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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29
    그녀와 그녀들과 나를 지지한다.(6)
    엉망진창
  2. 2006/06/28
    일상을 기록하기
    엉망진창
  3. 2006/06/22
    연극 코뮌(5)
    엉망진창
  4. 2006/06/08
    안녕, 이슬아~(4)
    엉망진창

그녀와 그녀들과 나를 지지한다.

트랙팩님의 [김원호 성폭력 사건에 관한 지지와 연대] 에 관련된 글.

며칠을 트랙백 버튼을 눌렀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금방도 난 이 한 문장을 쓰고는 십 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성적이게 사고하고 또 행동하고 싶은데, 유독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그게 잘 안된다.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정리도 잘 안된다.

지지하는 글을 쓰기가 힘이 든다.

 

최근 블로그에 올라오는 지랄공주의 글을 읽으면서 난 울었다.

눈으로 울지 않으려고 참으면 참을수록, 목이 매이고 마음속에 눈물이 고었다.

글을 읽는 내가 이런데, 글을 쓰기까지 생존자가 흘렸을 눈물과 떨림에 나 역시 몸서리쳐졌다.

 

내가 생존자를 직접 알아서 눈물을 흘리는건 아니다.

그렇다고 생존자의 고통을 알 것 같아서 가슴이 떨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생존자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하고 싶지 않다.

상상한다는 것조차도 끔찍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글을 쓰고자 함은 최근 블로그에 올라오는 생존자를 포함한

그녀들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말하는 그네들의 과거는 내 과거이고,

내 현재이자 어쩌면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모습과 고통들로 가득하다.

이건 너무 끔찍한 애기지만, 현실이다.

 

 그러한 끔찍한 현실에서 사는 그녀들이 이제 자신들의 과거를 밝히고.

당당하게 서고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말걸기를 통해 자신들의 생채기를 더 깊게 파는 작업으로 일어서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지랄공주가 위치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나 역시 일어서나가는 과정이기에.

 

 

  이마적에 여성주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어느 동지의 말에 난 여성주의에 대해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할 말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술자리에서 이유를 묻는 동지에게 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이 나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현실 때문이라고 얼버무렸다.

이때의 내 대답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진실이었던 반은 내가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

나를 억압하는 폭력에 대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늘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여성주의에 대해, 반성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는 늘 내 주변에 존재했다.

...

 

( 금방까지 나는 내 주변사람과 그리고 나에게 일어났던 폭력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주욱 써내려갔었다. 그런데 지워버렸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주변의 경험이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난 아직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

 

 

    내가 여성주의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다짐해본 적이 있었다.

이건 내가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던 숨겨진 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외면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내게 현실과 맞설 것을 요구하는 세계와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는 심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폭력앞에서 개인은 너무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고, 묵인하는 방법은 맞서는 방법보다 쉬워 보였다.

 

   교육실습 마지막을 남기고 이틀 전.

결론부터 말하면 난 내 앞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아무것도 대응하지 못했다.

평소에 여성주의에 대해서 고민한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반성폭력에 대한 책도 읽고,

이런저런 토론도 하던 난, 정작 현실에선 아무 대응도 못하고 맥없이 무너져버렸다.

아니다. 무너져버렸다는 표현보다는 묵인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심할 때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난 여성주의에 대한 책들을 덮었고, 침묵했다.

그 후로 한동안 여성모임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술자리에도 가지 않았고, 외면했다.

 

 

 그러면, 그러다보면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상처를 준 사람은 쉽게 잊을지라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한다.

그리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물 것 같지도 않은 이 상처는 잊을 것 같으면 순간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언젠가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할 때, 가해자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아직도 가해자의 뻔뻔한 표정과 몸짓 그대로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할 수 있는 곳에 생존자의 글이 자리한다.

그녀의 생존과정이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사실 너무 가슴아픈 말이다. 그 말 이면에는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생존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니까.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 되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실제로 얻어내는 과정에서

생존자가 상처를 치유해나가기 위해

나는 그녀를 지지하고, 그녀들을 지지하고 또 나를 위해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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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기록하기

 

출처: 네이버 블로그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내 버릇 중 하나는 일기를 쓰는 일이다.

매일은 쓰지 못하고,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 꼴로 일기를 쓰는데,

지나간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일은 내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과

지난 추억을 곱씹는데 유용한 역할을 한다.

나쁜 건 타인이 기억하기 싫어하는 모습까지 되살려놓아, 두고두고 곱씹는다는 점이다.

 

최근 주변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까닭에 일기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내 일기니까 당근 내 이야기만 있다.

간혹 술에 취해 집에 가서는 감정에 격해서는 두서 없이 써 놓은 일기의 내용도 있으므로,

그게 진실인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내 기억에 의해 조작한 것이니까.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도 하지 않던가. 진실은 기록 너머에 있다고 얼버무려 두자.

 

내 일기는 2002년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의 일기야 과제물로 내야 했던 형식적인 일기이고,

혹은 내 실수로 인해 한글파일로 저장해 가지고 있던 일기가 컴퓨터와 함께 날아가버렸으므로

남아있지 않다. 내가 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부터 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념이 많은 까닭에 그 때 그 때 들었던 고민과 생각들은 금세 날아가버리므로, 붙잡아 둘

무언가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내가 일기를 다시 들춰보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짧은 5년동안 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의 내용은 앞으로 더 많은 내용으로 채워나가질 것이므로 생략.

 

다른 하나는 내 일기의 내용이 딱 연애시기를 기준점으로 둘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애 전에는 집회에 대한 단상, 주변인들의 행동과 말에 대한 첨언,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한 반성이 주된 내용으로 자리한다.

  연애 시기에는 대부분의 내용이 행복하다는 내용보다는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내용이 많다. 난 2003년 2월부터 연애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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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코뮌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코뮌. 포스터만큼이나 제목도 빨간 이 연극은 80년대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80년의 그 엄혹했던 시절도,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89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도, 96년 학생운동 탄압도, 노동악법 날치기도.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지 못한 2000년의 대학시절을 보낸 나에게 연극은 과거의 경험을 이양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양이고 나에겐 운동의 역사와 함께 내가 이어나가야할 운동의 일상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에 대해 숙제를 남겼다.

 나에게 작가는 계속 물어보는 것 같았다. 너의 꿈, 너의 코뮌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그려나갈 것이냐고.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여린 불꽃을 품은 너를 처음 봤어"

   연극은 기영의 기억을 통해 83년 인선과 기영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다. 기영은 위장취업한 대학생이고, 인선은 14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해 온 말 그대로 '공순이'이다. 이 둘이 처음 만났던 날은 어느 봄날, 비가 내려 정전이 된 작업장에서였다.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만큼 천둥과 번개가 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어둠 속에서 기영은 디디디를 외치며 인선에게 다가간다. 전두환 대머리 돌대가리.

  그리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다. 처음에 불은 인선이 아니라 기영에게 있었다. 작은 불꽃으로 밝혀진 테이블 위에는 인선과 기영의 꿈이 드러난다. 기영이 드러낸 건 '공산당선언'이었고, 인선이 드러낸 건 21세기에 나타날 디자인이었다. 작가가 교묘하게 나눠놓은 꿈.  그들은 꿈에 대해 대화한다. 꿈은 실현될 때 아름다운 것일까, 비록 고통스럽긴 하지만 꿈을 품고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울까. 기영은 전자를, 인선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건 그와 그녀의 삶의 대응방식과 연결된다.

   이미 공산당 선언을 줄줄 외고 있는 인선은 기영에게 묻는다.

 "읽으니까 어때?"

 "읽고 있으면 심장이 뛰는 것 같아요"

 "뛰긴, 어디에서 뛰는데?"

  기영이 대답한다. "심장이 붉은 광장에서 뛰는 것 같다"라고.

 

 

"움추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거야"

   그렇게 만남을 시작으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개인과 개인의 삶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연극엔 남녀 주인공만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등장하지 않는 중요한 인물 하나가 더 있다. 기영에게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나눠 준 사람. 바로 영진이라는 인물이다. 영진이 잡혀들어가 녹화사업으로 군대에 끌려가고, 인선도 감옥에서 숱한 고문을 받을 때, 기영은 인선에게 면회를 와선 "미안하다"라는 말을 되뇌인다. 그건 살아남은 자의 온전하지 못한 삶의 무게감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기영도 군대에 입대하고, 군 생활을 마치기까지 인선과 기영의 관계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서로 주고 받으며 생활하는 관계로 지속된다.

   엄혹한 시대의 폭력은 인선에게 커다란 불꽃을 일게 하고, 그녀는 투사가 되었다. 그건 그녀가 처한 환경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녀의 삶의 선언은 책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했다. 연극이 시작할 때 산울림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이제 불나비와 바위처럼을 부르며 크게 노래한다. 그런 그녀와 달리 기영은 술과 동맹을 맺고 일상성과 역사성을 파괴한다. 그건 89년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영진의 분신 때문이다. 

  89년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던 신념이 현실 앞에서 한 순간에 허물어지던 순간을 작가는 기영, 영진, 인선의 삶의 방식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다.

영진은 분신을 했고, 기영은 이제 끝이라며 술을 마시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죄의식에 허덕이고 있었고, 인선은 이제 시작이라며 생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흐른 뒤 유학을 준비하는 기영에게 인선은 말한다.

넌 도망가는게 아냐. 어깨펴고 움츠리지 말고, 앞을 향해 가는 거야.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대로, 들리는 대로... 외면하지는 말고. 네 길을 가는거라고.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른 뒤, 세상은 여전히 급변하고, 꿈을 빼앗으려는 자들로 가득하지만, 기영은 소시민이 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아침이면 전철에 일벌레처럼 꾸역꾸역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합류하는 소시민이 되어버렸다고. 그런 그가 인선과의 짧은 재회와 편지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주체로 일어서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프로메테우스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묻는다. 내 길에서 앞으로 나가다보면 언젠가 너와 마주할 그 날이 올까.

 

 

"내 심장은 어디에서 뛰고 있는걸까?"

  기영의 기억을 통해 진행되는 연극을 보면서, 나는 기영에게 주목했다. 기영의 기억속에서 인선은 투사였고, 그건 그녀가 위치한 노동의 현장이라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기영과 인선의 관계와 그 관계 속 기영의 선택과 행동이었다.

  

 기영과 인선의 관계는 단지 연인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오묘한 관계였다. 동지라는 이 짧으면서도 어려운 단어는 그와 그녀에게도 적용된다. 기영과 인선은 서로에게 불을 나누어주고 또 받는 관계이다. 소시민이 되어버린 기영에게 인선은 불씨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까닭이 되어주었고, 세월과 현실의 무기력함에 천착해가는 인선에게 기영의 다시섬은 또 다른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주었다. 민가의 노래가사처럼 그들은 함께 할 때 꿈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면으로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선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이 단적으로는 아련한 추억으로 존재할 수 있기도 한 반면 내 의지에 따라 내 길에 마주서고자 지향하는 인물이다. 적어도 80년의 사회주의에 대한 꿈과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서 기영과 인선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조직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거야"

"아니야, 조직의 주체는 나고 무슨 일인지 나도 알아야만 해"

주체는 나라는 기영의 말은 내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려했던 때 했던 말이었다. 이건 80년의 투쟁적인 운동의 경험도, 90년의 운동권의 몰락도 경험하지 못한 2000년의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더더욱 현실의 무기력함을 몸으로 체득할 것을 강요받는 지금의 시기에 세상과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내 열망은 무모함이나 철없음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엄혹한 현실의 폭력은 사회에서도 학교 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현실. 그 때 내 심장도 붉은 광장에서 뛰기를 희망했다.

 

그랬던 기영이, 그랬던 내가 소시민이라고 말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기영은 힘없이 넘어지는 사람이기를 선택했다. 고통과 죄의식을 자양분으로 삼고, 넘어지면 일어서기 위해 글을 쓰고 길을 가기로. 일어나기 위해 넘어지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젠 내 길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내 심장은 아직도 붉은 광장에서 뛰기를 희망하고 있는 걸까?

그저 인선의 대사를 기억하기로 했다.  "어깨를 펴고 앞을 보면서 전진하라고."

 

 

 

"심장은 차가워져도, 뜨거웠던 그 순간을 놓치지 마"

 연극을 많이 본 경험이 없으므로 연극에 대한 추억도 별로 없다. 뭐,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을테니 쌓아가면 그만 아닌가. 내가 본 몇 편 되지 않는 연극에 대한 추억 가운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좋았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연극이 하나 있었다. 그건 대학교 1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본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연극을 선택했던 선배에게 왜 이걸 봐야하냐고 못마땅해했던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내 동기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울었을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전태일열사가 고뇌하고 갈등하던 그 모습의 아련함이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 같이 연극을 본 동기에게 그 때의 연극이 기억나냐고 물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감동받았던거지?라고 덧붙여서. 친구가 말했다.

  "그 때 우리 가슴이 뜨거워서 그랬다"고.

  "그랬지"라고 난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내 심장의 온도가 어느 정도일까? 너무 식어 얼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간혹 한다. 예전에 활동을 잠시 접고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주변의 시선과 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던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심장은 식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심장이 뜨거웠던 때를 잊지 말라고.

그럼 차가워진 심장은 언제든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때 당시에는 참 멋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이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

 

 

 

 내 이전의 활동가 선배들은 이 연극을 보면 과연 어떤 기분을 느낄까? 내 후배들은 또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연극을 보며 궁금해졌고, 내가 그 경험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음이 연극을 50%밖에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나머지 50%는 이전의 선배들이 느끼지 못한 2000년을 20대로 보낸 나의 경험이자 일상성으로 자리한다. 그건 그들이 꿈꾸는 꼬뮌과는 다르거나 어쩌면 마찬가지인 나의 꼬뮌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내가 또 다른 인선과 마주하게 될 그 길은 무엇일까? 같이 연극을 본 친구들. 현장을 고민하는 또 다른 인선이 될 친구와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친구. 그들과 함께 나눌 프로메테우스의 꺼지지 않는 불씨를 난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난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대답하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연극을 보고 난 후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간만에 본 친구들의 이야기도 하고, 과거를 들추어내기도 하고,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는 좋은 이들과 함께한 좋은 연극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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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슬아~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나와 술의 인연을 당분간 끊기로 했다. ㅠ.ㅠ

어지러움과 온 몸이 쑤시는 것을 술로 달래보려고 했던 내 노력은

위염과 알코올 지방간과 빈혈과 감기몸살이 겹쳐 한꺼번에 찾아오게 만들다.

 

아...지금도 토할 것 같아.

그래도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감사.

 

사진 속의 나는 아픈 것도 모르고 이슬이와 함께 행복해하고 있는데...

오, 주여. 진정 제가 저 날 먹은 샐러드와 회가

제 인생의 마지막 알코올 한방울과 함께한 동반자였더니이까!!!!

큭  제기랄...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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