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해

2006/08/29 22:53 Tags »

열 일곱 살 적의 소원은 스물 일곱 살에 죽는 거였다

세상에! 십 년이나 남았어 하고 되뇌면서 스물 일곱 살에 죽어 특별한 의미가 되길 바랬던 듯(지가 무슨 재니스 조플린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참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지만

스무 살이 돼서도 서른 살이 될 줄은 몰랐다

정확히는 내 서른 살이 어떨 줄 몰랐다

나이란 매년 먹는거고 어어 하다보니 나도 서른 살이 됐고

일궈논 일 없고 모아논 돈 없이도 암치도 않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무심한 편이지만

역시 때론 시름

 

몸이 안따라준다던가 밤샘을 하면 피곤하다던가(술담배 10년이면 당연한 거?)하는건 그런대로 수긍.

내가 꼭 해보고팠던 분야에서 나어린 누군가가 성취한 것을 볼때 그 상실감

초롱초롱했던;; 기억력이 떨어지고 뇌세포는 죽어가고 '머리가 나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의 그 공포

사십줄의 선배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젤 빠를 때야" 내지는 "내가 네 나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충고들은 감사하지만 그들의 아쉬운 과거가 아등바등 내 현실 시간인 이상 사실은 '무쓸모'다

 

운동권에다 여자에다 비혼에다 애인없고 돈까지 없는 많은 또래들은 '무의탁노인'을 두려워하던가 '안토니아스라인'을 꿈꾸던가(노현정도 꿈꿔볼까;;;)

이런 식으로 쩔쩔매며 살다가 늙고 꼬부라져서 의지할데 하나없이 골방에 처박혀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지 한 달 후에 발견되는 건 아무래도 무셥잖아,

아무래도 주변에 돈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대해야겠다(이 무슨...)

 

한겨레21의 특집을 보고 살짝 우울해졌던 터에, 많은 삼십세들이 열광(과연?)하는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로 심금을 울려주마(???)

 

 

삼십세 -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긴해도 뭔 상을 치우고 어쩌고 다시 노래를 부르네마네 뭔 상관인지 하는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보다 이것이 난 맘에 더 든다



나 서른이 되면 - 나희덕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려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으로도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검색하다보니 주렁주렁 딸려나오는 시들 중에 사십 전후의 언니오빠들을 위한 고정희 시인의 시도 눈에 띈다

 

 

사십대 -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시들을 올리다보니 왠지 처음 쓰려고 했던 내용에서 상당히 벗어나고 있지만 이미 주체할 수 없... 아무튼... 마무리는 문정희 시인의 '생일파티'

 

 

생일파티 - 문정희

 

싱싱한 고래 한 마리 내 허리에 살았네

그때 스무 살 나는 푸른 고래였지

서른 살 나는 첼로였다네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잘 길든 사내의 등어리를 긁듯이

그렇게 나를 긁으면 안개라고 할까

매캐한 담배 냄새 같은 첼로였다네

마흔 살 땐 장송곡을 틀었을 거야

검은 드레스에 검은 장미도 꽂았을 거야

서양 여자들처럼 언덕을 넘어갔지

이유는 모르겠어

장하고 조금 목이 메었어

쉰 살이 되면 나는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없어

오히려 가볍겠지

사랑에 못 박히는 것조차

바람결에 맡기고

모든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 반은 없는

쉰 살의 생일파티는 어떻게 할까

기도는 공짜지만 제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하니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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