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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3
    서울시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먼동

서울시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7월 30일 투표권을 행사할 수조차 없는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 하루 2명꼴, 한해 600명이 넘게 자살을 시도하는 이땅 청소년들의 숨막히는 절망을 뒤로 하고 결국 공정택이 당선되었다. 

 

'촛불의 승리',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을 입증(?)이라도 해줄 하나의 계기로 의미 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최초의 교육감 직선이라는 포장을 쓴 기만적 정치의 한 지점에서 반동이 승리하였다. 

 

애초에 촛불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환상을 과도하게 유발하고, 그것이 교육감선거라는 계기를 거쳐 또 달리 촉발될 것이라는 다소 과한 기대가 있었다면 홀가분히 접고 이후의 견실한 투쟁을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유익하지 않을까. 수개월간 폭발한 대중의 힘찬 촛불의 의미가 이 선거결과에 따라 손상되거나 규정되거나 새삼 제한적으로 해석될 바는 아니지 않았던가.

 

대중이 자생적으로 불붙인 촛불의 연속성이나 정치적 응집, 재조직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후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분명 중대한 질문이지만, 촛불 자체가 계속 자가발전하며 정세를 폭발적으로 고양시키거나 혹은 제도권 선거판에서 전교조를 후려치는 온갖 선정적 악선전을 뚫으며 더 큰 규모의 '투표'로 이어져 강남불패의 조직세를 뒤엎을 만큼의 '다목적 열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던 바가 아닌가.

 

평생을 감옥에 갇혀있는 무기수가 단 하루의 특별 외출을 받아 꿈에 그리던 연인과 반나절의 연애를 하고 다시 옥중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두고 자본주의 선거라 했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 착취사회 선거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명박의 당선이 또한 그러했듯이....직선의 외피를 쓴 이 부르조아선거에서 모든 경제적, 실질적 불평등은 역시 은폐되었다. 투표성향과 계량적 수치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학자와 언론 그 누구의 눈에도 훤히 보일 만큼 이 땅의 부르조아와 기득권 수혜자들은 참으로 가학적인 표심까지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주었다.

 

'사교육불패, 부동산불패의 신화'를 그려온 땅부자 강남,서초,송파 유권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공정택 지지율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속에서 사적, 이기적 이익을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음을 직감하는 '열혈' 부르조아 혹은 상승하는 소부르조아 학부모들에게 투표의 '귀차니즘'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요 몇개월 답답해하던 그들은 '부모된 신념'에 불타 앞장서서 제 자식들의 탄탄대로를 위한 길을 닦아놓으며 다시 한번 절대다수 노동계급의 자식들에게 부디 허황된 꿈을 꾸지말 것을 경고하였다.

 

왜 평소 학교에서 그들의 입김이, 치마 혹은 바지바람이 그렇게도 드센지, 왜 학교운영위의 무력함이 입에 오르내리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결과이리라.

 

너무도 뜬금없이 87년 박종철열사가, 이한열열사가 돌아가실 때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생각이 났다. 졸업 후 그 학교 교장은 지역자본과 협잡해서 8층 짜리 스포츠센터를 학교운동장에 지었고, 아이들은 이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예전 운동장에서 빽빽히 주차된 차들을 비켜가며 야간학습을 끝내고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더니 89년엔가 이사장인지가 뇌물로 구속되었다고 했다.

 

86년 고등학교 1학년땐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친구, '생활보호대상자' 였던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 친구가 어느날 쉬는 시간에 육성회장 아들이 던진 액자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다가 결국 사과 한마디 못 듣고는 조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날 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하다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못 이겨 지금껏 가장 많은 눈물을 하루 저녁에 흘렸었다. 그 후로도 그 육성회장인지 하는 부모가 내 친구와 그의 어머니에게 어떠한 사과를 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

 

지난 밤, 교육감선거 결과가 나올 즈음에 다들 성난 얼굴로 '그 새끼를 잡으러가자' 며 같이 내 친구의 교실로 향하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이제 사십을 목전에 둔 아저씨들이 되어 있다. 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갑자기 왜 그 친구 일이 생각났는지...22년전 기억이 떠오른 건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오래전 일은 참 잘도 기억한다.

 

그래...답답했나보다. 그 더러운 세월도 채 뿌리뽑히지 않은 채 우리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고,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새롭게', '자유롭게'(!) 차별하고 배제하고 줄세우는 교육이 강요되고 있고, 또한 앞으로 더욱 더 그러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나도...너무 답답하다.

  

그래, 더 생각해보면 자본과 노동자계급간 이데올로기의 전장에서, 50년 입시교육, 경쟁교육, 식민교육, 자본가교육의 토양에서 너무나 힘에 겹게 뚫고 나온 작은 싹을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 제도화된 틀속에서 혹은 거리의 정치에서 개량적 사민주의 정치전통조차 경험하기 힘들었던 남한 땅에서 지금까지의 여러 부르조아선거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선거는 이슈상의 대립지점은 상대적으로 분명했던 선거였던 것 같다.

 

반이명박정서라는 지반위에 서서 '노동자와 선을 긋는 자기 한계를 부정하지 않은 이 ' 머뭇거리는 '시민후보'는 제한적일 지라도 '경쟁교육, 돈교육, 귀족학교 반대'라는 슬로건과 지향을 비교적 구체화된 형태로 대중에게 표현하고자 했고, 그런 선거에서 박빙세의 표 계산이 나왔다는 점은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득표를 되짚지 않는다 해도 이제 반년 정도 지난 기간의 작지 않은 변화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할 것이다. 이명박의 교육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만만치 않은 분노와 박탈감과 마주해야 할 테니까.

 

이번 선거 자체에 대한 전술 차원의 고민이나 논란을 떠나 남원에서 주민들이 물사유화 기도를 막아내고, 제주에서 영리의료법인도입을 투표의 형식을 빌어서나마 잠정적으로 저지시켜낸 흐름속에서 보면 어쨌든 더더욱 속이 쓰린 일이다. - 단순히 속만 쓰리고 말 일이 아니다. 결국 이로 인해 자살하지 않을 수도 있을 어떤 친구들도 세상을 등질 것이고 실제로 바로 그 학생들의 생사가 달라지는 문제니까......

 

대중에 의한 거리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듯이 여전히 노동자의 투쟁이 있을 곳은 현장과 거리일 것이고 그 승리나 패배가 부르조아선거 따위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부르조아선거는 계급투쟁의 큰 흐름속에서 원인과 결과가 이해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적' 노동자들이 투쟁을 담보하고 조직하지 못할 경우 자기 소임을 회피하며 '거리의 정치'의 미숙함을 탓하거나 대중에게 결과적 책임을 전가할 수 없듯이, 만일 주경복 후보의 당선이 있었다 한들 승리적 자아도취의 축포를 터뜨릴 일은 전혀 아니었다.  

 

선거결과가 더 이상의 안타까움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설혹 주경복후보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교육을 저지해내고 교육에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지켜내고 견인할 수 있는 힘이 '교육감' 주경복 교수이거나 그 어떤 '시민사회' 일부 지식인들이거나 혹은 심지어 '선거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까.

 

바로 그 교육으로부터 가장 철저하게 배제되고 노동력의 재생산 자체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노동자계급의 많은 투쟁들이 이 사회에서 주요한 승리들을 쟁취해나가지 못한다면, 교직원노동자가 각고의 투쟁을 전개해내지 못한다면, 자본가들의 통제수단이자 주요 보루 중 하나인 교육에서 '시장화 저지'라는 그 힘겨운 역사적 과제가 과연 수행될 수 있을까.

 

거기엔 이곳 남한땅 노동자계급의 최소한의, 또 주요한 승리들, 그 승리들의 전 사회적 축적이... 어느 노랫말처럼 '지금보다 더 강한',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투쟁들이 '저변을 들어내는' 경험들, 그 변화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아직도 더 많은 희생들이, 더 많은 노동자 투쟁의 피눈물이 요구되는 것이지 않은가.

 

"이 죽일 놈의 선거"는 비록 속이 쓰려도 우리가 와있는 지점까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는 되는 것 같다. 그것 외에 저들의 이 선거에 '대표성', 그 '얼어죽을 대표성'이란 애초에 없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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