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6/23 20:10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몇번인지 모르겠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글을 읽다가 목울대로 무언가 울컥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것이...

 

2003년이었다. 내가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 말이다. 크레인에 매달려 있다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가을 종묘 바닥에서는 이용석 열사가 몸에 불을 당겼었더랬다.

 

그 가슴 아팠던 가을, 한 집회에서 듣게 된 김진숙 동지의 추모사는 정말 듣는이들의 가슴을 한올한올 풀어내어 그 수많은 집회대오의 가슴속에 울분을 담았더랬다.

 

그랬던 그녀가 책을 냈다. 더운 땡볕아래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며 일한 조선소 노동자들의 등에 핀다는 그 '소금꽃나무'라는 제목이었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는 사이 2003년의 가슴 뻐근함이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김주익 열사의 죽음을 그리고 이용석 열사의 분신을 목도하면서 도저히 그 처참한 느낌을 참을 길이 없어 말 없는 친구와 마주앉아 말도 않고 새벽까지 쉼없이 목을 넘어가던 그 소주의 쓴 맛까지 그대로 살아났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를, 아니 노동 탄압의 역사를 온전히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내어온 그녀의 글은 무기처럼 날카롭거나 잔인하지 않았다. 땀으로 온 몸을 하나 가득 적셔내며 피어나는 소금꽃나무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 가득 울음을 담아내며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에 피어났다.

 

사람들의 가슴에 소금꽃나무를 피우는 그녀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노동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가슴 뻐근하게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속노조의 총파업을 집단의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파업 반대하는 기사들로 도배되고 있는 오늘 하루종일 마음이 참 아팠더랬다. 내가 그녀만큼의 글 솜씨가 있었으면 대국민 호소문이라도, 아니면 현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호소문이라도 쓰고 싶어 안절부절하는 하루였다.

 

하루 이틀 총파업을 하고 자동차 라인이 완전히 선다고 해도 어짜피 현장의 노동자들은 그 모자르는 생산량을 기어이 채워내고야 마는 것을, 연말이 되면 자본은 결국 올해 매출이 얼마나 늘었다며 흑자가 얼마가 났다고 발표하고 오른 주식에 좋아라 할 것을,

 

몇일을 아니, 몇달을 총파업을 해도 자본의 전체 흐름에 잔 소금이라도 뿌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FTA 때문에 고용이 불안하고, 98년 정리해고의 경험이 너무 뜨거워 언론의 소리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천지이고, 그저 나 하나 현장에서 살아 남는 것이 죄책감보다 더 무거운 생존의 문제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천지이고, 고용이 불안해서 파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천지인 곳, 그 곳 현장의 노동자들...

 

그들의 파업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너무 미웠더랬다.

 

자본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빵빵하게 선적되어 수출되는 자동차를 보면서, 올라간 매출을 보면서 좋아하겠지만 이번에 파업을 한 지도부들은 옆의 사람이 미워지는 감방으로 가게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불안을 참지 못하고 파업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 올라오지 않는 현장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 가슴이 다시 뻐근해졌다.

 

이 땡볕 아래에서 또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아가며 오창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하이텍 언니들과 한달에 80만원 될동 말동한 임금마저도 정리해고로 못 받게된 뉴코아의 비정규 노동자들과 청소용역 노동자들. 몇 일째 곡기를 끊고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과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위해 싸운 전교조 선생님들까지...

 

소금꽃나무에 나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21세기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졌다는 자랑찬 OECD 가입국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현실이라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한미 FTA라는 도전의 바다를 당당히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손'이라며 노동자 민중들의 주름진 손을 보여주는 국정홍보처의 TV 광고를 보면서 목울대가 메여왔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의 자유게시판에서 파업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파업을 해도 되는 건지 불안하기만 한 현장의 노동자들, '파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예전의 '빨갱이'라는 단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김진숙 동지의 소금꽃나무가 피어났으면 좋겠다.

 

가루처럼 흩어져 쉽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금들이 김진숙 동지의 글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번져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노동자라는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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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20:10 2007/06/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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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소금꽃나무

    Tracked from / 2009/08/05 17:28  삭제

    왜 제목이 소금꽃나무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친절하게 표지에 다 나와있다. 작업복에 땀이 말라 소금기가 남아 있는 모양을 꽃나무라고 부른 것이다. 땀이 말라 있는 옷을 보고 이런 걸 떠올릴 수 있다니 감탄하고 책을 펼쳤다. 책의 앞 부분에는 경찰에게 잡혀 가고, 대공분실에 잡혀 고문 당한 이야기도 나온다. 덜덜덜 무서운 느낌이 들었고 그런 것을 견뎌내고 싸워온 지은이가 대단하게 보였다. 지은이가 처음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남동생 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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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사랑 2007/07/02 2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월 12일이 지나면, 저도 이 책 감상평을 한번 써볼까 해요^^
    근데, 28일도 안오시궁! 흥!

  2. 해미 2007/07/03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붉은사랑/ 완전 공수표 날린 꼴이 되어버렸네요. 정신 없는 6-7월인지라 시간이 잘 안 나요. ㅠㅠ 자료 잘 다운받아서 보고, 사회운동포럼때 꼭 가 볼 수 있도록 일정조정 잘 해야겠다 다짐중.. ^^

  3. piggymom 2008/04/23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년 4월 24일 김진숙 위원과 함께 하는 '소금꽃나무' 강연이 광화문 나눔문화 포럼실에서 열립니다. 함께 김진숙 위원과 함께 하는 노동의 꿈을 열어갔으면 좋겠네요. 소금꽃나무 책을 감명깊게 읽으신 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모여서 노동과 평화의 꿈을 함께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것 같아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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