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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불량거래-§6

(§6) {무수한 <이것>들이 언어라는 포승에 결박된 채  끌려와} 이렇게 지각의 사물이 된다.[1] 그리고 이와 같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에 한해서 의식은 지각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때 의식이 취하는 태도는 대상이 다가오는 대로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는 순수한 파악[2]이다. 이런 순수한 파악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참다운 것이다. 순수한 파악으로서의 의식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뭔가를 [자의적으로] 행한다면, 이런 행위는 [대상에] 뭔가를 더하거나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변경시켜 놓을 것이다. 그래서 대상이 진리이며 보편적인 것이고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3] 된다. 반면 의식은 가변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헤겔이 그렇게 파악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는 의식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그렇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4]. 그렇기 때문에 의식은 자기가 대상을 잘못 파악하고 착각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마디로 지각하는 의식은 착각의 가능성을 품고 또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의식이 왜 자기가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보편성이란 꼰대의 지배를[5] 받고 {온통 보편성으로 도배되어 있는} 지각이 그런 보편성 안에서 {감각적 확신이 보편성에 대항하려고 기대고 있는 <바로 이것>이라는 직접적인} 타자존재의 {질} 조차[6], {감각적 확신의 망각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지만} 자기에겐{지각하는 의식에겐} 곧바로 {쓸데없는 하루살이 존재로} 소멸되고 파기된다는 것을[7]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각하는 의식이 갖는 진리의 기준은 자기동일성이며[8], 그가 취하는 태도도 역시 [사물/대상의 자기동일성에 견주어] 자신을 동일한 것으로 유지하고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이 동시에 지각하는 의식에 대하여 있으므로 지각하는 의식이 취하는 태도는 결국 그의 갖가지 파악이 갖는 다양한 계기들을 서로 견주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교에서 불일치가 발생하면, 비진리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대상에 있을 수 없고 지각행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각하는 의식은 받아들인다.}



[1]원문<So ist nun das Ding der Wahrnehmung beschaffen.> <beschaffen>을<성상(性狀) 혹은 성질로 번역하지 않고(헤겔사전, 197-198쪽 참조) <가져오다, 조달하다>란 동사의 의미를 살려<어디 앞에 놓여있다>란 의미로 번역하였다.

[2]원문<reines Verhalten>

[3]원문<das sich selbst Gleiche>

[4]원문<sich>. <das Bewusstsein [ist] sich das Veränderlicher und Unwesentliche.>에서<sich>를 이렇게 좀 장황하게 번역하였다.

[5]원문<das Prinzip>

[6]원문<das Anderssein selbst>

[7]원문<als das Nichtige, Aufgehobene>. 아도르노의<부정변증법/stw113, 19쪽 이하>에 기대어 번역해 보았다.

[8]원문<Sichselbstgleichh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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