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전설

from 잡기장 2010/08/15 19:18

18장짜리 온리 영어로 되어 있는 자료를 해석해주기로 해서, 간만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어떤 단체에서 번역자원봉사할 사람이 필요하다길래 어쩌다보니.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인터넷 영한사전을 열심히 들락날락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일어나기 귀찮아서 한 번 씹었는데, 곧바로 전화가 다시 오길래 무거운 몸 이끌고 겨우 일어나서 벨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앗 이 새키. 선배 잘못 만나면 인생 망친다는 걸 내게 체득시켜준, 참 도움안되는 형님.

한화 이글스 광팬인데, 날 더운데 괜히 엮였다가 대전까지 가야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휴대폰을 닫았다.

형, 미안혀. 요즘 너무 덥고 나 몸도 너무 무겁고, 야구장은 가을에나 슬 가볼까 해.

9월 10일 롯데자이언츠의 목동야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 그 날 특별한 일 없음 뜹니다.  

 

그런데 문자 띵동.

"구대성 형님 은퇴하신다는데 가봐야하지 않겠냐" 

 

 

아......  무표정, 고무팔, 대성불패 한화이글스 구대성(41) 투수가 18년간의 현역생활을 마감하고, 9월 2일 은퇴식을 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인생 드라마 따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병든 아버지 모시고 다리밑 움막에 살았던 대전고 구대성 투수에 대한 얘기는 왠지 모르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돈 싸들고 온 빙그레 구단 운영부장에게 "돈이야 나중에라도 벌 수 있는 거 아니냐"며 프로진출을 마다하고,동기생 3명의 진학만을 책임지겠다는 연세대의 제안도 거부한 채,

아버지의 병원비와 대전고 야구부 3학년 전원의 진학보장을 요구하며 한양대를 선택했던 구대성.

 

그는 '좌대성 우민태'라는 말을 만들며 한양대 전성시대을 열었지만, 아마야구 에이스들 대부분이 겪는 혹사(잘 하는 놈 혼자 줄창 던진다)로 인해 부상이 끊이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우리나라 학원 스포츠의 최대 희생양 중 한 명. 

 

하지만 '승부사'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구대성. 

 

충청도에서 야구 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구대성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갖고 있을거다. 대성이 횽아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였냐면, 한참 구대성이 잘 나갈 때 충청도 사람들은 구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보면 '구대성이랑 같은 구씨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믿거나 말거나. 

 

우승과는 참 인연이 없었던 한화이글스. 송진우-정민철 선발과 구대성의 마무리라는 공식으로 1999년 한화이글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화 어린이들이 그리 주장하고 있지만, 내 보기에 그 해 한화의 우승은 정말 어쩌다보니였다 흐흐흐흐흐 어쨌든 당시 구대성의 마무리는 분명한 아~트였다.

 

당연히 영구결번 가는거겠죠?

하지만, 우리 돼호가 세계신기록 세웠다고 해도 들여다보지 않고 있는데, 뭐 대성이 횽아 은퇴식 챙길 겨를은 솔직히 없구,

그러나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시길.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대성이 형님의 그 시크한 표정이 참으로 좋았더랬습니다. 그나저나 송진우 회장님은 어찌 지내시나요? 갈비집 문 닫으셨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도 시작되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롯데자이언츠의 가을야구를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고

놀 거리가 충분하니, 한동안은 있는 힘껏 잊고 잘 살 수 있을 듯.

아무 생각없이 맨날 놀자니, 세상을 바라볼 용기가 안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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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19:18 2010/08/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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