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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 2: 독일 난민사태 최근 상황에 관한 횡설수설

1.

“호산나!”가 “십자가 형!”으로 변하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안 걸렸다.

이방인 배척과는 거리가 먼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유대인 전용의 신을 만인의 신으로 인식 시킨 것 외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는 기존의 경계를 새로운 경계로 대체한 것 외에. 바로 그 경계가 된 것 외에. “경계를 헐어버리는 자”(사도 바울, 고린도 전서)가 된 것 외에.

2.

우리는 시민이다. zoon politikon으로서 “권리를 가질 권리”(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가 있고, 그 권리(Recht)를 법(Recht)으로 보호 받는 시민이다.

근데 그런 Recht가 없는 '인간'이 등장했다. 근대 유럽의 국가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그런 국가를 한쪽(호명하자면 미국)에서는 임의적으로 파괴하고 다른 쪽(호명하자면 IS)에서는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국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zoon a-politikon'이 등장했다. '폴리스'의 삶(bios)이 없는 그저 생명(zoe)일 뿐인, 아니 모든 생명이 누리는 서식지조차 없는 '인간'이. 출신과 자리의 고유명사(크립키, 이름과 필연), 즉 이름 없는 '인간'이.

우린 이런 'zoon a-politikon'을 난민이라 부른다.


3.

메르켈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착각했다. 유럽의 문을 열었다고. 아니 유럽을 착각했다. 그러나 유럽은 아직 '폴리스'와 '노모스'가 빈 틈없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하나 둘 줄지어 문을 닫고 있다. 독일에서도 '폴리스'와 '노모스'의 복귀가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경계선에 'zoo'를 만들어 'zoon a-politikon'을 집단 수용하고, 시민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난민만, 즉 "prospective citizens"(한나 아렌트, we refugees)만 받아 주자고 한다.  

4.

새로운 '폴리스'와 '노모스'를 갈망한다. 'zoon a-politikon'이 살 수 있든 땅을 제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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