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8/24 19:28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이번 주는 무슨 마가 낀게 분명하다.

분석해야 할 자료때문에 마음이 바쁜데, 사고난 차  때메 신경이 쓰이고 몇 가지 말 때문에 짜증이 올라온다. 가뜩이나 불쾌지수도 높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산업의학을 전공하고 산업의학 전문의로 살면서 느낀 몇 가지 단점 중에 하나는 고전전인 산업의학은 젊은 여성이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수년전 산업의학 1년차를 하던 친구 중에 하나는 '제조업 남성 노동자만 만나기는 싫다'며 예방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비교적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친구의 이야기는 아마도 제조업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 산업보건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범위를 넓혀 가는게 산업보건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자임해 왔으나 가끔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젊은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 경우들이 생긴다.

 

어제 아침 일찍 충남에 있는 한 사업장에서 안전교육을 했다.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은 원래 잘 알고 있고 수년째 알고 지낸 사람들이고 안전 교육을 몇 번 하다보니 관리자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몇 년간 교육 요청이 없다가 얼마전에 급하게 연락이 왔고 그렇게 교육을 하게 됐다. 그런데 관리자가 나랑 친한 척을 하고 싶었는지 나를 소개하는데 쓸데 없는 말을 한다. '오래간만에 교육을 오셨는데 안 보는 사이에 얼굴도 이뻐지고 몸매도 좋아지신 것 같다'며. 교육 시작 전이라 욱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눌렀고 교육을 했다. 도대체 자기가 뭔데 남의 외모를 가지고 품평을 해가며 소개를 하는지 짜증이 만땅이었다. 친하다고 잘못 생각한건지 티를 잘못내는 건지 욱 했다.

 

그러다가 오늘 기어이 짜증 만땅의 일이 발생했다. 국가 연구기관에 상담을 하러갔다. 이미 일년이상을 봤던 사람들이라 대부분 얼굴이 익숙하다. 그 이전부터 반말부터 해 대는 태도가 별로이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도 그랬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만 '난 혈당만 체크하면 되는데'라며 날 쳐다본다. 간호사와 나는 다른 사람을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인사만 하고 상담을 계속 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아가씨, 나 혈당만 재면 된다니까~'라고 한다.

 

열이 팍 올랐는데 한 단계 꺽고 차분하게 '아가씨라고 하시면 안 되시죠.'라고 하고 다시 하던 상담을 계속 하려는데 뒤에서 '아가씨인줄 알았는데 아줌만가 보네? 그러면 뭐라고 불러?'라고 한 번 더 건드린다. 옆에 있던 관리자가 보고 있다 못 해 '의사 선생님'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성질을 버럭 내신다. 나도 이미 열을 받을 만큼 받은 상황이었던지라 다시 차분하게 '제가 의사건 간호사건 아가씨라고 부르시는 것은 듣기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분과 상담을 하는 동안 잠깐 조용히 있더니만 기어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니,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하냐? OO병원 간호사들은 아가씨라고 부르면 다 좋아하더만. 이러니 OO병원은 안 된다'며 소리를 벅벅 지르더니만 혈당 체크 안 한다며 확 나가버렸다. '내가 지를 어떻게 안다고...'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가끔 사업장에 가보면 어처구니 없는 관리자들이 대행 나온 우리 간호사들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계약이 걸려있는 갑과 을의 관계이니 간호사들은 보통 어쩔줄 몰라하거나 그냥 참는다. (내가 당신들한테 가르치는게 없으므로)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아가씨'는 더군다나 아니다. 만약 나이가 많은 여자 의사나 간호사가 왔다면 '아줌마 혈당 재줘'라고 말할 것이냔 말이다. 또는 젊은 남자의사가 오면 총각이라고 부를거냔 말이다.

 

앞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성이라면 얼굴이나 몸매 얘기는 하지 않았을 거다.  얼마전 같이 일하는 천사표로 유명한 교수님이 술에 취해 '여자들은 대부분 논리적 사고를 잘 못해요. 선생님은 예외지만요.'라고 이야기를 하는걸 듣는 다거나 성격이 별로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교수가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고 같이 부르자고 할 때 느꼈던 최근의 짜증이 확 밀려왔다. 도대체 도처에 깔려있는 이 지뢰밭에서 정신이 말끔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냔 말이다.

 

우웩. 정말 짜증 만땅인 이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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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4 19:28 2010/08/2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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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8/24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해미 2010/08/25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그런 아저씨들 무리를 매일 만나는 일은 정말 스트레스라고 절실히 느낀다니까요. 지뢰 찾아 난 안 다치면서도 터트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요. ㅎㅎ

  2. hongsili 2010/08/25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뇌가 오염될만한 상황이로세 ㅋㅋ 욕 먹어서 장수하겠다는 각오로 막나가는게 해결책이라 사료되오. 연예인할 것도 아니고 정치인 할것도 아닌데, 까칠하고 성질더럽다고 욕먹어도 큰 문제될 것 없음... 가끔 귀는 좀 간지럽다는 단점이 ㅋㅋㅋ

    • 해미 2010/08/25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공감! 아저씨들한테 감정 노동하느라 매일 매일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라니까요. ㅠㅠ

  3. 나은 2010/08/26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얘기 들어보면, 환자나 보호자나 의사들(특히 교수들)에겐 '교수님','선생님' 하면서도 간호사들은 막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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