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6/21 17:10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있던 약속이 늦어진 비행기 때문에 취소되었다. 절호의 찬스~ 공항에서 광화문으로 직행했다. 영화 상영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표를 사고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어치운후 연이은 음주와 지방 출장으로 인해 만땅으로 지쳐버린 금요일 저녁의 지친 몸을 이끌고 스틸 라이프를 보았다.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타면서 영화에 대한 찬사들이 쏟아졌더랬다. 완벽한 영화라는 평가였다.

 

궁금했다. 뭐가 그렇게 짜다는 평론가들로부터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게 했는지...

 

 

솔직히 이 영화는 금요일 저녁의 지친몸을 이끌고 보기에는 순도 100% 예술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왠만해서는 조는 일이 없는 내가 졸리다는 생각이 들고 살짝 잠이 든 순간이 있을 정도로 느리고도 천천히 시간은 흘러가고 카메라의 대부분의 시선은 그저 '응시'하는 것에 머문다.

 

몇년전 해외 학회에서 중국 학자와 잠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상하이에 있는 대학에서 온 그의 관심사는 자살에 대한 것이었다. 중국이 초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사이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피폐해지고 있다는게 그의 이야기였다. 상하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화려하면서도 처절하게 아픈 공간이라고 그 교수는 이야기했었다.

 

그에게 나는 원진 레이온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자살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그런 심각한 물질들이 마구잡이로 수입(?) 되고 있는 곳도 중국이라고... 질병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그저 옮겨 다니면서 중국 사람들의 삶을 갉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는... 하지만 중국 교수들 중에서 그런 것에 대한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이런 류의 이야기였다. (물론, 영어가 상당히 딸리는 지라 단 몇줄 얘기하는데 시간은 엄청 걸렸다. 그가 다 알아들었는지도 물론 의문이다.)

 

스틸 라이프는 잘못된 제목이다. 영화의 흐름과 시간은 'still'할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삶은 전혀 'still'하지 않다. 아름다운 절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고,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하루가 다르게 잠겨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위기에 처하고 있다.

 

웃통까지 벗어 제낀채 맨몸으로 건물을 철거하는 사람들 옆으로 보호구과 보호의로 완전 무장한채 무언가를 소독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겹치고,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흉내내던 젊은이는 비명도 없이 철거된 돌에 깔려 사라진다. 젊은이가 죽어도 아무도 울지않고 아무도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그저 일상인 것처럼 시체를 수습하고 처리하면 그만일뿐이고, 무언가를 소독하며 바로 옆을 지나가는 사람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가족을 찾으러온 노동자는 런닝 바람으로 또 몸을 때워가며 일을 하고 부인과 딸을 되찾기 위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일당은 센 광산으로 향한다. 남편을 찾으러 온 여인은 이혼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만다.

 

졸릴정도로 지아장커는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을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카메라는 그들 깊숙히 개입하지도 않고 그저 롱테이크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지금 중국인들의 '여전한' 삶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물론, 상징과 은유를 통해 감독은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난데없이 나타나는 유에프오는 개별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연결시키고, 이상한 구조물은 난데없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국면의 전환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외줄을 타고 있는 한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시선, 그 곳이 중국임을,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이 'still'한 중국의 현실임을 이야기하는 명장면이다.

 

그 줄타기의 아슬아슬함, 그 한장면 만으로도 지아장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200% 전달하는 재주꾼임을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있는 곳이 중국임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지아장커가 스틸라이프를 구상하기 전에 찍었다는 다큐 동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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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1 17:10 2007/06/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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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한한 연습 2007/06/2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중국 인민들에게 카메라의 시선이 돌아가는 지아 장커의 영화를 저는 정말로 좋아해요. 아...... 그런데 아직까지 <<스틸 라이프>>도 못 보고 있어요(T.T)......

  2. 해미 2007/06/23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한한 연습 / 저는 지아 장커의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영화는 참 좋은데 졸린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나마 스틸 라이프가 젤루 덜 졸린 영화중 하나라는데 다른 영화들이 보구 싶긴한데 확 자버리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요. ㅠㅠ

  3. navi 2007/06/25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좋다고 해도 졸린건 어쩔 수 없더군요-ㅅ-
    순간순간 깜빡 정신을 놓을뻔했다는..ㅋ

  4. 해미 2007/07/01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avi/ 그러게요. 근데 무한한 연습은 눈을 뗄 수가 없었데요.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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