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62, August 1, 2009


세계 좌파와 이란 선거

("The World Left and the Iranian Elections")





최근 치러진 이란 총선과 더불어 이 선거의 정당성을 놓고서 벌어졌던 연이은 도전들로 인해 이란은 내적으로 엄청난 갈등에 휩싸였고,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겉보기엔 끝이 안 날 듯하면서 아직까진 상당 기간 헛돌 위험마저 있는 논쟁이 촉발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중인 이 논쟁이 낳은 결과 중 굉장히 눈길을 끄는 건, 자신을 스스로 좌파라 여기던 이들 사이에 깊은 골이 패였다는 사실이다. 이들 좌파는 아흐마디자네드/하메네이 쪽 상황 분석에 사실상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들부터 무조건 반대나 다름없는 입장인 이들까지를 아우르는데, 이 두 극단 사이에 다양한 입장들이 포진해 있다. 이란의 현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건 세계 좌파들의 현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거나 진배 없을 듯싶다.

 

이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총선거가 치러졌다. 얼핏 보기에도 아주 대규모로 유권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란 정부는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를 공표했다. 나머지 세 후보의 지지자들은 선거 수치에 조작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요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는데, 개표 작업이 비공개하에 졸속으로 이뤄졌고 여러 선거구의 개표 결과는 상당 부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란 권력의 정점이라 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개표 결과는 기본적으로 하자가 없고, 따라서 선거는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고 역설했다. 그는 선거 결과가 타당한 것임을 누구나 인정해야 하며 이 결과에 불복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재검표 내지 재선거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항의가 점차 거세지자, 아흐마디네자드/하메네이는 갈수록 굉장히 억압적인 조치들로 대응했다. 혁명근위대와 이른바 (일종의 민병대라 할) ‘바시즈’는 시위자들을 거리에서 몰아내고자 상당한 물리력을 행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몇몇 시위자들은 사망하고 꽤나 많은 시위자들이 체포됐다. 

 

지금, 주요 반대 인물로 대통령 후보였던 미르 후세인 무사비,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두 핵심 인물인 전 대통령 악바르 하세미 라흐산자니와 무하마드 하타미는 줄기차게 선거에서 “정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 점에선 무사비보다 득표에서 뒤졌던 다른 두 후보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들 주요 인물이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들은 하나같이 (팔레비 왕정을 전복한) 1978-79년 혁명의 충실한 지지자임을 자임하면서 현 이란 공화국을 보전하는 데 헌신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건 체제 전환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자신이 현 집권 세력보다 이란 혁명이 당초 추구했던 정신에 더 충실한 열성파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세계 좌파 진영에선 이 모든 걸 어떻게 해석해왔을까? 이란의 현 상황은 전혀 독특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대규모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특정 시점 내지 또다른 시점에 이르러 발발해왔다. 세계 좌파 진영에서 이란 정세를 빗대는 데 쓸만 한 유사 경험들을 끝없이 끌어오는 건 바로 그래서다. 먼저, 1978~79년의 이란 혁명이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1989년 중국에서 벌어진 천안문 사태와 1968년 수많은 나라에서 벌어졌던 혁명들, 최근의 예로 (2000년을 전후한 시기) 옛공산권 국가들에서 일어난 이른바 ‘색채 혁명’들과 여러 라틴 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그리고 1995년 프랑스에서 펼쳐졌던 총파업이 있다. 원하기에 따라선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러시아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정의하든, “세계 좌파” 사이에 이들 대중 저항 사례 대부분에 대한 통일된 관점이 부재한 건 확실하다. 정말이지, 현 세계 좌파의 주요 문제 중 하나가 단단히 갑옷을 둘러친 채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주목할 만한 대중 저항들에 대해 보이는 집단적인 불일치에 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불일치가 발생하는 까닭은 세 겹을 이루고 있다. 첫째 이유로는, 대중 저항, 특히 지난 50년 사이에 펼쳐졌던 저항의 결과에 대한 오랜 환멸의 역사가 있다. 둘째, 대부분의 국가에서 펼쳐져온, 전통적인 좌파정치 운동이 객관적으로 처한 조직(화) 차원의 취약성이 있다. (오늘날 세계 좌파의 주요한 목소리들은 대부분 주로 무당파 지식인들이나 아주 소규모인 조직 소속 활동가들한테서 나오는 경향이 있다.) 셋째로는, 소위 좌파적 분석이라는 것들이 구체적 상황 분석으로부터 (분석 주체가 생각하건대) 무얼 봐야 하느냐를 놓고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있다.

 

본적으로 국가간 관계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지정학적으로, 특정 정권이 다른 지도자 부류로 대체된다거나, 더 나아가 하나의 통치체제가 다른 체제로 바뀌는 일은 어떤 함의를 가질까? 지금 이란의 경우,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미국과 대체로 강력한 갈등을 빚는 (한편 서유럽과는 그 정도가 비교적 덜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핵문제와 관련해서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미국에 관해 정치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식으로 존재증명을 해온 이다. 그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모두 이번 대중 시위의 배후에 미국과 영국이 있으며, 이는 아흐마디네자드 대신 미국의 시각에 좀더 고분고분한 인물을 권좌에 앉히기 위해서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가 아흐마디네자드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해온 건 이같은 근거에서였다. 이 주장은 그럴 듯하긴 하나 상황을 제한된 방식에 따라 분석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미얀마의 체제 변환을 몹시도 원한다는 점을 근거로, 최근 불교 승려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현 미얀마 정부에 지지를 보낼 좌파는 거의 없다.

 

이와는 달리, 차라리 이란 내부의 계급적 분할 상황을 더 눈여겨 볼 수도 있다. 세계 좌파 중 상당수 자가증명(소위 ‘자뻑’)에 능한 이들은, 아흐마디네자드가 기층 민중의 지지를 받는 데 반해 무사비 지지자들은 대체로 중간계급이자 부유층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좌파는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지해야 한다. 다른 상당수 좌파들은 상황을 다르게 분석하는데, 이들에 따르면 현 상황은 그저 특권층 내의 두 변종 간 분파 투쟁일 뿐이며, 테헤란 빈민가에서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지하는 흐름은 대체로 하향식 대중추수주의populist(이거나 더 심하게 말하면 이탈리아 극우파 총리인 베를루스코니식 ‘빵과 눈요기’ 정치)의 결과다.

 

덧붙여 말하자면, 다수 좌파는 근본적으로 교권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성직자가 통치의 핵심적 기초를 이루는 체제인 경우 그 어떤 정당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이란의 현 통치체제가 모든 비이슬람 좌파 정당들에 대해, 심지어는 샤 왕조의 폐지를 지지했던 정당들에 대해서조차 운신의 여지를 체계적으로 없앴다는 점을 환기한다. 이란 공산당인 투데Tudeh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비난하는 한편, 무사비의 요구사항들에 대해 몇 가지 유보조항을 달며 조건부 지지를 보냈다.

 

어디서 일어나든 대중 봉기와 관련하여 언급해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특정 정부를 상대로 정책상의 변화를 요구하고자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정부에선 그같은 요구들을 잠재우는 데 사용할 힘을 구비한 상태로, 상당수 정부는 이같은 힘을 쓰는 데 여타 정부에 비해 더 민첩하기까지하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을 때, 이를 그저 “외부세력/배후”의 개입 탓으로 결코 돌릴 수 없는 건 바로 그래서다. 미국 CIA가 1953년 이란 쿠데타에 개입했을 당시, 쿠데타는 이란 인민들의 거리 시위를 유도하는 식으로 일어난 게 아녔다. 그것은 CIA가 군부 장교들과 무대 뒷켠에서 작당해 벌인 일이었다. 우리는, 거리로 나서는 위험을 실제로 무릅쓴 그룹들이 지닌 정치적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상황을 외부 선동세력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반면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으로, 대중 봉기란 늘, 그리고 불가피하게 다수의 (정치적) 성분들로 엇물려 있다는 점이 있다. 시위자들 중 상당수는 특정한 당장의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다. 상당수는 지금 처한 개인적인 상황 변화를 겨냥할 뿐, 체제 따위가 바뀌길 바라진 않는다. 그리고 상당수는 체제를 바꾸고, 그러니까 전복하고 싶어한다. 대중 시위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일관된 개인들의 무리로 이뤄지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봉기란 보통,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엇물림 속에서 성공할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뜻하는 바인즉슨, 봉기 이후의 결과는 내재적으로 불확정적이라는 것이다. 세계 좌파가 대중 봉기에 도덕적-정치적인 지지를 표할 때 주도면밀해져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혼돈스런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 호흡이 맞는 세계 좌파 전략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나 쉽진 않을 것이다. 여지껏 그것을 이룩한 적은 없다. 이란 내에서 진행중인 투쟁이 세계적으로 불러올 결과들이란, 마치 체로 거른 듯 투명한 게 아니다. 세계 좌파는 입 다물고 있어선 안 되겠지만, 빈틈을 보여서도 안 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원문보기: http://fbc.binghamton.edu/262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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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08:19 2009/08/0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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