남겨두게 됐다. 현재 페이스로 시즌을 마칠 경우 산술상 259개를 기록해 2개 차이로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역대 기록들을 살펴보면 10위권 내에 9위 이치로(2001년 242안타)를 제외하고 모두 1950년대 이전의 선수들이 자리잡고 있다. 1930시즌에 254안타를 기록했던 빌 테리의 기록이 그나마 가장 최근이다. 또한 타석수에서 1980년 캔자스시티 로열즈의 윌리 윌슨이 기록했던 705타석을 여유롭게 넘어 717타석을 기록하게 된다.


.362인 타율도 2위 베리 본즈에 1푼을 넘게 앞서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기록 중이라 타격왕도 노려볼만하다. 현재 페이스를 봐서는 충분히 수상이 가능하다. 도루 부문에서도 볼티모어의 브라이언 로버츠와 함께 아메리칸리그 공동 2위에 올라있다(1위는 47개를 기록중인 템파베이의 칼 크로포드). 얼마 전 메이저리그 데뷔 4년 동안의 최다안타 기록인 840개를 가볍게 경신했던 이치로는 부상 없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시즌이 끝난 다음 데뷔 후 4년 연속 200안타 이상이라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기록도 가지게 된다.


시애틀은 사실상 서부지구 최하위가 확정적이기 때문에 이치로의 최다안타 신기록은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다. 팀이 상위권에서 피튀기게 경기를 하는 중이라면 상황에 맞게 점수를 내기 위해 진루타나 여러 작전들이 걸리며 마음 놓고 안타를 노릴 수 없겠지만 현재 시애틀은 오히려 팀이 이치로가 마음 놓고 타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도 괜찮은 상황이다. 이치로는 8월 들어 볼넷을 단 하나밖에 얻어내지 못했는데 이것은 본래 볼넷과는 친하지 않은 이치로라지만 한 달 평균 8개 정도를 얻어냈던 자신의 평균 수치보다 낮은 페이스이다. 그만큼 타격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볼넷은 적지만 8월에 들어선 44번의 타석에서 25개의 안타를 생산해내며 .523의 월간 타율을 마크 중이라 팀으로서도 큰 불만이 없어 보인다. 4월에 부진하지만 않았더라면(월간 타율 .255) 4할도 노려봄직 했기 때문에 초반 부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또한 8월내에 25개의 안타를 더 치게 된다면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단일시즌에 월간 50안타를 세 번이나 기록한 선수가 된다. 1936년 조 메드윅이 한 시즌에 두 번 월간 50안타를 기록한 적이 있다.(이치로는 지난 5월과 7월에 각각 50, 51안타를 쳐내며 이미 메드윅의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천재이건 일반인이건 많은 관심과 주목 앞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기도 하고 많은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미 많은 경험이 있겠지만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치로에게 슬램덩크 안감독님의 한 말씀을 빌려 전한다.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돼,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야". 아직 한 달이 더 남은 레이스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길 바란다.

 

전능표 (mlb21@hanmail.net)
[ 저작권자 : PSGKOREA (http://www.psgkorea.com) ]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위 기사의 무단 전재 및 발췌를 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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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델가도의 고독한 싸움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김병현과 밑에 있는 델가도를 좋아합니다. 사실 밑에 이 선수는 그냥 야구를 잘해서 좋아했었는데.. 인제는 진짜 좋아해야 겠습니다..

 

'킹' 델가도의 고독한 싸움독한 싸움힘은 팔뚝이 아닌 가슴에서 나온다

무하마드 알리. 60~70년대 사각의 링을 호령하던, 설명이 필요없는 세기의 철권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뇌리에 그는 「주먹」보다 흑인인권과 반전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본명(캐시어스 클레이)을 버린 알리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6년 『베트콩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며 징집명령에 불응, 헤비급 타이틀까지 박탈당해야 했다.

하지만 계산 빠른 오늘날의 스타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된 경구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몸값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행동이나 발언은 삼가는 것이 스타들의 수칙이 돼버렸다.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도 당대의 영향력에서는 알리에 결코 뒤지지 않을 수퍼스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늘 「정치적으로 민감한(politically sensitive)」 문제는 슬그머니 에둘러 간다. 실력만큼이나 출중한 인간적 면모로 추앙받는 「빙판의 제왕」 웨인 그레츠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이라크전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던 캐나다 최초의 NBA 올스타 스티브 내쉬는 매우 희귀한 사례다.

물론 스포츠 스타들이 사회적 이슈에 무심한 것은 일천한 지식과 사고범위의 한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데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무수한 혁명들이 입증했듯, 세상사(또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정의심이 지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델가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간판타자이자 메이저리그를 통틀어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파워히터다. 부리부리한 눈에 바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이 근육질 사나이의 별명은 「킹(카를로스)」이다.

88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제이스와 계약을 맺은 이후 11년째 토론토에서 빅리거 생활을 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가 「미국」을 상대로 묵묵하지만 끈질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지난 2001년 9·11사태 이후로 경기장에서 전래민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연주해왔다. 그러나 델가도는 경기장에 미국의 이 「비공식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에도 모자를 벗거나 기립하지 않음으로써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다.

1년 넘게 계속돼온 델가도의 「1인시위」가 일반에 알려진 것은 최근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도하 언론이 한창 시끄럽던 지난 21일, 블루제이스는 올 들어 처음 원정경기를 위해 뉴욕 양키스 구장을 찾았다. 이날 경기에서도 델가도는 7회초 공격이 끝나고 예의 「신이여...」가 흘러나오자 홈관중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덕아웃을 떠나 클럽하우스로 발길을 옮겼다.

그가 이처럼 고독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명분없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략에 대한 항의, 다른 하나는 조국 푸에르토리코의 산하를 무책임하게 유린한 데 대한 항의다.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델가도는 「독학파」 반전주의자다. 여느 스포츠 스타들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했던 그는 99년 4월 미해군의 폭격훈련장인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섬에서 오폭으로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뉴스를 계기로 현지의 비참한 상황을 알게 된 뒤 비에케스섬 「구출운동」에 뛰어들었다. 달라이 라마와 힐러리 클린턴 등 국제적 유명인사들도 운동에 동참했다.

미해군은 결국 여론에 굴복, 60여년만인 지난 2003년 5월부로 비에케스섬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델가도에 따르면 9,300명의 섬주민들은 지금도 우라늄탄의 후유증으로 현저하게 높은 발암률을 보이는 등 건강이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비에케스에서 성능시험을 마친 무기들중 상당수가 이라크에서 실전에 투입됐다. 델가도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항의하는 이유중 하나다.

참고로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는 완전한 내정자치권은 있지만 외교와 방위는 미국이 담당하는 「반쪽짜리」 국가로 유엔에도 대표부가 없다. 주민들은 투표권 없는 미국시민권자다.

델가도는 버드 실릭 커미셔너를 비롯한 리그 내외의 노골적인 눈총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 단지 내 느낌을 표현하는 것 뿐』이라며 앞으로도 고독한 항의를 계속해나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힘이란 「팔뚝」이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준 「킹」에게 존경과 성원을 보낸다. 『God Bless The King!』

▲ 윗글은 PSG & PARK와 제휴를 맺고있는 캐나다 한국일보 김원태 편집위원님의 글 입니다. 

 

 

   --> 바로 이 선수가 델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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