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4/11/16 19:10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그랬다. 정말 뭔가에 걍 몸을 맡기고 싶은 날이었다. 밥 먹는 것두 귀찮아 누군가가 입에 떠 넣어 주기를 기다리는 날이었다. 주말을 온통 거리에서 보내고, 노대 이후에는 동지들과 '고민'을 나누었다. 감기가 조금 나은 듯 했으나...월욜날 대전에 KTX타구 왔다 갔다 하며 잽싸게 교육 한 꼭지 하고 올라오는 동안 피로가 쌓일데로 쌓인 몸은 쳐질데로 쳐지고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이라 더 하기 싫었다. 내가 '틀렸다' 아니 '반노동자적이다'라고 비판하는 흐름보다 더 후진 기조의 보고서를 써야 하는게 싫었다. 그러나 어쩌리오....힘 없는 전공의에 불과한 것을... 그나마 '제대로 치료받게는 해줘야 된다'라는 약하디 약한 실 한오라기 붙들고 보고서를 썼다. 글케 날밤을 새며 보고서를 썼다. 병원 진료실의 환자 진료용 침대에서 한 두시간 눈을 붙인것이 전부였다. 날이 추운데다 담요나 난방기기가 없는 진료실에서 가운을 껴 입고 잠깐 눈을 붙였다. 아침 10시에 교수님께 보고서를 보여드리기로 했는지라 마음만 급해졌다. 결국 보고서는 완성하지 못 했지만 그럭저럭 보고는 마쳤다. 그런데....두~~둥~~~ ㅠㅠ 글쎄 이번 금욜밤이 마감일줄 알았던 보고서를 낼 낮에까지 토해내란다. 제길... 하룻밤을 거의 새웠건만 오늘도 자긴 글러먹었다. 우~~웩! 세상에...쓰러질거 같았다. 만사를 제껴버리고 싶은 마음과 '나쁜짓'을 하고 있다는 '찝찝함'과 제대로 씻지 못한 '찝찝함'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히 목욕탕으로 향했다. 간혹 정말 몸이 힘들고 지칠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따슨 물에 몸 담그고 사우나에서 땀 흘리고 시원한 냉수 마시고 속차리기..ㅋㅋ 그리하여 학교 앞에 있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평일 낮의 목욕탕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문득...내가 소위 '목욕도구'를 하다 못해 칫솔 하나두 들지 않고 목욕탕에 왔다는 사실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태'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런 난감함...때를 박박 밀어줘야 되는디...ㅎㅎ 목욕탕에는 '목욕관리사'라 불리우는 소위 '때밀이'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언젠가 한번 그 목욕탕을 방문했을때 젊은 처자가 낮에 목욕탕에서 얼쩡거리는게 신기한지 이것저것 말을 붙이시던 분이다. 착해보이는 목소리와 눈빛을 가진... 불현듯...때를 밀어보고 싶어졌다. 걍 다이에 시체처럼 누워있으면 누구가가 깨끗하게 씻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심스럽게...아주머니한테 여쭤봤다. '제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는데요...때를 밀어도 될까요? 얼마예요?' '만오천원이지 아가씨...안 바쁘니까 오이맛사지두 해줄께.' 하신다. 잠시 갈등...그러나 난 결국 그 '서비스'를 구매하구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이팩두 해보구 아주머니가 시키는 데로 똑바로 누웠다 모로 누웠다 하며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따뜻한 물과 사우나에서 땀 흘리고 노곤한 몸을 걍 맡겨 버린 것이다. 손가락하나 까딱 안했건만 비누칠이 되고 때가 밀어지고 심지어 맛사지까지 해 주신다. 밤새서 노트북 껴안고 있느라 아프기 그지 없던 어깨두 편안해진다. 반대로 머리를 두게 하시더니 머리까지 감겨주신다. 그 사이에 마음도 편안해지고 피로도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지금은 나머지 보고서를 쓰느라 또 밤샐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쉬...쓰기가 싫다. 그리고 사실 그 아주머니의 '노동'을 내가 걍 확! 돈으로 사버리고 편안해진거 같아 쬐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싸늘한 공기가 감싸는 겨울의 입구에서 만오천원으로 아~~주 훌륭한 사치를 한 듯한 기분이다. 흠... 목욕이 끝난후 아주머니가 건네주시던 시원한 음료수의 상큼함이 되살아난다. 잠시 편안하고 행복한 점심이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1/16 19:10 2004/11/16 19:10
TAG :

About

by 해미

Notice

Counter

· Total
: 426363
· Today
: 332
· Yesterday
: 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