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5/03 13:36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글쎄다. 어느날인가 불현듯 영화본 감상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내가 웃겨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기록을 안 했는데, 역시 머리가 나빠지는 것인지 기록을 안 하니 뭘 봤는지조차도 기억이 잘 안 났다.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영화를 본 두어시간에 자그마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여러편의 영화를 봤고, 하고 싶은 말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가지만 적어볼까 한다.

 

#1. 경계도시2

 

대전아트시네마에서 한다고 했다. 시간을 맞추면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진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기를 1주일, 결국 봤다. 그것두 노동절날 저녁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짜증도 났고 먹먹하기도 했다. 운동이라는 또는 조직 앞에 한 개인의 양심과 자유가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지가 아팠고, 소위 운동권의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지식인의 '이 사회에 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알량함이 유치했다.

(난 그를 잘 모르지만) 양심적이고 실천적이었던 지식인 송두율은 한국 민주화의 상징처럼 쓰여지려다가 버림을 받은 것 같았다. 당시의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의회적 민주주의의 달성(?)이 자기들 때문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운동권'은 그의 귀국을 추진했고, 어떻게든 잘 되리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안일함과  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자기 성찰의 부족함이 이러한 폭력적 사태에 핵심이었던 것 같았다. 거기에  송두율 교수의 상징성과 순진함-여기서의 순진함이란 한국 운동의 진정성과 폭력성을 혼동하고 운동의 대의에 자신의 삶과 회환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다.-이 그 당시의 폭력적 상황과 비극의 촉매가 되었다.오히려 자기가 앞장서서 기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퍼뜨리는 변호사나 이렇게 말하라고 주문하는 기자들도 왕 짜증이었다.

그나마 그 혼란의 와중에도 침착하게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송두율 교수의 부인만이 제 정신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 혼동의 한 가운데서 본인의 상태를 직시하고 이를 각자의 몸안 깊숙히 내재되어 있던 레드콤플렉스로 해석하고 상황을 다시 이해하고 서술해가는 감독의 끈기와 솔직함이 돋보였다.  

개인의 요구와 필요가  없는 조직과 운동이라는 유령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지금, 운동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하는 영화였다.

 

#2. 페어러브

 

연애시대의 이하나여서, 그리고 안성기여서 설득력이 있었던 로맨스 영화다. 아빠 친구와의 연애라는 파격적 소재에서 파격이 아닌 일상성을 끌어 낸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고치는 일을 하는 섬세하고 고집스런 아저씨의 감성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안성기와 '난 그냥 나 하고 싶은데로 하는건데 왜 안되요?'라는 말을 눈빛에 담고 있는 이하나의 연애는 달콤쌉싸름 했다.카메라 앵글이나 색감이 꽤 맘에 들었던 영화였다.

이 영화의 제목이 공정한 사랑이란 것은 어떤 장애물이 사랑이라는 관계에 놓여있는지와 상관없이 그 관계가 겪어내는 과정은 비슷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느 비오는 날 지난 간 사랑이 생각날 때 보면 좋을 것 같은 영화다.

 

#3. 시선 1318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단편 옴니버스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맘에 드는 몇 편과 그저 그런 몇 편과 별로인 몇 편이 섞여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은 남지현이나 박보영 같은 스타급 아역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은 뻔한 소재를 기발한 영상과 상상력으로 풀어낸 점이 좋았다. 그렇지만 뮤지컬이라는 형식자체가 너무 쌩뚱맞게 느껴져 기발함이 묻히는 느낌이었다. 전계수 감독의 <유.앤.먀>는 유학을 가기 싫은 철구가 책상에 만들어 놓은 구멍이 그 느낌을 대변하는 영화였지만 별로였고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는 10대 비혼모의 양육권과 학습권 사이에서의 갈등을 묘사하며 그녀들에게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소재적 측면에서 신선했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소재의 참신함이 죽은 것 같았다.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단편영화에서만 할 수 있는 내용과 방식을 가지고 그이들의 고민을 드러낸 점이 맘에 들었고 김태용 감독의 <달려라 차은>은 단편안에 장편만큼의 섬세한 감정과 디테일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꽉찬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걸 청소년들이 보라고 만든 것인지 어른을 보라고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는 양쪽 다 함량 미달이지 싶다. 청소년임을 고려한다는게 너무나 직설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풀린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풀은 감독들의 시선자체가 넌센스.

 

#4. 공기인형

 

복수는 나의 것과 플란다스의 개에 나왔던 배두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무도 모른다'에서 보여줬던 화사하기에 더 갑갑한 먹먹함이 좋았다. 그래서 개봉전부터 기다리던 영화였다. 소통이 단절된 인간사이를 공기처럼 떠 돌며 그들을 실낱과 같은 희망으로 연결해주는 희망적인 영화라는 평들이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절망스런 느낌이 더 강했다. 그들 사이를 떠 다니기는 하지만 이어 줄 수는 없고, 마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게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소통불능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욕구를 배설해가며 또는 참아가며 살아가다가 결국은 타서 재가 되게 되는 인간의 모습이 공기인형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갑갑해지더라는. '아무도 모른다'만큼 내공이 느껴지지는 않아서 약간 실망했지만 배두나이기에 가능했던 연기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5. 그랜토리노

 

유명한 공화당 지지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산 할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시선의 깊이가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고 거기에 출연해서인 것 같다. 마치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킨 느낌이 이영화에는 있다. 지금 미국사회의 문제와 모순을 너무나도 날카롭게 드러내고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어줍지 않은 반성을 남발하는 것도 아니고 해결사를 자임하는 것도 아닌 그 태도가 오히려 진정성있게 느껴진다.. 2009년에 나온 영화 중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함께 엔딩신이 가장 멋진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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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13:36 2010/05/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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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scrum 2010/05/03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화당 지지했다 민주당 지지했다 계속 오락가락파임. 총기소유와 전쟁 반대는 거의 일관되게... 그래서 닉슨을 지지했다가 베트남전 때문에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음.

    • 해미 2010/05/03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쉬. 네오가 정확하게 알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깃발이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같은 전쟁영화가 더 좋은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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