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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0
    <Once> ,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2)
    엉망진창
  2. 2007/12/17
    <나, 너, 우리>, 뤼스 이리가라이(1)
    엉망진창
  3. 2007/12/17
    공칠과 공팔 사이
    엉망진창
  4. 2007/12/03
    아하, 아하하(2)
    엉망진창

<Once> ,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삼일동안 영화만 세 편 이상을 봤다. 

처음엔 극장에서 보려했으나, 일찍 내려서 결국 집에서 볼 수 밖에 없었던

(2006)로 부터 시작했다.

앗...그런데 노래가 너무 좋은데다가, '밀로유 떼베'를 듣고선 가슴까지 아련해지잖아.ㅠ.ㅠ

물어물어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물어보니,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까지 보게 되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비포 선셋>이 나올때 즈음 보려했으나,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세 편의 영화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아마도 사랑과 추억에 관한 필름 정도?

 

 

 

 

Once OST 中 "Once"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곡. 왜 영화 제목이 '원스'인지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다.

 

Once OST 中 "Falling Slowly"

주인공이 처음으로 맞춰보던 노래. 그 전까지 이 여자의 매력을 몰랐는데,

목소리가 너무 맘에 들었다.

Once OST 中 "If You Want Me"

이 노래를 듣다가 예전에 '어둠속의 댄서' 노래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나는게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음색이.

Once OST 中 "The Hill"

역시...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더라고...

가슴이 조금은 아팠어.

그리고 <비포 선 라이즈>와 <비포 선 셋>

  

 

 

 

개인적으로는 <비포 선셋>이 더 좋은 것 같다.

9년후의 재회라는 설정.(에단호크는 늙지도 않는 것 같은데, 줄리 델피는 왜 이렇게 나이든 것이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늘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진부하고 식상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감되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일까?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공통 소재를 사랑과 추억에 관해 잡으면서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건 만남과 타이밍 시간과 그리고 이별에 대한 것들이 더 남는 건 왜 그럴까?

 

사랑이 이뤄진 게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뤄지지 못한 인연이 더 가슴아프고 아련하게 남는건 정말 사람들이 지닌 낭만적 환상 때문인걸까?

 

어쨌든 분명한 건 <비포> 씨리즈의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었던 건

그녀와 그의 사랑이 끝을 두고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대화의 주제가 줄 곧 '죽음'과 연결되는 건 아닐까?

 

외로워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얘기랑

사랑을 하면서도 외롭다는 얘기가 줄곧 떠오르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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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우리>, 뤼스 이리가라이

얼마전에 <색, 계>를 봤는데, 영화 초반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멋진 남주인공이 여주인공과 그녀의 친구에게 같이 연극을 제의하는데,

이미 유명하다던 여주인공의 친구는 연극의 주제로 입센의 <인형의 집>을 제안한다.

그랬더니, 이 남주인공 하는 말 <이 시기에 그런 부르주아 연극은 맞지 않는다>고.

 

영화<색, 계>에 대한 감상평은 나중에 하겠지만, 난 이 장면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남주인공의 혁명적이고 굳센 민족의식을 나타내려고 이 장면을 삽입한 거겠지.

뭐, 입센의 작품이 부르주아적인건 사실이지만, 그래도...기분이 살짝 나빠진 건 왜 인지...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던 무렵,

 

 

오랜만에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뤼스 이리가라이의 <나, 너, 우리>

뤼스 이리가라이는 역자 후기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다.

 

문체나 내용이 재미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궁금증이나 떠오르는 의문을 저자가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하고 대답하고 있어서

재미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워낙 페미니즘에는 전무한 지식을 소유한 나로서는 책 서두 부분에 시작되는 이 질문

"<제2의 성>을 읽지 않은 여자가 있는가? 그 책을 읽고 분발하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나다, 허거걱 ㅡ.ㅡ;; 을 연발하면서 읽었으니...

새로운 지식에 대한 정보도 즐거웠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질문들이

이 책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점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그가 아닌 존재가 되었는가?

학교에서 국어수업 첫 시간 즈음에는 언어와 사고에 관한 오랜 논쟁에 대해 소개를 할 때가 있다.

대부분 교육과정에서는 언어와 사고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사고에 의해 언어가 규정되기도 하지만, 언어에 의해 사고가 형성되기도 하며, 언어와 사회, 문화, 사고와 표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말고, 이리가라이의 시각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언어와 사고, 언어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형과 남성형으로 구분되어 나타나는 언어에는

그 사회의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여성은 가부장적인

언어 질서에 의해 배제되고 부인된다고 본다. 여성의 담화와 남성의 담화는 다르며, 그 안에 내재된

모순된 질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남성형과 여성형에 대한 고민이 더 심화될 수 있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불어를 처음 배웠을 때를 기억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언어와는 다르게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분된 언어가 낯설었지만, 금새 익숙해졌던 건

'해'와 같이 밝고 우위를 점하는 단어들은 남성, '달'이나 음성적인 것들은 여성형으로 구분했을 때였다.

낯선 문화였지만, 그게 익숙해졌던 우리의 문화에서도 음이나 양과 같은 것들로 구분되던 문화와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거다.

 

뭐,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저 외우기만 급급했던 언어에 사실 성별화된 인식이

내재되어 있고, 그 관계에서 남성형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겠지.

그녀는 '그'+'녀'로 표현되며, '그'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말이다.

 



여성성이란 뭘까? 여성성이란게 있기는 한가? 여성성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는 한가?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즈음에 한동안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문제는,

여성성에 대한 자기질문이었다.

여전히 이에 대한 해답이 명확히 풀리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책을 읽으면서 확실해 진 것 같다.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유추해 보는 방법에는 그 단어의 반댓말을 생각해보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여성성에 대해서 질문하면 그 대답을 어물어물대면서도,

반대로 남자다운 것, 남성성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다고 그런 대답이 정말 남성성에 대해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덜 어려워 보이는 건 사회적으로 우위를 지니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다운 것. 남성은 힘에 있어서 여성보다 우위에 있으며, 강하고, 지배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성은 무수히 많음에도, 사회적으로 말할 때 남성성의 모델은 이런 강인한 이미지다.

아마 그 반대가 여성성으로 이야기되고, 그 결과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고, 나약한 이미지, 소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건 도식적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장난 같지만 강하기도 하면서 강하지 않고, 때론 지배적이면서 지배적이지 않은 것들이 여성성을 이루는 것들이 아닐까?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용어 규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여성성에 대한 자기 질문을 여성 스스로가 제기하고,  함의를 이뤄가야 할 것 같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에서 이리가라이의 책 제목으로 다시 돌아간다.

"Je (나), tu (너), nous(우리) - pour une culture de la difference (차이의 문화를 위해)

 

성별화, 성별화된 권리를 인식하고 주체성을 지니며 자신들의 결정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 그러기에 전복되고 지배와 피지배를 이루는 관계사이를

다시 전복시켜 평등을 이루기 위해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

 

 

 

개인적으로는 ...

 

 이리가라이는 여성족보에 대한 논의, 모계제 사회에서 부계제 사회로의 이행, 모녀 관계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에 대해 말하고자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초기에 주되게 드는 의문.

"왜 여성들은 이 모든 것 - 신성, 왕권,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이리가라이의 대답은 위에서 약간 언급했는데,

(사실, 저자도 명확하게 답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고냥 요런 의미가 아닐까?정도??)

 

모자관계를 뒤집어 모녀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이리가라이의 주장과

여성의 출산과 관련해 태반관계로 여성의 몸을 주인공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은

처음 듣는 거라 개인적으로는 참 신선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내 갈증을 채워줬던 부분은

성 도착자 같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프로이드의 학문적 성과와 현재까지 많은 학문분야에서 중요한 토대를 차지한다는 건 인정하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설명하는 그의 이론을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려는 이리가라이의 의견을 읽으며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른다.

기쁘다못해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현대 시대에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궁극적으로 나에게?

작년 이맘 때즈음 여성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언젠가 소설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줄곧 가져왔던 의미이기에 이 부분이 더 맘에 와 닿았던 것도 있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며,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함 수 있는 수단이다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글쓰는 자아가 분리나 분열 하지않고, 온전한 나를 찾는 방법이 뭘까하는 문제.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치유와 자아발견의 과정이 동시에 이것이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많은 여성상 가운데, 20대,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비혼의 여성인 내가

여성으로서의 여성성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하는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서,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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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칠과 공팔 사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천에 내려왔다.

사실, 친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를 위함이 더 맞지만, 그래도 ㅋ

생각해보니 1년만에 바다를 봤고,

겨울바다는 생각보다 낭만적이고 따뜻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겨울에는 바다를 찾았던 것 같다.

작년에 멋진 거제도 일몰과 일출을 보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었는데,

열심히 적어둘껄.

아마도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시간은 느린 것 같으면서도 너무 빨리 지나가서,

늘 정신을 차려보면 12월이다.

그래서 12월엔 늘 한 해도 정리하고, 다가오는 해도 새로운 맘으로 각오를 다지는데,

그러기에 충분한 환경이 아마도 바다인 것 같다.

 

올해는 1월엔 뭐하지? 난 뭐 해 먹고 사나? 뭐, 이따위 질문들이 연이어 오는데,

아직은 뭐라고 확언하기 힘든 상태.

동력도 좀 떨어지고, 머리도 멍해지고.

 

그래도 어제 바다를 보고, 친구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공팔년 기조 하나는 정했다.

'멋진 사람되기'

다른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나한테 멋진 사람되기.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하고,

동력이 떨어진 나를 다잡아야 하고,

친구의 말대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겠지.

 

무한한 리필 사랑은 당장은 무리지만.

그래도 사람을 배제하지는 말아야지.

 

그리고, 슬퍼하지 말아야지.

씩씩할 땐 씩씩하게,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기.

웃을 때는 누구보다 호탕하고 즐겁게.

 

이게 어제 그제 바다를 보고 와서 생각한 2008년, 나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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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아하하

시험이 끝났다.

결과는 모르겠다.

채점은 해보고 싶지만, 그 순간부터 현실이 보일테니까.

그냥 1월까지 마냥 기다려보고, 하고 싶은 것들만 맘껏 하련다.

12월이니까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하하핫

 

 

하고 싶은 것들.

2008년을 준비하면서 묵은 것들 버리기.

사람들 만나기

자료들 정리하고, 읽고 싶었던 책 읽기

기타 배우고, 밴드는 좀 고민도 해보고

소설쓰기.

 

 

웅...소소한 것들인데, 꾹 참고 살았구나

흠...뭐 어때, 지금부터 하면 되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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