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송경동 시인의 용산철거민 추모시 <너희가 누구인지 그 때 알았다> 를 인용. (2009.10.29)

 

 

 

 

 

 

 

 

 

 

 

 

 

 

 

 

   

(2009.11.2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총연맹의 봉하마을 노무현 집단조문 결정을 보며

당신들은 마치 당연한 일이란 듯이 '조직'차원의 '조문'을 결정하였습니다. 그의 사망일에는 누구신지는 모르나 '애도'와 '평화적 투쟁' 또한 설득하려 한 바가 있지요. 아무리 '노동조합'일 지언정 계급 대중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당신들입니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대중에게 자본가계급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소부르조아적 낭만의 노예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습니까. 자본가계급의 하수인에 대한 조직적(!) 조문을 결의,결정할 만큼 지금의 정세를 한가히 보고 계십니까?

 

굳이 '역사성에 기초한 평가'를 들먹이려 한다면 아직도 이땅에는 아주 예전의 노무현을 기억하는 매우 많은 노동자가 있고, 이미 자유로운 평가들을 하고 있을 것임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하거나, 혹은 특정의 감정이나 행위를 강제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계급적 시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림사건때의 노무현, 87년 이후 노무현으로부터 성과와 한계, 긍정과 부정을 같이 보며 엄밀히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까?

 

저 또한 87년 전두환 군사파쇼의 발악을, 6월 민중항쟁의 거리를, 노동자대투쟁의 감동을 기억합니다. 이후 노태우와의 지긋지긋한 싸움을 기억합니다.  일년 내내 단 몇 미터를 더 확보하기 위한 전투대오내의 긴장감과 적의 무자비한 폭력들을 아직은 몸으로 기억합니다.

 

그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인간 노무현의 야망과 정치적 포부가 아니라 이름없이 죽어간 광주노동민중열사들의 얼굴들, 문송면, 김세진, 이재호열사의 죽음, 89년 피떡이 되어 물에 떠오른 이철규열사의 시신, 영안실벽을 깨고 들어온 백골단에게 빼앗긴 박창수열사의 시신, 강경대, 김귀정, 김기설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전쟁이후 30여년만에 대명천지로 뚫고 나온 남한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전노협의 깃발을 보는 감동과 희망입니다.

 

89년 비록 지배계급의 쇼 일지언정 5공청문회로 투영된 민중들의 관심과 열망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속의 노무현을...기억합니다. 90년 그렇게도 증오스러웠던 민자당, 그 야합에 반기를 든 정치행위를 그가 했음을 기억합니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던 그도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회상'이란 이름의 관념은 계급별로, 현재의 사회적 존재에 따라 적나라하게 다른 것입니다.

 

웬만한 전쟁의 몇갑절이 넘게 죽어가는 산재사망자들에게...

삶의 발자욱들, 사랑하는 이들을 회상할 단 몇 초의 찰나조차 빼앗긴 채 불길속에 살해당한 철거민들에게...

노무현표 고용허가제 덕택에 죄인처럼 포복하며 맞아가며 살아남아야 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세계최장의 시간과 초고강도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갖다바치며 IMF후 3년간만 갑절 이상, 지난 10여년간 몇 갑절의 착취율 상승 속에 고통을 강요당해온 남한 노동자계급에게...

그리고 비정규악법 아래 고통스런 하루하루의 노동일을 견디어가는 남한 일천만 비정규노동자에게...

 

그 '회상'...이란 놈은 이제 아예 기억하려 해도 잘 떠올려지지 않는, 그런 것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새삼스레 소부르조아적 낭만의 창으로 87년을 회상하고, 부르조아 정치안에서 '지역주의에 도전한 호기'를 상대적으로 평가해주고 싶다면 제발 개인별로 알아서 하십시오. 거기까지만 할 것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조직이 결의한 집단조문'의 정치적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당신들이 내린 이 결정은,  그러나 당신들이 지각하기조차 힘들지 모를 무거운 사회적, 역사적 책임이 따르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5말6초 투쟁일정의 조정에 전술적 고민이 있었을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전술적인 숙고'속에 기어이 '집단조문'조차 그만 포함시켜 버렸습니까!

 

적대적 계급사회가 양산하는 모든 죽음들은 비극입니다. 축적의 광기와 경쟁의 압박속에 목매달아 자살한 자본가의 죽음인들 비극이 아닙니까. 역사 속에 무수히 있었던 지배계급 내 정적에 대한 숙청도 비극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결국 죽음도, 삶도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피로 써온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리란 믿음을 아직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 굳이 당신들이 평가하려, 또 그 평가를 강제하려 합니까. 부디 누구든 그 앞에 그저 겸손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종태열사 영정의 눈빛이 너무도 외롭고 고되보이는 밤에 씁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시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7월 30일 투표권을 행사할 수조차 없는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 하루 2명꼴, 한해 600명이 넘게 자살을 시도하는 이땅 청소년들의 숨막히는 절망을 뒤로 하고 결국 공정택이 당선되었다. 

 

'촛불의 승리',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을 입증(?)이라도 해줄 하나의 계기로 의미 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최초의 교육감 직선이라는 포장을 쓴 기만적 정치의 한 지점에서 반동이 승리하였다. 

 

애초에 촛불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환상을 과도하게 유발하고, 그것이 교육감선거라는 계기를 거쳐 또 달리 촉발될 것이라는 다소 과한 기대가 있었다면 홀가분히 접고 이후의 견실한 투쟁을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유익하지 않을까. 수개월간 폭발한 대중의 힘찬 촛불의 의미가 이 선거결과에 따라 손상되거나 규정되거나 새삼 제한적으로 해석될 바는 아니지 않았던가.

 

대중이 자생적으로 불붙인 촛불의 연속성이나 정치적 응집, 재조직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후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분명 중대한 질문이지만, 촛불 자체가 계속 자가발전하며 정세를 폭발적으로 고양시키거나 혹은 제도권 선거판에서 전교조를 후려치는 온갖 선정적 악선전을 뚫으며 더 큰 규모의 '투표'로 이어져 강남불패의 조직세를 뒤엎을 만큼의 '다목적 열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던 바가 아닌가.

 

평생을 감옥에 갇혀있는 무기수가 단 하루의 특별 외출을 받아 꿈에 그리던 연인과 반나절의 연애를 하고 다시 옥중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두고 자본주의 선거라 했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 착취사회 선거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명박의 당선이 또한 그러했듯이....직선의 외피를 쓴 이 부르조아선거에서 모든 경제적, 실질적 불평등은 역시 은폐되었다. 투표성향과 계량적 수치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학자와 언론 그 누구의 눈에도 훤히 보일 만큼 이 땅의 부르조아와 기득권 수혜자들은 참으로 가학적인 표심까지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주었다.

 

'사교육불패, 부동산불패의 신화'를 그려온 땅부자 강남,서초,송파 유권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과 공정택 지지율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속에서 사적, 이기적 이익을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음을 직감하는 '열혈' 부르조아 혹은 상승하는 소부르조아 학부모들에게 투표의 '귀차니즘'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요 몇개월 답답해하던 그들은 '부모된 신념'에 불타 앞장서서 제 자식들의 탄탄대로를 위한 길을 닦아놓으며 다시 한번 절대다수 노동계급의 자식들에게 부디 허황된 꿈을 꾸지말 것을 경고하였다.

 

왜 평소 학교에서 그들의 입김이, 치마 혹은 바지바람이 그렇게도 드센지, 왜 학교운영위의 무력함이 입에 오르내리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결과이리라.

 

너무도 뜬금없이 87년 박종철열사가, 이한열열사가 돌아가실 때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생각이 났다. 졸업 후 그 학교 교장은 지역자본과 협잡해서 8층 짜리 스포츠센터를 학교운동장에 지었고, 아이들은 이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예전 운동장에서 빽빽히 주차된 차들을 비켜가며 야간학습을 끝내고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더니 89년엔가 이사장인지가 뇌물로 구속되었다고 했다.

 

86년 고등학교 1학년땐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친구, '생활보호대상자' 였던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 친구가 어느날 쉬는 시간에 육성회장 아들이 던진 액자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다가 결국 사과 한마디 못 듣고는 조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날 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그 얘기를 하다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못 이겨 지금껏 가장 많은 눈물을 하루 저녁에 흘렸었다. 그 후로도 그 육성회장인지 하는 부모가 내 친구와 그의 어머니에게 어떠한 사과를 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

 

지난 밤, 교육감선거 결과가 나올 즈음에 다들 성난 얼굴로 '그 새끼를 잡으러가자' 며 같이 내 친구의 교실로 향하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이제 사십을 목전에 둔 아저씨들이 되어 있다. 교육감선거 결과를 보며 갑자기 왜 그 친구 일이 생각났는지...22년전 기억이 떠오른 건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오래전 일은 참 잘도 기억한다.

 

그래...답답했나보다. 그 더러운 세월도 채 뿌리뽑히지 않은 채 우리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고,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새롭게', '자유롭게'(!) 차별하고 배제하고 줄세우는 교육이 강요되고 있고, 또한 앞으로 더욱 더 그러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나도...너무 답답하다.

  

그래, 더 생각해보면 자본과 노동자계급간 이데올로기의 전장에서, 50년 입시교육, 경쟁교육, 식민교육, 자본가교육의 토양에서 너무나 힘에 겹게 뚫고 나온 작은 싹을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 제도화된 틀속에서 혹은 거리의 정치에서 개량적 사민주의 정치전통조차 경험하기 힘들었던 남한 땅에서 지금까지의 여러 부르조아선거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선거는 이슈상의 대립지점은 상대적으로 분명했던 선거였던 것 같다.

 

반이명박정서라는 지반위에 서서 '노동자와 선을 긋는 자기 한계를 부정하지 않은 이 ' 머뭇거리는 '시민후보'는 제한적일 지라도 '경쟁교육, 돈교육, 귀족학교 반대'라는 슬로건과 지향을 비교적 구체화된 형태로 대중에게 표현하고자 했고, 그런 선거에서 박빙세의 표 계산이 나왔다는 점은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득표를 되짚지 않는다 해도 이제 반년 정도 지난 기간의 작지 않은 변화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할 것이다. 이명박의 교육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만만치 않은 분노와 박탈감과 마주해야 할 테니까.

 

이번 선거 자체에 대한 전술 차원의 고민이나 논란을 떠나 남원에서 주민들이 물사유화 기도를 막아내고, 제주에서 영리의료법인도입을 투표의 형식을 빌어서나마 잠정적으로 저지시켜낸 흐름속에서 보면 어쨌든 더더욱 속이 쓰린 일이다. - 단순히 속만 쓰리고 말 일이 아니다. 결국 이로 인해 자살하지 않을 수도 있을 어떤 친구들도 세상을 등질 것이고 실제로 바로 그 학생들의 생사가 달라지는 문제니까......

 

대중에 의한 거리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듯이 여전히 노동자의 투쟁이 있을 곳은 현장과 거리일 것이고 그 승리나 패배가 부르조아선거 따위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부르조아선거는 계급투쟁의 큰 흐름속에서 원인과 결과가 이해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적' 노동자들이 투쟁을 담보하고 조직하지 못할 경우 자기 소임을 회피하며 '거리의 정치'의 미숙함을 탓하거나 대중에게 결과적 책임을 전가할 수 없듯이, 만일 주경복 후보의 당선이 있었다 한들 승리적 자아도취의 축포를 터뜨릴 일은 전혀 아니었다.  

 

선거결과가 더 이상의 안타까움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설혹 주경복후보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교육을 저지해내고 교육에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지켜내고 견인할 수 있는 힘이 '교육감' 주경복 교수이거나 그 어떤 '시민사회' 일부 지식인들이거나 혹은 심지어 '선거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니까.

 

바로 그 교육으로부터 가장 철저하게 배제되고 노동력의 재생산 자체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노동자계급의 많은 투쟁들이 이 사회에서 주요한 승리들을 쟁취해나가지 못한다면, 교직원노동자가 각고의 투쟁을 전개해내지 못한다면, 자본가들의 통제수단이자 주요 보루 중 하나인 교육에서 '시장화 저지'라는 그 힘겨운 역사적 과제가 과연 수행될 수 있을까.

 

거기엔 이곳 남한땅 노동자계급의 최소한의, 또 주요한 승리들, 그 승리들의 전 사회적 축적이... 어느 노랫말처럼 '지금보다 더 강한',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투쟁들이 '저변을 들어내는' 경험들, 그 변화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아직도 더 많은 희생들이, 더 많은 노동자 투쟁의 피눈물이 요구되는 것이지 않은가.

 

"이 죽일 놈의 선거"는 비록 속이 쓰려도 우리가 와있는 지점까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는 되는 것 같다. 그것 외에 저들의 이 선거에 '대표성', 그 '얼어죽을 대표성'이란 애초에 없지 않았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중근열사의 영전에 올립니다.

하중근 열사의 영전에 올립니다. (2007년 8월)
 
동지 잘 계신가요. 조금만 있으면 추석입니다.
오늘도 먼지 가득한 작업복, 그 눅눅한 새벽짐 또 꼼꼼히 챙기셨나요?
한가위 날 저녁에라도 그저 삼겹살 몇 점에 맛있는 술 한잔 꼭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살아계실 적 그 어느 하루의 노동인들 생명을 내려놓지 않았던 날 없으셨을테지요.
해가 바뀐 이 여름 그래도 지금 동지가 흠뻑 젖은 땀 훔치면서라도 곁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그날, 저 자본의 똥개들의 몽둥이에 그 고단한 한가닥 목숨줄 그렇듯 고통스레 내려놓으셨습니까. 폭염 속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여한없이 마냥 뵙고만 싶었습니다. 
 
지난 7월 26일에는 전국건설노조 충남건설지부 공안탄압사건에 대한 천안지법 1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검찰의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이 얼마나 뻔뻔하고 가증스런 거짓말로 범벅된 것이었는지가 만천하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갈협박"이라니요. 여직 기가 차고 가슴이 막힙니다. 동지도 그런 심정이셨겠지요.
 
동지, 그래도 조금은 기운을 내세요. 우리 안에 더 많은 동지가 살아 오늘의 싸움을 굴리어갑니다. 전국건설노조 경기서부건설지부 형틀목수분회의 파업이 승리하였습니다. 타워크레인 동지들이 총파업과 결사전의 고공농성으로 당당히 승리하였습니다. 지난 5일 울산 태화강에서는 전국플랜트건설노조가 새 닻을 올렸습니다.
 
악랄한 이랜드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힘들지만 결연하게 싸우고 있는 뉴코아 이랜드의 용감한 여성 동지들이, 동지께서 한번은 마주쳤을지 모를 바로 그 마트의 동지들이 비정규투쟁의 또 하나의 큰 도화선을 놓으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따라 더 많은 동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투쟁의 불씨를 지펴갈 것입니다. 몇 갑절 더 단단한 투쟁으로 노동자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자본이 발악하는 비열한 세기, 노동해방의 새 세기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투쟁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치떨리는 경찰의 살인폭력에 맞서 끝까지 싸워 이겨 동지를 죽인 국가폭력의 수뇌들이 동지의 영정 앞에 바짝 엎드려 사죄하며 통한의 피눈물을 쏟아내게 하겠습니다. 
 
동지 죄송합니다.
한가위 따뜻한 보름달빛 아래 조금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쉬실수 있는 그 날을 품속 가득 안겨드릴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한가위까지 부디 평안하세요.
 


안녕 (송경동, 시인)


안녕
이젠 모두 안녕
하청도 재하청도
일용공 노가다 잔업 철야 대마치
반지하 월셋방 생쥐들
바퀴벌레 때전 이불
야이 개새끼들아
까닭모를 아픔도 슬픔도
새벽밥 눈칫밥 기름밥
새참의 빵도 우유도 라면도
이젠 모두 안녕
 
안녕
내 불우했던 어린시절
부잣집 아들을 꿈꾸며 지새우던 밤
살아, 서로가 서로에게
피눈물 진흙탕 갈퀴가 되고 송곳이 되던
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
2년만에 날 버리고 떠난 그 조선족 여인도
모두 안녕
 
안녕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삶의 여유
한번도 내가 발음해 보지 못했던
이 세상의 그 모든 좋은 말들
글을 몰라 쓰지 못했던 수많은 편지들
그 여름의 파도소리
가을에 낙엽
겨울 눈송이
가끔은 낭만에 젖던 내 늙어버린 청춘도
모두 안녕

 
 
 
안녕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도 안녕
뒷머리를 찍던 방패날
갈비뼈 우스러지던 군홧발
척척 삭신을 감던 곤봉맛
퍽, 뇌가 깨지던 소리
내가 얼마나 하찮은 인생임을 가르쳐주던
짐승같던 너희들 목소리, 그 눈빛들도
이젠 모두 안녕
 
안녕
거짓된 세상 썩은 세상
이제 나 다시 착취받지 않으리니
이제 나 다시 차별받지 않으리니
너희들의 종이 아닌
제관공 하씨가 아닌
노동자 해방투쟁의 꺼지지 않는 넋이 되리니
새로운 세계를 주조하는 화엄 용광로가 되리니
착취받는 용접불꽃이 아닌
버림받는 산소불꽃이 아닌
포스코의 저 간교한 망각의 빛이 아닌
저 하늘의 영롱한 별빛이 되리니
 
벗들이여
저들의 세상 끝장내고
우리가 세계의 주인이 되어 만나는 그날
나 다시 이 형산강로타리에 되살아 오리니
단결 투쟁
인간해방 그날까지
그립던 날들아 사랑했던 사람들아 다 못한 이야기들아
굴하지 말고 지지말고
투쟁 투쟁 투쟁
이젠 모두 안녕 안녕

 

 

* 최종수정일 : 2007.08.25 <10:5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방글라데시 동지들과 - 2004년8월

간만에 시간이 난 방글라데시 동지들과 어찌어찌 생기게 된 티켓을 갖고 8월 14일 국회 앞 8.15 기념 평화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강제추방과 폭력단속 없는, 하나된 노동자로서 진정 이주노동자와 함께 누리는 평화를 염원하며, 기름기 넘치는 국회 앞뜰에(!) 다녀왔습니다. 남동공단 출입국 단속반원들의 폭력단속의 현장에서 또 다른 이주노동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부상, 병원에 입원 중이란 소식이 바로 그때 들려왔습니다. 짙고 푸른 잔디와 평화를 외치는 노래들속에서도...그렇게 차가운 저녁이었습니다.

 
일제의 잔학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는 광복절 전야에도 저들은 그렇게 이주노동력의 피땀어린 가치를 덧없이 짓밟고,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20만여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파시즘의 광기와도 같은 장기 단속이 한국사회에 기어이 남길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 노동자의 일자리?"
"노동시장의 안정??"
"범죄없는(!) 안정된(?) 사회???"
.........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노동강도가... 코구멍 속 먼지 가득토록 일하고 월60,70만원의 임금으로 자식 키우며 버텨온 우리네 건설노동자 아줌마들, 전체노동자의 과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의 암담함이......모두 미등록 이주노동자 때문이였던가요?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요? 20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모두 수갑차고 가스총 맞아가며 죄인처럼 쫓겨나가면 일자리가 강물처럼 넘쳐나는가요? 진정 실업문제가 그다지도 걱정이라면 생활정보신문 1부만 꼼꼼히 읽어보십시오. 그 언제는 민중에게 최소한의 조건의 일자리란 것이 그렇게 찾기 쉬운 것이었던가요? 
 
참으로 기막힌 발상입니다.
 
최악의 수준까지 이주노동자를 밀어붙이는, 이로써 비정규직노동자를 위시한 전체 한국노동자 또한 더더욱 값싸고 편하게 이용하려는 독점재벌 및 총자본의 참으로 쌈빡한 거짓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범죄도 언급합니다. 마치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흉흉한 세상사도 모두 모아 이주노동자가 덮어써달라는 듯이 말입니다. 이 땅 철거민들의 망루를 날마다 부셔가듯 이주노동자가 모여사는 거주촌도 역시나 소멸되어야 할 범죄의 온상인가요?
"범죄"는 그렇듯 때때로 참 편리하게도 이용됩니다.
 
저들은 여전히 강요합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을 이동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빼앗긴 "합법"이주노동자에게...단속반원의 숲을 뚫고 필사적으로 뛰쳐달아나 다시 12시간 맞교대에 들어가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여전히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손바닥 위 낮은 포복으로 숨죽여 일하고 말 못하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노예로 살라고, 딱 그만큼의 인간으로만 살라고..."
저들은 800만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실업자에게 요구합니다. "저 이민자들을 보고 위안하라고, 그저 너의 인생의 고통에도 질끈 눈 감고 만족하라고..그래도 정히 불만이거든...웬만큼 욕해도 책임질 일 없을 검은 얼굴의 저들을 탓하라고."
 
저들은 우리를 회유합니다. 단지 그저 묵인하라고... 20만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중 다시 또 몇 친구가 폭력단속의 와중에 죽어간다해도 단지 "'탁' 치니 '억' 하였으니 잘 모르는 일이라고..."불법친구, 불법인간"이 생산한 부품, 그 자가용의 안온한 승차감을 즐기며 또 다시 그렇게 잊어버리라고. 김선일씨의 죽음이 그랬듯 묵인하라고...
 
늘 우리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불법친구"가 당신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나요?"
"비난과 묵인으로 당신이 얻을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가 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강제추방 반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사업장이동의 권리 보장,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2004.8.2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97년 겨울

97년 겨울 (1998년 2월 어느 밤)

 

산다고 살았는데

콧구멍 먹먹하게 먼지숨 들이키며

화공 뿜칠 독기운 종일 취한 머리로

귀가길 지옥철, 거적 같은 봉고차

엔진 위 들썩들썩 시큰한 허리춤을 잡고

빙빙 비틀대며 집 가던 저녁

 

우리 산다고 살았는데

경기며 충청이며 강원이며 구석구석 누비며

사장이 길참 삼아 사다 던진

호떡 한 쪽 목구멍에 디밀며

그렇게 우기듯이 버티며 살아왔는데

 

칠쟁이 일이란 게 무슨...

도깨비 방망이 한방으로 끝날 일인 양

공사주들 곁눈질 한끝에 내던지는

남의 속 울궈놓는 모진 한마디

오늘도 가슴에 묻고 난 다시 후끼를 들었다

 

산다고 살았는데

몇 억, 몇 십억 짜리 건물에 드나들며

옷을 입히고 꽃 치장을 해도

일 끝나면 그 뿐

 

어느 날 지나던 길 오줌마려 들를까

편한 속으로야 다시는 들를 일 없을 것 같은

까마득히 낯선 어제의 내 노동이

또 다른 자본의 성전, 착취의 보루가 되어

저만치 위 높은 데서 커다란 배 내민 채

날, 우릴 비웃을 때

 

날 담배 한 모금에 허한 가슴 흩어버리고

얼굴 돌려 발걸음 재촉하는 저녁

 

"설탕값이 또 천원이나 올랐어"

"내년엔 간접세를 몇 조나 더 늘린다는군"

날마다 달아나는 음식값에, 교육비에, 세금에

얼굴 부비며 매달리는 애들 등쌀에

졸라맬 허리띠는 거...뒤질래도 없는데

 

이 저녁도 텔레비선

경제위기 임금억제 다시 뛰자 전화위복

재탕삼탕 때깔좋은 월드컵 나팔에

멍멍 찍찍 한마음 하나로

웅성웅성 호들갑 바쁘게도 뱉어내고

 

고용조정 유연성 요상한 말 써가며

짜를란다 굳힐란다 암때나 줄란다

늘켰다 줄퀐다 아무케나 쓸란다

이나저나 매한가지 내게는 딱 한마디

값싸게 독하게 뺑이치라는데

 

차라리 저놈의 것 내쳐 꺼버리고

자식내미 손목 한번 더 쓸어주고

물 젖은 걸레같은 몸뚱이

늦저녁 이불속에 파묻을 참에

 

어느 굵직한 재벌 하청 건설업체 사무실로

밀린 것 삼천만원 내놓으라 열 다섯이 몰려가

진종일 버티며 싸우던 판에

철근하던 서른 다섯 또 어느 한 이가

온몸 옮겨 붙은 불에 타 금방 세상 떴다는...

 

젖은 베겟녘을 파고드는...

참... 지랄같이도 짧은 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