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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칼릴 지브란

 

 

 

 동네에 제법 큰 서점이 하나 생겼는데, 거리도 가깝고, 분위기도 참 좋다.

 무엇보다 사람에 먼저 질리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에 책 구경하러, 걸어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게 가장 좋다.

 (물론, 서점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잡을까와의 문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오는 길에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와

지브란의 잠언집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을 단돈 4000원에 사들고 왔다.

헤세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건 한 3년 쯤 지나서 쓰고 싶다.)

 

 칼릴 지브란의 책을  반 정도 (후루룩) 훓어읽기를 하는데,

 그 중에 맘에 드는 몇 구절만 따오면....

 

▒  

우리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같이 실질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만일 골짜기들을 보고 싶다면 그대는 산을 올라야 하고, 만일 산꼭대기를 보고 싶다면

그대는 구름 위로 올라가야 하지만, 구름을 이해하는 것이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라면

눈을 감고 생각하라.

 

(난 뭘 추구하려고 하는 걸까? 따위의 질문이 이어지게 만드는...)

 

 

미친 사람들 대신에 온전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병원들을 짓는 것이

여러 나라의 정부를 위해서 보다 경제적이지 않을까?

 

(꼭 경제적인 것을 추구하기 보다, 요즘엔 정말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공감)

 

 

 그들이 나에게 말했다. "만일 잠든 노예를 발견하면 그를 깨우지 마세요.

그는 자유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만일 잠든 노예를 발견하면 그를 깨우고 자유에 대해서 그와 얘기를 나눠야 합니다."

 

 

 

이 중에서도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가장 비슷한건

 

 ▒

"어떤 사람들은 귀로 듣고, 어떤 사람들은 위장으로 듣고, 어떤 사람들은 호주머니를 통해서 들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한다."

 

라는 것.

 

 

 요즘엔 주변 사람들이나 나를 보면서 느끼는게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들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

자신의 이야기로만 가득찬 사람에게는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공간이 없다.

 

그건 여유인걸까?

 

 후욱.

 

♬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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