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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과의 전쟁에서 생각하기

 

간만에 푹 자고 싶었다.

 

남들의 일상에 비하면 호사를 누리고 사는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10시간이 넘게 포장도 되지않은 동티모르의 도로를 밟으며 이곳저곳을 헤메고 돌아왔으니 할일이 산더미 같이 있더라도 오늘은 기필코 늦게까지 자보리라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만사 제치고 잠자리에 든 게 밤 11시 30분. 하지만 채 30여분도 지나지 않아 몸 이곳저곳이 간지럽다. 모기에 물렸으려니 하며 애써 무시해보지만 한군데만 가려운 것이 아니다. 열심히 몸을 긁어보지만 가려움이 가라안지를 않는다. 혹시 모기 말고 다른 벌레에 물린 것은 아닐까해 방안은 뒤적거려보지만 오늘도 오후 8시부터 전기가 나간 탓에 ‘촛불’을 들고 ‘민첩한’ 벌레들을 찾아보겠다고 설치는 것이 우스워 보여 몇 분하다 포기하고 만다. 가려움은 새벽내내 가라앉지 않았지만 마치 잠과 경쟁이라도 하는 냥 눈을 뜨진 않았다.


아침, 커텐 쳐진 창문으로 햇볕이 비집고 들어온다. 눈을 1/3쯤 떳다가 다시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닭이며 맷돼지 우는 소리로 집안이 들썩들썩한다. 이것도 무시해야한다. 어디 하루 이틀이랴, 가축의 목따는 듯한 울음소리가. 하지만 계속된 마리아의 괴성 앞에선 더 잠을 잘 수가 없다. 게다가 몸은 계속 간지럽기만하다.


씩씩거리면서 잠에서 깬다. 문뜩 좀 더 자고 싶지만 잘 수 없는 이런 여행이 너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려운 곳으로 시선이 향한다. 팔뚝이며 허벅지며, 목 뒷덜미며, 얼굴만 빼곤 발끝에서 목까지 벌레에 잔뜩 물린 흔적이 가득하다. 같은 집에 머물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쥐벼룩’에 물린 것 같다고 말한다. 약을 발라도 가라앉지 않는 가려움과 발열에 짜증이 밀려들었다. 그때부터 이집의 이곳저곳이, 동티모르의 이런 상황들이 너무 화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2주전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이후로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었다. 밤부터 나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뒷마당에서 펌프질을 하면서 머리를 감고, 대야가 비싸기도 하고 위생관념이 한국과는 달라서인지 방금 머리를 감은 대야에 집주인은 설거이 거리를 담는다. 주위에 닭과 맷돼지, 개들이 모여든다. 오전 내내 울어대던 이집 막내딸 마리아가 발가벗은 몸에 흙은 한아름 뒤집어 쓴 채 거실과 부엌을 헤졌고 다니는 통에 바닥은 온통 흙먼지로 가득찼고, 4살 먹은 이집 아들 구디뉴는 언제 마지막으로 씻었는지 조차 모를 손과 얼굴을 해서는 아침 식탁을 뒤적거린다. 내가 묶는 방안 문틈으로는 열심히 막아보려는 나의 선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생쥐가 민첩하게 방안 탁자 뒤로 숨어든다.


계속 몸을 긁어대면서 입었던 옷과 방안에 있는 이불보따리를 챙겨다가 뒷마당으로 나가 펌프질을 해댄다. 갑자기 이렇게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동티모르란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이 나라의 고요함이 좋았다. 99년 독립이후 어떠한 재건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가 궁금해 무작정 찾아들었다. 처음 딜리에 왔을 때, 5층을 넘는 빌딩이 없음이 좋았고, 오염되지 않은 바다의 광할함이 좋았다. 맷돼지가 뛰놀아 차들이 비껴서야하는 도로는 자연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흙에 파묻혀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한국의 아이들보다 풍요롭다 생각했다. 정리되지 않은 부엌살림을 보면서는 거의 매일 8시면 전기가 나가고 수도가 집으로 잘 들어오지 않아 개수대조차 없는 곳에서 살림살이의 정돈을 요구하는 것이 참 배부른 소리처럼 여겨졌다. 방안에 살림살이라곤 하나도 없어 맨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노곤함도 이곳 사람들의 살림살이, 그래서 잠 잘 곳이 없는 곳에 비하면 그래도 풍족하다 생각했다. 가끔 눈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도 낯선 이방인이 너무 많은 위생관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생쥐에 요란을 떨거나 몇일이고 받아 둬 먼지가 고인 물로 양치를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참 소란스럽다 생각했다. 근데 오늘은 내가 그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다 짐을 꾸렸다. 오늘은 내일마감인 원고도 하나 있고, 잠도 좀 자야겠고. 이것저것 핑계를 만드니 한순간에 한아름이 된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다며 점심을 먹자는 소리를 뒤로하고 약속이 있다며 빠져나와 근처 호텔에 짐을 푼다. 하루에 3만 5천원. 두명이 묶는 숙소이니 1만 7천원인 셈.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다. 얼마만에 보는지 모를 거울 위로 벼룩이 지나간 흔적이 가득 남아있는 내 몸이 비쳐진다.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이걸 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그동안 잘 지내왔잖아. 오늘 하루뿐이라고. 니가 호사스럽게 지낸 것도 아니고 1만 7천원이면 그리 비싼 돈도 아니라고. 게다가 오늘은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잖아라고.


맥주를 한캔 따고 언제 마지막으로 누워보았을까 싶은 하얀 침대위에 앉는다. 그렇게도 졸립고 자고 싶었는데,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이불위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맥주를 딴다. 그리고 원고를 쓴다고 부산을 떨어본다. 하지만 한 줄도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온몸은 계속 간지럽고, 물린 곳은 하도 긁은 탓에 핏줄이 선다. 계속 머릿속으로는 잘 온거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 항상 이렇게 도망칠 곳이 있다면 언제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는 것일까? 나의 고민은 땅위에 발 딛고 있는 것일까? 그저 생각으로만 시선이 그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나의 삶은 사람들 속에 있다고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시간째 풀리지 않는 고민만 계속한다. 무엇인가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호텔방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아니 일어서지 않는 것이다. 이런............


동티모르의 딜리에서 7월 19일 호텔방에서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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