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7/01 15:43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2년만이다. 모란공원을 찾은게...

 

노동보건운동을 하는 동지들은 매년 이맘때 모란공원을 찾는다. 지금의 양평동에 있던 조그마한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수은주를 만드는 일을 하던 15살의 한 어린 노동자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기일에 맞추어서 산재사망노동자에 대한 합동추모제를 여는 것이다.

 

문송면의 죽음을 계기로 산재보상운동이 그리고 노안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갖추어도 예방할 수 있는 수은 중독으로 불과 15살이었던 당시의 나보다 4살 정도 많았던 노동자가 죽었던 것이다. 그리고 화려한 올림픽 행사 속에 묻혀서 널리 알려지지도 못했던 문송면의 기일, 1988년 7월 2일을 기념해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추모제가 열리는 것이다.

 

장마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 모란공원을 찾았다.

 

추모사를 듣고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노래인 노래공장의 '들불의 노래'를 부르며 아침에 오는길에 콩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쳤다. 폭동이 일어나 마땅한 시기인것 같은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건지 무섭다는 콩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같은 날 다른 곳에서 있었던 오창공장의 투쟁과 서울에서의 총궐기가 어땠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안타까워 했더랬다. 오창에 있었던 콩과 서울에 있었던 내가 두 지역의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그 안타까움과 답답함도 같이 나누었더랬다.

 

지속된 노숙투쟁으로 까맣게 타버린 하이텍 언니들의 얼굴과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다는데 한쪽팔이 시커멓게 변해 버린 아이구 동지의 팔을 보면서 마음이 더 아파왔다.

 

문송면 동지의 유족들의 인사가 끝나고 헌화를 하고 묘역을 돌기 시작했다. 문송면 군을 비롯한 많은 산재 노동자들의 묘역을 지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묵념을 하고...

 

한신대를 다녔다던 학생은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롤러에 깔려 사망했다고 한다. 원진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죽었고, 어디선가 깔려죽고 떨어져 죽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왠지 기분이 센치해졌다.

 

산재노동자들의 묘를 찾아다니는 사이, 박종철 열사와 전태일 열사의 묘를 지나면서 잠시 머물렀다. 묵념을 하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금의 무기력을 떨칠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전태일 열사의 묘를 지나쳐 가는길... 처음 김진균 선생님의 묘역을 찾았다. 생전에는 뵌 적도 없지만 김진균 선생님 묘역앞에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의 무기력을 지금의 답답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실아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지금의 불안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변혁의 원동력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눈물이 핑돈다. 우리가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답답함에 눈물이 핑 돈다.

 

뉴코아-이랜드 동지들은 오늘도 매장을 점거하고 있고, 교섭결렬로 절벽으로 내몰려 버린 KTX 동지들은 기약이 없는 단식농성을 전 조합원이 한다고 하고, 하이텍 언니들은 단협이 해지된 오늘 저녁 다시 오창으로 내려간다고 하고, 코스콤 동지들은 연속으로 삭발을 했다고 한다. 그 답답함에 그만 김진균 선생님의 묘를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나 보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허세욱 열사의 묘도 있었다. 그렇게 매년 모란공원의 묘지에는 새로운 열사들의 무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 방방 곡곡에는 일하다가 또는 싸우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무덤이 3000개씩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 해가 지나는 사이 이미 약 2,50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다.

 

비오는 2007년 모란공원의 많은 열사들이 잘 하라고, 그저 뚜벅뚜벅 가보라고, 아직 얼마 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러냐고, 자기들도 있는데 힘을 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제발 내년에 다시 찾았을 때, 또 다른 열사의 묘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란다.

 

덧니. 문송면의 묘에서 열우당의 신기남을 만났다. 문익환 목사를 뵈러 왔다면서 깔끔한 검정색 슈트를 차려입고 뺀질뺀질한 얼굴을 디 밀고 우리를 바라보며 웃는 그를 봤다. 그가 지지해 마지 않는 노무현이 추진한 FTA 때문에 분신한 노동자가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을 그는 알까? 가서 무릎이라도 꿇리고 싶었다. 그 깨끗한 검정색 양복이 그리 미워보일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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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1 15:43 2007/07/0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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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비 2007/07/02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아..문송면의 기일이 오늘이로군요. 삼가~
    2. 신기섭 -> 신기남이겠죠..?

  2. 콩!!! 2007/07/02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은 그 추모제가 신아무개 같은 이가 슬그머니 끼어들어올 만했다는 게 문제 아니였겠수. 눈물도 추모도 결의도 없이, 매년 똑같은 자료집에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얘기들... 마치 때되면 돌아오는 제사상처럼 되어버린 추모제를 다시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공을 들여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우.

  3. 해미 2007/07/03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비/ 워낙에 국회의원들 이름 외우는거는 젬병이라서요. 동지들 이름과 얼굴을 잘 외우고 잘 기억하는 편인데, 그놈의 국회의원들은 왜 익숙해 지지 않나 몰겠어요. ㅋㅋ 좌우간 수정했음다.
    콩/ 그러게요. 거기 서 있으면서도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는 그 뺀질뺀질한 얼굴도 싫었지만 우리의 모습도 참 안타까웠어요. 내년에는 아이구 동지 말마따나 2007년 사망자 명단 들고 청와대 앞에서 노제라도 지낼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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