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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30
    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Die Schutzbefohlenen) - 1(3)
    ou_topia

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Die Schutzbefohlenen) - 1

짜집끼 글의 짜집끼 번역

 

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원문은 여기)

 

우리는 살아 남았어. 우리는 살아 남았어. 뭘 더 바래, 살아 남았다는 것 말고. 그래, 살아 나았다는 것 외 남은 게 없지, 신성한 고향을 떠난 삶에. 아무도 우리의 행렬은 자비롭게 내려다 보지 않아. 하긴, 우리를 [깔아] 내려다 보긴 하지. 우리는 피난 길에 올랐어. [천인공노할 짓을 하고] 민족[공동체]의 심판을 받은 게 아닌데 [어딜 가나] 모두 우릴 죄인으로 취급해, 저기서, 여기서. 우리 삶에서 발생하여 스스로 지(知)로 등장할 수 있는 게 다 소멸되었어, 이런 저런 [호출과 허접한 지(指)적] 가상에 층층이 눌려 질식해 버렸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지(知)의 대상이 아니야. 지(知)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무언가를 개념으로 취하려는 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우리는 낯선 법령들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우리는 [상품처럼] 주문 되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우리는 호출되면 출두해야 해. 여기서 출두하고 나면 다시 저기서 출두해야 해. 우리가 밟을 수 있는 땅이 과연 있을까. 그런 나라가 있다면 이 나라보다 더 자애 깊은 나라여야 할 터인데, 우린 그런 나라를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 없어. 우린 밟힌 채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다시 돌려 보내지지, 꺼지라고 해. 우리는 교회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어.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일어서지. 우리는 아무것도 안 먹어. 안 먹어선 안되는데, 최소한 마시기는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지. 여기 평화를 탄원하는 나뭇가지 더미가 있어, 기름 종려나무 가지인가, 아니야, 올리브 나무에서 끊어온 거야. 맞아. 아 여기도 있네. 다 글이 새겨져 있어. 우린 이것 말고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 말해주세요.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이 더미를. 2톤이나 되는 이 종이를 하나하나 다 글로 채우고 모았어요. 물론 도움을 받았지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지금 탄원하는 자세로 올려 드립니다, 이 종이를. 뭐라고요, 네 아닙니다. 체류허가증[종이들은]은 없습니다. 이 종이 한 장 뿐입니다.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님께? 받으세요, 여기 있어요. 하지만 가지고 가신 뒤 아무 것도 안 하시면 우리는 다시 다 복사해야 해요, 인쇄해야 하고요. 그건 알고 계시죠? 저기 저 하늘 높이 계신 분들 좀 보세요.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어요. 고개를 돌리지 마세요. 바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입니다. 늘 하시는 데로 좀 내려다 봐 주세요! 우리는 여러분들께 탄원합니다. 시와 농촌과 도나우의 빛나는 강물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 여러분, 아니 관청에 계시기에 더 주인처럼 보이고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벌로 내리시는 [관료]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에게 이번에는 이래라 했다가 다음번에는 저래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이 마땅하지 않아요. 천사 여러분,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이신 님! 여러분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할 수 없는 게 없고, 다 해도 괜찮지요. 저기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누가, 어떤 신이 여기에 계시고 주관하시는지? 여기 이 교회에서는 그게 누군지 알아요. 하지만 다른 곳에는 어쩌면 다른 이들이 있겠죠. 대통령이 있고, 총리가 있고, 여성 장관이 있고. 그러지요. 그리고 물론 벌을 주는 분들은 따로 있죠.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기 저 땅 밑 저승이 아니라 모두 다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걸. 예를 들자면 바로 님이죠. 그게 누구냐고요. 바로 님이어요. 님이 누구든 간에, [여기의] 님이든, [저기의] 님이든, 예수든, 메시아든, [이것 저것 다 보관하는] 메시든, 다 벌을 주죠. 집안일과 가문과 모든 경건한 자들을 챙기시는 님이시지만 우리는 거두어 주시지 않아요. 맞아요, 우리는 불러서 온 게 아녀요, 재발로 알아서 왔죠, 님의 교회에 왔죠, 탄원하는 행렬로, 제발 우리를 도와 주세요, 하나님,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 발이 당신의 강변을 밟았습니다. 우리들의 발 중 운이 좋은 발은 이와 완전히 다른 강변을 밟았습니다. 근데 이제 앞으론 어떻게 되죠? 바다가 우리를 거의 집어삼켜 뻔했어요, 산속에 거의 묻힐 뻔했어요. 이제 우리는 이 교회에 있어요. 내일은 그 수도원에 있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인해서, 대통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그 [대변자의] 자리에 앉혀진 그들이 애써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 모레 어디에 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에서 누울 자리가 허용되지 않을까, 어디에서 누울 자리를 강요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다시 쫓겨날까, 어디에서 우리의 뼈를 묻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물론 우리가 아니죠. 그 누가 이 모든 걸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동등한 현존자로 취급하고 쳐다 볼 것인지, 혐오감 없이, [우린 몰라요]. 고향의 개울가에서, 바닷가에서, 우거진 숲에서 내몰림을 당한 자들을, 잃어버린 고향의 아픔에 쌓여 탄식하면서, 모태 고향의 노여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들을, 이런 사람들을 여기 님은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우리 중 아무도 [이곳] 누구와 같은 혈통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말해봐요, 왜, 왜 님까지 우리를 노여워하죠? 이걸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픔과 한 짝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정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뭘 했길래 우리를 두려움 안에 가둬 두시죠? 어딜 가나 두려움입니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 두고 온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마주하는 두려움, 이 보다 더 큰 두려움을 님 앞에서 느낍니다. 하는 수 없이 당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두려움. 이렇게 말하는 저에게 님은 서슴없이 너 말 잘했다 하시겠죠. 예 틀림없이 그러시겠죠.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당신은 모든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시는데, 그럼 왜 여기에 오셨죠? 새로운 두려움을 맛보려고, 다시 한번? 우리는 지금 아니면 쓰지 않는 야만인의 말을 합니다. 우린 그런 언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사용할 줄도 모르고요. 항상 그렇죠,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이방인 사이에 있으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지금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우리는 이 언어로,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사용할 줄도 모르는 이 언어로, 우리와 달리 님이 자신처럼 구사하시는 이 언어로, 탄원하고 외칩니다.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을 삼키는 심정으로 우리를 좀 봐 주세요, 좀 노력해 보세요, 님이 절대 알 수 없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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