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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하다는 말에 큰 맘 먹고 일주일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털어 국제전화를 걸어봤자 “야, 너 왜 전화해? 술 한잔 했냐?”고 말할게 뻔했다. 그래도 잠수를 타고 싶다는 메일을 받곤 연락을 안 하곤 배길 자신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술집의 시끌벅적함이 흐른다. “잘 지내요?”라는 안부 인사를 채 마무리하기도 전에 “미안해. 내가 다 망쳐놨어”라는 울먹임이 전해진다. 모르지 않는 마음이기에 울컥 울음이 솟구친다.
엉덩이가 들썩했다. 불연 듯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떠나오면서 한국으론 고개도 돌리지 말자 다짐 또 다짐했었다. 아무도 발목을 잡지 않겠지만 돌아보면 떠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7년을 인권운동이라는 공간에서 해왔던 숙제들을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함께 일했던 활동가들의 짐으로 하나씩 고스란히 떠넘기면서 ‘할 만큼 했다’며 ‘내 몫만은 아니’라고 독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지난 3년동안,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해 함께 싸웠던 이들이 법안의 국회통과를 놓고 느끼는 무기력함 앞에서 결심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만다.
항상 무기력함과의 싸움이었다. 주어진 과제들 앞에서, 심장을 울리는 목소리들 앞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했음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내 의지로 집회에 나가고 집회를 만들며 나선 시간부터를 운동이라고 한다면 지난 15년의 시간이 모두 무기력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항상 주저앉고 싶다는 욕심과 편하게 살고 싶다는 갈등과의 싸움이었다.
친구들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어 좋겠다’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좋겠다’는 부러움을 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식구들은 의지대로, 꿈을 쫒아 살 수 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항상 갈증을 느꼈다. 쉬이 결실을 얻을 거란 기대없이, 내 주머니에 무엇인가 채우고 싶다는 욕심없이 시작한 길이었지만, 그래서 운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조차 욕심조차 내보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쉬이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밤잠을 설치며 세월을 살아내도 너무나 굳건한 세상 앞에서 나는 ‘무기력’함과의 싸움을 하며 지쳐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처럼 믿었던 동지에게 등 돌림을 당하면서 앙칼지게 다른 길로 돌아서야 한다 생각했었다. 좀 더 길게, 나의 성을 쌓아야한다며 떠나온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눈조차 돌리지 않으려 했다. 근데 마음이 흔들렸다. 메일 한통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울먹이는 전화 한통에, 돌아가야 한다는, 그 무기력함이라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돌아가도, 내가 시간을 쏟아 붓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해도, 그들과 함께 날밤을 세우며 대책을 만들어도 쉬이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하지만 마음이 저려온다. 떠나야 한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그 아픔이라도 함께 해야한다고 마음이 머리보다 먼저 말한다.
그렇게 세월과의 싸움에서, 세상과의 싸움에서, 그리고 지독한 무기력함의 싸움에서, 동생을 ‘열사’로 먼저 보내고,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동지로 살며,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아온 선배가 말한다. “네가 말했듯이 난 45살, 정말 중년이다. 이제 늙어간다는 말. 앞으로 얼마를 더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배우가 무대에서 죽기를 바라듯이 죽음을 활동의 현장에서 맞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남아 있는 삶의 흔적도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면 좋겠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도 그처럼 세월의 풍파 앞에서, 이 질긴 무기력함 앞에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모래와 같은 활동가의 무기력함을 견디며, 자신만을 찾아 10년의 ‘동지’도 ‘신의’도 등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절박함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마주대하며 그들의 서글픔과 절망을 함께 나누며 동지들과 함께 나도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다시 전화를 해본다. 자정이 넘은 시각. 시끌벅적한 소리가 국제선 너머에서 들려온다. 자정까지 대책회의를 하고 방금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지난 3년간 한 가지 주제를 붙잡고 싸웠던 역사의 동지들이 웃는다. 그래도 함께 있으니 마음만은 든든하다고.
그래, 이렇게 내 소중한 이들이 살아간다. 무기력함에,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며 무너지면서도,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또 다시 옆에 있는 이들의 온기를 느끼며 다시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고 일어서고 다시 무너지고 그렇게 선다. 안도가 스민다. “힘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누구보다도 그 말은 내게 던져져야할 말임을, 그리고 그 말에 화답해야하는 것이 나의 인생임을. 무기력함의 싸움에서 나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들처럼 서있으면서, 운동의 길 가는 사람에게 작은 온기하나 나눠 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필리핀 마닐라에서.
필리핀을 흔드는 빗소리에 마음이 울적해 낮부터 술 취한 6월 19일 일요일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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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kip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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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오래전 시간으로 되돌아가 봤습니다. "그때 내가 운동(물론 좁은 의미로)을 계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기력함을 느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가 안되는데....매년 같은 날짜에 참가하던 집회에 8년만에 불참하던 날, 도서관 에어콘 냉기가 너무 싸늘하던 그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네요.그래도 자정넘어 국제전화할 수 있는 '여전한 동지'들을 두셨다니,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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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dong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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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그 무기력감을 긴장으로 운동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말할 수 있는 시선이 부럽습니다.무수한 현장에서 조합 깃발을 내리며 서로 깃발을 부등켜 않고 각자의 삶으로 가는 민주노조 깃발을 내린 노동자들과는 사뭇 다르게 다시금이라는 기회가 있기에... 이 글이 서글프면서도 현장 노동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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