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4/16 13:33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글을 쓰느라고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 정리하다 보니 급 우울해졌다. 밖에 햇살을 따사한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 일들 투성이인지 모르겠다. 봄이 오는게 영 꾸물꾸물해서인지 마음만 우울해진다. 좀 쉬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는게 하나의 의무 또는 해야만 하는 무엇이 되는 것 같아서 슬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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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일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저 생계비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대한민국의 중산층, 서민층, 빈곤층을 대표(?)하는 6가구와 면접조사를 할 때 ‘건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질문이 너무 어렵다면서 대답을 한 사람들은 ‘즐겁게 사는 것’, ‘삶의 질’, ‘근심걱정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누구도 건강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해 준적이 없는데 그들은 소득 수준이나 그들이 처해 있는 환경, 직업과 상관없이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도 건강을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건강이란 누구나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고 타당한 기본적 권리인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단지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WHO, 1948).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한 경제학자는 건강이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자 가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잠재력의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했고 한 사회학자는 수단적/기능적 실체로서 삶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도 하였다. 뭐, 모두가 이런 학자들처럼 그럴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아마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조건의 하나로 건강을 생각해 왔음은 명백한 것 같다.

  

그렇기에 세계인권선언(25조, 1948년)은 ‘모든 사람이 건강과 안녕을 위해 적절한 생활수준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며 건강권을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삼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2조, 1976년)은 ‘모든 사람이 성취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건강권 (right to health)’ 보장을 비준국의 의무로 규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36조)과 보건의료 기본법(10조)도 건강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쉽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건강권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속과 정책, 사업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는 사회권의 하나이며, 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란 것이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을 건드리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의식주’를 갖추는 것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이를 어느 수준까지 보장해야 하는지, 혹은 보장할 수 있는지 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의식주를 넘어서는 다른 조건들 - 적절한 교육과 보건의료 서비스의 제공, 쾌적하고 안전한 노동조건과 지역사회 환경, 정서적 안녕을 증진시키는 사회네트워크와 유대관계 등까지 고려한다면, 건강권 보장을 위한 기본 조건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완수 불가능한 기획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이 순수한 생물학적 실체나 규범이 아니라, 생물학적․사회적 구성개념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은 이익과 이윤, 그리고 고용이라는 전제에 밀리기 마련이다.

  

최근에 내가 만난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는 IT 분야의 각광받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이다. 그는 얼마 전에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일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 쓰러지면서 기계에 부딪혀서인지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뇌와 심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넘어져서 생긴 두개골 골절과 출혈 등으로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았고 3개월간 요양을 하면서 추가적인 검사를 받았다. 검사에서는 협심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었으나 이것 때문에 쓰러졌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산업재해로 승인받은 요양은 종결이 되었고 그는 현장으로 복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업주는 그 사람이 복귀하는 것이 불안했다. 밖에 나가면 그 사람이 하던 일 정도를 할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언제 또 쓰러질지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기가 싫었다. 그나마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건 당분간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업의학과에 해당 노동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의사가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 노동자를 설득하기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이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업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증거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모르겠다. 그 사람이 결국 해고가 될지 안 될지는 말이다.

  

또 이건 어떤가? 한 사업장은 30대 남성이 많은 사업장이다. 처음에는 젊고 활발한 현장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그 업계에서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대체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유망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젊은 노동자들에게는 유난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이 많다. 다들 입사해서 살도 많이 쪘다고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정해져 있는 근무 시간이지만 그들은 모두 아침 8시쯤 나와서 밤 12시에 겨우 퇴근한다. 기숙사에서 같이 사는 동료들은 퇴근 후 느끼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통닭과 맥주, 족발을 시켜 먹고 잠이 든다. 살을 빼면 모두가 건강해 질 수 있는데 살을 빼려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어야 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해야 한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자고 싶은 그들에게는 운동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한 아주머니는 식품 공장에서 일한다. 아침 8시에 시작되는 일은 밤 10시가 되어야 비로소 끝난다. 지역에서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아주머니의 직장은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그 나이의 여성이 그 정도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다. 그 아주머니는 심한 당뇨가 있다. 살을 빼고, 운동을 해서는 조절할 수 없는 수준의, 당장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당뇨다. 당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벌써 3년이 되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자기한테도 그 병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동네 약국에서 당뇨에 좋다는 건강보조 식품을 먹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병원에 가서 의사 처방전을 받으시라고 혈액검사 결과까지 다 드렸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약값을 절약하려면 보건소에 가야하는데 토요일까지 매일 일을 해야 하고 집에 가면 애들이랑 남편 밥 챙기면 금방 12시라고 한다. 일요일에는 밀린 청소와 빨래로 하루가 후딱 간다고 한다. 도저히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데 선생님이 좀 가져다주시면 안 되냐고 나한테 통사정을 한다.

  

이런 노동자들의 사연은 캐도, 캐도 끝이 없다. 아프지만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큰 병이 생기면 해고되기 십상이고 병원비 때문에 가족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모두들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고이다. 매일 35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OECD 회원국 중에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20명을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헝가리밖에 없다. 2008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5명이며 헝가리는 21명이었다. 자살자 수가 가장 적은 그리스의 2.5명에 비하며 거의 10배인 것이다. 특히 노인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55~64세의 자살률이 42.7명, 65세~74세의 자살률이 81.8명, 75세 이상의 자살률은 160.4명에 달한다. 이는 실로 자살 공화국이란 말이 당연한 수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사망률도 10만 명당 12.4명으로 OECD 국가 중에 1위이다. 미국의 6.7명에 비해서 두 배 정도 높고 가장 낮은 영국의 3.5명에 비해서는 4배정도 높다. 하루에 8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그나마 사고로 인한 죽음은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일하다가 과로사로, 암으로, 다른 질병이 생겨서 죽은 경우에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 하는 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최근 한 시사 주간지에서 ‘대한민국 영구 빈곤 보고서’라는 기획을 통해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망한 적이 있다. ‘영원히 가난하다’는 그들의 절망적 상황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과 얽힌 이야기들이 더 무시무시했다. 조사에 응한 121가구중 절반은 집에 장애인이 있었고 손이 잘려서 일을 못하는 아저씨, 위암에 걸려서 집에 누워있는 할머니, 어느날 갑자기 딸이 죽어버린 아저씨, 당뇨를 앓고 있는 아들과 함께 사는 할머니, 아들이 자살한 할머니, 몸이 아파 누어있는 아들을 둔 노부부, 당뇨와 골다공증을 앓으면서도 자활근로로 살아가는 할머니, 돈이 없어서 걷지도 못하면서 디스크 수술을 못하고 있는 할아버지, 심장병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몇 천만 원의 빚을 진 아들, 당뇨와 천식을 앓고 있는 노부부,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는 남편과 같이 사는 아주머니, 의료사고로 손을 못 쓰는 아주머니, 근 무력증 때문에 치료받은 병원비로 빚을 몇 천만 원 가지고 있는 아저씨, 암 수술 뒤에 일을 못하게 된 엄마랑 같이 사는 여고생, 지적장애, 정신장애, 알코올 중독을 가지고 있는 자녀들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

  

이런 노동자들의 사연이, 사람들의 사연이 모두 없어지는 세상이 아마 건강권이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아픈 사람은 누구나 돈에 부담 없이 치료 받을 수 있고, 일하느라 바빠서 병원에 못 가거나 건강검진을 못 받는 일도 없고, 아프다고 취직이 안 되거나 해고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아픈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고 병이 있든 없든 내 삶을 내가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내 몸에 안 좋은 것 같은 일은 거부할 수도 있고, 일하다가 노동자가 죽고 그 가족이 파산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가난하고 월급이 적다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못 받는 일도 없어야 하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일하다가 병이 생긴 노동자는 일단 맘 편하게 치료부터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타당한 건강권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생각 하나만 바꾸면 된다. 돈 때문에, 일 때문에, 기계 때문에,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바꾸면 된다. 돈이나 기계나 이윤보다 인간의 몸과 삶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그 생각 하나면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다. 그저 세상을 움직이는 기준 하나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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