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7/06/12 11:32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울컥, 하는 마음에 블로그에 깨작거리다가 '이번달에 글 한편~'이라던 편집장의 얼굴이 생각나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열일 제끼고 글을 썼다. 다분히 개인적인 글을 참세상 같은데 쓰는게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이런류의 부드러운 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리...ㅋㅋ)

 

 

87년, 그 여름의 매캐함

 

87년에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재미와 흥분에 가득차서 지켜보았고, 88 올림픽에서 좋아라하던 기계체조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던 어린 아이였다. 그 무렵의 나는 고무줄에 심취해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학교 앞에 있는 조그마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해질녘까지 고무줄을 하고 놀이터 앞에 있던 조그마한 공터에서 달고나와 쫀득이, 아폴로 같은 것을 먹어가면서 ‘무찌르자 공산당~’과 같은 노래에 맞춰서 잰 걸음을 놀리던 아이였다. 서울에서도 외곽에 위치해 있는 주택공사에서 지은 5층짜리 10평 안팎의 서민아파트 촌이었던 그 곳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고무줄놀이 외에는 특별한 놀이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87년은 비교적 또렷한 몇 가지 단상으로 남아 있다. 이는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한 고무줄놀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 주위를 감싸던 매캐한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한양대, 고려대, 시립대, 경희대 등에 둘러 쌓여있던 지정학적(?) 위치상 그 무렵 동네의 공기에는 항상 매캐함이 남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고무줄놀이를 하느라 숨이 차올 무렵이면 그 매캐함의 자극이 더 심해지기도 했었다.

 

우리 식구들은 80년에 광주에 잠깐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광주 민중항쟁 당시에 무서워서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시지 않았다고 하신다. 이제 겨우 3살, 1살 된 아이 둘을 데리고 장례를 치룬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과부인 엄마에게는 민중항쟁이 그저 ‘무서움’이었던 것이리라.

 

우리 엄마는 광주에 있었으면서도 ‘빨갱이’들을 엄청나게 싫어하셨다. 그리고 87년 그 매캐한 냄새의 정체를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학생들이 나쁜 짓을 해서 나라에서 잡으려고 하는 거’라며 약간 동문서답 식으로 대답하곤 하셨다. 여기에 항상 따라 붙는 말은 ‘넌 절대 대학가서 데모하면 안 된다’였다.

 

‘나쁜 짓 한 대학생들이 있는 곳’이라던 집 근처의 담장 높은 건물이 대공 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학생들이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매캐한 냄새가 최루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최루탄에는 담배연기가 젤로 좋다며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담배연기를 뿜어주는 선배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매캐함은 그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2007년, 오롯이 되살아나는 매캐함

 

그런데 올해 6월 10일, 다시 그 매캐함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일하는 틈틈이 지켜본 TV에는 아침부터 20주년이라며 온갖 사람들이 허여멀건 한 얼굴을 디밀고 나와 한 마디씩들 하는 순간에 말이다.

 

아침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정부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진행했다. 당시 전선을 치고 마주 보고 있었던 386과 경찰 관계자들의 화해의 장도 마련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군부 독재 청산을 운운했고, 이에 한나라당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또 발끈하고 나섰다. 6.10이 하루 지난 오늘 문제의 군부 독재의 흔적인 박근혜와 이명박이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박근혜는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확실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위기의 나라를 구하고, 다시 한 번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면서 "산업화,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고 새로운 선진 한국을 건설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제가 진심으로 이 분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민주주의를 더욱 꽃피우고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명박은 “이제 우리는 무능한 이념세력을 유능한 정책세력을 바꿔야 한다."며 "청계천을 살려냈듯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려내고, `대한민국 747 비전'(7% 성장, 4만 달러소득, 7대 경제강국)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의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호언장담 했다고 한다.

 

공영방송인 KBS는 이틀간 다큐를 제작해 방영을 했고 심야토론도 진행했다. 87년 당시 그 매캐한 연기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람들과 학생들은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교수가 되기도 하면서 그 때를 회상하였다.

 

당시 교도소에 있었다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나 당시 이한열 열사가 다녔던 연세대의 총학생회장이었다는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부천에서 노동자 투쟁을 함께 했었다는 민주노동당의 의원, 당시 국민운동본부의 핵심이었다는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 위원장까지... 87을 회고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촉촉함이 묻어 나오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멋지게 차려 입은 그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리고 TV에 나와서 20년전의 6월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을 흘려듣는 사이 그 매캐함이 내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열흘 넘게 단식중이라는 공무원 노조 동지가 명치가 계속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데 어찌하면 좋겠냐는 전화를 받으면서 그 매캐함은 더욱 심해졌다.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데, 그리고 그 당시의 주역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데, 여전히 공무원들은 노조를 인정해 달라며 단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 악법 때문에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뉴코아 노동자들도 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꾹꾹 참으며 일했던 청주대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은 폭력적으로 진압을 당해 뼈가 부러졌다고도 한다. 노사정 로드맵에 반대하며 한국노총 점거 농성을 했던 동지들은 실형을 언도 받았다고 한다. FTA 때문에 분신하고, 노조 탄압에 분신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있다.

 

그리고 대선후보에 나선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국가 경제 성장’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민중들의 살림살이를 좋게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이라는데 뭘 더 성장해야 된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1인당 2만불이면 평균으로 쳐도 4인 가족 기준이면 연 가구 소득이 8000만원이다. 문제는 1년에 8000만원을 버는 4인 가족이 매우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지 ‘대한민국’이나 ‘나라’의 성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는 국가관이나 애국심이 부족해서 민중들이 살기 힘들었나? 대한민국은 그 놈의 애국심과 국가관 때문에 더 답답한 나라인거 아닌가? 그리고 유능한 정책세력이 아니고 무능한 이념 세력이라서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다. 철저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국가 경쟁력’ 어쩌구를 외쳐대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면서 철저하고도 유능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켜 왔기 때문에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든 거 아니냔 말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87년에 ‘나쁜 짓’하던 대학생 대장들은 다들 국회의원이 되어서 예의 바른(?) 미소와 하얀 얼굴을 브라운관에 디밀고 있는데, 6월 이후 7, 8, 9월을 경과하면서 싸웠던 민중들의 삶은 도대체 바뀐 게 없다. 여전히 현장에서 눈칫밥 먹어야 하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일해야 하고, 언제 잘릴지 몰라서 안달복달 해야 하고, 노조 만들었다고 해고당하고, 집회 한다고 얻어맞고, 스트레스 받아 과로사로 죽고, 하루에도 여전히 10명씩 일하다가 죽어나가고 있다.

 

87년에 불량식품 사 먹으며 고무줄 하던 아이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지만 점심을 못 싸오는 아이도 있고, 얼어 죽는 노숙자도 있고, 휘황찬란한 주상 복합 건물 옆의 쪽방에서 고단한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건설현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이주노동자도 도처에 널렸다. 여전히 돈 있는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오히려 이런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아, 달라진 게 있긴 있다. 노동운동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머리띠를 묶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대장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막기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인을 하기도 한다. 물론, 전적으로 이들의 잘못이라 단정 짓긴 힘들다. 20년의 세월 동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제도화에 밀려온 우리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밀려올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들이 문제다.

 

민주주의는 없다.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87년의 구호라고 한다. 20년 전의 외침은 현실화가 되었을지 모른다. 특히 일부에게는 ‘나쁜 짓’하던 대학생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상이 좋아졌다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도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건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확립해서 국민들이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고, 지자체 의원도 뽑지만, 아무도 표만 보지 표를 던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게 민주주의란 말인가? 그리고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중들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는, 그저 저 혼자 세계 제일이면 된다는 ‘자본’의 독재 앞에 힘없이 살고 있는 것 아니냔 말이다.

 

TV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는 사이 여전히 어디선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겹치면서 그 매캐함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20년이 지난 지금, 고무줄 밖에 모르던 어린아이가 그 매캐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여전하다. 도대체 무엇이 좋아졌단 말인가?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도 없으며, 독재자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자본의 독재를 경험하고 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코끝을 맴도는 매캐함.. 여전히 민주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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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2 11:32 2007/06/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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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그렇지. 민주주의는 없다.

    Tracked from / 2007/06/14 00:13  삭제

    해미님의 [20년, 여전한 매캐함] 에 관련된 글. 바빠서, 나중에 쓰겠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zrael 2007/06/12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무줄하는 어린 해미라니...상상하기 싫다는~ ㅋㅋㅋ

  2. 해미 2007/06/12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즈/ 고무줄 하는게 싫은 거요? 아니면 어린게 싫은 거요? ㅋㅋ

  3. 나후 2007/06/13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활에서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던 때를 생각해보면, 고무줄 하는 해미도 그리 낯설진 않을 것 같다는... -_-;;;;

  4. 해미 2007/06/14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후/ 폴짝이라니... 왜이리 낯설게 느껴질꼬?

  5. 나후 2007/06/14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는 예2때의 사진 한 장 올려줄까??? ^_________^

  6. 해미 2007/06/14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후/ 흑흑...블록에서는 바른말 고운말 쓰고 싶은데... 어쩔수 없다. 혹시.. 죽고 잡으신가요?

  7. 유이 2007/06/15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에도 없네요....
    민주주의가...ㅠ.ㅠ

  8. 하이하바 2007/06/15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7년 난 중학교 졸업반,,,ㅋㅋ 불법 선거운동 했지, 김영삼 포스터 붙여주고 칼국수 얻어 먹었음.^^

  9. 해미 2007/06/15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 그러게요. 알고보면 원래 없었을지도 몰라요.
    하이하바/ 선관위에 신고해도 되나? 공소시효 지난거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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