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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44

(§44) 수학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있어서 더 본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 [그 행위를 넘어서] 아예2 인식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과 함께 애당초부터3그가 소재라고 다루는 것에 결함이 있다는 점을 들어야 하겠다.— 인식 그 자체의 결함을 말하자면, 먼저 작도의 필연성이 오리무중이라 인식이 알아 먹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작도는 정리의 개념에서 나오지 않고 어디까지나 외부로부터 지시되는 것일 뿐이다. 무수히 많은 선 중에서 왜 꼭 그 선을 그으라고 애 손잡고 글 가르치듯 지시하는지 알 수야 없지만 그것이 증명을 진행하는데 적절하다고 순진하게 믿고 맹종하면서 삼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맹종한 데로 일을 다 보고 나야만그 합목적성이 드러난다.4 이 합목적성이란 단지 외피적인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바로 증명이 다 이루어진 후에 비로소 그 합목적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디. — 이와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것도 어떤 길을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길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 길이 뒤에 나오는 결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이런 증명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밑도 끝도 없이 불쑥5 [길 따라 쭉 널려있는] 특성이나 관계 중에서 이놈은 주워 먹고 저놈은 그냥 내버려 두는데, 도대체 어떤 필연성에 따라서 그러는지 전혀6 알아 먹을 수가 없다. 이것은 결국7 [마치 인민의 혁명을 통하지 않는 흠정헌법에서와 같이 군주가 인민에게 강요하듯]8 외부적인 목적이 증명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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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aber>를 이렇게 번역했다. 연장전 추가시간에 승부가 뒤집힌 흥미진진하게 진행된 축구경기를 보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Das war aber ein Spiel!” “진짜 재미있는 경기였다”는 의미다. 여기서 <aber>는 일반적인 경험에 기반하여 기대할 수 있는 경기에 대비되는 경기였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 원문 <eigentlich>텍스트로 돌아가기
  3. 원문 <ueberhaupt>텍스트로 돌아가기
  4. 전 독일 총리 콜이 즐겨 사용하던 문구가 생각난다. “Wichtig ist, was hinten rauskommt.” „중요한 것은 뒤에 나오는 것이다.“란 말인데 똥싸는 일을 연상시키는 표현이기도 하다.텍스트로 돌아가기
  5. 원문 <diese Bestimmungen und Beziehungen>에서 <diese>가 의미하는 직접성을 이렇게 번역하였다.텍스트로 돌아가기
  6. 원문 <unmittelbar>. 여기서 <unmittelbar/직접>는 생성의 운동에서 후자와 전자간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7. 원문 <;>텍스트로 돌아가기
  8. 원문에 사용된 <regieren/정권을 쥐다/지배하다/다스리다>란 낱말에 기대어 이렇게 번역해 보았다. 이 문단은 유사한 단어가 등장하고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순수이성비판>의 서설과 대비하여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수학적 인식에 대한 헤겔비판의 요지는 인민이 주체로 서지 못하고 단지 지배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