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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로치에바친다① 켄 로치, 당신은 누구십니까?

켄 로치, 당신은 누구십니까?
켄 로치에 바친다 ①
2006.11.08 / 주성철 기자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개봉과 함께 ‘블루 컬러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 특별전이 열린다. 신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중심으로 바로 지금 켄 로치의 의미와 상징에 대해 생각한다.

2001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상영됐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1979년 상영 버전보다 무려 40분 분량이 추가된 완전한 디렉터스컷이었다. 주인공들이 강을 거슬러가다 만나는 프랑스인 농장 장면이 완전히 새로이 추가됐으며, 윌라드(마틴 쉰)와 커츠(말론 브랜도)의 대화 또한 상당 부분 늘어났다. 이를 보고 나오던 한 비평가는 “완전판은 마치 켄 로치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영화 속 인물들이 전쟁에 대해 고뇌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들이 꼭 켄 로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는 얘기다. 완전판에서 코폴라가 ‘유령’으로 설정했다고 하는 프랑스인들은, 그들에 이어 베트남을 침략한 미국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보다 훨씬 세월이 흘러 만들어진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베트남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역시 언제나처럼 켄 로치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토론의 영화다.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두고 여러 번에 걸쳐 나누는 격렬한 토론은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 대화 속에서 켄 로치는 과연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나, 그 비극의 진원지는 도대체 어디였는지를 되묻는다.

닐 조던의 <마이클 콜린스>는 들으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쟁쟁한 작품들을 제치고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정확히 7전 8기의 과정을 거쳐 이 상을 수상한 그를 두고 작품성을 떠난 칸영화제의 예우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손쉽다.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10년 전인 1996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역시 비슷한 시기의 북아일랜드 문제를 다룬 닐 조던의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칸영화제의 대답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도 마이클 콜린스의 이름이 직접 거론된다. 또한 그것은 최근 여러 변화의 양상들을 보여온 칸영화제가 앞으로도 켄 로치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마이클 콜린스는 1916년 더블린 부활절투쟁 숙청에서 살아남은 이후 아일랜드 해방투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전략가이자 테러리스트였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듯 북부 아일랜드를 제외한 독립을 인정, 내전을 초래한 런던협약의 협상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평가는 아일랜드 내부에서도 상반되는데, 이 런던협약은 북아일랜드 해방을 위해 지금까지도 테러를 벌이는 IRA를 낳게 만들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의 형이자, 우선 조약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자고 주장하는 테디(페드라익 델라니)는 바로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은유다. 테디가 그러하듯 마이클 콜린스는 진심으로 실용주의 정치관을 신봉했지만 바로 거기에 비극의 핵심이 있었다.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 워너브러더스의 자본으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다룬 <마이클 콜린스>가 만들어졌을 때, 북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영화비평가인 톰 콜린은 “이 영화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은 평화협정의 협상 과정과 아일랜드 대표들의 내부 논의는 전부 생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켄 로치 역시 협상 과정 자체는 다루지 않지만, 아일랜드 대표 내부의 격렬한 토론을 마치 그의 이전 영화들을 보는 듯 그만의 장기를 펼치며 담아낸다. 그것은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지게 되는 사건들의 핵심이자, 또한 우리가 켄 로치에게 기대하는 바이기도 했다. 데이미언을 중심으로 한 일파들은 공화국의 법정 판결과 기본적인 원칙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테디 일파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위해 군수물자를 대는 지주를 옹호한다. 독립운동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나 농부, 상점 직원들이었다. 데이미언이 보기에 아일랜드 독립 이후 테디 일파가 그러한 지주와 자본가들을 위한 정책을 펼 것임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더구나 잉글랜드 측의 폭력을 과장하면서 아일랜드 내부의 폭력을 다소 은폐했던 <마이클 콜린스>와 달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 내부에서 자행된 끔찍한 폭력과 만행도 서슴없이 공정하게 담아낸다. 이렇게 켄 로치는 IRA가 탄생하게 된 근원으로 거슬러가면서 그 현재적인 의미까지 되묻고 있다. 그가 올해 칸영화제 수상소감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와 다르지 않다. 이라크를 탄압하는 미국과 영국의 태도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이러한 모순들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켄 로치의 변함없는 다짐

최근 켄 로치는 여러 중요한 변화들을 봐왔다. 영국은 보수당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유로화가 출범했다. 어떻게 보면 오랜 시간 대처리즘에 맞서온 그에게 강력한 적수를 잃어버린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떤 변화의 조짐도 읽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명멸하는 불빛>(1997)을 논외로 하자면 그가 토니 블레어 정권 출범 이후 첫 번째로 만든 영화는 <내 이름은 조>(1998)다. <내 이름은 조>에서 노동계급의 균열을 가져오는 문제는 실직이라는 현실과 마약이라는 새로운 유혹이다. 전자의 관점에서 <내 이름은 조>를 <풀 몬티>(1997)의 유쾌한 낙관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후자의 관점에서 <트레인스포팅>(1996)의 재기발랄함에 대한 충고라고 본다면 오히려 그는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다.

은밀한 낭만의 백일몽들만이 넘쳐나는 세상, 테크놀로지의 유령들이 횡행하는 스타일의 속도전 속에서 켄 로치는 여전히 정반대로 영화와 세계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소위 ‘명장면’을 만들어내지 않는 켄 로치의 스타일 그대로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시네마베리테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점이라면 주로 비직업 배우를 스크린에 등장시키는 것과 달리 <28일 후>(2002), <나이트 플라이트>(2005) 등에 출연한 스타 배우 킬리언 머피를 캐스팅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레이디버드>(1994)에서 실제 여성 노동자였던 크리시 록으로부터 감동적인 연기를 끌어내 1994년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고, <빵과 장미>(2000)에서 영어에도 익숙지 않고 미국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오디션을 거쳐 뽑아낸 멕시코계 필라 파딜라에게 주연을 맡긴 경우와는 다르다. 또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단짝 시나리오 작가 폴 라베티와 함께 만든 유일한 과거형 영화이기도 하다. 가령 <칼라 송>(1996) 이후 <네비게이터>(2001)를 제외하고는 늘 켄 로치와 작업해온 폴 라베티는 실제로 학생 시절 LA에서 1년여 동안 머물면서 여러 명의 히스패닉 노동자들과 가깝게 지낸 경험이 있었기에 <빵과 장미>의 현실감 있는 투쟁의 과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 더불어 <하층민들>(1990)과 <레이닝 스톤>(1993)처럼 현대 시제의 노동자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실감나고 재치 있는 대사들로 채워진 영화도 아니다(미국에서 <하층민들>이 비디오 출시됐을 때 영화 속 영국 노동자 계급의 억양이 너무 강해서 따로 영어자막을 넣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도저한 사회주의적 이상을 바탕에 깔고 자본주의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을 노려보며, 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 조악하고 천박한 현실을 변혁시켜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켄 로치의 세계관은 결코 흔들림이 없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높은 이자에 신음하는 한 농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독립운동의 승리라는 결과를 위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논리에 대항한다. 눈앞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평범한 농부와 노동자들의 권익을 맞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켄 로치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달리 했을 뿐 막노동꾼들의 일상을 껴안으면서 범죄를 공모하고(<하층민들>), 딸에 대한 한 아버지의 소박한 희망을 들어주기 위해 고리대금업자를 교사하고(<레이닝 스톤>), 자신의 모든 개인적 행복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고(<랜드 앤 프리덤>), 너무나도 강고한 적 앞에 분노를 곱씹으며 뒤돌아서고(<칼라 송>), 멕시코로 강제 추방될 위기 속에서도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분투하면서(<빵과 장미>) 살아왔다. 결국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과거형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 시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놓치고 있는 계급의 문제를 명쾌하게 되짚고 있는 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역시 데이미언과 테디가 나누는 대화에 있다. “넌 어려서부터 이상주의자였어”라는 형의 말에 데이미언은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켄 로치가 지금껏 추구해왔던 영화세계가 집약돼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향한 오랜 선입견과 오해를 향한 항변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세계영화계의 이상주의자로 여겨졌고 또 그로 인해 지금껏 존경을 받아왔던 것이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언제나 현실을 과장하지도 않고 특별한 소재를 취하는 것도 아니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옳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한 부지런한 영화감독일 뿐인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북아일랜드 소사

원래 영국에 살고 있던 민족은 기원전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는 켈트족이다. 켈트족이 살고 있던 영국에 대륙민인 앵글로 색슨족이 침입해 세운 나라가 바로 잉글랜드다. 그리하여 잉글랜드 지방에 살던 켈트족들은 대다수가 아일랜드 섬과 북부 스코틀랜드 산악지대로 이주해 각각의 나라를 세우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거듭된 침략에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지는 못한 채 잉글랜드에 예속돼 있는 형태로 살아가게 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잉글랜드 군인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향해 ‘가톨릭을 믿는 돼지’ 운운하는데 원래 이들 나라의 국교는 가톨릭이었다. 그러던 중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하기 위해 만들어낸 ‘성공회’라는 종교를 아일랜드에 강요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당연히 가톨릭을 버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저항이 계속되지만 헨리 8세 이후부터 엘리자베스 여왕 때까지 계속 진압되다가,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의 북부 얼스터 지방을 점령한 후 아일랜드 북부지방에 잉글랜드인을 이주시키게 된다. 영화 속에서 데이미언 일당을 밀고하는 악덕 지주가 바로 이들이다. 그러던 중 잉글랜드에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고 크롬웰은 다시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아일랜드는 다시 반항을 하지만 여전히 잉글랜드에 의해 철저히 분쇄되고, 결국 모든 토지를 잉글랜드에 몰수당한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만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연합국이 되고 공화정이 도입되는 20세기 초까지 큰 분쟁 없이 살아오던 아일랜드는 1차 세계대전을 시발점으로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즈음이 바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다루고 있는 시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신페인당’은 1919년부터 1922년에 걸쳐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급진적 정치 결사를 말한다. 1차 대전 발발 후(1916년 4월 부활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신페인당이 주축이 돼 무장봉기를 하지만 잉글랜드에 진압된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아일랜드는 얼스터(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자치권을 주겠다는 영국 측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1922년 12월 런던에 간 마이클 콜린스는 아일랜드를 사실상 분할하는 공화국 수립을 약속한 런던협약을 들고 와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한다. 그렇게 신페인당은 우익의 아일랜드 통일당과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좌익의 아일랜드 공화당으로 분리됐다. 신페인은 아일랜드어로 ‘우리 스스로’ 또는 ‘우리들만으로’라는 뜻이다. 하지만 협약 이후의 실권은 모두 잉글랜드 측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1932년 취임한 발레라 총리는 잉글랜드를 향한 항쟁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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