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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1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NK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을 인용하고 싶지만 무단전재 및 재배포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부분인용을 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해 보려고 한다.

 

염돈재의 글 기조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비로서 “(…) 독일 통일의 교훈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 한반도 통일정책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첫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모방한 독일 총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관한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는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염돈재는 이 정책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독일 통일 관련  “독일 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동독 민주혁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였나? 원문에 기대어 이 주장의 실과 허를 살펴보자.

 

“Das Ziel einer solchen Politik kann natürlich nicht sein, die Zone zu erpressen, denn kein
kommunistisches Regime, und schon gar nicht das so gefährdete in der Zone, kann sich durch
Wirtschaftsbeziehungen in seinem Charakter ändern lassen. Aber das haben schließlich auch nicht die Amerikaner verlangt, als sie Polen Kredite gaben, und das ist auch nicht der Sinn des
amerikanischen Wunsches nach verstärktem Osthandel. Uns hat es zunächst um die Menschen zu gehen und um die Ausschöpfung jedes denkbar und verantwortbaren Versuchs, die Situation zu
erleichtern.”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쏘련 지배하의]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공산주의 정권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동독지역(Zone)에서와 같이 [지위가] 위태롭기 짝이없는 정권은 더더욱,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의 [억압적인] 성격이 변화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schliesslich)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동독] 사람들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erleichtern)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철저하게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수정된 인용: http://blog.jinbo.net/ou_topia/566)

 

“접근을 통한 변화” 연설문 원문에서 동방정책의 기조가 ‘동독정권 변화’라는 걸 도출할 수 있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은 동독정권이 잘하면 변할 거라는 낭만에 젖어있지 않다. 오히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전제한다. 매우 실용주의적인 미국 사고방식이 이 정책의 기조다.

 

그럼 염돈재는 왜 저렇게 말할까? 독해력이 문제인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정치적 아젠다에서 도출된 주장인가?
 

진정 살펴봐야 할 문제는 교묘하게 회피한다. 문제되는 것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과 동독의 ‘민주혁명’ 사이의 관계다. 이게 긍정적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관계였는지, 학자라면 바로 이걸  연구영역으로 삼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이야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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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을 통한 변화와 북한인권법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가 되었던 에곤 바르의 발제 “Wandel durch Annährung”이 “접근을 통한 변화”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다.

 

우선 이 번역에서 건너오지 못하고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게 혹시 있지 않나 살펴보고자 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를 번역하기에 앞서 그 사상의 기조가 기독교적인 정신과 인본주의가 사상이라고 했다. 막연하게 내던진 말이고 공허하다. 말은 또한 약속이므로 이 공허한 공간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Wandel durch Annährung"이 함유하는 사상의 기조를 말의 의미를 음미해 봄으로써 약속을 지켜보고자 한다.


1. Annährung-접근(接近; 사귈 접, 가까울 근)

 

1) 첫 접근-erste Annährung (!)

 

예수님은 유대인과 그 이웃 사람들이 사는 땅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치유의 역사를 행하셨다. ‘역사’라고 하지만 별로 거창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 머리에 손을 얹고 세게 기도하는 등 장풍을 날리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복잡한 심리상담을 하지 않으셨다. ‘가까이 가’ 주셨거나 ‘가까이 오’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몇 마디 하셨다. 이게 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변화, 즉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2) 어원

 

‘접근’(Annährung)의 주구성부 ‘Nährung’은 genesen(낫다, 회복하다)과 어원이 같다. genesen의 어근 ‘nes-'는 ’[위험, 병 등에서] 빠져 나오다, 면하다, 생명을 혹은 건장을 유지하다. 운 좋게 귀가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 혹은 바탕에 주목하는 (古)인도어 ’nasate‘는  '[누구의] 동무가 되다, [누구와] 결합/연합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어 neomai(운 좋게 귀가하다/도착하다), Nestor(네스토르=항상 운 좋게 귀가하는 사람) 등도 어근 ’nes-'를 갖고 있다. (두덴/Duden 어원사전 참조)

 

,Nahrung'(양분, 양식)과 어원이 같은 'nähren'은 ‘[위험 등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양분이다. 이 양분은 앞의 말 연장선에서 보면 연합/결사다.

 

3) 'an'

 

가장 골치 아픈 독어 전치사. 방향성(라. ad)과 더불어 ‘가까이 감’의 도착점을 말해주고 있다. 어디까지 가까이 가야 하는가? 다다를 때까지. 매우 기독교적인 운동이고 [정신]자세다. 나병환자와 몸이 부딪칠 때까지. 하나 될 때까지. 아무런 전제조건이 없는 운동이다.

 

2. Wandel(변화)

 

카프가의 ‘변신’(Verwandlung)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난다. 오비디우스도 ‘변신 이야기’(Metamorphoseon libri)의 들어가는 말에서 변신의 원인이 신에게 있고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한다.

 

정신현상학 서설 §24(http://blog.jinbo.net/ou_topia/80)의 ‘wirklich'를 좀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목에서 [근데 이건 뭐야, <>안의 독어들이 하나도 안보이네. 시간 내서 다시 삽입해야겠네.] wirklich(현실적), werden(되다), Werk(작품), wenden(뒤집다) 등에 이어 Wurm(지렁이)까지 어원이 같다고 했다.

 

‘Wandel’(변화)도 여기에 속한다. 지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가는 뒤집어지기(wenden)의 연속성, 진행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행위 자체이지 어떤 목적의 수단이 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접근을 통한 변화’의 'Wandel'을 루터가 남긴 말 ‘Handel und Wandel’의 의미로 이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적 사상에 물든 이해다. ‘Handel'은 사는 행위이고, ’Wandel'은 이윤을 붙여 다시 돈으로 바꾸는, 변형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접근을 통한 변화’는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는 접근을 이야기하고 있다.

 

3.

 

앞에서 얘기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접근과 변화’는 기독교적인 사상과 인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선 기독교인의 기본자세인 겸손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의 겸손이란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가 높을 줄 다 알면 날 낮추는 게 무지 쉬운 그런 겸손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 앞에 서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게 내면화된 의식이다.

 

'북한인권법'을 외치고 “서독이 인권유린 감시하자 동독 주민 탄압 줄었다.”라는 식의 보도는 ‘접근을 통한 변화’에서 배우자고 하면서 그 정신은 멀리하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열되는 사실들은 정신이 빠져있는 허섭스레기일 뿐이다.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중앙기록보존소를 설립하는 등 압박도 병행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한다. 주지하다시피 중앙기록보존소는 1961년에 설립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실시된 ‘접근을 통한 변화’의 정책과 병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권을 수단으로 삼아 압박을 가하는 것을 폐기하고, 다시 말해서 인권을 등에 업고 인권을 무기로 휘두르는 교만을 포기하고, 자신도 역시 인권의 지배아래 두고 인권 앞에서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고려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와 같은 자세를 인권 앞에서 취한 것이다.

 

“인권의 관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에 기여하는 것 외 절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연방정부에게는 인권정책이 다른 국가들에게 우리의 국가 및 사회모델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다. 인도적인 편익[을 증진하는 조치들은](Erleichterungen) 독일연방공화국 정치/정책의 중요한 요소다. 연방정부는 동독(DDR)과의 관계에서 한편으로는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법적, 정치적 가능성들을 전부(voll) 사용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못지않게(aber) 또한 이것과 [=모든 가능성을 다 사용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된 [우리의] 행동이 동독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항상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연방정부는 독일 상황의 특수성 앞에서 어떤 경우든, 어떤 행동을 혹은 말을 하기 전에, 미리 우리의 행위가 [야기할] 생각가능한 모든 사실적인 결과들을 더할 수 없는 성실성을 다해 검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1979.9.20 연방정부의 인권정책에 대한 야당(기민기사연합)의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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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3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에서 동구권 국가들과의 교역이 가능한 한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독일에 적용하면 대단히 넓은 [실용]영역이 전개된다. 이 영역을 먼저 우리들의 가능성 및 한계들의 관점에 따라서 [시침바느질하듯] 길잡이가 되게 나누면(abstecken) 좋을듯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가능성들이] 지금까지 언급된 그 어떤 수보다 훨씬 더 크다. 앞에서 언급한 제한아래 동서교역의 강화가 서구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im Interesse des Westens)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또한 독일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때에 우리는, 익히 알려진 [조무래기의] 자세를 일컫는 잘 알려진 쾰른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고집을 피울(pingelig sein)1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정권은, 더군다나 동독지역에서와 같이 위협을 받은 정권은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이 성격이 변경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2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인간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간의] 상황을 편하게 하는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철저하게 다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개선은 [아마] 동독지역에서(Zone) 긴장완화의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보다 더 강화된 소비품공급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소련에서 소비욕구가 불어나 긍정적인 효과에 기여했다. 이게 동동지역에서는 (Zone)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련은 서구를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서구와의 경쟁에] 나섰다. 다른 영역이 아니라 서구가 가장 강한 생활수준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이야말로 필경 서구를 모범으로 삼고 서구의 능력에 눈을 맞추고 있다는 건 차치하더라고 이런 정책이 동구권에서 동독(Zone)만을 제외할 수 없다는 건 명료하다. 생활수준의 향상 과정을 가속하는 건, 이를 통해서 다층적인 종류의 편익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강화된 경제관계로 강화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럼 [그런 편익이 제공됨으로써] [동독의] 동포들의 [동독 정권에 대한] 불만족이 느슨해지지 않나하는 [그래서 분단이 영구화되는]걱정까지 할 수 있겠다. [잘못된 생각이다.] 역으로(aber) 바로 그게 바람직한 것이다. 바로 그게 통일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결과 [상황을] 필연적으로 [통일의] 후퇴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요소가 누락되는 또 다른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편익으로] [동독] 정권을 지원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aber) 나는 바로 [동독] 정권붕괴를 통해서는 실천가능한 길이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논리의] 개발을 시도했다. 나에게는 오직 소련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소련의 개입을  불러일으킬 혁명적인 격변의 위험이 수반되지 않게 극소량의 분량으로 생활고를(Erleichterung für die Menschen/여태 편익으로 번역함) 덜어주는 좁은 길만 보일 뿐이다.

 

연방정부는 최근 정부성명에서 ‘[우리는] 동독지역의(Zone)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협상요구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응할 수 있다면, 많은 것에 관한 대화의 창구가 될(mit sich reden lassen)’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이때 인도적인 고려가 민족적인 고려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의 상술을  이런 맥락의 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아차리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장벽이 약함의 증후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게 공산주의 정권의 불안과 자기보존의 증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전적으로 정당한 [동독정권의] 근심걱정을 점진적으로, 동독이 보기에 [서독과의 협상이 수반하는] 위험이 감수할 만하기 때문에, [동독의 동의하 철통같은] 경계와 장벽의 완화가(Auflockerung) 실천가능하게 될 때까지 덜어주는데 있다. 이것은 접근을 통한 [점진적] 변화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는 정책/정치다. 나는 우리가 이런 정치/정책을 아무런 환상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 나아가 이런 정치는 평화전략이라는 서구 구상에 꽉 들어맞는(nahtlos) 정치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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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쾰른 등 라인강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 'pingelig'의 어원은 ‘peinlich'로서 죄(poena 라틴어)를 의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치심을 느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나 뭔가를 잘못하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잘못을 꺼내는 소시민적인 심정을 일컫는 말. 주지하다시피 쾰른시민들은 느긋하다.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을 보고 살아서 그런지 쾰른 대성당을 짓는데도 근 600년이 걸렸다. 돈이 떨어지면 공사를 중단하고 돈이 생기면 계속하고. 앞 포스팅에서 소개한 ’저항의 미학‘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에서 느끼는 감정을 ’peinlich'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불쾌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수치심을 돋우는 거’라고 번역했는데, 독어에는 이런 [변증법적] 관계에서 부동하는 말들이 많다. 이런 웅성거림의 번역이 참 어렵다. 이런 웅성거림 때문에 독일에서 변증법이, 해석학이, 소통이론이,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이런 웅성거림을 해소하자는, 차후 20세기 영미철학의 주류가 된 의미론이 태동하지 않았나한다. 내친걸음 한마디 덧붙이자면 칼 슈미트가 지적했다시피 독어는 신학자와 장인의 언어인 것 같다. 이런 결합의 결정체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아니가 하고. 횔더린은 휘레리온에서 독어의 장인적인 성격에 통탄한 반면 헤겔은 장인의 숙련을 높이 평가했지 않나한다. 암튼 숙련된 장인은 느긋하다. 엄밀한 잣대로 재봐야 하니 어쩌니 등 개고집을 피우지 않고 수많은 시도로 숙련된 눈짐작으로 벽돌을 척 둘로 나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진보넷 바깥블로그 EM님의 글 ‘숙청과 공개처형 사이’가 이 논리를 정교하게 전개하고 있다. http://socialandmaterial.net/?p=5736텍스트로 돌아가기

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2

하지만 동독지역(Zone)에서의 변화는 매우 어렵게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독은 정치적인 발전 면에서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보다 더 낙오해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울브리히트가 권력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스탈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러기 때문이었다. 1953년의 경험들은 크레믈린이 보기에 동독지역에서(in der deutschen Zone) 사람들에게 편익을 허용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이건 바로 갈라진 민족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폴란드 혹은 소련 등과 달리 사회적 경제적인 요구들이 곧바로 [서독으로 가자는]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요구들로 전복되기 때문이다. [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과 비교해서 뚝 떨어지기 [때문에] [동독사람들이]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쏠리는 것은 [직관적인] 현실이다 (Das Gefälle zur Bundesrepublik ist da/동독사람들이 서독으로 쏠리게 하는 낙차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낙차(落差)는 18년간의 공산주의 지배로 제거될 수 없었다. [생산]목표량(Normen)을 더 적게 하라는 요구에서 [출발한] 1953.6.16 [의 봉기가] 스탈린알레(Stalinallee/도로명)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재무부(Haus der Ministerien)로 가는 도중에 자유선거를 실시하라는 요구가 되었다. 울브리히트 정권은 고삐를 놓치고, 오직 소련 전차의 힘을 입어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결과는 울브리히트의 지위 강화였다.

 

동독지역을(Zone) 소련 영향권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저쪽 정권의 직접적인 붕괴를 지향하는 모든 정책이 아무런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은 우리의 분통을 터뜨릴 만금 불편하고 우리 감정에 거슬리지만 논리적이다. 이 결론은 변경과 [그 결과로서의] 변화(Änderungen und Veränderungen)는 오직 현재 저쪽에서 지배하는 혐오스러운 정권을 [전재로 하여] 출발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듣기보다 그리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음미해보면(schliesslich) 우리는 이미 이 정권과 상당기간동안 관계를 갖고 있고 나아가 [들킬까봐 두려워 직접 하지는 못하고 뒤로 호박씨 까듯이] 슬그머니(verschämt) 신탁소라는 걸 차려서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Interzonenhandel)을 [대행하도록 하는 걸] 지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주] 자연적으로 아직 현존하는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의 단절로 동독지역(Zone)이란 구성체(das Gebäude der Zone)의 붕괴가 [생각]가능하지 않을까 저울질 해보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여기다 한술 더 떠 의도적으로 추진된 상황악화를 통해서 그 구성체가 붕괴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론적인 생각에 매달리고 몰두할 수도 있겠다. 냉정한 저울질은 이런 생각의 전면 거부로 이어진다. 경제적 어려움이 어쩌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동독지역(Zone)에 살면서 [동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교역을 중단하라, 우리는 기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맬 거다.’라는 선의의 조언들은 유감스럽게도 앞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경험] 바로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긴장 증대는 울브리히트를 강화하고 분단의 골을 깊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저런 입장이 베를린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런 입장에 대한] 다음 반증은 우리[모두]가 정당하게 동독지역(Zone)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동독 인정을 둘러싼 논쟁을 때때로 협소하다고, 나아가 다분히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류의 논쟁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서 [결국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게] 정치 [자체]를 망쳐놓을(jegliche Politik verbauen) 수 있기 때문이다. 동독지역(Zone)을 자주국가로 인정하는 걸 거부하는 자명하고 어느 누구도  문제시 삼지 않는 행위가 우리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수년 동안 적(赤)중국(Rotchina)과 미국의 대사들이 제네바와 바르샤바에서 협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적중국을 인정했다거나 아니면 그런 대화가 인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민주공화국 -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다1 - 의 내무부 장관이 베를린에 주둔한 연합군에게 1961.8.13일자로 모든 통로를 통해서 베를린동부지역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행사하는 걸 금지하고, 오늘날의 체크포인트 찰리의 통로로만 제한했다. 연합군이 이 지시에 따랐을 때  아무도 그게 ‘DDR’의 인정 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동독지역(Zone)의 군대[=동독군]이 모든 법을 어기면서 동베를린에 진입하여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군에 맞서 이들이 앞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을 때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동독이탈자가 슈프레 강을 수영하여 도주할 때 총격을 받으면 혹은 동독 이탈자를 실은 버스가 복잡하게 구축해 놓은 진입방해시스템(Slalomsystem)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차안의] 사람들이 총격을 받으면 이건 어디까지나 범죄행위의 사건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 경찰은 응사해서는 안 되고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하게 위해서 그 무엇을 해서도 안  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이것이야말로 가장 조야한 인정의 형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연방경제부장관과 베를린 시장의 위임으로 [활동하는]  협상대표가 있다. 저쪽의 위임자와 수년 전부터 협상하고 있는 레오폴드 박사다.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아무튼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내독 통과검문소]  퇴펜, 마리엔보른, 혹은 라우엔부르크에서 통행료를 지불하고 [검문소의] 신분증 투입구에 신분증을 내밀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조사에 응한다고 해서 울브리히트 정권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길들이[육로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즉 울브리히트 정권의 압류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항공을 사용하라고 권하면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동독인정이 아니라면] 독일연방공화국이  판코우(Pankow/동독수뇌부거주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끊으면 이건 더욱더 인정이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인정의 부정형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런 강제정권의 법적인 인정과 실증된 정당성을 밑도는 차원에서 [이미]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접하는 현실에서(bei uns) 통용되고 있고, 그 [강도는] 그런 형식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Sinn)으로 사용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레오폴드 박사가 혹은 다른 사람이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뿐만 아니라 양독일 간의 실천적인 이익과 관련이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당국의 수뇌로 승격된다고 해도 나는 거기서 현재상황의 실질적인 변경을 볼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 지역간 교역을 위한 신탁소(Treuhandstelle füer Interzonenhandel)가 이미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ja) 오직 무역문제만을 따로 다루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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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수구꼴통 언론사 슈프링어는 동독을 표기할 때 항상 인용부호를 사용하였다. 'DDR' 이런 식으로 텍스트로 돌아가기

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1

접근을 통한 변화
(1963.7.15  독일개신교 아카데미 투찡에서의 에곤 바르의 발제)

원문

 

최근에 통일 주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연을(Korreferat) 하지 않고 단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깨달은 점(Anmerkungen)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다른 방향으로의] 토론을 자극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고 우리가 지금까지의 입장을 계속하면 과연 통일정책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회의와 통일정책을 가능한 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롭게 두루 생각해야(durchdenken) 할 때가 되었고 이게 우리의 의무라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통일정책은] 물론 베를린문제가 따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일문제가 동서대립의 일부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일인이 한 [협상]테이블에 모여서’(Deutsche an einen Tisch)라는 구호는 [얼핏 독일분단 극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항상 독일분단의 인정에 기여하는 구호일 뿐이었다. 소련이 아직 예전과 다름없이 동독을 [소련]방위의 완충지역으로(Glacis) 꽉 붙들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베를린에 민주주의자가 앉아있다고 이론적으로나마 상상해 보자. 이때 곧바로 분명해지는 것은 통일은 오직 독일인의 일이라는 소련의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하는] 테제가 동베를린에서의 소련 총독의 지배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의 전제조건들은 오로지 소련과 함께 마련될 수 있다. 통일은  동베를린에서 얻을 수 없고, 소련에 대항하여 , 소련을 제쳐놓고 얻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동베를린과 협력해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국 소급되는 관념들을 개발하는 사람은 환상에 매달려 있는바, 20 혹은 22개의 잘  무장된 소련 사단들이 [동독에] 주둔해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보기 바란다.

 

통일은 외교적인 문제다. 이것은 수많은 결의와는 모순되지만,  독일연방정부 산하 전독일문제부가 아니라 외무부가 통일문제덩어리를 소관하고 있다는 건 현실적인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이런 소관분담이 DDR[동독 약자]의 인정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하게끔 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평화전략은 공산주의 지배는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화되어야 한다는 문구로 정의될 수 있다. 미국이 시도하기 원하는 동서관계의 변화는 우선 현상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현상 극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것이, 지금까지의 압력과 反압력의 정치가 단지 현상의 경직만을 야기하고 난  이후에, 새로운 전망을 개시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좋고 평화적인 의미에서 더 강한 세계라는 확신이  자신과 다른 쪽이 문을 열고, 지금까지의 [동독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해방관념을 보류하는 시도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런 구상에서 특별한 독일 과제가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있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동서관계의 발전에서 배제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런 틀 안에서 오직 독일인만이 실현할 수 있는 과제가 있다. 왜냐하면 민족이 분단된 우리는 유럽에서 유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평화전략을 독일에 적용하여 얻게 되는 첫째 결론은 다 아니면 무(無)라는 정치를 [배설하듯] 버리는 것이다. 자유선거 아니면 무, 전독일의 자유결정권 아니면 완강한 아니요,  첫걸음으로 선거 아니면 거부, 이런 모든 것들은 구제불능의 옛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평화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sinnlos) 것이다. 오늘날에 분명한 것은 통일이란 어느 역사적인 회담에서, 역사적인 어느 날, 어느 한 역사적인 결의로 한꺼번에 완성되는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많은 발걸음과 수많은 단계를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쪽의 이익도  역시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케네디의 말이 옳다면, 소련은 분명 동독이(Zone=소련 관할 지역) 서구의 역량  강화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빼앗기는 걸 가만두고 볼 수 없다. 동독(Zone)은  소련의 동의아래 형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소련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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