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기억과 주체화

번역시도: 파울 첼란 - Zähle die Mandeln (살구씨를 세어라) 2

첫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렵다. 누가 누구에게 청원하고 있는가?

 

우선 뭘 청원하는지 보자. 살구씨를 세는 일. 똑같이 반복되는 손동작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뭔가에 붙잡혀 그만 둘 수 없는 일 같다. 마치 공장에서 그저 흐르는 시간에 맞춰 같은 손동작을  반복하듯이. 걷어 차버리고 일어 섰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 같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의 배경은 쇼아(홀로코스트)다.  시적 주체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쇼아를 살아남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쇼아의 ‘경험’(여기서 경험이란 말을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이 어쩜 시간을, 인간이 본원적으로 향유하는 시간을,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합성된 시간을 파괴하여 순차적으로 그저 흐르기만 하는 선형시간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선형시간의 지배아래 그저 순차적인 시간을 모방하여 하나, 하나 세기를 반복하는 멜란콜리아의 지배아래 있는 쇼아 생존자가 시적 주체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아닌지.

 

그렇다면 청원이 아니다. 청원하는 일이 이미 현실이다. 청원이 아니라 최소한 안쓰러운 마음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라. 그게 달램이 된다면...’      

 


그래, 살구씨를 세어라 [일일이]
그래, 널 갈기갈기 찢고 잠못이루게 했던 걸 세어라 [반복해서]
나도 그래, 같이 하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번역시도: 파울 첼란 - Zähle die Mandeln (살구씨를 세어라)

I.
1    Zähle die Mandeln,
2    zähle, was bitter war und dich wachhielt,
3    zähl mich dazu:

II
4    Ich suchte dein Aug, als du’s aufschlugst und niemand dich ansah,
5    ich spann jenen heimlichen Faden,
6    an dem der Tau, den du dachtest,
7    hinunterglitt zu den Krügen,
8    die ein Spruch, der zu niemandes Herz fand, behütet.

III
9    Dort erst tratest du ganz in den Namen, der dein ist,
10  schrittest du sicheren Fußes zu dir,
11  schwangen die Hämmer frei im Glockenstuhl deines Schweigens,
12  stieß das Erlauschte zu dir,
13  legte das Tote den Arm auch um dich,
14  und ihr ginget selbdritt durch den Abend.

IV
15  Mache mich bitter.
16  Zähle mich zu den Mandeln.

 


시 연 I)

3개의 청원하는 명령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가 누구에게 청원하는 것인지 그 주체와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

 

시 행 1)

zähle
- 모델 독한사전 : (수를) 세다; 헤아리다, 일일이 세다; ...의 수에 달하다, ...의 수를 이루다; 계산에 넣다, … 속하다; 값이 나가다, 효력이 있다, 가치를 인정하다, 의미를 갖다; 믿다, 기대하다

- 어원사전 : 영어의 ‘to tell’과 어원이 같음. ‘보고하다’, ‘이야기하다’

- 연상 : 화창한 늦가을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은행을 일일이 씻고 있는 할머니. “이거슨 내 일 이랑께.” 신동엽의 ‘조국’.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zähle die Mandeln
- ‘살구씨를 일일이 세어라’ 왠 뜬금없는 살구씨야?

 

시 행 2)

bitter
- 모델 독한사전 : 쓴; 괴로운, 아픈; 찌르는
- 어원사전 : beißen (깨물다), Beil (도끼)와 어원이 같음. 상처를 입히는 것, 둘로 쪼개는 것

 

zähle, was bitter war und dich wachhielt
- 아팠던 것과 널 깨어있게 했던 것을 일일이 세어라.

 

아팠던 것과 깨어있게 한 것과의 관계
- 예레미야 1장 살구나무 가지 비유  :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절)하고 나서 주님이 묻는다.  “예레미야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는냐?” 내가 대답하였다. “저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 “네가 바로 보았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 보고 있다.”(11-12절) 원문 schkd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schaked (샤케드 : 살구나무) 아니면 schoked (쇼케드 : 지켜보다)가 됨.

- 살구씨, 즉 날 둘로 쪼개는 아픔과 깨어 지켜보는 일은 질료적으로 같은 것.
깨어 지켜보는 이는? 시적 주체의 대화의 대상은?
 

시 행 3)

zähl mich dazu:
- 연상 : 할머니, 나도 씻어 줘. 나도 씻어 거기어 더해 줘.
- 시적 주체는 몸소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는가? 씻김?

- 연상 : 1986년 (1987년 이었던가?) 베를린 세계문화(들)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Horizonte'(지평들)에서 선 보였던 진도씨낌굿. 기나긴 하얀 원단을 몸으로 둘로 가르면서(찟으면서) 나가는 장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