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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봉기로는 충분치 않다 / 장석준譯

"때로는 차가운 머리 보다는 가슴에서 우러나온 광기가 혁명에(최소한 촛불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 광기들을 꿰어서 조율하여 진정한 혁명의 동력으로 엮어내는 것은 광기가 아닐 것이다. (...) 신문이 광기를 조율 불가능한 상황까지 밀어내서는 안되리라는 노파심도 든다. '광기와 혁명' 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정리가 필요하겠다" 라고 나는 지난 포스트 (http://blog.jinbo.net/radix/?pid=198)에서 말했었는데, 마침 많이는 아니지만 약간은 비슷한 맥락에서 '대중 광기'와 '조직 혁명' 이라는 관점을 다룬 글이 있어 옮겨온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말하는 광기는 '대중의 감성적 폭발성'을 말하는 것이지 '이성적 요소의 전적인 결격이나 미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옮기는 글을 미리 내 방식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대중을 지도하려는 기질은 개인들의 성정에 기초한 도덕적·사적 행동방식의 발로로서 혁명에 전혀 보탬이 안되지만, 대중을 지도하는 행위나 능력은 정당성과 정통성 위에서 마련된 지극히 정치적(공적 윤리성)인 것으로서 혁명에 필요불가결한 도구가 된다. 민중의 자연발생적 봉기가 인공적·기술적·정치적 동력으로 엮여나오는 것이 정치이고 이 정치의 주인은 당연히 민중이지만, 민중이 바로 혁명(정치)의 주체(주인이 아니라 주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정당하고 합리적인 위상(정통성·권위)과 권능(재능·능력)을 갖는 지도부의 조직적 지도력에 의해서만 그 구현(구체적 실현)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지극히 실재적인(추상적 주장 말고) 요청이 혁명에 더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행동에 일체성(권위의 인정과 복종)을 보일 때만이 혁명의 성공가능성이 보장된다는 말이겠다. 그리고 '민주'라는 이름의 요청에 의한 정치적 조직체의 탈권위가 능사는 아니고(노무현의 탈권위를 모두들 엄청 칭찬하던데, 이것도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중요한 것은 권위를 제도정치권 내의 진입을 통해서만 획득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세력의 건설"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고 분출되는 양태 속에서 찾아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혹시나 몰라 세 번 읽으면서(원문-메모장-블로그) 내가 한 이해는 이런 것인데, 나와는 다른 독해도 있을 수 있겠기에 참고용으로 군말을 보탰다. 중간에 둔 문단 구분용 별표 둘은 원문의 것이 아니다.]

 


“대중 봉기로는 충분치 않다”  / 마르타 아르네케르 글, 장석준 번역
[Left Side Story] 중남미 경험과 정당…"좌파, 정치문화-정치관 바꿔야" 
 
아래는 칠레 출신의 저명한 여성 맑스주의자 마르타 아르네케르의 최근 글(원제: 「투쟁을 위한 사색 -1」)을 번역한 것이다. 아르네케르는 1970년대 초 칠레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고 이후 그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의 볼리바리안 혁명에 참여하면서 칠레의 경험, 베네수엘라의 경험을 꿰뚫는 정치적 탐구와 사색의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아래 글은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정당의 과제에 대해 풍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 세계 좌파 정당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고민과 해답의 실마리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역자 주>
 

     
▲ 마르타 아르네케르


1. 21세기로 전환하는 시점에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상당수 나라들을 뒤흔들었던 최근의 대중 봉기와, 더 일반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회적 폭발의 역사는 대중의 주도성이 본래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는 지배 체제를 물리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 빈곤에 처한 도시와 농촌의 대중이 뚜렷한 지도부 없이 궐기하여 고속도로와 마을, 지역사회를 점거하고 상점을 약탈했으며 의회를 타격했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동원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참여와 전투성만으로는 민중 봉기를 혁명으로 발전시키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대중은 대통령을 내쫓았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할 수는 없었고, 심층적인 사회 변혁 과정에 착수하지도 못했다.

3. 반면 성공한 혁명의 역사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의 투쟁들을 하나의 공통 목표 아래 통합할 전국적 대안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 조직이 존재할 때에만 혁명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전국적 대안 프로그램은 다양한 투쟁들의 결집을 돕고 현존 세력 균형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투쟁 주체들에게 전망을 제시한다. 오직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끊임없이 적의 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서,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장소에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4. 이러한 정치 조직은 결정적 순간에 증기를 압축해서 이를 강력한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피스톤과 같다.

5. 반발과 저항, 투쟁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즉 봉기가 혁명으로 전환되도록 효과적인 정치 행위를 감행하려면, 착취 받고 억압 당하는 대중의 분열과 파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 조직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조직은, 서로 차이도 지니지만 또한 공통의 적을 지닌 세력들을 한데 결집할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 즉, 이미 진행되고 있는 투쟁들을 강화하고 정치 상황에 대한 전반적 분석에 따라 이러한 행동들에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투쟁들을 촉진할 수 있다. 저항과 투쟁의 다양한 표현들을 결집할 수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6.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수많은 서로 다른 평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런 생각에 대해서는 토론조차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런 입장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들이 위와 같은 생각을 다수 좌파 정당들의 특징인, 반민주적이고 권위적이며 관료적이고 책략적인 정치 실천들과 연관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7. 나는 우리가 이러한 주체적인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근본 과제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논의해야 할 정치 조직은 정치 조직 일반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용된 정치 조직, 즉 우리가 함께 건설해가야 할 정치 조직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

8.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정치 조직을 건설하거나 리모델링하려면, 좌파는 그 정치 문화와 정치관을 바꿔야만 한다. 의회나 지방자치단체 장악을 위한, 즉 선거 승리나 개혁 입법을 위한 제도 정치 투쟁에 제한돼서는 안 된다. 이런 협소한 정치관을 따른다면, 민중 부문과 그들의 투쟁은 완전히 무시되고 만다. 또한 정치를 현재 가능한 것만을 행하는 기술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9. 좌파에게 정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예(art)여야만 한다. 주의주의적 선언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세력 균형을 민중운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서 당장 현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미래에는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세력을 구축하는 기예로 정치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10. 우리는 정치를 세력 구축의 기예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사회 세력의 건설 없이 정치 세력을 건설하려 한, 낡고 오래된 오류를 극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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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행히도 우리 투사들 사이에는 아직도 ‘혁명적 시기’를 떠벌이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의 성명서를 보면 급진주의로 넘쳐난다. 나는 현 상황을 급진화하는 것은 오직 세력 구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사건건 급진화 요구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다음의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일보 전진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12. 그러나 이러한 세력 구축은 자연발생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민중 봉기뿐이다. 건설자(세력 구축의 주체)가 필요하다.

13. 그래서 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부문을 단결시키고 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전국적 기획을 제출할 능력을 지닌 조직으로 새로운 정치 조직을 구상한다. 이러한 정치 조직은 사회의 다른 부분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만 하며, 사회운동들을 조종하려 하기보다는 그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조직의 투사와 지도자들은 민중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지식(일상 생존 투쟁 과정에서 획득하기도 하고 민중의 문화 전통에서 비롯되기도 하는)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러한 지식을 정치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종합적 지식과 결합시킬 수 있는 대중 교육가들이어야만 한다. 사회운동들에 봉사하면서 이들 운동에 방향을 부여하고 결집시키는 수단이어야 하는 것이다.

 

* 이 글은 <주간 진보신당>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레디앙 2009년 05월 29일 (금) 09:58:05 번역 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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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폭력혁명론 (<국가와 혁명>(1917) 에서)

"폭력 혁명이 없이는, 부르주아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레닌-

"Sans révolution violente, il est impossible de substituer l'Etat prolétarien à l'Etat bourgeois." 

 

Discours de Lé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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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국가와 혁명>(*), 제1장(계급사회와 국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폭력예찬론이 아니라,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부르주아 국가라는 것이 엄밀한 계급적 틀 위에 만들어졌고, 그 계급을 조장하고 활용하며 유지-발전될 수밖에 없는, 즉 보이지 않는 폭력적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므로, 그 구조를 타파할 수단은 폭력혁명 외에는 없다는, 폭력불가피론을 말하는 것이겠다. '적이 폭력(보이든 말든)을 사용하니 나도 폭력이다'라는 오기적 발상이 아니라, 그들이 지배의 틀을 계급 위에 구축하고 지속 시키는 데에는 그만한 지적(계략의) 견고함이 있을테고, 그런 견고함에 맞서 말과 논리로 백날 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요구해봤자, 그들을 떠받들고 있는 반동적 지식인과 그 동조자들의 세력이 더 우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폭력 불가피론이 아닐까 싶다 (별로 신빙성 없는 내 생각에..). 심지어, 민주주의에 대하여, 레닌은 '민주주의 일반'(democratie en general) 같은 것은 아예 없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며, 이 후자의 전형적인 양태가 바로 서구 의회민주주의로, 여기서는 대표자라는 놈들이 대표하는 것은 전혀 인민이 아니라 부르주아-부자-귀족 계급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물론, 진짜민주주의=공산주의! 

갑자기, 지난 토요일 서울 촛불 집회에서 약간의 투석전이 있었고, 작년에는 그렇게도 비폭력을 고집하던 사람들이 MB 치하 1년만에 뭔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더는 그런 부르주아(쁘띠) 논쟁을 않았다는 기사를 보고 기억난 글이다 (아마도 평화가 어떤 진보정당의 심벌들 중의 하나였던가, 근데 누구를 위한 평화일까?). 이하 <국가와 혁명>, 제1장, 제4절, "국가의 절멸(소멸)과 폭력혁명" [소멸은 자동적/절멸은 타동적 -내 느낌 상-]의 불어 번역본을 옮겨다 읽어본다. (아마도 한글본도 별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텐데, 나는 잘 모름.

(*) 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1917년 8월, 그러니까 10월혁명 직전에 쓰여진 글이다.

출처: http://www.marxists.org/francais/lenin/works/1917/08/er00t.htm

  

Bolshevik (1920), par Boris Kustodiev

 

레닌, <국가와 혁명>(1917), L'ETAT ET LA REVOLUTION

CHAPITRE I. LA SOCIETE DE CLASSES ET L'ETAT (제1장. 계급사회와 국가)
1. L'Etat, produit de contradictions de classes inconciliables (국가,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 간 대결-모순의 산물)
2. Détachements spéciaux d'hommes armés, prisons, etc. (무장한 민중의 특수한 이탈, 감옥, 등)
3. L'Etat, instrument pour l'exploitation de la classe opprimée (국가, 피지배계급의 착취를 위한 도구)

 

 

4. "EXTINCTION" DE L'ETAT ET REVOLUTION VIOLENTE (국가의 절멸과 폭력혁명)

 

Les formules d'Engels sur l'"extinction de l'Etat" jouissent d'une si large notoriété, elles sont si fréquemment citées, elle mettent si bien en relief ce qui fait le fond même de la falsification habituelle du marxisme accommodé à la sauce opportuniste qu'il est nécessaire de s'y arrêter plus longuement. Citons en entier le passage d'où elles sont tirées :

"Le prolétariat s'empare du pouvoir d'Etat et transforme les moyens de production d'abord en propriété d'Etat. Mais par là, il se supprime lui-même en tant que prolétariat, il supprime toues les différences de classes et oppositions de classes et également en tant qu'Etat. La société antérieure, évoluant dans des oppositions de classes, avait besoin de l'Etat, c'est-à-dire, dans chaque cas, d'une organisation de la classe exploiteuse pour maintenir ses conditions de production extérieures, donc surtout pour maintenir par la force la classe exploitée dans les conditions d'oppression données par le mode de production existant (esclavage, servage, salariat). L'Etat était le représentant officiel de toute la société, sa synthèse en un corps visible, mais cela, il ne l'était que dans la mesure où il était l'Etat de la classe qui, pour son temps, représentait elle-même toute la société : dans l'antiquité, Etat des citoyens propriétaires d'esclaves; au moyen âge, de la noblesse féodale; à notre époque, de la bourgeoisie. Quand il finit par devenir effectivement le représentant de toute la société, il se rend lui-même superflu. Dès qu'il n'y a plus de classe sociale à tenir dans l'oppression; dès que, avec la domination de classe et la lutte pour l'existence individuelle motivée par l'anarchie antérieure de la production, sont éliminés également les collisions et les excès qui en résultent, il n'y a plus rien à réprimer qui rende nécessaire un pouvoir de répression, un Etat. Le premier acte dans lequel l'Etat apparaît réellement comme représentant de toute la société, - la prise de possession des moyens de production au nom de la société, - est en même temps son dernier acte propre en tant qu'Etat. L'intervention d'un pouvoir d'Etat dans des rapports sociaux devient superflue dans un domaine après l'autre, et entre alors naturellement en sommeil. Le gouvernement des personnes fait place à l'administration des choses et à la direction des opérations de production. L'Etat n'est pas "aboli", il s'éteint. Voilà qui permet de juger la phrase creuse sur l'"Etat populaire libre", tant du point de vue de sa justification temporaire comme moyen d'agitation que du point de vue de son insuffisance définitive comme idée scientifique; de juger également la revendication de ceux qu'on appelle les anarchistes, d'après laquelle l'Etat doit être aboli du jour au lendemain" (Anti-Dühring, Monsieur E. Dühring bouleverse la science, pp. 301-303 de la 3e édit. allemande).

On peut dire, sans crainte de se tromper, que ce raisonnement d'Engels, si remarquable par sa richesse de pensée, n'a laissé, dans les partis socialistes d'aujourd'hui, d'autre trace de pensée socialiste que la notion d'après laquelle l'Etat "s'éteint", selon Marx, contrairement à la doctrine anarchiste de l'"abolition" de l'Etat. Tronquer ainsi le marxisme, c'est le réduire à l'opportunisme; car, après une telle "interprétation", il ne reste que la vague idée d'un changement lent, égal, graduel, sans bonds ni tempêtes, sans révolution. L'"extinction" de l'Etat, dans la conception courante, généralement répandue dans les masses, c'est sans aucun doute la mise en veilleuse, sinon la négation, de la révolution.

Or, pareille "interprétation" n'est qu'une déformation des plus grossières du marxisme, avantageuse pour la seule bourgeoisie et théoriquement fondée sur l'oubli des circonstances et des considérations essentielles indiquées, par exemple, dans les "conclusions" d'Engels que nous avons reproduites in extenso.

 

1/ Premièrement. Au début de son raisonnement, Engels dit qu'en prenant possession du pouvoir d'Etat, le prolétariat "supprime par là l'Etat en tant qu'Etat". On "n'a pas coutume" de réfléchir à ce que cela signifie. D'ordinaire, ou bien l'on en méconnaît complètement le sens, ou bien l'on y voit, de la part d'Engels, quelque chose comme une "faiblesse Hégélienne". En réalité, ces mots expriment en raccourci l'expérience d'une des plus grandes révolutions prolétariennes, l'expérience de la Commune de Paris de 1871, dont nous parlerons plus longuement en son lieu.

Engels parle ici de la "suppression", par la révolution prolétarienne, de l'Etat de la bourgeoisie , tandis que ce qu'il dit de l'"extinction" se rapporte à ce qui subsiste de l'Etat prolétarien , après la révolution socialiste. L'Etat bourgeois, selon Engels, ne "s'éteint" pas; il est "supprimé" par le prolétariat au cours de la révolution. Ce qui s'éteint après cette révolution, c'est l'Etat prolétarien, autrement dit un demi-Etat.

 

2/ Deuxièmement. L'Etat est un "pouvoir spécial de répression". Cette définition admirable et extrêmement profonde d'Engels est énoncée ici avec la plus parfaite clarté. Et il en résulte qu'à ce "pouvoir spécial de répression" exercé contre le prolétariat par la bourgeoisie, contre des millions de travailleurs par une poignée de riches, doit se substituer un "pouvoir spécial de répression" exercé contre la bourgeoisie par le prolétariat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C'est en cela que consiste la "suppression de l'Etat en tant qu'Etat". Et c'est en cela que consiste l'"acte" de prise de possession des moyens de production au nom de la société. Il va de soi que pareil remplacement d'un "pouvoir spécial" (celui de la bourgeoisie) par un autre "pouvoir spécial" (celui du prolétariat) ne peut nullement se faire sous forme d'"extinction".

 

3/ Troisièmement. Cette "extinction" ou même, pour employer une expression plus imagée et plus saillante, cette "mise en sommeil", Engels la rapporte sans aucune ambiguïté possible à l'époque consécutive à la "prise de possession des moyens de production par l'Etat au nom de toute la société", c'est-à-dire consécutive à la révolution socialiste. Nous savons tous qu'à ce moment-là la forme politique de l'"Etat" est la démocratie la plus complète. Mais il ne vient à l'esprit d'aucun des opportunistes qui dénaturent sans vergogne le marxisme qu'il s'agit en ce cas, chez Engels, de la "mise en sommeil" et de l'"extinction" de la démocratie. Cela paraît fort étrange à première vue. Pourtant, ce n'est "inintelligible" que pour quiconque n'a pas réfléchi à ce fait que la démocratie, c'est aussi un Etat et que, par conséquent, lorsque l'Etat aura disparu, la démocratie disparaîtra également. Seule la révolution peut "supprimer" l'Etat bourgeois. L'Etat en général, c'est-à-dire la démocratie la plus complète, ne peut que "s'éteindre".

 

4/ Quatrièmement. En formulant sa thèse fameuse : "l'Etat s'éteint", Engels explique concrètement qu'elle est dirigée et contre les opportunistes et contre les anarchistes. Et ce qui vient en premier lieu chez Engels, c'est la conclusion, tirée de sa thèse sur l'"extinction" de l'Etat, qui vise les opportunistes.

On peut parier que sur 10 000 personnes qui ont lu quelque chose à propos de l'"extinction" de l'Etat ou en ont entendu parler, 9 990 ignorent absolument ou ne se rappellent plus que les conclusions de cette thèse, Engels ne les dirigeait pas uniquement contre les anarchistes. Et, sur les dix autres personnes, neuf à coup sûr ne savent pas ce que c'est que l'"Etat populaire libre" et pourquoi, en s'attaquant à ce mot d'ordre, on s'attaque aussi aux opportunistes. Ainsi écrit-on l'histoire ! Ainsi accommode-t-on insensiblement la grande doctrine révolutionnaire au philistinisme régnant. La conclusion contre les anarchistes a été mille fois reprise, banalisée, enfoncée dans la tête de la façon la plus simpliste; elle a acquis la force d'un préjugé. Quant à la conclusion contre les opportunistes, on l'a estompée et "oubliée" !

L'"Etat populaire libre" était une revendication inscrite au programme des social-démocrates allemands des années 70 et qui était devenue chez eux une formule courante. Ce mot d'ordre, dépourvu de tout contenu politique, ne renferme qu'une traduction petite-bourgeoise et emphatique du concept de démocratie. Dans la mesure où l'on y faisait légalement allusion à la république démocratique, Engels était disposé à "justifier", "pour un temps", ce mot d'ordre à des fins d'agitation. Mais c'était un mot d'ordre opportuniste, car il ne tendait pas seulement à farder la démocratie bourgeoise; il marquait encore l'incompréhension de la critique socialiste de tout Etat en général. Nous sommes pour la république démocratique en tant que meilleure forme d'Etat pour le prolétariat en régime capitaliste; mais nous n'avons pas le droit d'oublier que l'esclavage salarié est le lot du peuple, même dans la république bourgeoise la plus démocratique. Ensuite, tout Etat est un "pouvoir spécial de répression" dirigé contre la classe opprimée. Par conséquent, aucun Etat n'est ni libre, ni populaire. Cela, Marx et Engels l'ont maintes fois expliqué à leurs camarades de parti dans les années 70.

 

5/ Cinquièmement. Ce même ouvrage d'Engels, dont tout le monde se rappelle qu'il contient un raisonnement au sujet de l'extinction de l'Etat, en renferme un autre sur l'importance de la révolution violente. L'appréciation historique de son rôle se transforme chez Engels en un véritable panégyrique de la révolution violente. De cela, "nul ne se souvient"; il n'est pas d'usage, dans les partis socialistes de nos jours, de parler de l'importance de cette idée, ni même d'y penser; dans la propagande et l'agitation quotidiennes parmi les masses, ces idées ne jouent aucun rôle. Et pourtant, elles sont indissolublement liées à l'idée de l'"extinction" de l'Etat avec laquelle elles forment un tout harmonieux.

Voici ce raisonnement d'Engels :

"... que la violence joue encore dans l'histoire un autre rôle [que celui d'être source du mal], un rôle révolutionnaire; que, selon les paroles de Marx, elle soit l'accoucheuse de toute vieille société qui en porte une nouvelle dans ses flancs; qu'elle soit l'instrument grâce auquel le mouvement social l'emporte et met en pièces des formes politiques figées et mortes - de cela, pas un mot chez M. Dühring. C'est dans les soupirs et les gémissements qu'il admet que la violence soit peut-être nécessaire pour renverser le régime économique d'exploitation, - par malheur ! Car tout emploi de la violence démoralise celui qui l'emploie. Et dire qu'on affirme cela en présence du haut essor moral et intellectuel qui a été la conséquence de toute révolution victorieuse ! Dire qu'on affirme cela en Allemagne où un heurt violent, qui peut même être imposé au peuple, aurait tout au moins l'avantage d'extirper la servilité qui, à la suite de l'humiliation de la Guerre de Trente ans, a pénétré la conscience nationale ! Dire que cette mentalité de prédicateur sans élan, sans saveur et sans force a la prétention de s'imposer au parti le plus révolutionnaire que connaisse l'histoire !" (Anti-Dühring , p. 193 de la 3e édit. allemande, fin du chapitre IV, 2e partie.)

Comment peut-on concilier dans une même doctrine ce panégyrique de la révolution violente qu'Engels n'a cessé de faire entendre aux social-démocrates allemands de 1878 à 1894, c'est-à-dire jusqu'à sa mort même, et la théorie de l'"extinction" de l'Etat ?

D'ordinaire, on les concilie d'une manière éclectique, par un procédé empirique ou sophistique, en prenant arbitrairement (ou pour complaire aux détenteurs du pouvoir) tantôt l'un, tantôt l'autre de ces raisonnements; et c'est l'"extinction" qui, 99 fois sur 100 sinon plus, est mise au premier plan. L'éclectisme se substitue à la dialectique : c'est, à l'égard du marxisme, la chose la plus accoutumée, la plus répandue dans la littérature social-démocrate officielle de nos jours. pareil substitution n'est certes pas une nouveauté : on a pu l'observer même dans l'histoire de la philosophie grecque classique. Dans la falsification opportuniste du marxisme, la falsification éclectique de la dialectique est celle qui trompe les masses avec le plus de facilité; elle leur donne un semblant de satisfaction, affecte de tenir compte de tous les aspects du processus, de toutes les tendances de l'évolution, de toutes les influences contradictoires, etc., mais, en réalité, elle ne donne aucune idée cohérente et révolutionnaire du développement de la société.

Nous avons déjà dit plus haut, et nous le montrerons plus en détail dans la suite de notre exposé, que la doctrine de Marx et d'Engels selon laquelle une révolution violente est inéluctable concerne l'Etat bourgeois. Celui-ci ne peut céder la place à l'Etat prolétarien (à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par voie d'"extinction", mais seulement, en règle générale, par une révolution violente. Le panégyrique que lui consacre Engels s'accorde pleinement avec de nombreuses déclarations de Marx (rappelons-nous la conclusion de la Misère de la philosophie et du Manifeste communiste proclamant fièrement, ouvertement, que la révolution violente est inéluctable; rappelons-nous la critique du programme de Gotha en 1875, près de trente ans plus tard, où Marx flagelle implacablement l'opportunisme de ce programme). Ce panégyrique n'est pas le moins du monde l'effet d'un "engouement", ni une déclamation, ni une boutade polémique. La nécessité d'inculquer systématiquement aux masses cette idée - et précisément celle-là - de la révolution violente est à la base de toute la doctrine de Marx et Engels. La trahison de leur doctrine par les tendances social-chauvines et kautskistes, aujourd'hui prédominantes, s'exprime avec un relief singulier dans l'oubli par les partisans des unes comme des autres, de cette propagande, de cette agitation.

Sans révolution violente, il est impossible de substituer l'Etat prolétarien à l'Etat bourgeois. La suppression de l'Etat prolétarien, c'est-à-dire la suppression de tout Etat, n'est possible que par voie d'"extinction".

Marx et Engels ont développé ces vues d'une façon détaillée et concrète, en étudiant chaque situation révolutionnaire prise à part, en analysant les enseignements tirés de l'expérience de chaque révolution. Nous en arrivons à cette partie, incontestablement la plus importante, de leur doctrine.

 

* 모든 이텔릭체 강조는 원문 그대로 이고, 기타 잡다한 강조와 번호는 펌자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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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tour, Actor-Network Theory (+art.3)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이름하여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라는 한겨레 기획물의 프랑스 편이 어제 부로 마감이 된 듯하다. 프랑스의 대표 주자로 나선(뽑힌) 사람은 바디우, 발리바르, 랑시에르, 낭시, 스티글레르, 라투르, 총 6명 이었다. 마지막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작년인가의 교수신문에서 다룬 비슷한 기획에 출연을 했었고,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유명세는 이제 국경을 넘어 멀리 한국땅에서도 상당하다고 봐도 되겠다. 또 그만큼이나 이번 기획에서 다뤄진 그들에 대한 글들은 펌질의 욕망을 자아낼 정도로 새롭거나, 심오하거나, 그도 아니면 체계적 정리였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마지막 주자로 등장한 라투르(Bruno Latour, 1947~)에 대한 글은 약간 예외적인 듯하여 부분 펌질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이론에 적극 공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참고할 가치는 있는 듯하다는 정도.

 

라투르의 사회학 이론의 핵심은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 théorie de l'acteur-réseau)이라는 것인 모양인데, 아래 김환석의 설명을 미리 옮기면 이런 것이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이란 과학과 기술을 자연 실재의 단순한 반영으로 보는 입장이나 사회 실재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 모두를 거부한다. 그 대신에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이질적 행위자들이 동맹을 맺어 공고한 연결망의 구축을 성취할 때 성공적으로 과학과 기술이 출현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곧 과학기술과 사회는 연결망 구축의 결과로서 공동생산된다는 것이다." 이하 김환석 글의 핵심인 마지막 3 문단과 결론을 옮기고 번호는 내가 단다.

1/ 1990년대 탈냉전과 생태 위기의 본격적 전개에 따라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이 이러한 지구적 문제에 던지는 철학적·정치적 함의를 모색하는 쪽으로 연구를 확대하였다. 그는 탈냉전이 기존의 낡은 근대주의적 정치를 벗어나 이제야말로 평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를 할 기회를 좌파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냉전 시대에는 그 치열했던 계급전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좌파와 우파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즉 근대화의 필요성, 진보의 불가피성, 경제의 토대적 역할,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 등에 대해 다양한 우파와 좌파 사이에 항상 깊은 의견일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냉전 이후에 우파뿐 아니라 좌파도 역시 ‘지구화’, ‘시장의 자유’, ‘탈규제’, ‘유연성’, ‘기술혁신’ 등을 외치며 누가 근대화를 더 잘 근대화하느냐를 두고 다투고 있을 뿐이라고 그는 꼬집는다. 오늘날 진정 중요한 문제는 수십억의 사람과 동물과 사물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지구 온난화, 종의 보존, 인구 증가, 환경오염, 유전공학의 영향 등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과학기술의 생산 및 소비와 관련된 이런 엄청난 ‘집단적 실험’이 그동안 아무 의정서도, 피드백 기회도, 사후보고도, 기록보관도, 모니터링도, 정당한 정치 과정도 없이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2/ “근대화냐, 생태화냐”로 요약되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좌파는 근대화의 심화에 몰두하는 우파와 이제야말로 진정한 차이를 만들 기회를 만났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생태화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현재의 녹색운동과는 다르다. 비인간들로만 구성된 절대적 ‘자연’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녹색운동은 문제의 궁극적 원인인 근대주의를 탈피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주의에서는 모든 실체들을 두 가지의 완전히 분리되는 존재론적 영역인 순수한 비인간들의 세계와 순수한 인간들의 세계로 나누고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물질/정신 이원론에서 비롯되어, 칸트의 객체/주체 이분법으로 전개되었고, 뒤르켐의 사회학에 와서는 자연/사회의 이분법으로 고정되었다. 여기서 전자는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사실’의 세계이고, 후자는 영혼과 자유의지가 작동하는 ‘가치’의 세계로 간주된다. 근대인들은 의식으로는 이런 이분법에 몰두하고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는 행위자-연결망을 통해 점점 더 수많은 잡종들을 양산하여 생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모든 사실과 인공물이 이러한 잡종들인데, 근대인들은 이들을 순수한 비인간으로 간주하여 ‘사실’ 세계로만 단순히 파악하려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3/ 따라서 라투르는 새로운 정치생태학을 제안한다. 그것은 절대적 실재로서의 ‘자연’이나 이를 반영한다고 간주되는 유일한 ‘과학’, 또는 인간에게만 행위성을 부여하는 ‘사회’ 개념을 모두 거부한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이 좀더 바람직하게 결합하는 공동세계(코스모스)의 점진적 구성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과학기술의 산물이 논란과 타협·조정의 정당한 정치적 과정을 거쳐서 공동세계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라투르는 이를 위해 ‘사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논란’과 ‘제도’로,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협의’와 ‘위계’로 분해한 다음에, ‘논란’과 ‘협의’를 상원으로 하고 ‘위계’와 ‘제도’를 하원으로 재편성하는 새로운 권력분립의 정치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광우병의 원인이라 일컬어지는 단백질인 프리온의 경우, 상원에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며 과연 존재하는지 ‘논란’을 벌이고 이에 관련된 모든 행위자들(과학자, 축산농민, 도축장, 정부, 동물단체 등)이 충분히 ‘협의’를 하도록 맡긴다. 그 다음에 하원에서는 공동 세계에서 기존 구성원들과 프리온의 양립 가능성을 평가하고 상대적 위치를 조정하는 ‘위계’ 부여를 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친 프리온에 대해서는 논의를 종결하고 ‘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상원과 하원이라 한 것은 비유적 용어이고 공동 세계의 구성을 위한 의사결정의 권한을 그렇게 나누자는 것이다. 요점은 이러한 정치 모델에서 자연/사회, 사실/가치의 이분법은 마침내 사라지며, 모든 사물들이 관련 행위자들의 논란과 협의 및 조정을 거쳐야만 공동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라투르의 정치생태학은 지구적 혼돈과 생태위기 시대에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참신한 의제와 통찰을 던져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환석, 혼돈의 시대 ‘정치생태학’에서 해법을 찾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⑦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 기사등록 : 2009-04-10 오후 07:45:18  기사수정 : 2009-04-10 오후 07:48:50 ⓒ 한겨레 [김환석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과학기술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이며, 시민과학센터 소장과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과학사회학의 쟁점들>(문학과지성사), 번역한 책으로는 <과학학의 이해>(당대) 등이 있고, 현재 라투르의 책 <자연의 정치학>과 <사회학의 재구성>을 번역중이다.]

 

 

------- 여기까지가 새로 추가된 부분이고, 아래의 나머지는 지난 1월 포스트를 오늘 날짜로 자리만(약간 수정) 이동 ------

(기획물에 대한 서설은 '스티글레르, 기술(technique)과 삶의양식 http://blog.jinbo.net/radix/?pid=41' 을 참조하라)

 

 

[앞의 '스티글레르'에서 이어지는 글] 브리노 라뚜르는 철학이라기 보다는 사회학적 연구에 치중라는 것으로 보이고, 특히 뒤르께임의 정통 사회학과 부르디외를 비판하며 나름의 아주 독창적인(?) 사회학을 개척하려고 시도하는 듯하다. 그 독창성이 지나쳐서 때로 전통과 기본을 무시할 경우 흔히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질 수가 있겠는데, 라뚜르가 프랑스에서 갖는 위치가 약간은 그런 듯이 보이는데, 아마 그래서 영어로 활동을 많이 하는 듯하다 (아마 그 역인지도). 그는 현재 빠리정치학교(Sciences Po: l'Institut d'études politiques de Paris)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문적 계보는 미셸 쎄르(Michel Serres, 1930~)를 잇는 모양인데, 꼭 그만큼이나 프랑스 정통 학계에서는 멀어져 있는 듯하다. 즉, 쎄르가 다작과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거의 아무도 인용을 않으며, 빠리정치학교에서 나오는 책은 거의가 참고문헌에서 제외되는 게 현실일 것이다. (참고로, 빠리정치학교를 김환식은 무슨 고등정치연구학교 비슷하게 글의 도입부에서 언급을 해뒀던데, 이 학교는 정치가나 언론인을 양성하는 학교이지 거의 학자를 배출하는 곳은 아니다.) [여기서 '거의'나 '듯하다'는 류의 표현을 내가 많이 사용한 것은 내 말이 100% 다 사실인 것은 아니라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훑어보다가, 라뚜르가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 2개("정치 또는 혁명, 선택해야 한다"(뤼마니떼,2006-v), "좌파는 부르디외를 필요로 하는가?"(리베라씨옹,2008-ix))를 통해 그가 갖는 입장의 대강을, 그리고 나머지 1편에서는 다른 사람이 쓴 "브리노 라뚜르, 더듬기를 조직해야 한다는데.."(2006-iv)라는 글을 통해 라뚜르 이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퍼다둔다 (언제 다 읽고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릴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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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que ou révolution, il faut choisir / par  Bruno Latour
-L’Humanité 4 Mai 2006 (Mise en ligne le mardi 2 janvier 2007)

 
L’argument est très simple et il n’est pas sans importance pour ceux qui veulent passer du communisme à la composition du monde commun. La notion de révolution vient de l’astronomie, passe en histoire des sciences pour décrire la grande coupure entre, par exemple, alchimie et chimie, et se retrouve enfin en politique[1] . On l’utilise alors pour décrire les bouleversements du corps politique depuis la révolution anglaise, américaine et, en partie française. C’est donc un terme du 18° siècle, pour désigner l’invention douloureuse du gouvernement représentatif ; c’est ainsi qu’on l’utilise encore pour parler de révolution à Kiev ou à Minsk. [1] Rey, A. (1989). "Révolution" histoire d’un mot. Paris : Gallimard.

Le problème c’est qu’au 19° siècle, s’invente une autre notion que celle de corps politique : la grande idée d’une société, d’un système social, fusionnée d’ailleurs en France avec l’idée de l’Etat, lui-même héritier du roi, et, plus loin encore de l’Eglise. Or, cette société a ceci de particulier qu’elle est inventée précisément pour court-circuiter l’idée de composition politique : la société est toujours déjà là ; elle nous déborde de toutes part ; elle est d’un bloc ; elle détermine nos actions. L’immense avantage de la notion de société, par exemple chez Comte, chez Durkheim, c’est qu’elle est déjà composée et qu’elle explique les comportements de tous ses membres. Elle permet donc de faire l’économie de toute révolution. Et c’est là où les choses se compliquent pour finir tragiquement : les progressistes du 19° vont reprendre la notion de révolution, qu’on appliquait jusqu’ici avec un certain succès à la subversion du corps politique, pour essayer de « renverser la société » -société conçue tout exprès pour éviter de payer le prix politique de sa composition ! L’échec était inévitable : au contraire, la résistance même du système social à tout bouleversement semblait militer pour qu’on le renverse encore plus fortement. Ce fut alors qu’on inventa ce que Bernard Yack appelle la révolution totale [2]. On ne peut rien changer sans tout changer. Conséquence inattendue : donc on ne peut rien changer... [2] Yack, B. (1992). The Longing for Total Revolution : Philosophic Sources of Social Discontent from Rousseau to Marx and Nietzsche.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Ceux qui ont essayé malgré tout, ont payé en déception le prix amer que connaissent bien les lecteurs de ce journal. Il n’y a rien d’étonnant à ce qu’un concept fait pour éviter la politique empêche la reprise de la politique. C’est le contraire qui serait surprenant. La situation est d’ailleurs la même avec les écologistes qui ont essayé de reprendre la notion de nature, faite, elle aussi, pour court-circuiter la composition politique, et qui, pour les mêmes raisons ont échoué [3]. Inutile de remâcher le passé : laissons le terme de révolution à son siècle -le 18°-, la notion de société à son siècle -le 19°- la notion de nature à son siècle -le 20°-, pour nous intéresser à cette troisième forme d’existence commune, que j’appelle le collectif (je simplifie cela va de soi). Or l’immense différence entre la notion de collectif et celle de société c’est qu’il n’est pas déjà là, il ne forme pas système, il n’explique pas nos comportements, il ne définit pas d’avance nos attitudes et nos alliances. Le collectif oblige à prendre en compte les incertitudes, les combinaisons nouvelles -en particulier les associations si surprenantes entre ce que j’appelle les humains et les non-humains. Mais surtout, comme le collectif n’est pas l’Etat -et pas le marché-, comme il n’est pas déjà là, il faut le faire exister, il faut donc le composer. [3] Latour, B. (1999). Politiques de la nature. Comment faire entrer les sciences en démocratie. Paris : La Découverte.

 

On pouvait révolutionner le corps politique -pour inventer des formes plus ou moins bricolées de gouvernement représentatif- ; on ne peut pas révolutionner la société -elle était faite pour immuniser contre toute révolution totale ; mais on doit toujours recomposer le collectif et cela radicalement. A une petite condition toutefois : qu’on refasse de la politique ! Mais c’était déjà le cas, dira-t-on ? Non, puisque le monde commun était déjà constitué et qu’on savait plus ou moins de quoi il était composé et où il allait. On pouvait prendre des positions qui avaient l’apparence de la politique, et même de la politique radicale, mais qui, comme le Canada Dry, était au fond sans alcool. C’est ce que montre bien John Dewey [4] : faire de la politique est infiniment plus exigeant et plus radical que « faire la révolution », car il va falloir constituer un Public, une chose publique qui n’existe pas encore. Communistes, c’est le monde commun qu’il vous faut apprendre à composer ! [4] Dewey, J. (2003). Le public et ses problèmes, traduit de l’anglais et préfacé par Joelle Zask. Pau : Publications de l’Université de Pau/Léo Scheer.


http://fr.search.yahoo.com/search?p=bruno+latour+action&ei=UTF-8&rd=r2&fr=yfp-t-501&pstart=1&b=11

[빨간 강조문 주위로만 대충 번역하면] 우리는 정치체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는 있지만(왕정에서 공화정, 등), 사회를 혁명할 수는 없다. 사회란 전면적 변화나 혼돈에 맞서 스스로를 견뎌내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혁명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은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 속의 '공동체성'(le collectif) 이다. 사회가 그렇고 그렇게 '이미 있는'(deja la) 무엇이라고 해서 '공동체성'도 벌써 존재하는 무엇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와 공동체성의 엄밀한 구별이 필요하다. 사회는 이미 있지만, '공동체성'은 앞으로 만들어지고 구성되어져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공동체성을 만들어가는 '정치'라는 것은 혁명 보다도 더 간절하고 근본적인 요청이 된다 (이 글의 제목이 <정치 또는 혁명, 선택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상기).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여기서 정치는 아직(encore)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공적 신체' 를 새로 만들어가는 엄청난 작업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그 새로운 무엇의 조합을 학습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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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auche a-t-elle besoin de Bourdieu? / par  Bruno Latour
Libération, Le mardi 15 septembre 1998.  
Bruno Latour est philosophe. Dernier ouvrage paru : 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éd. La Découverte (1997).   


Faisons comme si la presse avait lancé un débat public pour évaluer l'intérêt de la pensée dominante en sociologie française, celle de Pierre Bourdieu et de ses collègues, sur la recomposition de la gauche. Pour y mettre mon grain de sel, je n'ai aucune autre qualification que celle d'un long intérêt pour les relations entre sciences et politique. Pour le moment, il me semble que l'effort d'inventaire a porté sur deux points: ses recherches scientifiques autorisent-elles Bourdieu à prendre des positions politiques? Peut-on, en s'appuyant sur la sociologie de la domination, développer une gauche plus authentique que celle des sociaux-démocrates? Aussi intéressantes qu'elles soient, ces deux discussions prennent pour acquis que la sociologie de Bourdieu serait scientifique et qu'elle serait de gauche. Or, ni l'une ni l'autre de ces deux affirmations ne me paraît suffisamment établies.  

 

 Il ne suffit pas de parler des dominés pour être de gauche. Tout dépend de la façon dont on les laisse formuler les effets de pouvoirs. La sociologie de Bourdieu, après un moment de description souvent remarquable, remplace la multiplicité des termes et des situations par un petit nombre de notions, toujours répétées, et qui décrivent les forces invisibles par lesquelles les acteurs n'ont pas conscience d'être manipulés. Or, il existe une différence essentielle entre les termes inventés par les personnes elles-mêmes pour définir ces forces invisibles et les «invisibles» révélés par le sociologue: les premières sont élaborées par les acteurs et ils peuvent «traiter» avec elles; les seconds, connus du seul sociologue, échappent aux personnes. Une fois que le discours dominant de la domination a passé, les personnes ordinaires ne sont-elles pas réduites, encore davantage, à l'impuissance? Peut-on nommer «de gauche» cette réduction des capacités de parole, d'invention et de résistance de ceux au nom desquels on prétend parler?   

 

Bourdieu a bien sûr une excellente raison pour définir, à la place des acteurs, les forces invisibles qui les manipulent : il fait oeuvre de science. De même qu'un biologiste a le droit de montrer qu'un patient est manipulé à son insu par l'action d'un virus, le sociologue a bien le droit de révéler les ressorts cachés de l'action, même si les acteurs n'en ont nulle conscience. Ce que nous acceptons du biologiste, sommes-nous prêts à l'accepter du sociologue? Si nous laissons le biologiste découvrir en nous des entités que nous ne voyons pas, nous exigeons de lui qu'il nous rende ces invisibles sous une forme modifiée et maîtrisée - par exemple, sous la forme de diagnostics, voire de vaccins. Or, il serait cruel de demander à Bourdieu qu'il nous montre ce qu'il a fait, dans son laboratoire, depuis trente-cinq ans, avec toutes ces forces invisibles qui nous tiennent pieds et poings liés. Les «champs» sont-ils devenus plus perméables? Le «capital symbolique» plus fluide? La «reproduction» moins répétitive?   

 

Du rêve de la science, Bourdieu a conservé le désir de maîtrise, mais il n'a gardé ni l'exigence de décrire le monde social dans les termes des acteurs, ni l'obligation de modifier les forces invisibles pour en limiter l'effet de domination. Pour faire oeuvre de science, il ne faut pas se contenter de dominer son objet, mais trouver les circonstances rares où l'objet échappe à la maîtrise en vous obligeant à lui poser ses propres questions. Les sciences «dures» sont souvent capables de produire artificiellement ces circonstances; la qualité des sciences «souples» se juge à leur habileté à modifier leurs questions et leurs explications en fonction des sujets et des lieux. La sempiternelle répétition des lois du monde social ne suffit donc pas pour faire de Bourdieu un savant sociologue.   

 

Si sa position demeure aussi fragile, comment peut-elle passer pour une théorie scientifique de gauche qui donnerait enfin la parole à ceux qui en furent si longtemps privés? Je ferai l'hypothèse suivante: l'intérêt soudain pour cette assimilation de la science, de la France et de la gauche autour du travail de Bourdieu a un avantage: elle permet de limiter à un tout petit nombre d'ingrédients connus les éléments dont se compose la vie sociale et politique. Grâce à la synthèse bourdieusienne, on connaît les composants essentiels de l'histoire: il n'y aura pas de surprise. En tout cas, on n'a pas à recomposer peu à peu, par l'enquête sociologique, par la vie politique, par l'exploration du marché, par l'expérimentation scientifique, ce que veulent, ce que sont et ce que peuvent les Français. On peut court-circuiter la vie politique, donner des leçons de morale aux pouvoirs et s'indigner à bon compte de leur manque d'audace. On sait : ils ne savent pas.   

 

Cette idée que l'on peut court-circuiter la vie publique parce que l'on posséderait une science qui donnerait des lois de l'histoire et qui permettrait de se situer à la gauche de la gauche a un précédent : le marxisme. Bourdieu n'a bien sûr rien d'un Lénine, mais il autorise les Français qui voient en lui une planche de salut à retarder la réflexion indispensable sur les liens entre la science, la France, la gauche, la modernisation, la société et l'économie. Comme si on pouvait simplifier le monde social et en connaître les composants sans se donner de moyens compliqués et coûteux pour donner la parole aux acteurs ordinaires et pour leur laisser déployer leurs propres mondes.   

 

Si l'on tient à renouveler la gauche, on ne le fera pas en rêvant à nouveau d'une science de la société après avoir rêvé d'une science de l'histoire, mais en décidant de traiter comme également réactionnaires les trois formes actuelles qui prétendent couper court à la vie politique : le premier mouvement, c'est le libéralisme à la française, qui veut réduire la complexité des organisations de marché à quelques lois d'airain d'économie américaine mal assimilée ; le deuxième, aussi dévastateur, réduit la France aux seuls Français «de souche» au nom d'un darwinisme aussi mal compris par les néofascistes que l'économie par les néolibéraux. L'irruption de la synthèse inspirée de Bourdieu a les mêmes traits réactionnaires : une science simplifiée, une réduction des composants du monde social.   

 

Ce troisième mouvement n'est pas plus surprenant, au fond, que le retour en grâce, dans les pays de l'Est, des communistes qui apparaissent, par rapport aux exigences nouvelles du monde, comme rassurants et confortables. «Ils sont sinistres, peut-être, mais avec eux, au moins, on sait où l'on en est et on évite à la fois le libéralisme et le fascisme.» Sur les deux mouvements auxquels il ressemble, le bourdieusisme a un avantage qui empêche de le prendre à la légère. Moins paré de scientificité que le premier, moins violent que le deuxième, il se prétend de gauche.   

 

Ne tombons pas dans le piège qui consiste à faire croire que critiquer le bourdieusisme reviendrait à embrasser le libéralisme. Si l'on souhaitait encore être de gauche, il faudrait s'opposer à tous ceux qui veulent faire fi des exigences de la vie publique au nom de sciences qui imiteraient la puissance des sciences naturelles sans en imiter les vertus: économie, eugénisme, sociologie. Peu importe, au fond, quelle est la science indiscutable qui fonde ces prétentions, du moment qu'elle est indiscutable: on ne peut pas être de gauche et croire qu'une science quelconque va nous épargner les tâches de la politique. Les crimes commis au nom d'une «politique enfin scientifique» sont trop frais pour qu'on en revienne déjà à ce travers - et la sociologie trop fragile pour qu'on lui délègue un tel pouvoir de simpl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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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Latour : "Il faut organiser le tâtonnement" / par  Nicolas Weill
-LE MONDE DES LIVRES | 27.04.06 | Mise en ligne le jeudi 27 avril 2006


Lecteurs, prenez garde à cet anthropologue sans frontières qui navigue entre la Californie, la Nouvelle-Angleterre et la France. Il est l’auteur d’une quinzaine d’ouvrages et animateur de deux expositions controversées en Allemagne aux titres cinglants : Iconoclash (2002) et Making Things Public (2005). Sa pensée n’est pas de celles qui confortent les certitudes. Elle précipite au contraire, avec bonheur, ceux qui l’abordent sur des étendues de plus en plus mouvantes. Son dernier livre en donne une nouvelle illustration : c’est à une véritable critique de la raison sociologique qu’il nous convie. Qui suit ce chemin s’expose à une révision profonde des fondements mêmes de la discipline.
Bruno Latour, Bourguignon né dans un milieu vinicole à Beaune (Côte-d’Or) en 1947, agrégé de philosophie et sociologue des sciences, s’apprête à rejoindre Sciences Po, après avoir enseigné de nombreuses années à l’Ecole des mines de Paris. Nul doute qu’il trouvera devant ce nouveau public l’occasion de pratiquer la provocation aimable et l’humour pince-sans-rire qui le caractérisent. La saveur spéciale de son style, plus familier au monde académique anglo-saxon qu’à l’Université française, où l’écriture savante affectionne plutôt le registre de la dramaturgie et de l’indignation, n’a sans doute pas peu contribué à faire proliférer sur sa route adversaires et sceptiques. Tout autant que la lecture très particulière qu’il a tirée de son observation des "sciences dures" et du laboratoire, par laquelle il montre l’importance de la rhétorique et des stratégies institutionnelles dans la fabrication des vérités scientifiques.

Pierre Bourdieu, dans l’un de ses derniers ouvrages, Science de la science et réflexivité (Raison d’agir, 2001), s’en inquiéta en lui consacrant quelques pages sévères. Pour le maître à penser de la "sociologie critique", Bruno Latour serait un "constructiviste radical", c’est-à-dire un penseur convaincu du caractère artificiel de la réalité. Autre péché, dont Bruno Latour se serait rendu coupable (et que ce dernier revendique) : avoir allégrement ignoré la frontière qui sépare philosophie et sciences sociales, tombant du même coup dans la "vulgate normalienne" haïe par l’auteur de La Misère du monde.

 

SOURIRE EN COIN

C’est aussi comme "constructiviste" que Bruno Latour fut fustigé, en compagnie d’autres intellectuels français comme Jacques Derrida, Julia Kristeva ou Jacques Lacan, par le physicien américain Alan Sokal, à l’occasion d’une mystification restée célèbre (Le Monde du 20 décembre 1996). En publiant dans une revue supposée "postmoderne" un article de physique volontairement truffé d’erreurs grossières, Sokal avait voulu dénoncer l’esbroufe d’une gauche intellectuelle censée avoir été convertie en masse au relativisme, voire à l’irrationalisme, et avoir rejeté comme "positiviste" l’idée même qu’il puisse exister un monde extérieur au discours...

Toutes ces attaques n’ont pas entamé le perpétuel sourire en coin de l’anthropologue. Pour Bruno Latour, quelque victime qu’il en ait été, "l’affaire Sokal" représente ce moment privilégié où des sujets observés - en l’occurrence des scientifiques - se sont pour la première fois révoltés contre les analyses de leurs observateurs sociologues, établissant ainsi que leur réflexion sur eux-mêmes n’avait pas rang inférieur par rapport à celle des spécialistes : "Il faut écouter les cris des gens qu’on explique", commente-t-il, amusé.

Au reproche de "constructivisme radical", Bruno Latour réplique aussi, indirectement, par son étonnante insistance à étendre les limites du "social" à ce qu’il nomme les "non-humains". Par là il entend non seulement les animaux mais aussi les plantes et les rochers, plaidant par plaisanterie pour un Sénat où seraient représentés les oiseaux migrateurs et les zones inondables ! C’est ce réalisme d’un genre très particulier qui l’amène à vouloir substituer à la notion d’"acteur" celle d’"actant". "C’est un honneur d’être une chose", affirme-t-il à la suite de la philosophe Isabelle Stengers, qui avec l’éditeur Philippe Pignarre, fondateur des Empêcheurs de penser en rond (aujourd’hui une collection du Seuil), et le sociologue Michel Callon, son confrère à l’Ecole des mines, fait partie de ses vieux complices.

Cette extension extrême du domaine de la sociologie ne risque-t-il pas d’empêtrer à nouveau ce savoir dans une conception "organiciste" d’une société conçue comme une fourmilière, quite à naturaliser les hiérarchies sociales ? "Je suis tombé dans la sociologie très tôt en apprenant celle des babouins, reconnaît Bruno Latour. C’est là que j’ai appris que la définition de l’organe est difficile à établir tout autant que celle du gène, ce qui m’a évité de sombrer dans le darwinisme social. Les grandes découvertes deviennent des épouvantails très largement à cause de l’épistémologie qu’on leur ajoute. Ce que fait Edward Wilson (professeur de zoologie à Harvard, fondateur de la sociobiologie) avec les fourmis est passionnant. Ce qu’il en tire avec la sociologie, c’est grotesque !"

Multiplier les incertitudes que ce soit sur les groupes, l’action, les faits, les objets ou l’expérience, contre la souveraineté d’une sociologie sûre d’elle-même, fût-elle assortie de l’adjectif "critique", tel est le projet de son ouvrage au titre en forme de programme : Changer de société, refaire de la sociologie (La Découverte, 402 p., 26 €). "Je considère l’épistémologie comme l’amiante. C’est un produit parfait dont on a floqué tous les bâtiments pour éviter les incendies et maintenant on s’aperçoit qu’il y a des maladies professionnelles", lance-t-il.

 

"COLLECTIF"

Bruno Latour pense en effet que l’erreur des sociologues, d’Auguste Comte à Bourdieu en passant par Durkheim, est d’avoir abordé les liens sociaux comme des entités déjà constituées, aussi fixes que les étoiles du ciel d’Aristote. Sous l’inspiration du fondateur américain de l’"ethnométhodologie", Harold Garfinkel, l’un des ancêtres des études de genres, mais surtout du philosophe, criminologue et sociologue français Gabriel Tarde (1843-1904), qui opposait son individualisme méthodologique au "tout social" de Durkheim, Bruno Latour estime qu’il faut abandonner non seulement la notion de "substance sociale" mais celle de société, qu’il suggère de remplacer par l’expression plus mobile de "collectif". "Est social pour moi ce qui est nouveau et quand on sent qu’il y a quelque chose qui ne colle pas. Il faut nommer "social" le moment où ça craque, où dans les associations on ne parvient plus à composer. On peut parler de lien social quand il est question de sa perte : les banlieues brûlent, le Gulf Stream refroidit, l’ours dévore des moutons qu’il ne devrait pas manger : ça, c’est du social !" Contre un savoir figé en idéologies il propose, en somme, de fluidifier la sociologie.

Le regard du spécialiste doit, selon lui, se déplacer jusqu’au niveau où les acteurs s’assemblent, c’est-à-dire en deçà de celui où se situent la traditionnelle "sociologie du social" et son exaspération en sociologie critique. "Comme le montre Zygmunt Bauman, l’invention de la notion de société se fait au XIX e siècle dans le but d’éviter la révolution." Il est inouï de penser que l’on étudie dans les départements de sociologie Marx, Weber, Durkheim comme des nouveautés. A l’en croire, les sciences sociales sont en danger de produire désormais des explications sorties toutes armées de l’ordinateur sur des faits qui n’existent pas. Il en veut pour exemple la prétendue agression par des prétendus beurs néonazis de la jeune mythomane Marie L. Toute fictive qu’elle ait été, elle n’en a pas moins déchaîné de savants développements sociologiques. La sociologie doit également être sensible aux circulations et intégrer l’événement comme la surprise. En cela Bruno Latour est proche de la "sociologie du risque" de l’Allemand Ulrich Beck édifiée en réaction à divers incidents ébranlant les certitudes d’un âge industriel révolu (les catastrophes de Bhopal ou de Tchernobyl), même si le Français préfère qualifier sa propre théorie de "sociologie de l’acteur-réseau" (Actor Network Theory, soit le sigle ANT, mot qui en anglais signifie "fourmi").

C’est toujours en ethnographe soucieux d’abord de bien décrire que, dans ses travaux plus récents, Bruno Latour s’est penché sur la vie politique et ce qu’il a appelé, au terme d’une enquête sur le Conseil d’Etat menée dans les années 1990, "la fabrique du droit". Il se revendique pour cela du pragmatisme de l’Américain John Dewey (1859-1952), qu’il a contribué à faire découvrir et traduire. "Contrairement à la tradition d’ingénierie sociale plutôt européenne, de sciences camérales au service de l’Etat, commente-t-il, l’idée de Dewey est que les politiques sont aveugles, les sciences sociales aussi et que les conséquences de nos actions sont inattendues. Aveugle pour aveugle, la question est celle des instruments de tâtonnement commun. Ce sont ces cannes blanches qui définissent le politique. On est dans une situation où il faut organiser le tâtonnement, loin du rationalisme guidant le progrès et la République. Les pragmatiques n’en étaient pas moins des démocrates et pas du tout des réactionnaires à l’ancienne."

D’où le côté déroutant d’une oeuvre et de références qui se veulent également une réhabilitation en règle du relativisme comme la seule attitude scientifique, au moins comme prise au sérieux de la multiplicité des points de vue. "Considérer le relativisme comme une injure est inouï quand on pense à l’éloge continu que l’on fait d’Einstein et de la relativité, s’insurge Bruno Latour. Le fait qu’en morale ou en droit le relativisme est une vertu appréciée rend d’autant plus étrange que le malaise s’installe dès qu’on prononce le mot. C’est la peur du relativisme qui est cause que l’on s’accroche à cette catégorie toute faite que l’on appelle le social." Si le relativisme veut dire établir de la distance, alors pour lui le relativisme reste bien son drapeau.

 

Bouleverser les habitudes

A la différence de ceux que les Américains identifient collectivement sous le vocable de "French theory" - les Derrida, Lacan, Foucault -, les intellectuels français qui appartiennent à la génération suivante, contemporaine de Bruno Latour, n’ont pas encore reçu de "label", ni en France ni à l’étranger. Quoique fort hétérogènes, les travaux du sociologue Luc Boltanski, de l’ethnologue Philippe Descola, du biologiste et philosophe Henri Atlan ou de Bruno Latour lui-même ont pourtant ceci de commun qu’ils s’efforcent, chacun à leur manière, de bouleverser les habitudes acquises des sciences humaines. La diversité des sujets abordés par ce dernier depuis la parution de son premier ouvrages, La Vie de laboratoire (La Découverte, 1979) en est peut-être aussi responsable. Parmi ses principaux essais, on retiendra 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Essai d’anthropologie symétrique (La Découverte, 1991), Aramis ou l’amour des techniques (La Découverte, 1992), Petites leçons de philosophie des sciences (Seuil, 1996), Petite réflexion sur le culte moderne des dieux Faitiche (Les Empêcheurs de penser en rond, 1996), Jubiler ou les difficultés de l’énonciation religieuse (Les Empêcheurs, 2002) et La Fabrique du droit. Une ethnographie du Conseil d’Etat (La Découverte, 2002).
http://fr.search.yahoo.com/search?p=bruno+latour+action&ei=UTF-8&rd=r2&fr=yfp-t-501&pstart=1&b=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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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개혁 사이...

혁명과 개혁 사이... (예술&서민, 사치&여자, 디드로&루소, etc.)

 

개혁이나 혁명을 말한다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뭔가를 더 좋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뒤틀린 사회를 바꾸든가 뒤집자는 것이겠다. 성품이 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은 개혁을 말할 것이고, 문제를 더 심각하고 극단적으로 파악하는 나같이 못 된 자들은 '개혁같은 것은 백날해봤자 더 힘센 반개혁적 요소들의 침입-농간에 의해 좌절되기 십상이니 혁명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註1). 이러한 논쟁은 작금의 자본주의 전횡의 시대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멀리 1700년대 중-후반, 즉 자본주의의 맹아가 꿈틀대던 시절에도 벌써 있었던 모얀인데, 여기서는 그 18세기에 이뤄진 개혁-혁명 논쟁과 그런 논쟁을 불러온 원인이 되는 대상으로서의 부와 사치의 사회-정치적 의미 등에 대한 생각들을 당대의 대가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근 250 여년 전의 논쟁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전혀 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역사의 발전이 더디거나 아니며 후퇴했거나, 그도 아니면, 아마도, '발전의 적들'에 의해 농간당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註1) 여기서 '진보' 개념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람들이 자꾸 진보와 개혁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앞으로만 나가거나 기존의 것을 부정만 하면 다 진보인 양 말하는 자들 때문에 생긴 우리말의 부정확성이 낳은 결과이리라. 좌든 우든 어디서든 그 내부에서의 개혁적(흔히 진보로 참칭되는) 움직임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좌파의 이념을 말할 뿐이지 앞으로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고로 우파에서 진보를 말하는 것은 아예 모순이고, 좌파-진보에서 개혁이나 혁명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의 개혁이라고 진보가 아닌 것은 아니겠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기존하는 틀 속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예컨데, 5세에 즉위하여 장장 72년간이나 프랑스를 지배한 루이14세의 집권기간(1643~1715) 동안 꽉 막혔던 숨통이 터지면서 바야흐로 '빛의 세기(Lumieres-뤼미에르)'가 시작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뭔가를 말하고 풀어내기 좋은 외적 조건 덕택이겠지만, 프랑스에서 수많은 인문학자들의 출현과 걸출한 저작들의 탄생은 가히 기념비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바로 1721년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필두로, 34년 볼테르의 <철학서한>, 48년 <법의정신>이 나오고 1751년부터는 백과사전학파들의 활발한 활동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살롱-부르조아 문화의 개화가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면, 살롱과 마담들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인문학적 산개-각개전투는 더 치열하고 가히 유익했다(註2). 단도직입적인 분류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온순한 살롱파들이 개혁을 주장했다면 황야의 거친(아카데미즘에 못 낀) 논객들은 혁명을 말한다. 디드로가 앞의 대표적 예라면 루소는 뒤의 경우겠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의 핵심은 물론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논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상으로 있는 '사회', 특히나 '부패해가는 사회', 그 부패의 고리에는 부와 재산의 독점이 있고 그러한 독점으로 과잉된 부는 사치로 흐르고, 사치의 가까운 곳에는 여자와 부르조아 문화가 있고, 멀리는 아직도 혹은 점점 더 배고픈 민중이 있다는 것, 등등에 대한 고려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註2) 살롱과 까페: "흡연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내년 1월 1일부터 카페를 비롯한 음식점과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다. 최근 이 기사가 여러 나라 언론에 눈에 띄게 소개된 것은 아마 흡연에 관대한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 특히 카페로서는 상전벽해와 같은 엄청난 변화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카페라고 하면 예쁜 마담에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양주 따위를 파는 비싼 술집쯤을 말한다.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룸카페가 되면 술값은 아마 룸살롱 뺨칠 것이다. 하지만 원조 카페(Cafe)는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 카화에서 온 말로, 그냥 커피를 마시는 가게라는 뜻이다. 유럽에 처음 카페가 문을 연 것이 1647년이라니까 벌써 360년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가 유럽의 카페에 대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독일 작가 헤르만 케스텐은 1959년 〈카페의 시인들〉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카페에서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독특한 분위기에서 서로 자극을 주고 받음으로써 창작의 온실이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카페는 대화가 현실로 화하는 유일한 장소이고, 거창한 계획과 유토피아의 꿈이 태어나는 곳이다"라고 했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당국의 단속을 피해 정치ㆍ사상가들이 카페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논했고, 19~20세기에는 마네, 피카소, 뭉크, 사르트르 같은 문인 예술가 철학자들이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논쟁을 벌였다. 살롱이 귀족들만의 클럽이라면 카페는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자가 한 자리에 모여 격의 없이 토론하고 웃고 떠드는 장소였다. 그래서 카페의 역사는 서구 민주주의 및 학문ㆍ예술 발전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카페 한 구석의 빈자리가 없었다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서구에서도 이미 1980년대부터 '카페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스타벅스류의 미국식 문화가 퍼지면서 매상과 경쟁력 떨어지는 카페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아들 보러 서울에 올라온 할아버지가 다방인 줄 알고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갔는데 커피를 시키고는 알바 여학생(레지가 아니다!)에게 "아가씨도 한 잔 혀!" 했다가 성희롱범으로 고소 당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도라지 위스키 파는 다방은 벌써 사라졌다. 파리의 하늘 밑에서도 담배마저 피울 수 없다니 세상이 너무 야박해진다 싶다." (이광일 논설위원, [지평선] 카페의 몰락, 한국일보 2007/12/26)

무척이나 반동적이게도, 볼테르몽테스외는 "부자가 있어야 빈자를 먹여살릴 수가 있다"거나 "부자가 지출을 줄이면 없는 자들은 배고프게 된다"는 따위의 mb식 발언을 서슴없이 일삼으며, 혁명은 커녕 개혁도 필요없고 원래가 세상은 그렇게 돼있다는 입장을 취한다(註3). 이들이 다른 혁명적 사고를 펼친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예컨데, 페널롱, 돌바흐, 루소 등) 보다도 오늘날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고 그들의 저작들이 더 존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고 우리의 부르조아-자본주주의-지배-시스템과 긴밀한 연관 속에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한다.

(註3) cf. Mondain de Voltaire: «J'aime le luxe, et même la mollesse, / Tous les plaisirs, les arts de toute espèce.» Il réaffirme sa position dans L'Homme aux quarante écus: «Par tout pays, le riche fait vivre le pauvre». Pour Montesquieu, dans L'Esprit des lois: «Comme, par la constitution des monarchies, les richesses y sont inégalement partagées, il faut bien qu'il y ait du luxe. Si les riches n'y dépensent pas beaucoup, les pauvres mourront de faim» (livre VII, chap. IV).]

유사 이래로 부의 축적과 편중이 있었고, 오갈 데 없이 남아도는 돈은 사람에게든(주로 여자) 물건에게든(주로 궁전이나 성곽) 화려한 치장과 방만한 사치로 기울고, 꼭 그만큼이나 배고픈 민중들은 알게모르게 착취의 사회적 룰 속으로 포섭되어 허덕인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 부의 축적과 편중에 있겠지만, 일단 18세기의 논객들은 사치와 그 사치의 또 다른 가지(분파)일 수 있는 예술과 학문(한마디로 민중적 배고픔을 외면하고 저희들끼리만 찌지고볶는 먹물들의 소일거리인 교양이라는 이름의 예술과 학문, 등등)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을 생산하며 '빛의 세기'를 장식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대표적인 예가 루소의 거의(철학적 논의에 한정할 때)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학문과 예술에 관한 논고>(1750)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저작이 "학문과 예술의 재건이 풍속(과 도덕)의 순화에 공헌하는가"라는 주제의 논문 공모에서의 당선작이었듯이, 학문-예술 그리고 이것들을 낳은 상관적 토양(!)인 여가-사치-돈 등의 주제가 시대적 관심사였다는 말이겠다. 이하 몇몇 당대 논자들의 말씀을 직접 들어본다:

 

1/ Condillac : Que deviennent les mœurs lorsque les principaux citoyens, qu'on prend pour exemple, forcés à être tout à la fois avides et prodigues, ne connaissent que le besoin d'argent, que tout moyen d'en faire est reçu parmi eux, et qu'aucun ne déshonore? Le luxe fait subsister une multitude d'ouvriers, j'en conviens. Mais faut-il fermer les yeux sur la misère qui se répand dans les campagnes? Qui donc a le plus de droit à la subsistance, est-ce l'artisan des choses de luxe, ou le laboureur(13)?


2/ Helvétius, dans De l'homme, soutient que le luxe, concept variable selon les temps, les lieux, les conditions, est un stimulant indispensable à l'activité humaine, qui stagnerait sans l'espoir d'une récompense, c'est-à-dire de «quelque superfluité(8)». 8. À la différence de Rousseau, Helvétius n'associe pas le développement des sciences et des arts à la corruption du luxe (C. Larrère, L'Invention de l'économie au XVIIIe siècle, Paris, PUF, 1992, p. 74)

 

3/ Marat : «En amollissant et en corrompant les peuples, le luxe les soumet sans résistance aux volontés d'un maître impérieux, et les force de payer du sacrifice de leur liberté le repos et les plaisirs dont il les laisse jouir(12).»

 

4/ Fénelon, dont le Télémaque fait l'éloge de la frugalité et condamne les somptuosités de Versailles en des termes qui annoncent les anathèmes rousseauistes : Peut-on nommer bien un superflu qui ne sert qu'à rendre les hommes mauvais? […] Comme la trop grande autorité empoisonne les rois, le luxe empoisonne toute une nation. On dit que le luxe sert à nourrir les pauvres aux dépens des riches; comme si les pauvres ne pouvaient pas gagner leur vie plus utilement, en multipliant les fruits de la terre, sans amollir les riches par des raffinements de volupté. Toute une nation s'accoutume à regarder comme les nécessités de la vie les choses superflues. […] Ce luxe s'appelle bon goût, perfection des arts et politesse de la nation (livre XXII).

 

5/ d'Holbach dans sa Politique naturelle, où se retrouvent les accents rousseauistes : Les apologistes du luxe semblent surtout avoir été touchés des progrès qu'il fait faire aux arts. En effet, on ne peut nier qu'il n'excite une émulation très marquée entre les différents artistes que l'appât du gain engage à se surpasser les uns les autres. Mais une nation peut posséder une foule de peintres, de sculpteurs, de manufacturiers célèbres sans en être plus heureuse. La vanité d'un despote peut donner aux arts une impulsion très forte sans qu'il en résulte aucun bien pour son peuple: au contraire, ce peuple, souvent épuisé, est obligé de se ruiner de plus en plus pour mettre son tyran à portée de contenter ses goûts. Sous un mauvais gouvernement, les chefs-d'œuvre de l'art ne servent qu'à décorer le sarcophage de la nation. / D'un autre côté le luxe anéantit le goût de la belle nature; ainsi pour lui complaire, les arts et les talents renoncent à la vérité, à la simplicité, à l'énergie; ils craindraient d'effrayer des âmes pusillanimes. […] Le désir de s'enrichir et de plaire fait que l'homme de génie dépouille ses ouvrages des beautés mâles; il sacrifie honteusement au mauvais goût, à la faiblesse qui dominent; les connaissances utiles et sérieuses cèdent partout aux talents agréables: ceux-ci sont faits pour obtenir la préférence dans des pays frivoles où l'on ne veut que s'amuser(31). [31. Politique naturelle, discours IX, p. 446-7.]
D'Holbach, dans sa Politique naturelle, en 1773, répète les attaques rousseauistes contre un luxe qui dépeuple les campagnes, ruine l'esprit militaire, énerve les courages, anéantit les mœurs, ne laissant subsister que l'envie et l'égoïsme : «Dans une nation en proie au luxe, toutes les vertus paraissent étrangères et déplacées(11).» Et voici encore d'Holbach dans sa Politique naturelle, où se retrouvent les accents rousseauistes : Les apologistes du luxe semblent surtout avoir été touchés des progrès qu'il fait faire aux arts. En effet, on ne peut nier qu'il n'excite une émulation très marquée entre les différents artistes que l'appât du gain engage à se surpasser les uns les autres. Mais une nation peut posséder une foule de peintres, de sculpteurs, de manufacturiers célèbres sans en être plus heureuse. La vanité d'un despote peut donner aux arts une impulsion très forte sans qu'il en résulte aucun bien pour son peuple: au contraire, ce peuple, souvent épuisé, est obligé de se ruiner de plus en plus pour mettre son tyran à portée de contenter ses goûts. Sous un mauvais gouvernement, les chefs-d'œuvre de l'art ne servent qu'à décorer le sarcophage de la nation. 

D'un autre côté le luxe anéantit le goût de la belle nature; ainsi pour lui complaire, les arts et les talents renoncent à la vérité, à la simplicité, à l'énergie; ils craindraient d'effrayer des âmes pusillanimes. […] Le désir de s'enrichir et de plaire fait que l'homme de génie dépouille ses ouvrages des beautés mâles; il sacrifie honteusement au mauvais goût, à la faiblesse qui dominent; les connaissances utiles et sérieuses cèdent partout aux talents agréables: ceux-ci sont faits pour obtenir la préférence dans des pays frivoles où l'on ne veut que s'amuser(31). [31. Politique naturelle, discours IX, p. 446-7.]

 

6/ Diderot : L'art se doit de jouer un rôle formateur, d'épauler et d'épurer la morale(30). De là son admiration bien connue pour Greuze, son Accordée de village ou le Retour de l'enfant prodigue : «Courage, mon ami Greuze, écrit-il en 1763, fais de la morale en peinture, et fais-en toujours comme cela!» (DPV XIII, 394). Parlant de Baudouin, Diderot s'inquiète des grands sujets auxquels songeait aussi Rousseau : «Croit-on que les bustes de ceux qui ont mérité de la patrie les armes à la main, dans les tribunaux de la justice, aux conseils du souverain, dans la carrière des lettres et des beaux-arts, ne donnassent pas une meilleure leçon? Pourquoi ne rencontrons-nous pas les statues de Turenne et de Catinat?» (DPV XVI, 290). «Rendre la vertu aimable, le vice odieux, le ridicule saillant, voilà le projet de tout honnête homme qui prend la plume, le pinceau ou le ciseau» (Essai sur la peinture, DPV XIV, 392). C'est que Diderot, dans ce qui est comme un dialogue éternellement prolongé avec Jean-Jacques, estime que les arts, bien dirigés, peuvent servir à l'éducation du peuple et à la réforme des mœurs et de l'ordre social. C'est ce que dit aussi l'Encyclopédie : «De tous les ouvrages de l'art, ceux-là ont, sans contredit, l'utilité la plus importante, qui gravent dans notre esprit des notions, des vérités, des maximes, des sentiments propres à nous rendre plus parfaits, et à former en nous les caractères dont nous ne saurions manquer sans perdre de notre prix soit en qualité d'hommes, soit en qualité de citoyens(35).» Les arts sont donc susceptibles de devenir l'école des mœurs et du civisme. Diderot assigne aux arts visuels la même fonction rédemptrice et de progrès, de transformation de la société.
Diderot assigne aux arts visuels la même fonction rédemptrice et de progrès, de transformation de la société. Quel bien ne feraient pas des statues de grands hommes dressées dans les jardins et promenades publiques? (article «Encyclopédie»). Il le répète dans De la poésie dramatique (DPV X, 338), le Plan d'une Université pour le gouvernement de Russie (OV III, 447) ou dans l'Essai sur les règnes de Claude et de Néron (DPV XXV, 293)(37). [35. Cité par J.A. Leith, op. cit., p. 49.  36. D'Holbach, Morale universelle, t. II, p. 234-5. 37. Voir J.A. Leith, op. cit., p. 40-1, qui rappelle qu'on retrouve les mêmes thèmes, en 1770, dans L'An 2440 de L.-S. Mercier.]

 

7/ Rousseau. À quoi bon insister sur les tirades fameuses du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 : «Le luxe corrompt tout; et le riche qui en jouit, et le misérable qui le convoite.» Et dans sa réponse à Borde: «S'il n'y avait point de luxe, il n'y aurait point de pauvres. […] Le luxe nourrit cent pauvres dans nos villes, et en fait périr cent mille dans nos campagnes» (OC III, p. 79). Loin d'attester la richesse et la prospérité d'un État, le luxe annonce sa ruine irrémédiable: «Le luxe sert au soutien des États, comme les cariatides servent à soutenir les palais qu'elles décorent, ou plutôt comme ces poutres dont on étaie des bâtiments pourris, et qui souvent achèvent de les renverser. Hommes sages et prudents, sortez de toute maison qu'on étaie!» (OC III, 79-80). Avec ce fléau, point d'accommodement: «On croit m'embarrasser beaucoup en me demandant à quel point il faut borner le luxe. Mon sentiment est qu'il n'en faut point du tout» (OC III, p. 95)(17).
Rousseau reviendra sur cette question dans l'Émile : «Ceux qui nous guident sont les artistes, les grands, les riches, et ce qui les guide eux-mêmes est leur intérêt ou leur vanité; ceux-ci pour étaler leur richesse et les autres pour en profiter cherchent à l'envi de nouveaux moyens de dépense. Par là le grand luxe établit son empire et fait aimer ce qui est difficile et coûteux; alors le prétendu beau, loin d'imiter la nature, n'est tel qu'à force de la contrarier. Voilà comment le luxe et le mauvais goût sont inséparables. Partout où le goût est dispendieux, il est faux» (OC IV, 673(Emile, folio,p.509))

Un luxe bien géré non seulement encouragera les arts, mais les fera servir à l'instruction morale : En somme, l'art au service, non plus de la richesse et du luxe ni du pouvoir, mais de la morale et de l'esprit civique. Dès lors, Rousseau et les philosophes s'accordent bien à lier la dégradation des arts à celle des mœurs dans un cycle toujours recommencé, celle des premiers aggravant celle des seconds, qui eux-mêmes contribuent à la dépravation des premiers, et s'accordent encore à incriminer un système fondé sur l'inégalité et le luxe. Mais ils cessent de s'entendre sur l'éventualité d'un changement. Dès lors que, pour Rousseau, «un peuple vicieux ne revient jamais à la vertu, il ne s'agit pas de rendre bons ceux qui ne le sont plus» (OC II, 972). Une société corrompue ne peut produire qu'un art corrompu qui accentuera sa décadence(38). Diderot et les autres, distinguant un bon et un mauvais luxe, croient au contraire à la possibilité d'inverser le mouvement en faisant servir les arts à la régénération publique et politique et en confiant à l'artiste la fonction d'un instituteur des peuples.
Si, dès le second Discours, et même dès le premier, la pensée rousseauiste est naturellement révolutionnaire, c'est parce qu'elle se fonde, non sur un appel aux réformes, mais sur un devoir-être. Il n'y a chez Jean-Jacques nul compromis possible, ni d'évolution vers un mieux concevable dans un ordre de faits essentiellement mauvais, donc non susceptible d'un quelconque progrès(39). Moins intransigeants ou plus réalistes, les philosophes attendent beaucoup du devenir historique, luttent pour éliminer ou réduire un à un les abus d'un luxe corrupteur, alors que Rousseau n'envisage qu'une société alternative, non pas corrigée ou améliorée, mais radicalement autre. Les uns recommandent des remèdes, quand l'autre estime qu'on ne guérit pas un incurable. [38. Il est vrai que, dès la préface de Narcisse, Rousseau suggère d'extraire un remède du mal lui-même : «Les mêmes causes qui ont corrompu les peuples servent quelquefois à prévenir une plus grande corruption» (OC III, 972). Ne fait-il pas appel, en finale du premier Discours, aux grands génies et aux académies elles-mêmes? «Je l'avoue, cependant; le mal n'est pas aussi grand qu'il aurait pu le devenir. La prévoyance éternelle, en plaçant à côté de diverses plantes nuisibles des simples salutaires, […] a enseigné aux souverains qui sont ses ministres à imiter sa sagesse» (OC III, 26). Des hommes d'exception sont seuls capables de réunir savoir et vertu. Mais pointe aussi la solution révolutionnaire, qu'il se garde cependant d'encourager : «On n'a jamais vu de peuple une fois corrompu revenir à la vertu. […] Il n'y a plus de remède, à moins de quelque grande révolution presque aussi à craindre que le mal qu'elle pourrait guérir, et qu'il est blâmable de désirer et impossible de prévoir» (OC III, 56). En tout état de cause, la solution, quelle qu'elle soit — y compris la sienne — ne saurait avoir qu'un effet retardateur. Laissons donc subsister bibliothèques et universités, qui peuvent, comme le théâtre dans les grandes villes, faire au moins «quelque diversion à la méchanceté des hommes» (OC III, 56). Sur ce thème du remède dans le mal, — le «téléphisme» —, voir l'étude de J. Starobinski, Le Remède dans le mal, Paris, Gallimard, 1989. 39. Aussi ne croit-il pas à l'efficacitédes lois somptuaires : «Sur l'inutilité des lois somptuaires pour déraciner le luxe une fois établi, on dit que l'auteur n'ignore pas ce qu'il y a à dire là-dessus. Vraiment non. Je n'ignore pas que quand un homme est mort il ne faut point appeler de médecins» (OC III, 33). Même opinion dans ses Considérations sur le gouvernement de Pologne (OC III, 965).


출처: Copyright © Raymond Trousson, 2006. http://www.bon-a-tirer.com/volume42/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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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카(G.Labica) 타계2 [폭력,혁명,민주주의..]

[속보] 라비카(G.Labica) 타계(09/02/12), 2009년 02월 16일 02:42, http://blog.jinbo.net/radix/?pid=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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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Georges Labica
Par Denis Collin • Actualités • Dimanche 15/02/2009 • 0 commentaires  • Lu 30 fois • 


Notre ami Georges Labica nous a quittés jeudi 12 février, victime d'une hémorragie cérébrale. Né en 1930, il fut une des grandes figures intellectuelles du marxisme. Longtemps professeur à l'université de Nanterre, il avait contribué à en faire un lieu vivant de la philosophie. Outre ses très nombreux travaux sur Marx et le marxisme - dont l'indispensable 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co-dirigé avec Bensussan, republié en PUF-Quadrige), il était un connaisseur érudit du monde arabe, de son histoire, de la politique, et de sa culture (il est l'auteur, par exemple, de Politique et religion chez Ibn Khaldoun. Essai sur l'idéologie musulmane, Alger, Société nationale d'édition et de diffusion, 1968). Son dernier ouvrage, Théorie de la violence mettait une fois de plus sa vaste érudition au service d'un appel à la résistance et à une stratégie combinant révolution et démocratie en vue d'une « paix libératrice en lieu et place de la violence systémique. »

J'ai connu Georges en passant ma thèse doctorat dont il présidait le jury.  Nous nous sommes ensuite un peu fréquentés dans divers lieux de recherche et séminaires autour de l'oeuvre de Marx. Nous nous sommes retrouvés autour de la revue Utopie Critique où il continuait de tenir régulièrement les "Brèves". Dans le numéro 47 de cette revue (à paraître le 15  février), on trouvera la première partie de son étude "Le carrefour de mai 1968". À "La Sociale", il avait confié encore récemment une petite nouvelle, La Supérette, qui se terminait par un appel à l'insurrection contre cette société capitaliste insupportable. Georges Labica est resté jusqu'au fidèle à l'esprit de révolte, fidèle à ses idéaux... Un exemple à suivre.

 

Pour retrouver les travaux de Georges Labica, on peut consulter son site WEB. Il avait aussi enregistré des cours qu'on peut retrouver sur le site de l'Encyclopédie Sonore: sur "la République" de Platon, sur les classes sociales chez Marx, sur le concept d'égalité, sur le concept de révolution, sur le marxisme, sur Marx et Engels, sur philosophie et politique, sur "les Lois" de Platon. (Denis Collin)

 

Parmi ses oeuvres je retiendrais:

Politique et religion chez Ibn Khaldoun. Essai sur l'idéologie musulmane, Alger, Société nationale d'édition et de diffusion, 1968.
Le Statut marxiste de la philosophie, Bruxelles, Éditions Complexe ;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 Dialectique », 1976.

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avec Gérard Bensussan (dir.), en collaboration avec la revue Dialectiques,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82 ; 3e éd., 1999, coll. « Quadrige ».
Karl Marx : les « Thèses sur Feuerbach »,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87.

Le Paradigme du Grand-Hornu. Essai sur l'idéologie, Montreuil-sous-Bois, PEC-la Brèche, 1987

Robespierre : une politique de la philosophi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 Philosophie », 1990.
Politique et religion, avec Jean Robelin, (dir.), Paris, Éditions l'Harmattan, 1994.

(dir.), Friedrich Engels, savant et révolutionnaire, actes du colloque international de Nanterre, 17-21 octobre 1995, organisé par le Centre de philosophie politique, économique et sociale du CNRS, publié par Mireille Delbraccio, Paris, PUF, « Actuel Marx confrontation », 1997.

Théorie de la violence, Naples, la Città del sole ; Paris, J. Vrin, «  La pensée et l'histoire », 2007.

http://la-sociale.viabloga.com/news/georges-labica

 

 

2/3) Théorie de la violence
Par Denis Collin • Bibliothèque • Mardi 24/06/2008 • 0 commentaires  • Lu 833 fois • 

 

La violence a partie liée avec l’histoire humaine. Problème complexe pour les philosophes qui ont tendance à la penser comme l’impensable rationnellement à moins que la rationalisant trop, ils la fassent disparaître en tant que telle, transformée en « ruse de la raison ». Georges Labica évite ces deux écueils avec sa Théorie de la violence. L’entreprise de Georges Labica pourrait étonner de la part de quelqu’un qui a voué une partie de sa vie à Marx, Engels et à la défense du marxisme : Engels n’avait-il pas réfuté la théorie de la violence de Dühring ? En vérité, Georges Labica n’a nullement l’intention de se livrer à l’art des généralités creuses sur la violence dont toute une littérature contemporaine nous abreuve.  Alors que les classes dominantes usent de la « crainte de la violence », de la « montée de la violence », de la chasse aux « terroristes » comme autant d’arguments-massue pour amener les dominés à renoncer à la lutte et à faire bloc derrière l’appareil d’État, l’exploration des figures de la violence, à travers les récits religieux, les mythes, l’art, mais aussi l’analyse de la violence structurelle des sociétés modernes permet de mettre à distance ce discours idéologique et de revenir à la réalité, c’est-à-dire, selon le titre du chapitre de conclusion aux « résistances ».

La violence se conjugue d’abord du côté de ceux qui subissent la violence injuste, le malheur sans explication. On lira avec bonheur ce chapitre premier, « du coté du livre de Job », où Labica fait de Job le héros qui capitule pas. Il a été juste et le malheur qui l’accable est sans raison. Ensuite elle est du côté des martyrs et il faudrait, à partir du livre de Labica, confectionner un ouvrage reproduisant tous les tableaux qu’il évoque ou qu’il analyse plus longuement. « Avec le martyre, dit Labica, nous nous trouvons en présence d’un véritable compendium des violences, infligées ou subies, cruelles ou modérées, délibérées et improvisées, inventives et banales, et des émotions qu’elles provoquent, écartelées entre le paroxysme de la douleur et sa volupté, et déclinant la gamme contradictoire de la soumission, de la résignation, de la jouissance, de la stupeur, de l’incompréhension, de l’imprécation, de la colère, de la haine, de l’allégresse et de la révolte qui emporte les protagonistes – donneurs d’ordre, bourreaux, victimes proches, témoins, spectateurs dont la postérité sera inépuisable. » (p. 55). Après les martyrs, les déments et là encore Labica puise abondamment dans la tradition culturelle, dans le théâtre de Shakespeare si riche en tyrans, assassins, bourreaux et fous.

Cette réflexion conduit évidemment à interroger « l’épouvantable XXe siècle » qui, loin de réaliser les promesses des utopistes ou les rêveries des théoriciens de la paix perpétuelle, semble avoir battu tous les records, notamment grâce aux progrès des moyens d’extermination mais aussi de surveillance, de contrôle social et d’asservissement des hommes. Il y a cependant une véritable difficulté à déterminer un sens précis à la violence, la distinction entre violence et pouvoir et leurs rapports complexes, d’autant que les formes de la violence sont multiples et souvent même pratiquement ignorées : les relations de travail sont marquées presque toujours par une violence ouverte ou souterraine dont ne parlent guère ceux qui font profession de nous alerter contre la montée de la violence.

Labica interroge naturellement la non-violence. Sans oublier de saluer le courage d’un certain nombre de figures héroïques de la non-violence, il en montre les ambigüités – ces non-violents qui n’hésitent pas à faire la guerre – et aussi le caractère souvent velléitaire. La non-violence s’insère dans l’arsenal des armes de combat dont disposent les opprimés mais elle ne peut nullement être l’arme suprême. La non-violence ne l’emporte que sur des dominants affaiblis, des dominants peu sûrs de leur bon droit. Bref la non-violence est une solution à un problème déjà presque résolu. Par contraste la position de Labica à l’égard de la théologie de la libération est plus enthousiaste. Contre ceux qui dénoncent en bloc la violence, Labica entend réhabiliter la violence libératrice, celle qui permet de s’attaquer au système du capitalisme mondialisé. Il montre vigoureusement les tartufferies de la « pacification » libérale du monde et nous invite à comprendre les manifestations de violence réactionnelle, y compris les plus contestables : « nous sommes tous responsables : depuis Bandoeng, la conjonction des menées de l’impérialisme, du vie politique opéré par les régimes réactionnaires dans le monde arabe et les échecs des forces progressistes (communistes, socialistes, nationalistes, républicaines ou laïques), a fait le lit des radicalismes de substitution, et pas uniquement au Proche-Orient et au Moyen-Orient. » (p. 257) La violence n’est cependant pas une politique et même la violence des opprimés peut se révéler contre-productive.

Reste donc à élaborer une stratégie qui combine révolution et démocratie. La violence n’en sera supprimée mais fortement diminuée. Labica conclut en appelant à une « paix libératrice en lieu et place de la violence systémique. » (p.262)

Georges Labica, Théorie de la violence, Jean Vrin, Paris, La Città del sole, Naples, 2007, 264 pages
http://denis-collin.viabloga.com/news/theorie-de-la-violence

 

http://www.nodo50.org/cubasigloXXI/congreso/labica_15abr03.pdf

RENDRE SON ACUITE AU CONCEPT DE REVOLUTION / GEORGES LABICA
“Ils sont bien trop nombreux ceux qui attendent leur tour” (Ernst Bloch)
INDICE
I. Introduction: la thèse.............................................................................................................................. 1
1. UN MONDE DE VIOLENCE...................................................................................................................2
2. LA GUERRE COMME POLITIQUE........................................................................................................4
3. LE CONSTAT DES FAILLITES..............................................................................................................6
4. L'ALTERNATIVE RÉVOLUTIONNAIRE ...............................................................................................10
5. DES RÉSISTANCES ...........................................................................................................................15
6. CONCLUSION : PERSPECTIVES.......................................................................................................20

 

3/3) Intervenir en marxiste: Sur le livre de Georges Labica Démocratie et Révolution
Par Stathis Kouvélakis* (Paris, Le Temps des cerises, 2003)
http://semimarx.free.fr/IMG/pdf/KOUVELAKIS_Intervenir_en_marxiste_sur_Labica_.pdf

* Texte d’un communication présentée le 1er octobre 2004 au Congrès Marx International IV (Université de Paris X Nanterre). Texte publié dans Contretemps n° 13, « Cité(s) en crise. Ségrégations et résistances dans les quartiers populaires », mai 2005, p. 178-184.

Il n’a jamais été simple d’être, ou, pour paraphraser l’un des adages préférés d’Althusser
d’essayer d’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ou ailleurs du reste. Pour dire les choses d’une
manière simplifiée, avancer à contre-courant n’est jamais allé de soi, et a rarement facilité la
vie de ceux qui s’y sont essayés autrement qu’au titre d’un éphémère péché de jeunesse. Cela
même si une telle entreprise n’a pas toujours eu à se mesurer à des rapports de forces aussi
défavorables qu’aujourd’hui, dans un pays comme la France, et dans un lieu institutionnel
comme celui dans lequel nous nous trouvons actuellement, l’Université. Pourtant, si essayer
d’être marxiste en théorie n’a jamais été facile, cela ne l’a pas toujours été exactement pour
les mêmes raisons. Là encore, pour parer au plus pressé, il me semble qu’on peut distinguer
deux configurations historiques, que sépare cet événement terminal du « court vingtième
siècle », la fin de l’URSS et du mouvement communiste international tel que nous le
connaissions. Dans la configuration précédente, essayer d’être marxiste en théorie ne signifiait
pas seulement affronter la société capitaliste dans ses mécanismes de légitimation et ses
appareils idéologiques, avec leur formidable capacité d’intimidation et aussi de digestion et
d’intégration des forces de contestation. Cela signifiait aussi, si du moins on tenait à une
certaine unité de la théorie et de la pratique politique qui censé être l’affaire du marxisme,
faire face à une version « officielle » de cette théorie, le marxisme-léninisme ou
« matérialisme dialectique » ou diamat, qui réalisait justement à sa façon cette unité sous une
forme très particulière. La difficulté était donc, en fin de compte, celle d’une « lutte sur deux
fronts », contre l’idéologie et la pensée des dominants bien sûr, et avant tout, mais aussi
contre la dégénérescence du marxisme en simple discours de légitimation d’Etats et
d’appareils contradictoirement issus des expériences révolutionnaires du siècle et les ayant
conduit à l’échec.
Or, l’effondrement de l’URSS s’est également traduit par l’échec de ce pari. Pour le dire
autrement, les orthodoxies ont d’une certaine façon emporté dans leur naufrage les
hétérodoxies, et, de manière encore plus éclatante, les diverses tentatives de réforme interne
que le communisme critique avait entrepris. Ou, pour le dire encore plus brutalement, aucun
« antistalinisme » ne peut survivre à la fin du « stalinisme », sauf à devenir lui-même autre
chose. La réalité massivement vécue comme telle du présent est donc celle d’une défaite non
simplement du stalinisme ou du socialisme soviétique mais de la révolution et du socialisme
tout court.

Le deuil du deuil
C’est ici qu’il faut en venir à une première thèse du livre de Labica. Cette thèse consiste à
dire qu’il faut saluer l’effondrement du socialisme soviétique et de son orthodoxie comme une
libération. Cette thèse est, à mon sens, une thèse forte : elle est forte parce qu’elle est tout
d’abord contre-intuitive. Pourquoi en effet faudrait-il saluer comme une libération ce qui se
présente comme la plus grande défaite des classes dominées depuis plus d’un siècle, défaite
dans laquelle culminent une série d’échecs et de reflux sans précédent pour le mouvement
populaire ? En quoi cette défaite, qui signe à l’évidence la fin de tous les paris théoriques et
politiques qui ont été ceux du « marxisme underground » [1] du siècle passé, peut-elle être
identifiée à une libération ? Mais justement, une thèse n’est pas un constat. Elle a quelque
chose du performatif, de l’acte de parole comme disent les linguistes. Pour le dire autrement,
transformer, ou renverser, pour le dire dans un langage plus dialectique, la défaite en
libération, voilà ce dont il est question dans l’acte de formuler, ou de reprendre, cette thèse.
La proposition peut paraître déroutante, mais, d’une certaine façon, être dérouté est nécessaire
quand il s’agit de produire une possibilité nouvelle, interne au réel mais qui, en même temps,
le dépasse. Quand on y réfléchit, cette proposition est tout simplement la seule qui permette
une rupture avec ce qui, dans une défaite, devient élément de blocage, de régression. Et je ne
parle pas ici des attitudes de démission ou du reniement, mais de tout ce qui, y compris parmi
celles et ceux qui ont refusé de baisser les bras, contribue à maintenir la tête sous l’eau. A
savoir toutes les attitudes de culpabilité, d’autoflagellation et, surtout, de deuil interminable,
qui devient complaisance dans l’attitude du vaincu. Bref de tout ce que le marxiste lacanien
Slavoj Zizek a à mon sens correctement désigné comme le « narcissisme de la défaite »,
particulièrement répandu dans une certaine gauche.
Pour soutenir cette thèse, le livre de Labica offre un certain nombre d’outils ou de
munitions, comme on voudra. Je commencerai tout d’abord par ce qui ne me semble pas la
moindre, mais que d’aucuns auront certainement trouvé incommodante, voire inconvenante, à
savoir sa forme. D’abord il y a le style, familier à ceux qui connaissent Labica, mais qu’on
trouve ici dans une version radicalisée, à savoir un mélange de gouaille et d’élégance, un sens
de la formule joint à une bonne dose d’ironie, une rigueur conceptuelle entremêlée à un
lyrisme contenu. Puis, il y a l’organisation à proprement parler du matériau, la structure
disons de l’ouvrage. Précisons-le immédiatement, pour celles et ceux qui n’en auraient pas
pris connaissance, qu’il s’agit d’un ensemble d’articles et de textes écrits à des occasions et
des dates diverses, sans l’intention préalable d’en faire un ouvrage. Simple assemblage donc
de fragments disjoints ? Pas exactement, car, sans vouloir forcer le trait, toutes les pièces ont
ceci de commun, qu’elles sont conçues comme autant d’interventions dans des conjonctures
déterminées, visant à produire quelques effets particuliers sur lesquels nous dirons quelques
mots dans un instant. Relevons toutefois qu’une conception bien précise de la théorie, plus
exactement de la philosophie, se trouve en jeu ici. Une conception qui hérite de l’acquis du
marxisme underground de la période précédente, et qui consiste à dire que la philosophie n’a
pas d’objet, qu’elle n’est pas l’énoncé des lois universelles de la nature et de l’histoire comme
le prétendait le diamat, ni même une ontologie critique ou une entreprise systématique de
refonte dialectique de catégories déjà existantes comme l’ont tenté par exemple, et
respectivement, Lukacs et Sartre. Elle n’est pas autre chose qu’une intervention dans une
situation précise, qui vise à en déplacer les lignes de démarcation pour contrecarrer les effets
de l’idéologie dominante et ouvrir sur des possibilités nouvelles, dont l’enjeu est clairement
politique et le terrain celui de la lutte idéologique.
[1] Cf. Pour reprendre une expression d’un autre ouvrage G. Labica, Le marxisme léninisme, Bruno Huisman, Paris, 1984.


A ceci, qui est un héritage d’Althusser, vous l’aurez sans doute compris, il convient sans
doute d’apporter une rectification, que Labica a formulée dans ses écrits antérieurs [2] et qui
constitue, me semble-t-il, la toile de fond, de ce livre : le statut de l’intervention en question,
contrairement à ce qu’Althusser a jusqu’au bout maintenu, n’est pas celui d’une philosophie
marxiste ou pour le marxisme, mais celui d’une « sortie de la philosophie », l’Ausgang dont
parlent Marx et Engels dans l’Idéologie allemande. Une sortie que je comprends pour ma part
comme une traversée de la philosophie orientée vers son dépassement. Dépassement non pas
dans le sens d’une transcroissance de la philosophie en science universelle, car cela ne ferait
que reconduire le phantasme traditionnel de la métaphysique, mais en tant que reprise de tous
les éléments de fracture, de toutes les limites et les béances internes au champ de la
philosophie. Cette reprise s’opère à partir d’une position théorique qui lui demeure
irréductible, celle du matérialisme historique, mixte radicalement inédit et hybride de théorie
et de pratique, ou, si on veut de production de connaissance, sous condition d’intervention
dans le terrain de la lutte idéologique, à partir donc d’une position nécessairement,
inévitablement, partiale et partisane.
Venons en à présent aux axes de l’intervention théorique tels que nous propose cet
ouvrage : j’en distinguerai trois, qui correspondent, grosso modo, aux trois parties qui le
composent : le langage, les notions clé de l’idéologie dominante, l’hypothèse politique.

[2] Cf. plus particulièrement G. Labica, La statut marxiste de la philosophie, Paris, PUF, 1976.


Intervenir dans le langage
Commençons part le langage, point de départ obligé d’une certaine façon d’une
intervention marxiste en théorie, telle qu’elle a été esquissée auparavant. Pourquoi ? Tout
d’abord, parce que, pour un marxiste, le langage n’est pas un instrument neutre, ni comme le
veut Habermas, un médium orienté, sur un plan transcendantal, vers l’intercompréhension et
le consensus entre les humains. Le langage, dans la moindre de ses unités et de ses
articulations, est la cristallisation la plus évidente du « sens commun » (Gramsci) d’une
époque et d’une culture. Il véhicule une multiplicité contradictoire et incohérente de
conceptions du monde en leur permettant de se déposer, de se sédimenter dans toute son
épaisseur matérielle. Mais par là même, le langage rend ces conceptions du monde actives, il
leur confère d’emblée un statut pratique, agissant, conflictuel. C’est pourquoi le langage est
de part en part idéologique, enjeu et terrain primordial donc de l’intervention théoricopolitique.
Car, on l’aura compris, la théorie, la théorie marxiste en l’occurrence, n’est pas
extérieure à l’idéologie. C’est en intervenant justement dans le terrain conflictuel du langage,
pour en déplacer les lignes de force, que la théorie peut produire de la connaissance. Ou, pour
le dire autrement, on n’accède pas à la connaissance, ni à la pratique politique
« directement », mais bien à travers le langage et à travers l’idéologie.


Voilà donc pourquoi dans cet ouvrage Labica s’acharne, avec les armes à la fois du
concept et du style, sur les mots. Voilà pourquoi distinguer ou opposer, par exemple,
« américain » à « étatsunien » n’est pas un simple jeu. Pourquoi parler de « frappes
chirurgicales », de « dommages collatéraux » ou de « sécurisation d’objectifs » est en soi un
acte violent et une déclaration de guerre. Pourquoi s’en prendre à la prolifération incontrôlé
du vocabulaire « citoyen », aux anglicismes et à toutes ces euphémisations qui transforment,
comme par magie, un « ouvrier » en « opérateur de saisie » et un balayeur en « technicien de
surface » ne relève pas du fétichisme des mots, et ne se laisse pas réduire à une affaire de goût
et d’opinion. C’est une intervention proprement théorique, visant un effet de vérité et que tous
les militants font du reste dans leur pratique quotidienne, en cela qu’elle attaque les
fondements de l’hégémonie idéologique actuelle, c’est-à-dire la manière dont les rapports
sociaux les plus quotidiens sont dits. Et pour être agis, et éventuellement transformés, ces
rapports doivent nécessairement être dits. Cette hégémonie a aujourd’hui un nom, c’est le
libéralisme, économique et politique. Or, la langue de cette hégémonie a ceci de particulier,
qu’elle vise, à travers le vocabulaire omniprésent du consensus, à rendre impossible la diction,
et donc l’expression, du conflit et du clivage social. Elle initie en ce sens la destruction du
politique, qui est, comme le souligne avec force Labica, la marque distinctive de la victoire du
libéralisme, à laquelle elle fournit un formidable fondement pratique. Elle détruit la politique
pour lui substituer la gestion, ou la « gouvernance » comme on dit aujourd’hui, de même
qu’elle détruit la pensée pour lui substituer la « pensée unique », c’est-à-dire la non-pensée.
Inversement, la lutte contre cette hégémonie, commence par la lutte dans et contre ce
langage. La lutte contre certains mots, et pour certains autres, que les précédents ont pour
fonction d’éliminer, comme bien entendu, les mots de « classes », d’« ouvrier », de
« peuple », d’« impérialisme ». Mais dans cette lutte dans les mots, il n’y pas simplement
l’attaque frontale, il y a aussi le détournement, l’ironie, le retournement des mots contre euxmêmes,
bref il y a tout une guérilla linguistique qui se met en place. C’est pourquoi on
trouvera dans ce livre également des poèmes, des rengaines, voire de véritables catalogues à
la Prévert comme le morceau d’anthologie titré « consensus », qui d’une certaine façon
résume tout.


Intervenir dans et contre le droit
L’intervention théorique dans l’idéologie ne se résume pas, toutefois, au langage
« ordinaire », qui reste marqué par les contradictions et les incohérences du sens commun.
Elle nécessite un niveau supérieur, plus abstrait et plus systématique, qui unifie les formes
idéologiques, leur permet de communiquer et de concentrer leurs effets. Ces formes
idéologiques plus sophistiquées cimentent l’hégémonie d’un groupe déterminé et elles sont
l’affaires de spécialistes, qui sont les intellectuels organiques propres à ce groupe. Dans la
société capitaliste, c’est le droit qui fournit cette matrice idéologique. C’est pourquoi critiquer
le droit c’est s’en prendre au point fort, au cœur de l’idéologie dominante. Là encore, critiquer
le droit en marxiste, ce n’est pas le dénoncer comme un entreprise de manipulation, c’est s’en
prendre à ses prétentions fondatrices, fondées sur le mythe d’une société civile autonome et
d’une sphère privée dont il censé garantir l’inviolabilité. Cela revient à révéler le caractère
étatique du droit, et le caractère proprement politique de ses enjeux, qu’il dissimule tout en les
formulant, au sens strict : en leur donnant forme. C’est comprendre, plus précisément, que, du
fait de son caractère étatique et de sa subordination politique, le droit n’est pas l’opposé de
l’illégalité, mais le moyen même de sa constitution et de sa transformation en fonction des
conjonctures. Qu’il n’est pas l’opposé de la violence mais sa codification, le traçage et le
déplacement continu de ses frontières ainsi que sa captation « légitime » par les appareils
d’Etat. Que l’existence d’un Etat dit de droit ne met donc pas un terme à la question de la
contre-violence des dominés mais qu’il en modifie les formes et les conditions, depuis les
divers illégalismes populaires, tantôt individuels tantôt plus collectifs, jusqu’à la violence de
masse qui est le signe infaillible des situations révolutionnaires. Non pas, il faut le souligner,
parce que tel serait le choix des acteurs de la révolution, mais parce qu’elle est imposée par la
violence des classes menacées dans leur domination et par l’action des appareils répressifs qui
en concentrent l’usage.


L’hypothèse politique
Cette question de la violence, grand refoulé de l’actuelle domination libérale, m’amène
tout naturellement à celle de l’hypothèse politique qui sous-tend cette intervention théorique.
Car la reconnaissance du caractère pratique de l’intervention dans l’idéologie, dans la langue
et les catégories de l’hégémonie dominante, demande à être conduit à son terme, c’est-à-dire à
sa traduction politique comme formulation des conditions de la contre-hégémonie des classes
dominées. C’est ainsi en effet que se comprend l’« effectivité », la « réalité ou la puissance de
la pensée » pour reprendre les formulations de Marx dans les Thèses sur Feuerbach [3]. Cette
hypothèse politique est simple à énoncer, comme toutes les thèses fortes, mais ses
implications et conséquences sont nombreuses. Je la formulerai pour ma part en ces termes :
avec l’effondrement de l’URSS et la défaite des expériences révolutionnaires du 20e siècle, il
n’y plus désormais qu’un seul adversaire, dépourvu de contrepoids, brisant ses régulations
internes et libérant ses pulsions les plus meurtrières et destructrices. Contre cet adversaire se
lèvent donc des forces immenses, mais diverses, multiformes et même hétérogènes, dont la
convergence ne saurait en aucun cas être considérée comme spontanément acquise ou
garantie. Tel est justement l’objet de l’hypothèse politique à proprement parler, penser les
modalités de cette convergence, les conditions de leur constitution en bloc hégémonique
capable de remporter la victoire.
Sur quoi peut donc s’appuyer cettte hypothèse ? Quels sont, pour le dire autrement, à
l’intérieur même de l’hégémonie libérale actuelle les lignes de fractures, les éléments présents
à l’intérieur même du sens commun des dominés qui permettent de formuler une proposition
contre-hégémonique ? C’est, nous dit Labica, la montée de l’exigence démocratique, de
manière à la fois diffuse et universelle, et qui est la grande et dure leçon des expériences
passées, y compris de l’échec des régimes issus des révolutions populaires. C’est pourquoi,
affirme Labica cette exigence est plus instruite et plus consciente qu’elle ne l’a jamais été
auparavant. Or, le néolibéralisme, même s’il feint d’en respecter, voire d’en étendre les
formes, est l’ennemi et le fossoyeur de la démocratie et même de la politique en tant que telle.
La reprise et la consolidation des processus de démocratisation ne sont pas simplement des
moyens de résister. Ce sont aussi les voies de la contre-offensive car, pour rester effectif, le
processus démocratique doit s’attaquer à la propriété privée et à l’Etat qui en concentre
politiquement le pouvoir social. Poser la question de la démocratie, d’une démocratie
effective et victorieuse, c’est donc, immanquablement, poser la question du pouvoir, et cela
contre toutes les thèses libertaires aujourd’hui en vogue, qui ne peuvent se passer de ce même
« pouvoir » oppresseur face auquel elles en appellent à l’affirmation des « contrepouvoirs » et
autres « désirs » des « multitudes .
C’est sur le terrain mais aussi dans la finalité de la démocratie que peuvent converger les
forces sociales multiples que l’emprise du capital dresse contre elle, et qu’aucune forme
organisationnelle ne peut à elle seule contenir. C’est enfin sur ce terrain que se décide en fin
de compte la question de la violence révolutionnaire, non pas simplement de manière
défensive, comme moyen de défense contre la violence des minorités exploiteuses mais aussi
comme rupture de légalité, moment de suspension du droit, qui marque l’instauration d’un
ordre nouveau, comme Kant l’avait déjà fort bien dit à propo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Une
démocratie donc, on l’aura compris, qui émerge entièrement refaçonnée du processus même
de son déploiement concret, non pas donc, à la manière des libéraux, comme régime politique
ou règles procédurales mais comme ensemble de pratiques traduisant la capacité expansive de
la politique.
Démocratie et révolution, pour reprendre le titre de l’ouvrage, sont donc inséparables en
ce qu’elles sont distinctes, non parce qu’elles seraient deux choses différentes, mais parce
qu’elles désignent le même processus sous une double modalité, c’est à dire dans le
mouvement même de son déploiement.
[3] Auxquelles Labica a consacré un ouvrage entier ; cf. G. Labica, Karl Marx. Les Thèses sur Feuerbach, Paris, PUF,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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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공부하기2: 창조적 혁명 (고명섭서평+3편)

해방 위한 창조적 혁명을 꿈꿔라 / 고명섭 기자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출판사 ‘버소’에서 2007년 펴낸 ‘레볼루션스’ 시리즈 가운데 다섯 종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마오쩌둥-모순론·실천론> <로베스피에르-덕치와 공포정치> <호치민-식민주의를 타도하라> <예수-가스펠>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는 이 시리즈가 제목 그대로 ‘혁명가들의 말과 글’을 텍스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레시안북은 이 책들에 이어 올해 안에 나머지 다섯 종, <피델 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 <시몬 볼리바르> <토머스 페인> <마르크스>를 펴낼 예정이다.

 
〈마오쩌둥-실천론·모순론〉마오쩌둥 지음·슬라보예 지젝 서문·노승영 옮김

〈로베스피에르-덕치와 공포정치〉로베스피에르 지음·슬라보예 지젝 서문·배기현 옮김

〈호치민-식민주의를 타도하라〉호치민 지음·월든 벨로 서문·배기현 옮김

〈예수-가스펠〉테리 이글턴 서문, 대한성서공회·김율희 옮김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레온 트로츠키 지음·슬라보예 지젝 서문·노승영 옮김 (프레시안북· 각 1만3000원)

 

이 시리즈는 원텍스트 앞에 저명한 지식인들의 긴 서문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늘날 이 오래된 글들이 왜 다시 읽혀야 하는지 소개하는 글이다. 이 글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세계 철학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이 쓴 서문들이다. 지젝은 지난 200년의 근대 혁명의 인격적 대리자라 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레온 트로츠키, 마오쩌둥 세 사람을 재해석함으로써 이 시리즈의 근본 의도를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 시리즈가 발간된 2007년도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처럼 세계를 지배하고, 반자본주의적 혁명 열정은 주눅이 들어 ‘제3의 길’ 따위 패배적 타협책에 안주하던 때다. 그런 상황은 본질적으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전망 상실의 시대에 지젝은 혁명을 재사유하자고 이야기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지젝이 혁명을 재사유하는 방식에 있다. 로베스피에르·트로츠키·마오쩌둥의 텍스트들이 보여주는 대로 지젝은 이들의 주장과 실천에서 ‘독재’와 ‘공포’를 사유의 중심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진보파들이 외면하고 회피했던 문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는 혁명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지젝의 문제의식은 앞서 그가 편집하고 긴 해제를 단 레닌의 텍스트(<지젝이 만난 레닌>)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텍스트에서 지젝은 레닌을 통해 러시아혁명을 다시 사유하자며 이렇게 말한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레닌이 죽었다’는 것, 그의 특수한 해법이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구해낼 가치가 있는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트로츠키·마오쩌둥은 레닌의 기원이고 변주이며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세 혁명가를 다시 사유한다는 것은 이들의 실패한 해법 안에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인하고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 일이 된다.

 

지젝이 해석하는 로베스피에르는 근대 정치혁명의 출발이자 원형이다. 근대의 거의 모든 급진적 혁명은 로베스피에르가 이끌었던 자코뱅파의 혁명 원리를 이어받았다. 말하자면 로베스피에르는 자코뱅주의 공포정치·독재정치의 기원적 모델을 제공한 사람이다. 자코뱅주의야말로 근대 혁명의 핵심 인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지젝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1793년 없는 1789년’, 다시 말해 자코뱅의 공포정치가 없는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는 데 대해,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를 옹호하는 것과 같은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온건파 당통을 두고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는데, 지젝이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를 혁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덕이 없는 공포는 재난을 부르고, 공포가 없는 덕은 무력합니다. 공포는 신속하고 엄격하고 강직한 정의의 다른 말입니다.” 로베스피에르 연설의 특징은 ‘상반된 것들의 역설적 일체화’에 있다. “인류의 압제자를 응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로운 일이요, 그들을 용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야만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혁명의 본질에 들어 있는 이 ‘공포’(테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다. 지젝은 공포가 정치적 해방에 필수요소로 깃들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코뱅파가 한없이 과격해지고 극단화한 데는 어떤 무능력이 깔려 있었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사적 소유의 철폐와 같은 경제적 차원의 평등을 실현할 수 없었던 이 부르주아 혁명가들이 그 문제를 미봉하고 정치적 차원에서 정의를 실현해보려 몸부림치다 나타난 결과가 대공포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로베스피에르를 겨냥해 ‘선한 테러리스트’, ‘덕을 집행하는 악마’라고 규정한다. 그런 식의 규정은 트로츠키와 마오쩌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규정은 냉소적이기만 한 것일 뿐 자유와 해방에 대한 신념은 결여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젝은 말한다.

 

지젝은 철학자 헤겔이 <역사철학 강의>에서 프랑스혁명을 두고 했던 발언이야말로 진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프랑스혁명은) 영광스러운 정신적 여명이다. 사고하는 존재가 모두 이 시대의 환희를 나누었다. 고귀한 감정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적 열정이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마치 신과 세상이 처음으로 화해한 듯했다.” 헤겔의 이런 평가는 러시아 10월혁명과 이후 중국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그는 근대의 주요한 급진 혁명들이 공포와 독재라는 본질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본질을 단순히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닌 헤겔적 의미에서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한다. 그 문제에 담긴 해방적·창조적 내용을 보존하되 거기에 스며든 독성은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다소 추상적인 얼버무림으로 들리지만, 지젝의 강조점은 혁명을 상상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해서는 해방은 오지 않는다는 지점에 놓여 있다. 두려움이야말로 상상력의 적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고명섭 기자/한겨레 2009-01-30 오후 09:33; [관련기사] 지젝 “해체된 저항주체를 되살려라”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360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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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젝에 별로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았었는데, 고명섭의 이 서평을 읽고나니 왠지모를 친근감이 든다. 그래서 '혁명과 지젝'으로 검색을 해봤고, 나름대로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항목 몇 개를 옮겨온다. 검색에 나오는 대부분의 것은 영어항목이지만, 그쪽 분위기를 내가 잘 모르기에 불어로 된 것 중에서 믿을만하다고 여겨지는 몇 항목만 골랐다.

 

[1/3] http://ihrf.univ-paris1.fr/spip.php?article217 [<로베스삐에르, 덕과 공포사이>에 대한 소개. 서평-->공부1 참조]

Slavoj Zizek, Robespierre : entre vertu et Terreur, 2008.

La conversion des pays communistes à l’économie de marché a précipité la disparition de l’horizon révolutionnaire qui avait nourri en Occident deux cents ans de vie politique. La vertueuse Terreur de Robespierre est remisée aujourd’hui, aux côtés de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au cimetière des paradigmes monstrueux d’une époque révolue. Faut-il toutefois se résoudre à ce que la démocratie ne soit qu’une collection d’individus, unis par les seules valeurs marchandes ? La capacité de prendre des décisions collectives pour infléchir le cours des choses a-t-elle été anéantie avec la foi dans la Vérité, qu’incarna un temps Robespierre l’Incorruptible ? Ce sont ces contradictions de la démocratie moderne, égarée entre rêve de pureté et volonté d’ordre, entre volonté d’efficacité et tentation d’exclusion, qu’explore Slavoj Zizek dans ce texte sur la violence divine de la Révolution. Et le paradoxe qu’il défend ici, avec ce sens de l’analogie qui l’a rendu célèbre, c’est qu’il appartient peut-être au solitaire Robespierre de réapprendre au citoyen désabusé d’aujourd’hui les vertus de la décision et de la responsabilité collectives.
LE MONDE, 7 février 2008 // "La réalité (souvent déplorable) de la Terreur révolutionnaire doit-elle nous conduire à rejeter l’idée même de la Terreur ? Ou existe-t-il un moyen de la répéter (...), de sauver son contenu virtuel de sa réalisation ?" Au temps de la "révolution décaféinée", signe de la victoire de l’historiographie libérale, la radicalité du discours de Robespierre semble anachronique. Pourtant, le philosophe Slavoj Zizek plaide ici pour une réappropriation de son message, dans le but de réinventer une "terreur émancipatrice". Il présente dans ce volume un recueil savamment choisi de ses discours favoris. Au risque de faire un portrait légèrement angélique de l’Incorruptible. (Jérôme Gautheret)

핵심어(밑줄친 부분): 로베스삐에르의 덕의 공포, 혁명의 신성한 폭력, 순수성에의 꿈과 질서에의 의지 사이, 실효성의 의지와 배척의 기도(실행의도) 사이, 해방적 공포,

 

* Philosophe et psychanalyste, Slavoj Zizek est né à Ljubljana en 1949 (Slovénie). Professeur invité au département de psychanalyse de l’université Paris-VIII, il enseigne dans plusieurs universités américaines prestigieuses dont Columbia et Princeton. Il est également président fondateur de la société pour la psychanalyse théorique de Ljubljana. Il a publié, entre autres : [아래에 뽑힌 지젝의 저작들이 대표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아래 두 곳에서 추천한 것들을 묶었다.]

Essai sur Schelling : le reste qui n'éclôt jamais (L'Harmattan, 1997),

Vous avez dit totalitarisme ? Cinq interventions sur les (més)usages d'une notion (Amsterdam, 2004),

La Subjectivité à venir : essais critiques sur la voix obscène (Flammarion, coll. " Champs ", 2006),

La Marionnette et le nain. Le christianisme entre perversion et subversion (Le Seuil, 2006),

Le Sujet qui fâche (Flammarion, 2007),

Fragile absolu. Pourquoi l'héritage chrétien vaut-il d'être défendu ? (Flammarion, 2008).

 

 

[2/3] 지젝과 바디우에 관한 좀 긴 논문. 마지막 4번(임의번호) 항의 '그들의 한계'가 흥미로울 듯. 그리고 저자가 주석의 많은 부분에 친절하게도 관련자료 링크를 걸어둬서 유익. 출처: http://quefaire.lautre.net/articles/09zizekbadiou.html  

 

Žižek et Badiou : deux philosophes radicaux de l'universalisme

par Félix Boggio (Revue Que Faire ? - numéro 9)

 

De quoi Sarkozy est-il le nom ? est paru en octobre 2007. Les éditions Lignes avaient au départ mis en vente 3 000 exemplaires du petit livre du philosophe et professeur à l'ENS Alain Badiou. En ce début d'année 2008, on annonçait pas moins de 23 000 ventes. Il s'agit d'un succès inattendu, car personne n'aurait imaginé qu'un jour Badiou puisse toucher une fraction du « grand public ». Cette surprise n'a pas manqué d'effrayer le monde médiatique, car – nous le verrons plus loin – la philosophie d'Alain Badiou est d'une radicalité inhabituelle pour les journalistes des « grands » médias.

En janvier, février et mars dernier, trois livres du philosophe slovène Slavoj Žižek sont parus en français. Žižek, lui-même ami de Badiou, est très populaire dans le monde anglo-saxon. On le surnomme « le roi de la pop philosophie ».

Le 16 février 2008, Libération a consacré aux deux philosophes un dossier spécial : « Ces intellos qui rejettent la démocratie ». L'éditorial de Laurent Joffrin avait pour titre « Egarement ». Fustigeant le « parfum rance de sacristie marxiste » dans la critique de la démocratie formelle, il enjoignait courageusement les démocrates à « réinventer l'idée même de progrès » afin de conjurer l'hydre des « utopies de fer et de sang ».

 

1/ Matérialisme démocratique vs. Dialectique matérialiste

Badiou et Žižek ont beaucoup d'affinités théoriques, et leur émergence, de succès de librairies en anathèmes médiatiques, aide à mettre en évidence les problèmes que devront affronter les luttes sociales à venir. Alors que le cycle mouvementiste de la seconde moitié des années 90 marquait le retour d'une volonté de changer le monde, de se battre contre l'offensive actuelle du capitalisme que l'on appelle « néolibéralisme », il semble s'essouffler aujourd'hui : mis à part dans certains pays d'Amérique Latine, les débouchés politiques de ces résistances sont faibles. Notre courant a souligné de nombreuses fois que les tentatives d'éviter les débats politiques au sein des mouvements sociaux ne pouvaient que renforcer le réformisme. Pourtant, des milieux militants restent encore aujourd'hui hostiles à la forme du parti de classe : d'une part, cette forme est associée à la verticalité outrancière des partis staliniens ; d'autre part, la classe ouvrière est considérée comme tellement hétérogène aujourd'hui que l'on préfère se référer au concept de « multitude » d'acteurs singuliers. Au passage, on perd la notion stratégique de « lutte de classe » au profit d'un « kaléidoscope des appartenances identitaires ou communautaires » comme le souligne Daniel Bensaïd(1) à propos des théories de Laclau et Mouffe.

(1) Daniel Bensaïd, Front Unique et Hégémonie @-인터넷 자료. 주소는 미주 참조.

 

Dans ce débat, Alain Badiou a une position ambiguë : s'il pense que la forme du parti de classe est largement périmée(2), sa théorie tranche néanmoins avec les idées relativistes véhiculées par le mouvementisme libertaire. En effet, dans son ouvrage Logiques des mondes, Badiou oppose sa « dialectique matérialiste » à l'hégémonie du « matérialisme démocratique ». Le matérialisme démocratique soutient qu'« il n'y a que des corps et des langages ». La dialectique matérialiste affirme, elle : « il n'y a que des corps et des langages, sinon qu'il y a des vérités. »(3) Le philosophe estime que le matérialisme démocratique réduit l'humanité à l'animalité : l'animal-humain serait un être fini ayant pour mode d'existence la poursuite de ses intérêts propres. Il existerait donc une diversité d'individus essentiellement séparés. Cette diversité « kaléïdoscopique » se manifeste au niveau de la pluralité des langages dont l'état démocratique reconnaît l'égalité : Badiou entend ici l'ensemble des cultures, des coutumes et des mœurs.

Ce qui intéresse le philosophe n'est pas cette diversité, mais ce qui y fait exception. Il déclare que des vérités éternelles existent, dans quatre domaines : l'art, l'amour, la science et la politique. L'objet de son oeuvre est de montrer comment ces vérités sont expérimentées par des sujets dans des présents (ou « mondes ») disjoints, sans que ces vérités ne perdent pour autant leur caractère universel. L'origine des « vérités » a été présentée au sein de l'Être et l'événement, premier ouvrage de la série dont Logiques de mondes est le deuxième opus.

(2) @. (3) Alain Badiou, Logiques des mondes, p.12, Seuil.

 

Nous n'exposerons pas ici l'ontologie (la pensée de l'être en tant qu'être) de Badiou dans un souci de clarté et de concision. Retenons simplement le caractère exceptionnel des vérités : ce qui fonde leur être, c'est le surgissement d'un « site » singulier. En règle générale, une société compte tous les individus qui la composent : chacun trouve sa représentation, sa place dans l'État et son administration : catégories socio-professionnelles, nationalités, places dans l'échelle de revenus, etc... On pose que cette représentation fixe l'existence des éléments d'un ensemble. Ce qui fait exception à cette loi, c'est ce qui n'a aucune existence, ce qui n'est pas compté par l'État (les travailleurs sans papiers par exemple). Cette exception, l'inexistant, est appelé « site » quand l'inexistant acquiert un degré d'existence maximal : « nous ne sommes rien, soyons Tout. » Dans Logique des mondes, Badiou développe longuement l'exemple de la Commune de Paris, où les ouvriers parisiens affirment l'existence d'un pouvoir ouvrier, au moment même où le pouvoir officiel (bourgeois) cherche à les désarmer. Ce site prend la dimension d'un « événement », car les sujets qui ont fait accéder l'inexistant à un degré d'existence maximal effectuent de manière organisée les conséquences de ce surgissement : essayer de faire durer coûte que coûte le nouveau pouvoir. Les sujets font l'expérimentation d'une vérité éternelle : celle de l'égalité. L'égalité n'est plus un idéal à atteindre dans le cadre du progrès, mais le point de départ d'une pratique sociale.

Ainsi, pour le philosophe, toute politique émancipatrice véritable consiste en la déclaration d'un principe égalitaire (universel) en un site singulier – soustrait à la représentation (à l'état) – et en l'effectuation des conséquences de cette déclaration. Ce site singulier est ce que Badiou appelle « site événementiel ». Il est une condition de possibilité d'un « événement ». Le propre de l'événement est de disparaître aussitôt qu'il apparaît. Si bien que sa seule trace subsiste dans la déclaration partisane d'un sujet, qu'un événement a eu lieu : c'est la « décision d'un indécidable ».(4)

(4) Cf. Alain Badiou, Huit thèses sur l'universel @. ["영원한 진리는 평등의 진리이고, 평등은 진보가 다다를 어떤 이상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출발점이며, 고로 철학자에게 있어서 모든 참된 해방의 정치는 보편적 평등원칙의 선포를, 그리고 이 선포의 결과들의 실행을 만들어 낸다"는데...... 어찌보면 랑시에르의 주장과 비슷한 듯도 한데, 사실은 내가 두 사람의 이론을 정확히는 모르니 단어만 따라가는 번역 이상의 '제대로 된' 번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2/ Le prolétariat : entre donnée objective et sujet révolutionnaire

Voilà où réside l'ambiguïté de Badiou pour nous, marxistes révolutionnaires : d'un côté, il rejette la politique comme représentation subjective de classes sociales objectives,  d'un autre côté, il continue à revendiquer la figure de l'« ouvrier ». Plus généralement, un événement, pensé comme une rupture, n'a lieu que sur un site soustrait à l'état d'une situation ; il n'est pas sans lien avec une certaine réalité objective.

C'est donc plus précisément l'idée d'une politique de représentation du prolétariat par un parti dont ne veut pas Badiou. Si nous ne pouvons partager ce refus, les interrogations qui le sous-tendent ne sont pas sans nous interpeller. En effet, le concept d'hégémonie implique que le prolétariat doit unifier une multiplicité d'acteurs dans un devenir politique. Cependant, on ne peut pas s'en tenir à la ligne stalinienne qui subordonnait les autres groupes sociaux et leurs aspirations à la victoire révolutionnaire du prolétariat, arguant que le socialisme résoudrait les problèmes de tout le monde.

La réflexion de Gramsci nous inviterait plutôt à repenser le rôle stratégique du prolétariat. Voici ce qu'il dit du degré ultime d'organisation politique : « [...] c'est la phase où les idéologies qui ont germé auparavant deviennent « parti », se mesurent et entrent en lutte jusqu'au moment où une seule d'entre elles ou une combinaison tend à l'emporter, à s'imposer, à se répandre sur toute l'aire sociale, déterminant ainsi non seulement l'unicité des fins économiques et politiques, mais aussi l'unité intellectuelle et morale, en posant tous les problèmes autour desquels s'intensifie la lutte, non pas sur le plan corporatif mais sur un plan « universel » »(5)

(5) Antonio Gramsci, Notes sur machiavel, Analyses des situations. Rapports de Forces @.

 

Les philosophies de Badiou et Žižek donnent des pistes pour penser le rapport entre prolétariat et universel. Dans De quoi Sarkozy est-il le nom ?, Badiou définit l'« ouvrier » comme suit : « le nom générique de tout ce qui peut se soustraire, sous une forme organisée, à l'hégémonie réalisée du capital financier et de ses servants. »(6) Žižek s'inspire de la démarche « soustractive » de Badiou pour exposer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sous un jour nouveau(7), s'opposant aussi bien aux mouvementistes libertaires, qu'à l'orthodoxie sociologisante : au regard du système capitaliste, le prolétariat, structurellement, n'est pas représenté, c'est en cela qu'il est la classe universelle (capable d'abolir les classes sociales) dont l'opposition à l'ordre économico-social est irréductible. Pour l'état bourgeois, les classes ne sont que des « catégories socio-professionnelles ». Chacun est mis à sa place. Le geste de Marx aura été de fonder une science dont la catégorie fondamentale décrit ceux qui n'ont justement pas de place : le prolétariat, ceux qui ne possèdent que leur force de travail et qui sont en mesure d'abolir les classes sociales par l'abolition de la propriété privée des moyens de production.

6 Alain Badiou, De quoi Sarkozy est-il le nom ?, p.58, éditions Lignes.

7 Voir Slavoj Žižek, État d'urgence et dictature révolutionnaire @.

 

Il semble nécessaire de lier la définition économico-sociale du prolétariat à la perspective émancipatrice qu'il ouvre. L'unité des ouvriers n'est pas qu'une convergence d'intérêts : chaque moment de leur unité est un moment du devenir révolutionnaire de la classe. L'exemple le plus parlant est sans doute l'expérience de l'autogestion dans la Russie révolutionnaire : il est arrivé un moment où les bolchéviks ne défendaient plus les autogestions mais un plan de production unifié à échelle nationale, qui ne pouvait pas s'établir spontanément à partir du mouvement autogestionnaire lui-même. En effet, les ouvriers commençaient à défendre leurs usines respectives, ce qui brisait leur unité voire encourageait à un retour de la collaboration de classe. Ce que Badiou appelle l'« hypothèse communiste », l'Idée générique de l'égalité sociale, doit être l'horizon d'une politique émancipatrice. Elle trace une ligne de démarcation entre des pratiques qui se dirigent vers elle, et les pratiques qui s'en éloignent (qui rétablissent les places de chacun dans l'édifice social). Le prolétariat est objectivement dans la position de réaliser l'égalité sociale, mais il ne se constitue comme classe que dans un devenir subjectif qui prend conscience de lui-même : la réalisation de l'Idée universelle d'égalité sociale.

 

3/ L'hégémonie comme universalisme de la lutte

Cela nous amène au texte de Walter Benjamin, Sur le concept d'histoire, qui revisite le matérialisme historique : « Le sujet de la connaissance historique est la classe combattante, la classe opprimée elle-même. Elle apparaît chez Marx comme la dernière classe asservie, la classe vengeresse qui, au nom des générations de vaincus, mène à son terme l'œuvre de libération. »(8)

Ainsi, quand Marx affirme que « l'histoire de toute société jusqu'à nos jours est l'histoire de luttes de classes », il ne se contente pas d'effectuer une totalisation de toutes les expériences historiques jusqu'à son époque pour y découvrir une constante. Il effectue une construction partiale de l'histoire : une histoire du point de vue des vaincus qui se soutient d'un pari pascalien sur une révolution future.(9) La perspective de la révolution prolétarienne change la signification même du passé : celui-ci devient le récit des tentatives infructueuses des opprimés pour réaliser l'égalité. Le prolétariat est la classe en mesure de réactualiser dans le présent les possibilités trahies par les échecs précédents. On retrouve l'idée chère à Badiou que des vérités éternelles traversent l'histoire de manière discontinue. L'exemple le plus connu est sans doute la réappropriation de Spartacus par les spartakistes : d'un point de vue scientifique, il était impossible que la révolte des esclaves dans l'antiquité conduisît à la victoire du communisme. Cependant, le mouvement ouvrier intègre à sa subjectivité une rencontre avec les « vaincus », comme si un fil conducteur reliait tous ceux qui ont combattu en vertu de l'axiome d'égalité.

(8) Walter Benjamin, « Sur le concept d'histoire », Œuvres III, folio essais, p. 437.

(9) Le pari pascalien sur le devenir historique est même la condition de toute science humaine pour Lucien Goldmann. Voir son livre majeur, Le Dieu caché, éditions Tel.

 

La conséquence à en tirer, c'est qu'il n'y a pas de traduction directe entre une situation sociale étudiée sociologiquement et une formation politique. La situation objective demande une vigilance des révolutionnaires, de ce qui in-existe face au processus d'accumulation du capital, car ce sont les sans-parts, les laissés-pour-compte, qui sont seuls capables de réclamer l'abolition des classes sociales. Ceux qui pensent en terme de « multitude » ne contestent pas vraiment l'existence de classes sociales : ils n'envisagent qu'une radicalisation de la démocratie, son élargissement à de nouvelles communautés. Dans La Catastrophe imminente et les moyens de la conjurer, Lénine se fait observateur vigilant de ce qui in-existe face au gouvernement provisoire. Il oppose ainsi la démocratie bureaucratique du gouvernement et la démocratie révolutionnaire du peuple. « La contradiction fondamentale de la politique de notre gouvernement, c'est justement qu'il est obligé, pour ne pas se brouiller avec la bourgeoisie, pour ne pas rompre la « coalition » avec elle, de pratiquer un contrôle bureaucratique réactionnaire, qu'il qualifie de « démocratique révolutionnaire », en trompant constamment le peuple, en irritant, en exaspérant les masses qui viennent de renverser le tsarisme. Or, ce sont précisément les mesures démocratiques révolutionnaires qui, en groupant dans des associations les classes opprimées, les ouvriers et les paysans, c'est-à-dire les masses, permettraient d'établir le contrôle le plus efficace sur les riches et de combattre avec le plus de succès la dissimulation des revenus. »(10)

10 Lénine, La catastrophe imminente et les moyens de la conjurer, la faillite financière et les moyens de la conjurer @.


La centralité de la classe ouvrière au sein de l'hégémonie doit être comprise comme la conséquence de l'opposition irréductible entre le mécanisme impersonnel du capital et une partie de la population. La classe ouvrière est l'ouverture dans la société bourgeoise vers la société sans classe et sans État. Le rapport de « subordination » des autres couches de la société au prolétariat doit être compris comme la constitution d'un bloc dont la condition de possibilité est fondamentalement le prolétariat et secondairement les autres couches, sans pour autant hiérarchiser les priorités. La place stratégique du prolétariat est exposée dans son mouvement au sein d'un remarquable texte de Trotsky, issu de Terrorisme et Communisme. « Les soviets sont un appareil irremplaçable de domination prolétarienne précisément parce que leurs cadres sont élastiques et souples, de sorte que toutes les modifications, non seulement sociales, mais aussi politiques [c'est nous qui soulignons ndla], qui se produisent dans les rapports entre les classes et les couches sociales, peuvent immédiatement trouver leur expression dans l'appareil soviétique. Commençant par les plus grosses usines et fabriques, les soviets font ensuite entrer dans leur organisation les ouvriers des ateliers et les employés de commerce; ils entrent dans les campagnes, organisent la lutte des paysans contre les propriétaires fonciers, puis les couches inférieures et moyennes de la paysannerie contre les koulaks. l'Etat ouvrier utilise d'innombrables employés qui proviennent dans une large mesure de la bourgeoisie et de l'intelligentsia bourgeoise. Dans la mesure où ils se plient à la discipline du régime soviétique, ils trouvent une représentation dans le système des soviets. S'élargissant – et parfois, se rétrécissant – selon que s'étendent ou se rétrécissent les positions sociales conquises par le prolétariat, le système soviétique reste l'appareil étatique de la révolution sociale, dans sa dynamique interne, dans ses flux et reflux, dans ses erreurs et dans ses succès. Lorsque la révolution sociale aura définitivement triomphé, le système soviétique s'étendra à toute la population, pour perdre du même coup son caractère étatique et se dissoudre en un puissant système coopératif de production et de consommation. »(11)

11 Léon Trotsky, Terrorisme et Communisme, la classe ouvrière et sa politique soviétique, dans la partie « Les soviets, le syndicat et le parti » @.

 

Par le biais des soviets, des couches sociales viennent intégrer le camp politique du prolétariat, dans un mouvement simultané de dépérissement de l'État et d'abolition des classes sociales. Cela ne signifie pas que le prolétariat n'est qu'une subjectivité en dehors de tout contexte objectif. Au contraire, les évolutions sociales trouvent une traduction politique, bien que ce processus soit indirect et dépende d'éléments subjectifs : les individus issus de la bourgeoisie peuvent basculer dans le camp du prolétariat, tout comme certains éléments ouvriers peuvent rejoindre la contre-révolution. On peut parler d'un universalisme de la lutte : le système des soviets est en principe égalitaire, et se bat pour l'égalité sociale, mais les forces qui l'intègrent sont en lutte contre les propriétaires, les capitalistes, les nostalgiques du tsarisme, etc., si bien que l'universalisme scinde la société en deux.

 

4/ Les politiques de Badiou et Žižek face à leurs limites [바디우의 한계 & 친구의 한계에 대면하는 지젝]

La puissance de la pensée de Badiou donne toute sa force à un pamphlet de circonstance comme De quoi Sarkozy est-il le nom. Dans ce livre, Badiou met l'accent sur une vertu : le courage. Pour ne pas rester prisonniers de « la peur de la peur des réactionnaires », les « gens de gauche » devraient rester fidèles au communisme comme idée générique. La force du livre est donc dans son intransigeance et sa tentative de re-politisation de la politique elle-même, forcément au-delà des sondages d'opinion, des élections et de leur périodicité. Mais le livre est également une tentative de penser une nouvelle politique, à distance de l'Etat : ni prendre le pouvoir ni détruire le pouvoir, laisser l'Etat se charger du service des biens, et faire de la politique à l'extérieur. On ne peut qu'être d'accord avec Peter Hallward quand il dit à propos de l'opus de Badiou : « Il est, de plus, facile de voir combien le mépris envers l’État a de sens dans un pays dont l’État est aux mains de gens comme Mitterrand, Chirac et Sarkozy. Toutefois, il n’explique pas comment cette approche politique pourra nous aider à comprendre et à renforcer les mobilisations qui se sont récemment développées dans des pays comme le Venezuela, la Palestine, l’Équateur ou la Bolivie. Il n’explique pas pourquoi les militants politiques œuvrant dans de tels endroits devraient abandonner la politique des urnes et le contrôle de l'Etat aux mains de leurs adversaires. »(12)

(12) Peter Hallward, L'hypothèse communiste d'Alain Badiou @.

"반동-보수주의자들의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의 포로로 남지 않기 위하여 좌파는 공산주의라는 그 자체의 속성에 충실해야 한다. 여론이고 선거고 하는 그런 주기적 조사에 민감한 단계를 넘어서 정치자체의 재 정치화를 시도해야 하며, 이는 국가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정치를 사고하는 기획이다. 고로 권력의 획득도 파괴도 아닌, 국가는 복리에 복무토록 내버려두고, (좌파는) 그 밖에서 새로운 정치(공산주의)를 만들어가면 된다"는 것이 바디우의 입장이라는 것이 문단 앞부분에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고동색글씨부분): "국가(권력)이 사르코지 등의 자들에게 쥐어져있는 나라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에 대한 경멸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는 것은 아주 쉽다. 그렇다고해도, 바디우의 이러한 정치적 접근이 최근에 일어나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팔레스타인 등에서의 대중운동을 이해하고 강화하는 데 무슨 도움을 주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며; 왜 여기저기서 열심히 활동하는 좌파 정치 활동가들이 투표정치와 적들의 손아귀에 놓인 국가의 통제를 포기해야만 되는지를 바디우는 설명하지 못한다."


C'est l'un des reproches que formule Žižek à l'égard de son ami Badiou. En effet, la réfutation universaliste du « potage postmoderne » (l'expression est de Daniel Bensaïd) accouche chez Badiou de la même politique que les tenants du mouvementisme libertaire. Badiou ne conçoit la politique que comme locale, sans programme ni parti. A l'inverse, Slavoj Žižek essaie d'articuler son universalisme avec une définition philosophique d'une société post-révolutionnaire. Au lieu d'opposer politique et police, Žižek essaie de penser le nouvel ordre policier à partir des explosions politiques qui le précèdent. C'est le sens de son récent ouvrage sur Robespierre, qui présente une sélection de ses « plus beaux discours ».(13) Žižek cherche notamment à y déceler le noyau rationnel de toute terreur et à en trouver l'application pour la crise écologique actuelle.(14)

(13) Slavoj Žižek, Entre vertu et terreur, éditions Stock. (14) Ibid, p.58-59 voir aussi @

바디우의 바로 이러한 애매모호하고 때로는 "자유주의 운동의 운반책"(벵사이드의 표현)으로도 보일 입장이 결국은 지젝을 다른 극단으로 가도록 충동한다. 바디우에게 정치란 장소도 프로그램도 정당도 없는 무엇이라면, 지젝은 '정치와 치안의 대립'(랑시에르의 경우) 대신에 "새로운 치안적 질서"를 사고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가 <로베스삐에르: 덕과 공포사이>에 나타나며, 그것은 "공포의 합리적 핵"을 간파하고 추려내는 작업이다.

 

Le travail de Žižek remet à l'ordre du jour la catégorie de la discontinuité historique. En effet, le sujet est selon-lui un pur vide. L'« Acte » consiste à nier les coordonnées dans lesquelles s'inscrivent les possibles au sein d'un édifice idéologique clos. L'acte construit son propre espace de référence, il redéfinit les critères à l'aune desquels on peut le juger. C'est pourquoi le sujet suspend la Loi au nom d'une éthique qui lui est singulière. C'est cette suspension que Žižek appelle en politique « violence divine », en référence à Walter Benjamin : alors que le régime du droit est un cercle vicieux entre violence conservatrice et violence créatrice de droit, la violence divine (par opposition à la violence mythique) lave la faute et détruit le droit. C'est donc pour sortir du cercle vicieux de la loi et de la transgression, de la répression et de la résistance, que Žižek espère trouver dans une société post-révolutionnaire un collectif de type nouveau, dont la dialectique se situerait entre la Loi et sa propre absence (l'absence d'habitudes par exemple). La figure très en vogue de la « résistance » n'est pas suffisante, il faut une révolution, une prise du pouvoir, il faut assumer l'institutionnalisation des explosions démocratiques.

La limite de Žižek est qu'il revendique une conception assez élitiste du parti-Etat et de la révolution. Au fond, il partage avec Badiou un désintérêt vis à vis de la démocratie dans les mouvements d'émancipation. Daniel Bensaïd l'a remarquablement souligné chez Badiou dans son article Badiou ou le miracle de l’événement.(15) Il y signale notamment le problème que pose l'absence de bilan critique du maoïsme chez cet auteur. Chez Žižek, le phénomène est remarqué par Paul Kellogg.(16) Ce dernier montre au sein de l'édifice théorique du philosophe slovène, un refus de penser les événements dans leur contexte, et une conception de Lénine entachée du récit stalinien. Cela amènerait Žižek à penser le stalinisme comme une radicalisation inévitable de la révolution d'octobre, et à peu se soucier des questions démocratiques que posent toute crise révolutionnaire. On peut imputer ces insuffisances à une volonté légitime de se démarquer, et de la philosophie libérale qui imprègne la gauche d'aujourd'hui, et de l'historicisme vulgaire. Il n'empêche que son discours gagnerait en clarté et en justesse s'il ne passait pas son temps à tordre le bâton dans l'autre sens, geste que l'on pourrait trop facilement interpréter comme la fameuse provocation de l'hystérique contre le maître, qu'il dénonce à longueur d'articles.

(15) D. Bensaid @. (16) Paul Kellog, The only hope of the revolution is the crowd: The limits of Žižek’s Leninism @.

 

Malgré leurs limites, Badiou et Žižek fournissent une contribution philosophique incontournable pour penser la stratégie au sein du capitalisme mondialisé. Dans notre horizon politique incertain, nous ne pouvons que prévoir des rythmes, des répétitions, que Žižek analyse à l'aide de l'apport du Deleuze d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et de Logique du Sens : répéter n'est pas reproduire à la lettre les événements du passé, mais inventer, toujours en fidélité avec l'histoire des opprimés et les vérités éternelles qu'elle déploie. Une répétition introduit du nouveau en réinscrivant le passé dans un nouveau référentiel : elle transforme rétroactivement notre perception même du passé. Les événements révolutionnaire ressuscitent les fantômes des précédentes défaites, et réactivent (actualisent) leurs possibilités trahies dans le présent.

Žižek s'inspire volontiers de la fidélité militante disciplinée chère à Badiou, mais il met aussi l'accent sur les moments où il faut savoir « oser » effectuer un « saut de la foi » – les conditions d'un événement global (comme une prise du pouvoir) ne sont jamais objectivement « mûres ». On peut conclure avec la célèbre maxime de Mao Tsé Toung que Žižek cite comme réponse à l'attentisme incertain de la position politique de Badiou : « de défaite en défaite, jusqu'à la victoire ! »(17)


1 Daniel Bensaïd, Front Unique et Hégémonie, http://www.europe-solidaire.org/spip.php?article7177

2 Voir l'entretien : http://www.entretemps.asso.fr/Badiou/Raynaud.htm

3 Alain Badiou, Logiques des mondes, p.12, Seuil

4 Cf. Alain Badiou, Huit thèses sur l'universel, http://ciepfc.rhapsodyk.net/article.php3?id_article=44

5 Antonio Gramsci, Notes sur machiavel, Analyses des situations. Rapports de Forces. http://www.marxists.org/francais/gramsci/works/1933/machiavel3.htm

6 Alain Badiou, De quoi Sarkozy est-il le nom ?, p.58, éditions Lignes.

7 Voir Slavoj Žižek, État d'urgence et dictature révolutionnaire, http://semimarx.free.fr/IMG/pdf/Zizek_Paris-oct07.pdf

8 Walter Benjamin, « Sur le concept d'histoire », Œuvres III, folio essais, p. 437.

9 Le pari pascalien sur le devenir historique est même la condition de toute science humaine pour Lucien Goldmann. Voir son livre majeur, Le Dieu caché, éditions Tel.

10 Lénine, La catastrophe imminente et les moyens de la conjurer, la faillite financière et les moyens de la conjurer, http://www.marxists.org/francais/lenin/works/1917/09/vil19170910j.htm

11 Léon Trotsky, Terrorisme et Communisme, la classe ouvrière et sa politique soviétique, dans la partie « Les soviets, le syndicat et le parti », http://www.marxists.org/francais/trotsky/livres/t_c/t_c_9.htm

12 Peter Hallward, L'hypothèse communiste d'Alain Badiou, http://revuedeslivres.net/articles.php?id=207

13 Slavoj Žižek, Entre vertu et terreur, éditions Stock.

14 Ibid, p.58-59 voir aussi http://www.upmm.org/spip.php?article124

15 http://www.europe-solidaire.org/spip.php?article1315

16 Paul Kellog, The only hope of the revolution is the crowd: The limits of Žižek’s Leninism, http://zizekstudies.org/index.php/ijzs/article/view/129/227

17 Cf. Slavoj Žižek, On Alain Badiou and Logique des mondes http://www.lacan.com/zizbadman.htm

 


[3/3,참고용] 2개월 전에 불어로 번역된(영어-2003,2007간) 지젝의 새 책(?), <신체없는 기관: 들뢰즈와 그 결과들>에 대한 소개 (Information publiée le 22/01/2009 par Arnauld Welfringer: http://www.fabula.org/actualites/article28338.php)

Slavoj Zizek, Organes sans corps. Deleuze et conséquences,

trad. Ch. Jacquet, Éd. Amsterdam, 2008-11-20, 253 p., 21 €

 

Organs Without Bodies: On Deleuze and ConsequencesOrganes sans corps : Deleuze et Conséquences

 

En engageant la pensée deleuzienne en territoire philosophique " ennemi ", en la confrontant à celles de Lacan et de Hegel, Slavoj Zizek s'efforce de penser Deleuze et de penser avec lui hors des sentiers battus. S'appuyant comme à son habitude sur l'analyse d'objets culturels en apparence hétérogènes, de Hitchcock à Fightclub en passant par la théorie psychanalytique, Zizek détourne la pensée deleuzienne et expose une ligne de divergence qui traverse la pensée critique contemporaine : peut-on ne pas être spinoziste aujourd'hui ? Ce faisant, il propose à ses lecteurs une manière inédite d'appréhender les termes du débat contemporain sur la mondialisation, la (dé) démocratisation et la " guerre contre le terrorisme ". Il définit par là ce qui constituerait, selon lui, un acte véritablement politique en ces temps obscurs.

 

Table des matières :

DELEUZE
La réalité du virtuel
Le devenir contre l'histoire
" Devenir machine "
Un jour, peut-être, le siècle sera empiro-moniste ?
Quasi-cause
Est-il possible de ne pas aimer Spinoza ?
Kant, Hegel
Hegel 1 : prendre Deleuze par derrière
Hegel 2 : de l'épistémologie à l'ontologie et inversement
Hegel 3 : la différence minimale
La torsion du sens
Un interlude hégélien comique : dumb and dumber
Le devenir oedipien de Deleuze
Phallus
Fantasme
Réel en soi
CONSEQUENCES
La science : le cognitivisme avec Freud
La politique : le plaidoyer pour une Révolution cultur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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