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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말

우리 정서는 말에 신경을 쓰는 전통으로 다져진 것 같다. ‘말을 아끼다”란 표현과 같은 표현이 다른 말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서양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우리말을 배울 때 적절한 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게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나이가 되었는데도, 일본 대지진과 관련해서 조용기란 목사와 같은 발언을 들으면 막 패주고 싶은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잠을 설친다.

 

이렇게 잠을 설치면서 떠오르는 생각.

 

제1명제: 일본대지진에 하나님이 있다. (조용기란 목사발언 참조)

반론: 야훼는 일본대지진에 없다.

근거: 열왕기상 19장11-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나고 난 뒤에 불이 일어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제2명제: 하나님은 자연의 힘을 동원해 그를 멀리한 사람을 벌한다. (다시 조용기란 목사발언 참조)

반론: 야훼는 계시의 하나님이지 자연의 뒤에 숨어서 벌하는, 그런 치사한 짓은 하는 분이 아니다.

근거: 구약성서 이곳 저곳. 대표적인 예: 요나, 소돔과 고모라 등.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에 자연현상을 읽는 점쟁이 짓을 하는 목사가 필요 없다. ‘계시’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야훼는 스스로 오거나 사자를 보내거나 아니면 3자에게 이렇게 저렇게 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일을 하는 인격체란 말이다. 그래서 흥정도 가능하다. 야훼가 조용기란 목사의 꿈에 찾아가 ‘내가 일본을 이렇게 저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조용기란 목사는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야훼와 흥정했기를 바란다. 안 그랬으면 목사란 옷을 벗고 점쟁이 점을 차리기 바란다.

 

말이 지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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