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4/11/11 21:35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난 우리병원의 보건관리자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 병원의 보건관리대행담당의사다. 병원이 두 개인 우리 병원의 보건관리를 대행하는 책임자가 '나'인 것이다. 한달에 한번정도 마찌꼬바를 여러개 모아 놓은 것 같은 병원 지하를 돌아다니며 상담하고 어케하면 소음도 덜 나구 분진두 덜 나구...좀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답답해 했다. 근데...결국 나쁜 짓(?)을 했다. 바로 오늘... 어제의 본 병원에 이어 오늘 지방의 제 2병원의 산안위가 있었다. 본교의 산안위는 대빵이신 과장님이 들어가셨건만...제 2병원은 나보고 가라 하신다. 허걱...젠장...사측 보건관리자의 입장으로 노조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대략 난감... ㅡ.,ㅡ;: 대행팀의 간호사 샘과 산업위생사샘이 조합 간부들과 친한데다가 대의원이기까지 해서 사전에 이러저러한 문제점과 안건이 될 만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는 했으나... 교섭이 이루어지는 자리처럼 노-사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학생때 높기만했던 교수님이신 병원장님 옆에, 즉 사측에 앉아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난번 산안위는 병원장의 불참으로 이미 무산된 터라...관리자들도 긴장하고 있었다. 무사히 별일 없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다른 동지들의 '산보위 무용담' - 주로 산안법을 들먹이며 관리자를 물을 먹인다던지, 책상을 엎고 나온다던지 등등의 - 이 떠오르며 식은땀이 흐른다. 그나마 노동보건문제에 그리 앞서가지 못하는 보건의료노조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산안위 시작전, 병원장님은 '이번 모임 이름이 뭐지요?'라고 묻는다. 세상에...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의사라지만, 병원장이라는 사람이 너무한다 싶다. 총파업관련 쟁의행위찬반투표가 진행중인지라 지부장과 교육부장, 조직부장만이 올라왔다. 지부장님이 몇가지 안건을 이야기했다. 이미 사전에 소통을 본...안건들이다. 지부장님이 안건을 얘기하고 제안하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근골유해요인조사 관련해서 '사업주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되어 있고, 우리 병원의 사업주는 '병원장'님임을 강조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병원장님...처음 안게다. 그런게 있는지... 나는 금속등의 경우 고소고발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벌금형이 내려지고 있다는 현황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이 기회를 놓칠새라 지부장님의 결정타! 병원장님은 '그럼 빨리해야 되겠네...'라며 말끝을 흐린다. 사학재단의 거대한 입김속에 있는 우리 병원의 경우에는 '병원장'이 돈줄을 쥐고 있는게 아니니 본인도 참 괴로우실거다. 그 이후에 안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는 1. 보호구 지급 시스템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신청후 지급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니 충분히 확보해 놓을 것 2. 병원의 공조 시설이 엉망이니 증축중인 건물과 리모델링 예정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팀의 산업위생사의 조언을 반드시 구할것 3. 응급함 관련 약품신청을 원할히 해 줄것 4. 결핵등의 격리병동 관리 및 음압 시스템 갖출것 5. 수은을 다루는 의공과에 국소배기시설을 해줄것 6. 석면을 다루는 치과 기공실의 물품을 교체해 줄것 7. 안전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할 것 8. 특수건강검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니 병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내려 시행할것 등을 요청했다. 물론 조합의 요구가 있고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시스템이었다. 뭐...크게 문제되는건 없으니 병원장님은 '알겠다. 그렇게 시행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대답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1시간여 가량의 산안위가 끝난후 관리자는 큰 소리 안나고 어떻게든 빨리 끝나서 좋다며 밥을 먹자고 한다. 근데...영 마음이 불편해서 그 밥을 못 얻어 먹겠다. 오늘 나는 양심에 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싶어했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잡는 느낌이다. 내가 계속 이러고 살아야 되는 건지...이렇게 주류의 흐름으로 가도 되는 건지... 활동을 통해서 만나는 사업장의 사측관리자들한테는 큰 소리 쳐가며 더 자신있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데... 오늘은 최대한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전문가처럼 보이게 하는게 중요했다. 내 직업의 일상과 내 활동을 이렇게 따로 가져가도 되는 건지... 내 활동과 삶의 전망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근거도 없는데...걍 나쁜 짓을 한거 같다. 그래서...기분이 꽝이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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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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