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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한 아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였다. 돈을 줄까 말까..

조금이라도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돈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눈동자가 무엇인가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외면하자 아이는 더욱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손을 툭툭 쳐대며 1페소만 달라고 말했다. 매연을 피하는 손수건을 눈밑까지 올려 눈의 마주침을 피하려고 애썼다.

 

마침 집으로 향하는 차가 왔다. 재빨리 차로 뛰어가보지만 아이는 필사적으로 나의 행로를 방해했다. 그리곤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는 차를 쫒아버린다. 물론 어디가 정거장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차도에서 차는 그냥 쌩하니 지나간다.

 

그 순간부터 아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불과 10살도 채 안되보이는 아이에게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불과 5일전인가? 친구와 함께 필리핀 국립박물관에 갔었다. 마닐라 가장 중심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입구가 도로 뒷편으로 나있어서 그랬는지 박물관 앞은 한산했고 마침 주말의 오후라 그랬는지 행인보다는 노숙자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노숙자의 대열에는 필리핀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약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아이들은 수건을 코에 대고 약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곳의 광경이 적잖은 두려움으로 다가와 발걸음을 재촉했고, 박물관쪽으로 차도를 건너려고 할때 한 아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약을 하고 있던 아이들 중 가장 어린 아이였다. 7~10살쯤 되었을까? 친구가 가방에서 돈을 끄내려고 할때 아이가 먼저 가방을 붙잡고 늘어졌고 나와 친구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친구를 왼편에 서게하고 아이에게서 떨어뜨리려고 하자 아이는 약을 하고 있던 수건을 나의 얼굴에 드밀었다. 순간 이상한 냄새가 코전을 스쳤다. 반사적으로 아이의 손을 반사적으로 비틀었다.

 

그 순간 차도의 가운데 있던 한 노숙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뒷걸음 쳤고 나는 아무일도 아니라며 재빨리 길을 건넜다. 그 순간, 그 노숙자는 아이에게도 달려갔고 아이를 패기시작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노숙자들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다. 퍽하고 등과 머리를 치는 소리가 지독한 마닐라의 소음을 넘어 차도 건너편까지 들렸다. 하지만 길 건너편에서 선 나와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통때라면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겠지만 그렇게 말할 자신이, 그 대열쪽으로 건너갈 자신이 없었다. 또한 그자리에 서 있는 것 역시 무서웠다. 시선을 띄지 못한 채 발걸음만을 재촉했다.....

 

갑자기 그날의 기억이 스치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이의 손에 다른 무엇인가가 없는지를 살피게 되고, 한걸음씩 뒷걸음 쳐서 사람들의 대열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따라붙으며 내 손을 치고 있는 아이에게서 'don't touch' 라고 말했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내게 던지며 뭐라고 욕설을 퍼붓더니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지고도 한 동안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 그 공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몰라 헤맸다.

필리핀에 처음왔을때, 아이들의 눈빛이 나의 가슴에 큰 짐으로 남았다. 그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 것, 길거리로 나와 물건을 팔아야하는 현실, 힘든 노동과 욕설을 견디며 살아나간다는 것이 마주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때 적지 않은 필리핀 사람들이 그런 아이들의 위선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서 느끼는 어른의 공포에 대해서 말했다. 아마도 그때 그 얘기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공포를 이젠 내가 느낀다.

 

어떻게 그 공포를 나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필리핀 아이들은 나에게 어떤 존재로 남게 될까? 필리핀을 떠남을 앞두고 묵직한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모순이다. 이성과 몸의 원초적 반응과 그리고 감성의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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