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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15
    2021/05/15
    ou_topia

2021/05/15

[번역: 장 파울, 독일의 황혼, 일부]

 

프랑스식과 독일식: 마지막 보기

군인이 언제나 들이닥칠 수 있는 집에 살면서 이런저런 짐을 져야하는 짐꾼 밖에 아닌 우리 독일인에게서 프랑스인이 본뜰 만한 게 있다면 아마 우리의 도주성, 경박함, 그리고 자주 변하는 감성일 것이다. 프랑스인은 굳어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강건했다. 여러 면에서 새로운 세대의 유일한 카토들이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데카르트의 철학을 고수하고 또 볼테르의 철학을 고수할 수 있었겠는가! 코르네유, 라신, 그리고 볼테르 등 그들 비극의 성자 3인이 요지부동의 요새가 되고 세대의 유행이 된 문학을 제공하지 않았는가. 상비군에서 시작하여 천편일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정된 것들의 창시자인 프랑스인들은 비극에서처럼 그들의 오래된 관심사인 연락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가장 중요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오래된 것이다. 여기에 바로 그들의 본명이 있다. 몽유병환자는 권총소리에는 깨어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깨어난다. 바로 이런 이름이 그들의 본명이다. 
반면 우리는 제자리에서 껑충 뛰는 독일식 곡예사, 유럽에서 흔적없이 녹아버리는 소금, 또는 갖가지 제국의 육체를 윤회하는 심령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이렇게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시대를 쫓아 따라갔고 시대는 또한 우리를 항상 걷어갔다. [...]

하긴 여태 단절의 연속으로 이어진 불화 가득한  독일 제국의 헌법은 우리로 하여금 황제가 군림하는 수도와 함께 특수한 지역의 사상(Residenz-Meinung)에 묶여 있지 않게 함으로써 어떠한 민족, 심지어 독일 민족이 될 수 있는 자유를 부과했다. 이렇게 우리는 결국 모든 면에서 개방되고 충분한 코스모폴리턴이 되어 어디나 들어맞는 민족(Allerwelts-Nation)이 되었다. [...]

그러나 모든 미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집에 머물러 있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자기 자신을 계산에 넣어야만 겨우 하나의 미를 찾을 수 있는 자기 집에서 말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본뜨는 건 말할 나위 없고, 심지어 우리 자신 스스로를 본뜨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더 원형을 만드는 사람들이고, 복사본이기 이전에 오리지날들이다. 위대한 천재들이 자기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본뜨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 것을 다른 민족에게 옮기고 이들의 것을 우리 민족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극락 행 지옥 행 따지지 않고 어떤 놈이든 뱃삯만 주면 다 옮겨주는 카론처럼 옮기는데 급급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유럽의 더할 나위 없는 흉내쟁이와 맞장구 치는 자들로서  모든 것을 우리 것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향을 피우는 제단은 이동식 제단으로서 어떤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신 앞에 펴고 얻어먹을 수 있는 제단이다. [...] 우리의 이런 변덕스러운 양상에 잘 어울리는 게 있다면 다른 나라 및 사람들과 교환함으로써 매번 아쉽고 급급한 유행과 처신의 변화를 공급받는 게 아닌가 한다. 심지어 댄스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우리는 우리 앞에 풍부하게 진열된 외국에서 들어온 댄스를 추기 바쁜데, 우리 독일 댄스를 Anglaisen, Ecossaisen, Polonaisen, Quadrillen 등 외국 댄스와 함께 Allemande란 낫 서른 이름으로 추기까지 한다. (...) 더이상 웃을 수 없는 건 우리 사회의 마당이 외국의 미와 처신으로 주조된 마당일 때다. 이때 우리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함으로써 그저 동물과는 반대로 어떤 음식과 기후이든 끄떡없는 인간 그 이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외국 유행의 발자국에 발을 맞추는 우리지만 집에 오면 토착민을 걷어차는 대척자가 된다. 그저 하나의 변화를 따오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은 바로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을 만들고, 새로운 유행을 따르지 않는 건 최신 유행을 들고 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우리를 유럽의 원숭이라고 부르는 건 어떤 동물학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고귀하고 진지하고 우중충한 오랑우탄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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