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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억속에서 지우고 싶다

 

 

살다보니 "잘 지내세요?"라는 그 평범한 질문마저도 아주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다. 너무도 일상적인 인사에 망설임을 느낄 때, 삶은 다른 모습으로 옆에 서 있다. 필리핀에 오면 꼭 한번 만나고 싶었으면서도 과연 무엇을 말하고 물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혹여 우리의 방문조차 지난 상처를 헤집는 잔인한 행동이 될까 두려웠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 못 만날 인연’이란 말로 주저하는 길동무를 설득시키고 함께 약속장소로 향하던 그 길은 왜 그리도 아득하던지.


“하이(Hi)” 긴 생머리에 환한 미소를 가진 여성이 내 길동무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래동안 헤어진 친구들이 다시 만난 것처럼 3년 만에 사건 의뢰인과 소송을 도와주었던 이가 필리핀 땅에서 만났다.


길동무와 에미(가명. 28)가 처음 만난 건 지난 2002년 여름. 에미는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중개인의 말을 믿고 예술흥행비자(E-6)를 발급받아 다른 필리핀 여성 10명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고단한 삶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는 강요하지 않겠다’는 확언과 가난을 탈출할 발판이 될 수 있을 임금보장을 약속받은 터라 클럽 무용수로 일하는 모욕정도는 견뎌낼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한국 땅에 도착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뺏기고, 창문에 쇠창살이 설치돼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방에 갇힌 다음은 이미 늦은 뒤였다. 동두천에서 그렇게 석달을 살았다. 브래지어와 짧은 미니스커트만 입혀져 손님 테이블에 앉혀지고 매일 할당량의 매상을 올려야만 했다. 이를 채우지 못하는 날엔 한없이 무대에 서 있는 벌을 받아야했다. 잠시 앉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의자가 날라 오거나 욕설과 뭇매가 쏟아졌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울부짖었지만 손님방에 들여보내져 윤락행위를 강요당했다. 학비를 마련할 욕심에 나이를 속여 한배를 탔던 16살의 필리핀 소녀 아마도 더러운 밤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렇게 한국은 잔인한 땅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런 정황이 필리핀 대사관에 알려져 구조되긴 했지만 억울함을 채 토해내기도 전에 윤락행위방지법 위반으로 강제추방됐다. 대사관과 길동무 등의 도움을 받아 업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600만원의 피해보상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승소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월급은 고사하고 10원짜리 동전 하나 받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 땅에서 호텔 밴드로 일하면서 에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을 제외하곤 한국은 영원히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공간이다.


이를 모르지 않기에 길동무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몇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옥으로 보낸 이에게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는 법정의 현실 앞에서, 그렇게 착취된 돈이 다른 사람 명의로 둔갑돼 집행조차 불가능한 ‘법’ 앞에서, 길동무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양 고개를 숙였다.


이런 사건들이 계기가 되어 법이 바뀌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 외국인 여성이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적절한 보호 속에서 국내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되었다. 하지만 피해여성이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하거나 혹자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그림자처럼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현실을 정의롭게 바꾸지 못하는 법이, 재판은 서류가 아닌 인생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나마 될 수 있었을까?


이주노동자란 이유로, 혹은 불법체류자란 이유로 월평균 70만원(여성부 2004년 실태조사)의 임금을 주고 휴일도 없이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성매매를 강요하는 업주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개비’와 불안전한 신분을 볼모로 행해지는 성매매가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그래도 세상 좋아졌다’ 말할 수 있을까?


힘들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기에 웃을 수 있다는 에미의 환송에 이별을 고했다. 재판당시에는 피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음에 마음이 무너졌는데, 지금은 에미의 딸들에게 대물림될 가난과 제2, 제3의 에미를 매일 만나면서도 달라질 줄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 더 큰 방관자가 된 것 같다는 길동무의 씁쓸한 고백을 안고. 오늘도 발걸음이 무겁다.


2005. 5. 13 필리핀 퀘존시티에서

 

<현재 에미가 살고 있는 집>


 

<에미네 집 거실에 놓여져 있는 신랑 각시 인형.. 그렇게 행복하게 에미가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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