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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9/04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15)
    ou_topia
  2. 2014/08/26
    고향과 실향(29)
    ou_topia
  3. 2014/08/24
    보금자리(Zuhause)
    ou_topia
  4. 2014/08/21
    2014/08/21
    ou_topia
  5. 2012/08/22
    고향과 정체성
    ou_topia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Die Arbeiter haben kein Vaterland.”)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는 자명한 사실로 애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보면 그리 자명하지 않다. 상당히 많은 전제와 설명을 요구하는 주장임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즉, “노동자들에게 없는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Man kann ihnen nicht nehmen, was sie nicht haben.”)란 문장에서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서술이 “지구는 자전한다”란 명제와는 다른 의미구조를 갖고 있음이 인지된다. 이 문장의 진리조건이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형성은 ‘고향’(patria=아버지가 산 곳)의 상실을 전제한다. 이 상실은 역사가 애기해 준다. 그리고 노동자가 마주하는 ‘조국’은 ‘고향’의 형식이 아니라 국가의 형식이라는 것 또한 역사가 말해준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와 조국과의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문장에는 뭔가 빠져있다. 노동자와 조국의 관계는 부르주아지로 매개된 관계다. 달리 표현하면, 노동자와 조국과의 관계에는 노동자와 부르주아지와의 관계가 깔려있다. 노동자와 조국과의 ‘참다운’ 관계는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산당 선언은 이 투쟁의 길이 민족적이라고 한다. “첫 단계에서”(zunaechst)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통치권”을 장악하여 “민족적 계급”(“nationale Klasse”) 또는 “민족의 영도적 계급”(fuehrende Klasse der Nation)이 되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민족으로 세워야 하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필연이라고 한다(“Indem … muss”). (밑줄 ou)

국제주의가 추상 이상의 것이 아니며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게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말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지....  내용(국제주의)와 형식(민족)의 변증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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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실향

고향은 관습이 비교(秘敎)적인 코드로 암호화되어 [실재하는] 거주공간(Wohnung)이다. 이 공간에서는 관습이 신성화되어 있다. 고향에 뭍혀 사는 사람은(der Beheimatete) 그를 그곳의 사람과 사물에 은밀하게 묶어 놓는 그물망에 엮어져 있다. 이 그물망의 실은 깨어있는 의식을 넘어서 말못하는 갓난아이의,  태아의, 어쩌면 더 깊은 심령(Psyche)의 영역까지 이어져있다. 이 실은 대부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으로 장전되어 있다. [그래서] 고향의 사람과 사물은 사랑의 대상, 아니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 실이 산천초목, 주택,  혹은 기후와 같은 사물과 관계되어 있는 경우, 그 실을 끊어 버려야 하는 실로 인식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런 것들은 사물의 의인화, 즉 어떤 것과 어떤 이를 착오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물을 향한 사랑을 그리스 철학자들은 뮈투스로, 유대 선지자들은 이교로 하여 대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 실이 가족, 이웃, 그리고 이른바 이들의 ‘개성’과 관계되어 있는 경우, 그 실을 자유의 [발목]을 결박하는 관습으로 밝히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실은 [의인화의 경우처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고 받는 말이 그 근간을 이루고(dialogisch), 고향에 뭍혀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포에(Mitmenschen) 대하여 책임을 지게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책임감은 자유를 동반하는 현상이다. 이런 실은 – 예컨대 구아타마가 그랬던 것처럼 – 거침없이 끊어 버릴 수 없는 실이다. 그래서 고향에서 강제로 뽑혀지는 게 (혹은 스스로 자신을 뽑아내는 게) 아픈 것이다.

(빌렘 플루서, Heimat und Heimatlosigkeit: Das brasilianische Beispiel, in: Dericum, Christa/Wambolt, Philipp (Hrsg.), Heimat und Heimatlosigkeit, Berlin-Neukölln 1987, S.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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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Zuhause)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가장 큰 불안으로, 그리고 영생을 얻기 위한 소망을 가장 강력한 소망으로 팔아 먹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어제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어느 한 돌팔이 의사가 사람은 죽은 후에도 어딘가에서 계속 살게 된다고, 지구는 아니지만 다른 위성으로 옮겨져서 계속 살게  된다고 소란스럽게 주장하자 거기서 기다리던 할머니들은 더할 수 없는 근심걱정에 사로잡혔다. 한 할머니는 심지어 격분하기까지 했다. 마치 관청에서 그녀에게 죽은 후에 다른 구로 혹은 비엔나의 신개발도시로 아니면 린츠와 같은 [휘황찬란한] 이국적인 도시로 이주하라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것처럼 말이다. 타향에 대한 불안에 맞선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은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이 정 그렇다면 난 기꺼이 여기에 묻혀 누워있겠다. 이 자리는 내가 잘 아는 자리로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자리가 아닌가.” 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다 갑자기 그런 죽음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귄터 안더스: Philosophische Stenogramme, Muenchen 1965, S.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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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1

"고향을 주제로 삼으면 쉽게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있다. 향토학자들은 한동안 아편을 피우는 사람처럼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런가하면  아직 오늘날까지 알프스 영양 수컷의 등털[로 꾸민 고유복장 모자]를 보면 칼날같이 예리한 지식인이 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은 특히 남부독일에 있는 것 같다. (…) 고향, 이건 분명 [따라가기 싫은?] 뒤처짐을 일겉는 데 사용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래, 함부르크에 면방센티미터당 대졸자[Abiture/고졸]가 더 많고, 베를린에 안경당 책이 더 많고, 뒤셀도르프에 두당 20세기가 더 많다고 기꺼이 시인한다. 허나, 베를린함부르크뒤셀도르프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곧 따라갈 거다. 따져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현지시간이 70년전에야 비로소 중앙유럽표준시에 종속되지 않았던가. 반면 이곳 시민들의 [행진]드럼은 [독일제국건국의 마지막 전투인] 세당[전투] 후에도 25년동안이나 [프랑스 혁명] 트리콜로르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25년이 지나 후에야 비로소 [프로이센 주도 북부독일연맹/독일제국/나치제국 기의 색인] 흑백적에 장단을 마췄다. 덧붙이자면 슈바벤 짜이퉁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독일민주공화국[DDR-동독]이 인용부호없이 [떠떳하게] 등장했다. 물론, 이 지역에서 이런 걸 말할 때 저 일간지를 주교에 밀고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마르틴 발저의 1968년 에세이 "향토학"에서 발췌)

 

Wenn es sich um Heimat handelt, wird man leicht bedenkenlos. Volkskundler waren eine Zeit lang gefährdet wie Opium-Raucher. Andererseits gibt es heute noch Leute, die können keinen Gamsbart sehen, ohne sich gleich als schneidige Intellektuelle zu fühlen. Heimat scheint es vor allem in Süddeutschland zu geben. (...) Heimat, das ist sicher der schönste Name für Zurückgebliebenheit. Ach wir geben es doch zu, Hamburg hat mehr Abiture pro Quadratzentimeter, Berlin mehr Bücher pro Brille, Düsseldorf mehr 20. Jahrhundert pro Kopf. Trotzdem sollte man sich in Berlinhamburgdüsseldorf nicht zu viele Sorgen um uns machen. Wir kommen schon nach. Schließlich wurden unsere Ortszeiten erst vor 70 Jahren der mitteleuropäischen Zeit unterworfen. Dafür waren aber auch hiesige Stadttrommeln noch 25 Jahre nach Sedan mit den Farben der Trikolore bemalt; dann erst wurde hier schwarweißrot getrommelt. In der Schwäbischen Zeitung wiederum steht seit Jahr und Tag DDR ohne Anführungszeichen. Allerdings, man kann so etwas hier nicht notieren, ohne das Gefühl zu haben, man hätte die Zeitung dadurch beim Bischof denunziert. (Martin Walzer: „Heimatkunde“, in: Heimatkunde. Aufsätze und Reden, Frankfurt a. M. 1968, S.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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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정체성

ou_topia님의 [어린이를 뮈토스화하는 독일 개혁교육학 비판] 에 관련된 글.

 

"Der Mensch lebt noch überall in der Vorgeschichte, ja alles und jedes steht noch vor Erschaffung der Welt, als einer rechten. Die wirkliche Genesis ist nicht am Anfang, sondern am Ende, und sie beginnt erst anzufangen, wenn Gesellschaft und Dasein radikal werden, das heißt sich an der Wurzel fassen. Die Wurzel der Geschichte aber ist der arbeitende, schaffende, die Gegebenheiten umbildende und überholende Mensch. Hat er sich erfaßt und das Seine ohne Entäußerung und Entfremdung in realer Demokratie begründet, so entsteht in der Welt etwas, das allen in die Kindheit scheint und worin noch niemand war: Heimat."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 원리, 마지막 부분)
 
"인간은 어떤 곳에 살든지 아직 역사의 문턱 바깥에서 살고 있다. 아니 전체와 그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아직 세계창조를, 올바른 세계로서의 창조를 기다리고 있다.  참다운 창조는 태초가 아니라 끝[장]에 있다. 이 창조는 사회와 현존재가 급진적이 될 때, 즉 자신에게 손대는데 있어서 뿌리까지 내려갈 때 비로소 착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데 역사의 뿌리는 분명 노동하는, 창조하는, 주어진 것을 뒤집어 바꿔 새로 짜 맞추는 가운데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이다. 그가 자신을 스스로 움켜쥐고 자기주변을 외화와 소외 없이 현실화된 민주주의 바탕에 굳게 세우고 그것이 완성될 때 비로소 세상에 생성되는 것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번득이면서 유아기로 비춰 내려가는 것, 하지만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 바로 고향이다."(ou_topia)        
 

 

 

이 말이 일부가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될 때였다. 이 희망의 세계가 참작하는 욕망이 아무런 매개 없이 충족되는 유아기는 어린이를 감싸고도는 부르주아의 유년기임을 한 순간에 깨닫게 되었다. 왜 거짓이냐고? "모두에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사람을 내 주장의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    


한국에 나가면 가능하면 바로 시골 고향에 간다.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라 상수도, 하수도가 없고, 화장실도 물론 재래식이다. 그러나 전혀 불편하지 않다. 모든 것이 좋다.


어렸을 때 말 안 듣고 부잡하기로 유명했다. 매를 때리려고 해도 도망가 버려서 맞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먹히는 주문이 하나 있었다. “계속해서 그러면 00에게 장가보낸다.” 란 말이었다. 옆집에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살았는데 정말 못 생겼었다 (미안해!). 장가간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건 나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그 여자아이를 몇 년 전에 만났다. 얼마만인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가정주부였다. 그녀의 언니가 아직 시골 고향에 살고 있는데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늘 00이가 날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전화했다.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무나 반가와 한다. 짝지랑 같이 만났는데, 짝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같이 하는 동안 내내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내가 니를 언만큼 조아했는지 니 아냐. 00댁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숨어서 날 훔쳐봤단다. 내가 피해 도망 다녀서.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00이는 식구와 함께 일찍 고향을 떠났다.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손은 시베리아에서 벌목하다 독일로 이주하여 공장에서 막일하는 독일계 아저씨의 손, 석면제거공사장 막일노동자의 손과 다름없다. 거칠다.


00이네는 정말 못살았다. 이건 내가 그 당시 알았던 것이 아니다. 당시 알 리가 없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힘겨운 일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 집에서 빌어먹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런 걱정 없이 자란 내개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안다는 것도 한국의 70/80년대에서 무산자가 어떻게 살았을 거라는 추상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고향을 떠난 후 고향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한 번도 없단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단다. 그때 순간적으로 고향이 다 고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정체성의 본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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