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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 이 글은 행인님의 [폭력의 기억은 핏속에 남는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을 읽다가 나도 내가 학교 다닐 적을 생각해봤다.

내 경우에는 여학생이란 특성 상 조심히 다루려는(?) 경향이 존재했고,

학교에서 시키는데로 착실하게 살던 범생이였으므로 별다른 기억은 없는 편이었다.

몇 가지 있다면,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외우지 못해 엉덩이를 혹사시켜야 했던 기억,

혹은 고등학교 때 부모님 문제로 담임 말을 씹어서 몇 번 혼난 정도.

아!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 한 분이 나 때문에 수업시간에 나가시고는

사과할 때까지 안들어오겠다던 일.

마지막 국어선생의 경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인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단기기억 하나는 자신있었으나,

미리 학원에서 영어를 배워온 아이들과, 알파벳을 처음부터 익혀야 했던 나와는

시작부터가 달랐기에 난 영어시간마다 글을 못 외워서 한동안 엉덩이에 불이 났었다.

아마, 덕분에 그 이후로 영어에 불이 나도록 공부를 했지 싶기도 하다.

 

그리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은 체육 선생이었는데, 술을 좋아했고, 코도 항상 빨갰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담임 책상 어딘가에 술이 숨겨져있고, 쉬는 시간마다 한 모금씩

마시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가 담임 없는 틈을 타 진짜 뒤져봤던 적도 있었다.

물론 술은 나오지 않았다.

 

 고1 때 담임은 돈을 무지하게 밝히는 인간이었다.

담임에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운영위원 회원이신 경우였고,

공부를 잘하더라도 반항적이거나 돈이 없으면 열외 대상이었다.

물론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으면서 말도 안들으면

운좋으면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남아나지 못했다.

 

 

 



한번은 일명 동아리 사건이 있었는데,

엄마가 운영위원인 몇 몇 아이들이 봉사동아린가 음악동아리를 들어서

담임이 동아리를 바꾸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동아리가 목적이 아니라 실은 돈이 목적임을 알게 되었던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담임의 행동은 학부모와 진로상담으로 확장되었는데,

내 경우에는 3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로 아버지 직장으로 담임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입학 때보다 성적이 떨어졌다며 걱정되듯 부모와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는데,

나중에서야 어머니께 들었던 이야기지만 내 고등학교 1년이 와인 한 세트로 무사하게

지켜졌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별 준비없이 담임을 만나러 갔다가,

학교에서 나와서 술을 사들고 도로 학교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변했던 것은 여러가지인데,

하나는 담임의 태도가 조금 바꼈던 것(하지만 일정시기가 지난 후 약발은 금새 떨어졌다)

다른 하나는 그 이후로 우리 부모님은 학교에서 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몇 주일을

머리를 싸매고 계시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이후로 난 절대 부모님을 학교에 가시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3때 대학진로 때문에 숱하게 부모님이 오시던 그 때에도

난 결코 부모님을 모셔가지 않았었다. 나 혼자 잘 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그 때문에 정말 무서운 담임에게 대든 적이 있었는데,

 3월 말 경 부모님 중 한분이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셔야 하니 학교에 오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머니가 아프셔서 오실 수 없었고, 아버지도 바쁘시니 학교에 오시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면 사립학교이니 한 달에 못내도 십만원은 기본으로

걷어야 하는 일이 나에겐 퍽이나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담임에게 말하고, 저희 부모님은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실 수 없다고 설득을

하는데, 도대체 설득이 불가한 사람이라 난 결국 그날 오후 수업을 하나도 못 들어갔다.

무섭게 부라리는 눈에도 고개를 젖히고 고집을 피우는 내 상황을 당할 수 없었는지,

담임은 결국 두 시간 정도만 나를 교무실에 세워놓고는 알겠으니 올라가라고 말했다.

5교시가 시작될 때쯤 불려가서 6교시가 끝날 때 즘에 교실로 올라갔는데,

다행히도 종교 시간이라 모두가 강당에 가있을 때였다.

그 때 화장실로 달려가서 정말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서운 담임을 이겼으니,

역사에 기록될 일에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서럽게도 울었는지...

어쨌든 그 이후로 담임은 나에게 한번도 부모님을 모시고 학교에 오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내 고집대로 되긴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기억은 없는 편이다.

 

내 경우는 물리적 폭력에 의한 것보다는

돈에 의한 차별과 정신적 폭력이 핏속에 더 많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하는게 더 나을까?

 

 

 

오늘 문득 내가 선생이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란 생각을 한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불로그의 글을 보면서 잠깐 내 옛날을 떠올리며...

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혹여나 내가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혹여나 내가 느낀 폭력의 기억이 그대로 혹은 증가되어 되물림될까봐.

 

세상에서 그게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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