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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5
    [스크랩]프랑스 대중 시위와 파업 : 새로운 시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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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3/24
    06.3.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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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3/22
    [스크랩]망종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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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3/22
    [스크랩]프랑스 : 고용유연화에 저항하는 노학연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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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3/19
    낯선 사랑에 관한 이야기-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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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프랑스 대중 시위와 파업 : 새로운 시대의 시작

지구상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들
그렉 오슬레이(Greg Oxley) www.lariposte.com
청년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새롭고 특히 심각한 공격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항의와 투쟁사태를 낳고 있다. 다시 한번 수백만의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2차대전 당시의 비시정권 이래 가장 반동적 정부에 저항해서 스스로의 이해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3월 7일 마르세이유 시위

 www.maxist.com

현재의 시위 물결은 2005년 하반기에 200여 도시지역 변두리의 노동계급에서 불타오른 빈곤과 절망에 휩싸인 청년들의 대중소요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그 당시 내무부장과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소요사태가 ‘조직된 범죄집단’의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즉각 그 자신의 정보기관에 의해 반박되었는데, 정보기관은 공식적으로 그 사건을 “사회적 인종적 차별의 축적”으로 인한 “자연발생적인 대중반란”이라고 정의했다. 시라크 대통령 역시 사회의 “깊은 불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시라크와 드빌팽 우파정부는 노동자, 특히 청년노동자의 권리와 생활조건을 더욱 공격하기 위해 방리유(도시외곽 빈민가)의 반란을 전형적으로 이율배반적이고 냉소적 방식으로 이용했다. 실업을 감소시키는 수단으로 제시된 새로운 법률이 26세 미만의 노동자들을 착취를 위한 원료로 전락시키고 완전히 사용자 마음대로 하게 하는 특수 노동계약을 도입한 것이다.

소위 ‘최초고용계약’(CPE)은 사용자들에게 2년 내에 노동자들을 어떠한 설명 없이도 즉각 해고할 권리를 준다. 이 계약에 붙여진 이름과는 달리 그것은 ‘최초 고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모든 청년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 법률 하에서는 노동조건에 불만을 표시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사용자 눈 밖에 나면 - 심지어 아프기만 하더라도 - 그 자리에서 노동자는 간단히 해고될 수 있다. 사용자는 그 결정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청년노동자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이 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많은 투쟁에 이어 나타난 이번 대응의 규모는 프랑스에서 노동자와 청년의 장대한 투쟁전통의 새로운 사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프랑스가 ‘혁명의 어머니’라 불려온 것이 헛된 것은 아니다.

지난 한달 동안 프랑스 전역에 걸쳐 대중시위가 발생하였다. 노동자들의 압력과 불붙는 분노로 인해,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노조도 이 사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도록 강제되었다. 파리 코뮨 기념일이기도 한 3월 18일에는 15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파리에서는 35만 명의 노동자와 청년이 시위를 벌였다. 일자리를 지키고 사유화에 저항하는 매우 결사적이고 단호한 수많은 파업이 패배했던 마르세이유에서는 13만명이 행진했다.

이 행진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거대한 시위 규모에 비해 전통적인 노동자와 학생조직의 깃발이나 플랭카드가 매우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 활동가들의 집회가 아니었고 아직까지는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들이었다. 학생들은 민주적 총회 조직화를 통해 거대한 규모로 나아갔다. 총회에서는 행동의 진로를 결정했다. 적어도 65개 대학이 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고등학생 역시 참여하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이 운동은 313개 고등학교에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생 조직들에 따르면 실제 수치는 적어도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더욱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시위와 파업이 3월 28일로 계획되어 있다. 위기는 사회 모든 수준에서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발적인 행진과 시위가 나라 전체에서 매일 발생하고 있다. 대학 이사회들과 일련의 권위있는 기관들, 인사들이 CPE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정부가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월 2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22%만이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시위’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71%는 프랑스가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사회 위기’로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60%~75%의 국민들과 90% 이상의 청년들이 반(反)CPE 운동의 목표에 동의한다고 했다.

 http://www.libcom.org/blog/

3월 18일 파리 시위

 www.maxist.com

보통 성급한 선언과 제스처를 하지 않는 사회당 지도자들이 2007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그들이 승리하면 이 증오스러운 법률을 즉각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 총선에서 좌파세력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는 유권자들이 현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사회당 지도자들은 정부에 대한 반대를 순전히 의회와 선거로 돌리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운동을 통제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의 긴장도와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신랄함을 생각하면 사태는 1968년과 유사한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한 전환을 위한 모든 요소들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물러서지 않으면 운동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떤 사건도 사태를 더욱 급격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다. 1986-1988년 시라크 정부 하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 당시에 한 젊은이가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했는데 이는 파리에서 백만 명 이상을 거리로 불러내었다. 현재의 조건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훨씬 커다란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에 대한 오랜 세월 동안의 반복된 공격이 있었고 5백만~7백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http://www.libcom.org/blog/

정부는 공황상태이다. 지금 물러선다면 심각한 패배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빌팽은 전임자인 장-피에르 라파랭이 불신임된 지 9개월 만에 모든 신임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라파랭은 5월 29일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에서의 패배로 물러났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현재 상황에서 CPE를 계속 옹호하는 것은 반대운동에 기름을 붓는 것이고 혁명적 위기를 자극하는 위험상황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치와 전쟁에서 무엇을 하든지 실수가 되는 상황이 있다”고 말했듯이, 드빌팽은 딱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의 교착상태와 계급간의 심대한 간극은 프랑스에서 점증하는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의 또 다른 징후이다. 이는 경제 불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 프랑스 정부의 누적적자는 1조 1천억 유로에 달한다! 그리고 삶의 질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고용, 임금, 노동조건, 주거, 연금, 사회안전망, 의료, 교육, 사회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전 사회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무한히 지속될 수는 없다. 2003년 연금 수호를 위한 대중시위, 최근 몇 년간의 장기적이고 격렬한 파업, 친자본주의적인 유럽헌법 거부, 지난 해의 빈민가 봉기, 그리고 현재의 운동은 지전이 발생하기 전의 첫 번째 진동과도 같은 틀림없는 징후들이며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징후들이다.

이는 혁명적인 시대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필연성은 나날의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위에서는 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노동자와 청년들이 난관을 거쳐, 전진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의 경험의 힘 위에서 그들이 마침내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결정할 때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번역] -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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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24

#1. 생활모드 변경하기

 

가끔 빠져드는 염세모드.

난 왜 재미있지 못할까라는 자조적인 물음과 함께 되새겨보는데,

그건 삶에 대한 욕심이 간혹 들다가도 현실의 무게에 부딪히고 실패했던 경험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되돌이켜보면 내 삶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이렇다할만한 실패의 경험도 많지 않은 편인데...

난 어쩌다 염세모드에 자주 빠지는 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을까?

 

 

태어난 성격자체가 그래서라는건 말도 안되고,

환경? 음...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일분동안 지난 내 환경을 되돌이켜 봤을때,

뭐, 그리 밝지는 않지만 그렇지도 어두웠던 과거도 아닌

약간은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삶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이렇게 믿어야한다. 이제 이십대인데, 두배는 더 살아줘야지 ㅠ.ㅠ)

언제 갈지 모르는 삶이지만 치열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대기모드, 염세모드에서

"조낸 달리는거야" 혹은 "인생 뭐 있어, 가는거야" 모드로 변경해보기로 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해도 즐거워지는건 대략 난감한 나의 성격.

나도 날 이해하기 참 힘들다.

 

 

 

#2.

생각만해도 즐거운 앞으로의 생활.

사실 변한 것도 없고, 변할 것도 없는 무료한 인생인데,

즐겁지는 않은데 즐거워질거라고 최면을 걸고 있다.

 

즐거워져라, 즐거워져라, 즐거워져라, 즐거워진다. 즐거워진다. 즐거워진다.

 

즐-

 

 

 

#3.

즐거운 일상.

 

최근 생활고로 인해 사교육에 몸담고,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요즘.

얼마전부터 최초 계약과 다르게 고1을 한반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시작한 수업이라, 수업을 들어가도 그닥 즐겁지도 싫지도 않은 생활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저께였다.

 

김구의 <나의 소원>이라는 교과서 글을 가지고 설명할 무렵

김구 선생도 지독히도 좌익세력이 싫었던 모양이다.

좌익의 계급주의 사상이나 프롤레타리아의 사상에 대해 일시적이느니의 언급을 하면서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까지 표현해놨다.

(참고로 이 글은 연설문이다.)

 

당시 시대배경을 위해 이승만 정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대해 설명하던 중,

한 학생이 조용히 말햿다.

 

지땡 학생:  이승만, SM사장 아니야?

 

난 이런 일은 유머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SM사장 존재를 아는 것도 용하다는 생각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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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망종 예고편

[스크랩]프랑스 : 고용유연화에 저항하는 노학연대투쟁

프랑스 : 고용유연화에 저항하는 노학연대투쟁

 

[기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전국 전선 구축
원영수(노동자의힘) 
2005년 11월 프랑스 사회를 강타했던 파리 교외 폭동에 이어, 전국적인 학생과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하고 있다. 3월 10일밤 소르본대학을 점거중인 200여 명의 시위대가 프랑스 경찰에 의해 강제퇴거 당하면서, 1968년 혁명의 부활을 알리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국내외 언론 역시 이번 투쟁에 주목하지만, 여전히 피상적 보도에 머물고 있다.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프랑스식 고용유연화: 최초고용계약제(CPE)

이번 투쟁을 촉발한 것은 지난 1월 16일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도입한 최초고용계약제(Contrat Premiere Embauche)였다. 명목상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이번 조치는 2005년 20인이하 사업장에서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자유로운 해고를 허용하도록 도입한 고용계약제를 20인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었다. 또한 빌팽 정부는 57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기간확정 노동계약제(CDD)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실업률은 유럽연합 가운데 상당히 높은 편으로, 2006년 1월 현재 9.6%였다. 그런데 25~49세의 실업률은 8.7%인 반면, 15~25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무려 22.8%에 이르고 있다. 또한 지난 교외 폭동의 중심지였던 빈민지역의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이런 심각한 청년실업에 대한 우파 정부의 대응은 자본측에 유리한 고용유연화였다. 해고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2년 이내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청년층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논리였고, 이런 고용유연화는 20인 이하 사업장에서 25세 이하의 청년층, 더 나아가 57세 이상의 고령노동자 층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유연화 반대투쟁의 폭발

1월 빌팽 정부의 CPE 도입 발표 이후, 직접적 피해 대상이 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투쟁이 촉발되기 시작했다. 2월 7일 1차 투쟁에 전국적으로 약 40만 명이 참여하는 대중투쟁을 통해 CPE반대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프랑스의 학제상 2월 방학기간 중에도 투쟁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더욱 확산되었다.

3월 7일 전국 160개 도시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2차 전국투쟁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가두투쟁을 넘어, 40여 개 대학에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시위대는 프랑스 68혁명의 진원지였던 낭테르 대학과 소르본 대학을 점거했다. 그러자 3월 10일밤 프랑스 경찰은 소르본 대학에 진입하여 점거농성자들을 강제 해산하였다.

이런 정부의 탄압에 맞서 3월 14일 소르본대학 강제해산 조치에 항의하는 투쟁이 벌어졌고, 3월 16일에는 학생 대오를 중심으로 전국투쟁의 날이 조직되었다. 더불어 국제반전행동의 날인 3월 18일에도 전국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이번 투쟁에는 일차적으로 전국학생연합(UNEF)이 전국적 투쟁을 주도하고 있으며, 3월 16일 현재 전체 80여 개 대학 가운데 68개 대학이 동맹휴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더불어 학생투쟁은 노동조합투쟁과 결합한 노학연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요 노총들이 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계의 좌파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3월 30일 전국파업 및 집회투쟁을 결정하였지만, 학생들은 일정이 너무 멀어 투쟁의 동력을 상실할 우려를 표명하면서, 3월 23일 24시간 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회당계 중도파 노총인 민주노조연맹(CFDT)은 이번 투쟁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 주요 투쟁일지
- 2월 7일 : 전국행동의 날 - 40만 동원, 주요 노총 + 대학생 및 고등학생
- 3월 7일 : 100백만명 160개 도시에서 가두시위, CPE 철회요구, 주요 노총, 학생, 공산당 및 좌파, 사회당 가세, 40여개 대학 점거농성 돌입
- 3월 10-11일 밤 : 프랑스 경찰 소르본 대학 침입 및 농성자 철거
- 3월 14일 : 소르본 강제퇴거 항의 투쟁
- 3월 16일 : 학생행동의 날
- 3월 18일 : 국제반전행동과 결합된 노동조합 투쟁

역사적 배경 - 최근 프랑스의 주요투쟁과 대중투쟁의 역동성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노학연대투쟁의 대중적 폭발은 현시기 유럽에서 프랑스의 민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프랑스 학생운동의 경우 역사적으로 1968년 5월혁명의 주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986년과 1994년 학생투쟁으로 정부의 후퇴를 강제한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1994년의 경우 CPE와 유사한 입법시도에 반정부투쟁을 통해 우파정부를 좌절시켰고, 이 투쟁은 1995년 연금개악반대 공공부문 파업투쟁("불만의 겨울")의 전조가 되는 투쟁이었다.

그리고 1995년 알랭쥐페 정부의 연금개악 기도를 좌절시킨 대중투쟁 이후, 2002년 극우 르펜 반대투쟁과 2003년의 제2차 연금개악 저지 및 민영화 저지 투쟁, 2005년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저지투쟁 등 주요 대중투쟁의 경험적 축적의 역사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번 CPE반대투쟁이 폭발한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 민중·사회운동은 우파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는 성과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도의 틀에 갇힌 공산당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선회했던 사회당마저 반신자유주적 전선으로 복귀시키는 대중적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대중적 확산은 정치적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사회당 좌파와 공산당, 트로츠키주의 좌파 등 정치적 좌파와 노학연대를 주축으로 한 좌파적 사회운동의 전투적 결합은 프랑스 사회와 정치의 지형의 근본적 변화와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성명서] 150만 시위대의 목소리 : 총리, 최초고용계약제(CPE) 철회하라
빌팽 총리, 최초고용계약제를 철회하라!

다시, CPE반대투쟁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CPE 철회를 원하다는 점을 총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150만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쳤다.

수많은 행진대오가 1만명, 아니 10만명을 넘었고, 파리에 35만명, 마르세이유에 13만명, 보르도 7만명, 툴루즈 5만명, 낭트 4만5천명, 렌과 릴 3만5천명, 카앵과 리모주에 2만명 등이 참여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160건 이상의 행진이 벌어진 이날은 총리가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반CPE투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CPE 철회를 요구하는 거리의 목소리와 여론이 전하는 메시지에 계속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주에는 더욱 확대되는 새로운 운동에 직면할 것이다. 3월 18일은 투쟁의 절정이기는커녕, 단지 새로운 동원투쟁의 발판일 뿐이다.

현재 67개대학이 CPE에 반대하는 동맹휴업에 들어 있다. 프랑스 전국학생연합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투쟁을 지속하고 동맹파업운동을 확장시킬 것을 요청한다. 더불어 CPE의 전면철회를 쟁취하기 위하여 노동자들과 나란히 투쟁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

2003년 3월 18일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EF)



[기고] 학생운동이 정부를 수세에 몰아넣다
머레이 스미스(혁명공산주의자동맹) 
지난 4년간 프랑스의 우익 정부는 총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2003년 연금 체계 개혁의 사례처럼 종종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을 강제했고, 이는 대체로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이 전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에 반대할 태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힘겨운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가 제안한 ‘최초고용계약법(CPE)’은 26세 이하 청년들을 ‘신규고용자일 경우’ 최초 2년 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고용안정을 과거지사로 돌리고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노동법을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목표의 일환이다.

동시에 이는 특히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처음에는 완만했지만 점점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분수령은 지난 10여 년간 최대 규모로 조직된 학생 운동이다.

주요 노조와 대학, 고등학생 조직이 2월 7일 최초의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프랑스식 표현으로 ‘조용한 성공’이었는데, 40만을 상회하는 시위대가 프랑스 전역의 도심에 운집했다.

2월 한 달이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이 문을 닫는 프랑스의 방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3월 내내 학생운동은 더욱 깊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이 이 사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단순] 시위와 항의를 넘어 [학교] 점거로 확대, 이동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전국 84개 대학 중 50여 개 이상의 대학이 학생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점거됐다. 3번째로 큰 규모의 낭테르 대학은 “안전상의 이유”로 휴교에 돌입했다.

100만의 인파가 160개 도심에 운집한 가운데 열린 3월 7일 2차 대규모 행동의 날은 1차 행동의 날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됐다. 시위대들은 노조원들과 다수의 청년, 학생과 노동자로 구성됐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많은 청년들은 정부가 시끄럽고 호전적인 프랑스 경제인연합(MEDEF)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처럼 경제인연합의 지방 사무소는 종종 학생 시위대의 표적이 되었다.

모든 좌파 정당 - 공산당과 극좌파는 물론 사회당까지 - 들이 학생운동을 지지하며 CPE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 기간 이외에 매우 특이하게도 CPE 철회를 요구하고 시위를 지지하는 사회당 포스터들을 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운동이 강력하다는 징후다.

정부는 물러서지 않으려 하고 있고 학생들에 대해 주저 없이 전투경찰을 동원했다. 3월 10일과 11일 밤에 그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소르본 대학을 급습했고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 일부가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소르본이 상징했던 1968년 5월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주에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조직화를 하고 있고 3월 14일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소르본에서 행진을 했다.

정부와의 힘겨루기는 현재 잘 되고 있고 사태의 흐름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대학과 고등학교 학생 조직들은 3월 16일 행동의 날을 호소했고 노동자들에게 지지 파업을 요청하고 있다. 토요일인 3월 18일은 노조들이 호소한 행동의 날이다. 여기에는 노조연맹 가운데 가장 우파인 프랑스노동자민주동맹(CFDT)이 포함되어 있는데, CFDT는 더 이상의 파업행동을 거부하려 한다.

프랑스 최대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3월 30일에 파업과 시위를 더 진행하기로 발표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다. 3월 11일 푸아티에에서 열린 CGT 전국조직위 회의에서는 3월 23일 일일 파업을 조직하고 파리에서 전국 집회를 개최할 것을 소속 노조들에게 요구했다.

정부는 이제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1986년과 1994년 두 번에 걸쳐 학생들은 정부로 하여금 법안을 포기하도록 몰아세웠다. 1994년의 관련 법안은 CPE와 매우 유사한 조치였다. 의견 분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라크 정권의 전직 외무부장관이었던 에르브 드 샤레트와 같은 소수의 우파 정치인들만 CPE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더 많은 이들이 정부 입장을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7개 대학총장들은 현재 CPE 철회를 요구한 상태다.

향후 2-3주가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노동계가 23일 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호소에 화답한다면 운동의 역동성은 다시금 강화될 것이다. 많은 것이 CGT에 달려 있다. 2003년에 총파업 호소를 CGT가 거부함으로써 정부가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LCR과 그 청년학생조직인 JCR은 이 운동에 깊숙이 관계하고 있고 전국적 파업과 시위 호소를 지지하고 있다. LCR도 CPE 철회를 위해 모든 좌파세력이 단결해서 회합을 갖자고 제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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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랑에 관한 이야기-브로크백 마운틴

   바람이 세차게 불던 일요일 오후, 간만에 영화를 봤다.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가 오백만을 돌파한다는 예측이 난무할 무렵, 오백만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이미 영화를 본 선배를 졸라 본 <왕의 남자>이후 올해 들어 본 두 번째 영화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3년 로키 산맥 어딘가에 자리 잡은 브로크백 산을 배경으로 두 젊은 카우보이, 에니스와 잭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그리고 20여 년간 계속된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

  

  에니스는 잭에 비해 과거의 유령같은 기억과 가족의 부양 의무라는 현실의 사슬에 얽매여 사는 인물이다. 그에겐 가난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가 파괴된 경험이 있고, 과거의 기억 속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기가 뽑혀 죽은 시체를 본 경험이 유령처럼 깊게 자리잡아 하나의 두려움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삶에서의 선택의 순간에 부딪힐 때 늘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내리고 고통스러워한다. 에니스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갈구하는 사랑을 깨닫고,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영화에서 보여진 그의 성격만큼이나 잔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에니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맹세하기까지의 과정은 잔잔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선물해준다.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라는 사전 정보 이외에 아는게 없던 나는 약간의 충격과 적지 않은 감동을 받으며 극장에서 나왔다. 한편의 로맨스를 보고 난 후의 느낌. 사랑과 삶에의 안타까움은 늘 심장을 울린다.

 

 

 


♪ 엔딩곡 ♪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게 사슬을 하나 더 엮지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나는 너를 잊지 않도록 사랑의 상처를 하나 더 긋지만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신은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상처를 하나 더 긋지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One more smile I fake, 'n try my best to be glad

나는 한 번 더 가장 기쁜 것처럼 거짓 미소를 지어보지만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신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미소짓게 만드네

Oh Lord, how I know

오 신이여 제가 어떻게 아나요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오 신이여 오직 당신만이 제 행복을 쥐고 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아나요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여 살아가자 살아가자

 



 때론 충동적이지만, 결코 일시적이지는 않은 사랑

  동성애에 대한 내 경험의 시작은 고딩 시절 하이틴 소설을 대체해 자리잡은 순정만화 가운데 동성애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19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만화였다. 한껏 예쁜 남자들이 등장해서는 사랑하는 미화된 이야기에 익숙한 나에게, 근육이 울퉁불퉁한 카우보이들의 갑작스런 섹스 장면은 다소 거칠고 충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약간의 충격은 기존의 내 인식 속에 존재했던 미화된 동성애에 관한 관념이 깨진데서 발생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생각의 틀을 깨는 묘미를 선사한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설정에서도 나타났다. 양치는 카우보이. 으레 카우보이하면 황무지를 배경으로 총을 쏘아대거나 소를 타면서 손수건을 돌리는 모습을 연상하곤 했다. 왜 이빨 어딘가엔 금니 하나가 번쩍거리고 있을 듯한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푸른 초원과 만년설을 아우르는 브로크백 산을 배경으로 하는 양을 치는 카우보이는 익숙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신선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낯선 사랑. 영화는 관객에게 사랑은 그것이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상관없이 섬광처럼 빠르고도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때론 충동적이지만 결코 일시적인 것은 아닌 그런 사랑을 말이다.

 

돌아가고 싶은 기억 속의 공간 -브로크백
  브로크백 산은 부유하지 않은 두 젊은이에게 노동의 공간으로 양떼 방목은 생계 수단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의 삶은 에니스와 잭이 방목을 끝내고 돌아간 시내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브로크백에서의 삶은 스스로에게 거짓없는 자연스러운 삶이었으며, 서로에게 진실한 공간이었다. 답답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현실과는 달리, 브로크백은 녹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맑은 이미지로 비춰진다. The force of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가 주인공인 에니스가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 결국 삶에의 선택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삶에서 순간의 선택에 늘 두려워하고 현실에 주저앉던 에니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맹세한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꽤 감동받았다. 이 영화가 진부한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있었던 까닭은 사랑의 대상이 동성간 사랑이라는 점보다 삶에 대한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마지막까지 내 뇌리속에 박힌 장면은 포옹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나까지 행복하게 만들던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장면과 엔딩곡이 몇 컷의 이미지와 음상으로 내 기억 속에 꽤 오랫동안 박혀있을 것 같다.

 

 

 

 

 #1. 잭의 시선으로 영화 살펴보기
 에니스를 처음 만난건 브로크백 산에서 양떼 방목을 하기로 한 때부터이다. 브로크백 산은 만년설로 뒤덮여 초원과 눈이 기이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에니스와는 이 공간에서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터놓는 친한 친구가 됐다.
 에니스가 털어놓는 과거의 기억은 현재 그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그에게 가족의 구성은 하나의 의무처럼 작용한다. 그에겐 현재 약혼자가 있고, 예정대로라면 양떼방목이 끝나고 12월엔 결혼을 할 것이다. 그의 어릴 적 경험 속에는 아버지가 보여준 동성애자의 성기를 뽑아 죽인 시신이 유령처럼 기억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에겐 하나의 두려움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섬광처럼 갑작스럽게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양떼 방목을 하는 동안 에니스와 행복했지만, 방목 생활이 끝나는 때 즈음 에니스는 지난 일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에니스와 다투고 산을 내려와서 우리는 인사를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난 로데오 경기에서 만난 부잣집 딸인 로린과 결혼했지만, 장인은 날 싫어해 이혼만 하면 위자료를 원하는데로 준다고 한다. 에니스와의 추억이 기억나 그의 주소를 알아내 엽서를 보냈다. 그를 4년만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 2. 알마의 시선에서
 5년 전이었다. 남편인 에니스는 잭이라는 친구에게서 엽서를 받고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겠다고 집 앞으로 나간 남편을 창문으로 본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남편이 친구와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남편은 낚시를 핑계로 잭을 만나고 있다. 그 장면은 그저 내가 오해했기를 바라면서, 낚시 도구에 힘내라는 쪽지를 달아놓았다. 나는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낚시에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잡아온 고기는 어디에 있냐고. 그는 그냥 먹었다고 대답했지만, 내가 달아놓은 쪽지와 낚싯대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에니스가 나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를 바라며 5년을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3. 에니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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