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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1.

내 기억에 배고픔의 기억은 없다. 배고픔을 체험해 보긴 했지만 배고픔이 지배적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페니히(Pfennig/유로화 이전 독일 마르크 최하 단위, 약 5원)를 긁어모아 밀가루를 사 본 적은 있지만 배고픔이 나를 사로잡은 적은 없었다. 손 가득 동전으로 밀가루를 살 때도 밀가루 대신 담배를 살까말까 망서렸다.

 

2.

아침이 멀건 죽이다.

“우리 이렇게 가난해? 며칠 더 견디기 위해서 이렇게 묽게 한 거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어?”

짝지의 볼이 볼그스레해지더니 이내 겸연쩍은 미소로 피어 오른다. 긴 산행 중 익숙해진 포리쥐(Porridge)를 종종 먹는다. 짝지는 이런 거 절대 안 먹는데, 아파 누워있을 때 해주었더니 맛있다고 종종 먹는다. 근데 우유 대신 물로, 그리고 묽게 끓어야 맛있단다. 근데 어찌나 멀것케 끓였는지 밑바닥이 보일 정도다.

배고픔의 기억은 어쩜 배고픔에 대항하여 싸우는 어머님의 기억일 거다. 배고픔을 그날의 측량단위로 환산한 어머님.

 

3.

독일에서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는 식품이 연 2천만 톤이란다.

베를린엔 쓰레기 처리되는 식품을 구하자는 청년들이 있다.  운동을 벌인다. 슈퍼에서 유통기한 이전에 버려진 식품을 쓰레기통에서 구해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산다. “containern”이란 신생어가 생길 정도다.

“식품나누기”(foodsharing)가 이제 독일 대도시엔 자주 보인다. 거주지 길목에 냉장고를 세워놓고, 거기다 샀지만 소비되지 않을게 빤한 음식물을 갔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소비한다. 이렇게 음식물을 구[제]한다 (Lebensmittel retten). (참조: lebensmittelretten.de)

 

4.

어제 제2차 식량관련 국제회의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약 8억이라고 발표했다. 절대 식품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다. 어찌해야 하나?      

전혀 보지 못했던, 식품이 넘쳐나는 서독의 슈퍼마켓에 구토하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먹지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과 언쟁을 벌였던 어린 시절의 논리는 단순했다. 너무 많이 먹는 놈이 있으니까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근데 이건 또 무슨 희귀한 현상인가? 못사는 사람들이 중심부에서는 뚱뚱하고 주변부에서는 삐적 말라 있다.

 

5.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는 걸 7대 죄에 포함해서 8대 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단테가 그 죄에 대한 형벌이 뭔지 실감나게 서술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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