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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4
    답답한 마음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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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4/30
    정보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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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4/19
    맹자왈 공자왈 하지 말자(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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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4/11
    창작은 모방과 참조의 계기가 새겨져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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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04/10
    정신현상학 서론 번역초안을 마치면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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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04/03
    학문은 도둑질을 잘해야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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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 달래기

우컁컁님의 [북한이 어뢰를 쐈으면 안되는건가?] 에 관련된 글.

NK를 생각하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고자 로마제국의 시인  호라치우스의 편지 한편 (서신 1편, 18번째 서신)을 NK와 진보에 접목하여 번역해 본다.

 

"[북한과 관련하여] 어떤 사상을 권하기 전에 그 사상으로 인해서 발생한 잘못에 얼굴 빨개지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꼼꼼히 살펴보아라. 우리는 오류를 범하기 일쑤고 그런 오류를 범함으로써 [진보적인] 생각에 적합하지 않는 짓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권하는 사상이 자신의 잘못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는 잘못 봤다고 하고 그를 옹호하고 감싸지 말라.

 

그러나 네가 권하는 사상을 속속들이 알게 된 이상, 그 사상을 악한 마음을 품고서 야근야근 씹는 자가 있으면 그 사상을 단호하게 감싸라. 이때 너는 그것이 너에게 다가오는 위험이라고 감지해야 한다. 너와 맞대고 있는  이웃의 집이 불타면 너와 네 것이 상하게 된다.  그런 무관심은 보통 불을 더욱더 크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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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이선스

오늘 헤겔한테 얻어 맞고 정보라이선스 라인을 1로 하향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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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왈 공자왈 하지 말자

오늘 정신현상학 서론 §1에 올라온 덧글을 보면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 두 가지가 떠 올라서 이렇게 몇자 적어본다. 하나는 해부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헤겔이 학자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우선 후자부터 보자면 헤겔은 학자행세를 하는 사람을 호되게 질책한다. 가끔 민망할 정도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을 반쯤 죽였다라고 생각하면 흐뭇해 하고, 마치 사냥꾼이 짐승의 외피를 벗겨 보란듯 하듯이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천박하고 진부한 생각이 그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의식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이것은 정신현상학 서설 3문단에서 4문단으로 넘어가는 데에서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헤겔의 비판은 상대를 죽이는 비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뿔, 외피 등 노획물을 벽에 걸어놓는 성주도 아니고, 그런 사진을 벽에 걸어놓는 소시민도 아니다. 헤겔은 그 정도가 아니다. 헤겔이 하는 비판을 소박한 차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차라리 구제하는 비판(rettende Kritik)에 가깝다. 헤겔은 외피에 만족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차분히 않아서 상대를 해부해 낱낱이 살펴보는 사람이다. 이 점에서 헤겔은 데카르트의 자세를 철저하게 이어받은 사람이다. 다음 이야기는 Alfred Schmidt강의에서 주어 들은 이야기다. 하도 오래 되어서 세부적인 내용은 제시할 수 없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다. 하루는 데카르트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데카르트의 집에 가면 책이 억수로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책 한 권이 없었단다. 의아해서 데카르크에게 책이 없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고 들어오는 중이라고 대답했단다. 나가서 데카르트는 해부하고 있는 짐승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기 책이라고 했단다.

 

맹자왈 공자왈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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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모방과 참조의 계기가 새겨져 있다.

정신현상학 서론 번역초안을 마치면서 1

우선 임석진 교수님께 큰절한다.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엄청나게 좋은 것을 하나 훔쳐와서 그렇다. 도둑놈한테 도둑질 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절을 받으면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절은 해야 할 것 같다.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성이 아닌가 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임석진 교수의 개정번역본을 읽으면서 정신현상학의 조성에 귀가 확 뚫리게 되었다. 거침없이 훔쳐왔다. 조성에 귀가 뚫리니 읽어 내려가는데 또한 거침이 없다.

 

웹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정신현상학 번역에 대하여, 그리고 번역하는 일 자체에 대하여 이상한 생각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 한글 번역본>을 운운하면서 일본 번역본의 도움을 받아 원서를 읽어 내려가겠다는 의지다. 대단한 의지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원서를 일본 번역본을 <매체로> 하여 우리말로 <고스란히>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깔려있는 기본정서는 <직역>이다. 악보를 읽을 줄 알면 다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혹시나 하고 가서 보니 독어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정신현상학을 읽어 내려가면서 <>자가 붙은 모든 것이 어떤 호통을 받는지 귀가 뚫렸으면 한다.

 

이것이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두 번째 어려움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귀가 뚫리지 않아서 헤맸는데, 이제 귀가 뚫리니 헤겔의 곤장이 나를 때리는 곤장소리다. 그냥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잘도 때린다. 어쩌면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끈적끈적하고, 우쭐거리고,덜 되고이런 생각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는지 귀신 같다. 정신현상학에 들어가는 정문에는 라고 간판이 걸려있다. 내가 하는 짓이 심판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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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도둑질을 잘해야 한다.

문득, 학문은 도둑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문득>이지 사실 그렇지 않다. 잡다한 생각을 글로 옮기려다 보면 그런 잡다한 것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는 난제에 빠지게 되는데, 그때마다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말이 <문득>이라는 낱말이다.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들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라이선스 선택에서 를 골랐다. 그러다가 뭔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을 <정보공유라이선스 4>로 고쳤다. 그런데도 <뭔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 그리고 <정신현상학>을 번역하면서 문득(!) 내가 도둑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학문을 제대로 하려면 도둑질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Karl Krauss가 그랬던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지적인 것은 <남의 것이 될 수 없는 내 것>(Eigentum)이 아니라 <누구 것이든 하여간 내가 소유>(Besitz)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7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 간행되었던 라는 잡지가 있는데 는 국가의 허락을 받고 이적국가의 선박을 약탈하는 해적을 일컫는 말이다. 학문은 학문의 허락아래 Freibeuter처럼 도둑질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둑질을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번역하면서 내가 도둑질해서 쌓아놓은 <지의 창고>에 들어가 뭐 쓸만한 것이 없나 하고 들여다보니 쓸만한 것이 별로 없다. 마치, 미술박물관에서 들어가서 진품은 가만히 나두고 그림아래 붙어있는 딱지만 열심히 모아 논 것 같다. 진품을 들고 왔어야 했는데. 그래서 학문의 박물관에 잠입하여 도둑질을 다시 해야 하는 판이다. 짜증난다. 왜 그런 멍청한 좀도둑이 되어서 진품은 그대로 나두고 그런 쓸데없는 것만 잔뜩 모아놓았는지.

 

그러다 보니 학문의 전통은, 학문의 대행진은 큰도둑들의 대행진으로 보인다. 좀도둑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큰도둑들은 도둑질하는 기술을 닦고 또 닦아서 진품을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학문 박물관의 경비가 심해졌고 또 전시품을 이리저리 나눠나 도둑질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짜증만 내지 말고 어디에나 거침없이 들어가는 큰도둑이 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도둑질해온 진품에 딱지를 붙이는 일은, 즉 출처를 밝히는 일은, 도둑놈이지만 신사적인 차원에서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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