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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변증법 (3)

앞에서 한국 진보.좌파의 퇴행을 “체계들의 차례”(Serie der Ordnungen, 자본론 제2판 후기)를 단절1로 대신한 좌파의 망각의 정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어제오늘의 생각이다. 새누리당의 약진, 홍준표 경남지사가 야기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 인성교육진흥법 등 최근의 일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곳 블로거 예술인생님이 늘 지적하는 점이긴 하지만.

 

참세상 김용욱 기자의 보고서 “계급정당 이번엔 건설할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더 정확하게 애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힘은]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 민족-통일 운동진영과는 선을 그었다.” 이 한마디에 속이 쓰리다. 이 말이 함축하는 내용을 완미하진 못하지만 모종의 단절을 감지하고, 이 느낌의 근거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제도권 내 진보세력=정의당를 비판하는 가운데,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대중운동 조직에 사회주의 정치를 드러낼 공간[] 확보”를 제시하지만, 양자 모두 단절이란 범주안에서의 정치세력화의 노력으로 분석될 수 있다. 잘될리가 없다.

 

진보.좌파는 자의 반 타의 반 종북몰이에 걸려 목욕통의 꾸정물과 함께 아이를 내버리듯이 (독일 속담: das Kind mit dem Bade ausschütten) ‘민족’을 내버렸다. 내버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식의 장에 출현한 의식 내재적 사건은 밖으로 쫓겨나지 않는다. 의식의 장에서 축출된 것(: Verdrängtes)은 결코 축출되지 않고 음영의 삶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 병적인 모습으로. ‘민족’을 ‘더러운 꾸정물’로 취급하고 그것을 ‘북한’과 연계시켜 잘라냈다. ‘민족’을 추방할 수 있는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북한 삼대세습 독재하의 인권유린을 두고 어찌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리하여 모순을 담아내는 능동 변증법이 아닌 배후에서 작동하는 수동 변증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는 내버려지고 꾸정물만 남게되었다.

 

이 꾸정물 ‘민족’이 새누리당의 서식지다. 이 서식지 생성에 ‘민족’을 발견적인, 인식을 돕는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진보.좌파의 결함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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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단절은 역사의 단절로서 “성찰적 문제의식[의] 부재”(참조: 예술인생, 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search/%EB%8B%A8%EC%A0%88)를 거쳐서 “심화되면 망각”의 지경까지 이르는 망각의 정치란 의미로 사용한다.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