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1세기 국가에서 주민들의 불안한 삶은 '잠재적 범죄'로서,

복지정책적 포섭의 대상이길 그치고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겨레를 보니 “‘용산 진압하듯’ 대테러 훈련”이란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경찰특공대가 지난 2일에 치른 ‘대테러 종합전술훈련’에서 “지난 1월 발생한 ‘용산 참사’ 현장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듯한 상황에서 농성 진압 훈련을 벌”였다는 게다.

 

기사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이 훈련에 대해, “철거민과 관련된 훈련은 90분에 걸친 전체 훈련 가운데 3~4분 정도밖에” 안 된다며 “특히 용산 참사를 염두에 둔 것은 절대 아니”라며 단도리까지 쳤단다. 물론 그럴 거다. 이들께서 염두에 둔, 또 둬야 할 ‘잠재적 범죄’ 지역이 어디 용산뿐이겠는가. 이번 용산 진압작전이 “참사”로, 그네들 식으로 번역하면 '부수적 피해를 부른 직무상 과잉'으로 오점을 남겼다뿐이지, 앞으로 착수해야 할 "미션"들이 흐드러질 테니. 그 미션이 임파서블한 건지, 파서블한 건진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한편, 기자는 이 훈련이 “훈련 중간에 용산 참사를 복습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 일부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전했다. 글쎄,, 실제론 강렬한 햇살의 어택 때문이면 모를까, 문제의 훈련 장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듯싶다. 외려 엄숙하고 진지하게 두 눈 똑바로 뜨고들 보잖았을까 싶던데. 취재온 기자들, 그것도 일부가 눈살을 찌푸렸을 순 있겠으나, 이들을 ‘현장 참석자’에 포함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이자나.  

 

아마 “‘민중의 지팡이’여도 션찮을 경찰, 어쩌려구 니들까지 삽질들이냐” 식 반응을 유발하려는 듯싶지만, 경찰이 동서고금을 떠나 언제 민중의 지팡이였냐는 근본적인 물음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같은 의도가 ‘제대로 된 사태파악’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조직화한 폭력의 사용 빈도와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만 놓고 “과거회귀”적이라 규정하는 건 어째, 이명박이 박정희 같이 쥐눈박이라거나 새마을표 삽&선글라스를 애호한다는 이유 정도로 이명박을 박정희로 취급하는 게 아닐지. 이런 식의 정세인식으론 자칫 문제에 대한 “조직화한” 대응마저 다같은 저항이란 이유로 과거회귀적 모양새를 띠기 십상으로 보여 그렇다. 이명박과 박정희 간에 연속성이 없단 얘기가 아니다. 겹치는 대목만 노상 확인해선 판세를 바꾸고, 활로를 새롭게 열기가 더 힘들잖겠냐는 거다. 연속성 이상으로 단절 혹은 '새로움'에 주목했을 때, 현 운동의 조건을 오로지 질곡이 아닌 발판으로 변이시킬 시야도 열릴 터라 그렇다.


(요즘 계속 곱씹게 되는) <쓰레기가 되는 삶들>을 보면, 주권 내부의 주민들을 필요할 땐 싸워무찔러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치안의 군사화”는 대한민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이런 따위 변화는 일견 오로지 이명박의 삽스런 뻘짓 탓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 “국가 사명의 재규정”이라는 지구적 맥락에서, 좀더 긴 역사적 호흡으로 바라볼 사안인 게다. 우리 대부분이 ‘일단 긍정’하고 보는 (자본주의)발전, 혹은 근대화와 (이 발전이 처한 경제-정치적 곤경을 돌파한다며, 실은 회피하고자 추진된) ‘세계화/지구화’가 자체의 논리를 완성한 데 따른 것이라서다.


바우만 할배는 1970년대 중반 무렵 “현대사의 진정한 분수령”과도 같은 “거대한 전환”이 생겨났다고 본다. 근대제국령 식민지 체제의 해체와 ‘독립’국가들의 탄생, 그로 인해 발전에 대한 낙관주의적 전망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던 ‘영광의 30년’ 시기(1945~70년대 초중반)와, “멋진 신세계의 등장”이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가 전례 없이 첨예해졌다고 한 1980년대~2000년 초입 시기 사이다.


이같은 전환이 초래한 "숙명적인 양상" 중 하나가 바로 앞서 언급한 ‘치안의 군사화’로, “공동체 전체를 (어쨌거나) 포괄하는 ‘사회국가’ 모델로부터 배제적인 ‘형사 사법’, ‘형벌’ 또는 ‘범죄 통제’ 국가로의 전환”이다. 이 때 국가/통치의 사명은 “복지로부터 형벌 양식으로 현저하게 이동”한다. 이 “형벌 양식은 훨씬 더 현시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층 더 응보적이고, 노골적이며, 안전 지향적”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른바 용산 참사에서 삶을 소거당해야 했던 이른바 “범죄자들은... 현재 공적인 담론에서 점점 더 지원이 필요한 사회적 박탈 계층”이 아니라 갈수록 “비난받아 마땅하고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으며 다소 위험한 개인으로 묘사된다.” 요컨대, 이제 어디 할 것 없이 “국가는 경제적 영역으로부터 물러나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형사적 개입의 확대, 강화로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거다.


물론, 이때 국가가 “경제적 영역으로부터 물러”난다는 것이 ‘사회적 축적구조’의 다른 이름인 자본과 의절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려 앞서 언급한 전환은, 이런 자본과 적극적으로 새로우면서도 확실히 그로테스크한 스텝을 맞추겠노라는 국가 통치양식의 재편 과정인 것뿐이니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와 자본주의는 따로 또 같이, 사실상 자웅동체를 이루며 현 역사적 체제의 현상유지와 이에 필요한 ‘발전’을 추동해온 내적, 제도적 성분들이었기도 하거니와.


그렇다면, 국가 통치술의 초점이 (한때는 아주 중요한 명분이었던) 통합이 아닌 선택적 배제로 이동한다는 게 정당성 유지 차원에서 어떤 잠재적 위험과 부담을 초래할지 통치자들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이런 위험과 부담에 대해 전혀 모르진 않으나, 그런 것들을 압도하는, 따라서 차라리 감수하는 쪽을 택하게끔 만드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엠비氏나 (강)만수 등등 현 통치세력 몇몇이 종종 본의 아니게 드러내고 마는 놀랄 만한 둔탁함과 부박함에 비추어, 전자 쪽으로 유추할 구석이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그건 역시나 저쪽 동네서 본의 아니게 작렬시키는 페인트에 가까워 보인다. 숭악한 각종 엠비氏발 경제구상들이 뿌리내린 토양은, 실상 김대중-노무현 정부 스스로 ‘세계사적 필연이니 대세’랍시며 추구한 경제기조 아래 기름지게 조성돼 왔던 것임을 상기해 보자. 이렇다 보니, 이들 자유주의 중도파 정부가 앞세운 개혁조치들은 설사 수사적 급진성(혹은 유시민 같은 부류가 보여준 바, 자유주의적 분방함)의 뉘앙스를 가졌다 한들 고작해야 구체제의 숭악함을 본의 아니게 캄푸라치해주고 말 뿐이거나, 결과적으로 구체제의 적자들과 독자적인 나와바리 인정 투쟁을 벌이는 게 고작일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이리 보면 작금의 우울한 풍경들을 민주주의의 파괴, 후퇴의 증거로만 보는 건 실상을 제대로 이해, 파악하기 위한 접근이라기보단 거꾸로 특정한(즉, 자유민주주의 혹은 "민주개혁") 정치노선을 현실에 덧씌우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 단계론적으로 제도화할 수 없는 것일뿐더러, 어떤 정식화 따위론 ‘완성’ 불가능한 유-무형의 실천과 직접 행동을 아우르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최근 대한민국서 벌어지는 살풍경들은 이제,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주류진영의 이해가 앞서 바우만이 역사적 자본주의의 돌아올 수 없는 분수령이자 거대한 전환이라 했던 상황과 맞물리며 불거지는 지구적 추세의 징후라고 봐줘야 하지 않을까? 계급적 기원과 내력 면에서 장기적으로 ‘근대일본령 조선’ 탄생을 전후한 식민지적 축적체제기, 중기적으론 앞선 시간대와 ‘겹을 이루며’ 1960년대~1990년대 후반쯤 먹혔던 준전시동원형 축적체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 (글로벌)파워엘리트들로선, 그리 하는 게 꽤나 “합리적”이라고 여길 만한 구석이 분명 있으리라는 건데.


물론 중요한 건 이같은 통치 합리성이 결코 자기완결적인 게 아녀서, 그 합리성의 자기만족 지수가 커질수록 현실은 그 합리성을 넝마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일 게다. 이런 점에서 축적합리성을 어지럽히는 사회문제들을 범죄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꾀하려는 작금의 통치합리성은, 성공 여부를 떠나 워낙에 지랄도가 강렬한 탓에 단기적으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이같은 면모가 중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으리라는, 달리 말해 ‘정당성’ 면에서 돌이키기 힘든 파열이 생기리라는 것 역시 별로 예상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치안기구 같은 행정조직들이 말그대로 정복 입힌 조폭이나 다름 없는 면모로 유한계급들의 보안서비스위원회이길 자처할수록, 그런 조직이 뭐하러 대국민 조세로 계속 굴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적어도 조직적이지까진 않아도 공공연해지게 될 테니. 대한민국 파워엘리트들의 투명한 축적욕망과 이와 결부된 문화적, 정치적 이해가 갈수록 공공연해지는 만큼 말이다.


다만 문제는, 경찰의 모의훈련 양상의 변화에서 감지되는 바, 국가 사명의 재규정 과정에서 빚어지는 “음울한 전조”들에 대해 이를테면 “잃어버린 민주주의(혹은 공화국)” 명제에 입각해 “나 돌아갈래~” 하는 식으로, 돌아가긴커녕 과연 한 발짝이라도 내딛을 수나 있겠냐는 것이다. 국가를 무려 “개과천선”시킨다거나 도구적으로 접근하려는 논의들은, 적어도 나로선 이런 의문만 자극할 할 뿐인 듯싶다. 정말 할 수 있다고 믿어 저러는 건지, 아님 그렇게밖엔 얘기할 가락이 없어 그런 건지, 정말, 굉장히 궁금하달까.


그보다는 차라리, 숭악한 통치합리성을 저지할 개입경로는 국가 스스로 조각낼 정당성의 틈새들을 파고들어 주어진 대로 (이를테면 법제 개정으로 조금이나마 유리한 선거 전술을 구사하는 식으로) 최대한 활용하되, 이를 지렛대 삼아 국가를 ‘내파’시킬 주체 형성과 정치공동체들을 가능케할 ‘노선’에 대한 공감대를 이뤄가야 하잖나 싶은데.


그걸 ‘사회주의’라 부르느냐, ‘혁명적 개혁주의’라 부르느냐, 아니면 ‘꼬뮤나크라시’라 부르느냐는 외려 지극히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이같은 “주의”들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운동들의 조건이자 집단적-조직적으로도 바람직한 정치적 선택지로 전화시킬 (좌파)정치의 기예/문법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진정한 위기는 소위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이런 전망의 부재 혹은 ‘둔탁함’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본을 축적에 합리적인 사회구조로 ‘끊임없이’ 유지-재편해오면서 스스로도 변모중인 근대국가의 흉물스러움이 어제오늘 얘긴가, 돌이켜 보면 더더욱 그런 듯도 싶고.


때론 자본주의 경제가 잘 나갈 땐 잘 나가다 보니, 못 나갈 땐 또 못 나가서 노동운동, 혹은 반체제 운동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곧잘 들리던데.. 뭐 분명한 건, 이런 ‘외인론’으로 자위적 알리바이만 계속 들먹이고 있기엔 향후 정세가 정말이지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거다.

 

*


아래 덧붙인 월러스틴 옹의 글은 내가 위에서 주장한 맥락에서 읽어보면 나름대로 영양가가 있을 듯. 2000년 당시 아프리카 서안 지역 국가인 시에라리온에서 진행중이던 내전에 관해 썼던 글인 듯한데, 글 자체가 시에라리온을 사례로 논의를 ‘(근대)국가론’ 일반으로 확장하고 있는 터라 그렇다.

 


Commentary No. 42, June 15, 2000


국가 정당성의 쇠퇴

("The Decline of State Legitimacy")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사는 국가를 꾹 참고 견디면서, 해당국가 행정부가 가려는 길에서 비껴나 있으려 한다. 국가에 대해 좀처럼 열정을 보이지 않는 그들이지만, 대놓고 반란에 나서는 경우 또한 드물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부가 법률을 통과시키고 자신들한테 세금을 매기며, 자신들을 치안의 대상으로 삼는 데 대해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가를 정당화하는 건 그 관할영토에 사는 주민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이렇게 주민들이 정부의 여러 업무를 수용한다는 사실에 있다.

 

러나 정당화가 영속적인 건 아니다. 정당화 정도가 비교적 높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500년 정도 된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주권국가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해당정부에 부여한 정당성은 아주 오랜 시기에 걸쳐 상승해왔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국가를 이룬 구조들이 점차 강고해짐에 따라 이들 구조는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그들한테 더 많이 안겨다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지도부를 선출하는 데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통치구조상의 변화가 일어난 결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행정부처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적어도 일부나마 반응한다는 생각이 한층 더 먹혀들었던 덕분이었다.

 

늘날 상당수 국가들에선, 이제껏 곧잘 그래왔다시피, 정당성 면에서 파손이 일어난 듯하다. 어떨 때는 행정부의 정당성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시에라리온은 아마도 이에 관한 좋은 사례일 텐데, 레바논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때로는, 아주 대규모 그룹에서 행정부의 정당성을 무효화하는 데 적극 나서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내전이라 부르곤 하는데, 스리랑카나 콩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분명한 건, 특정 국가가 취약한 경제적 지위로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열악할 때, 자국 주민들한테 필요한 것을 안겨주고 그로써 정당성을 획득하는 통치가 이뤄지긴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쥐어짜기 좋은 몇몇 지하자원들이 풍부해 마피아 같은 부류가 사적 이윤 동기로 국가 구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게 수지맞을 수 있다면, 한층 더 악화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현 세계체제의 주변부 지역에만 해당하는 얘기라 여긴다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이들 문제는 세계체제의 움직임 전반에 걸쳐 훨씬 더 광범하고도 심각한 상황에 있다. 세계체제의 부유한 지대들에서도 국가 정당성은 특정한 패턴을 그리며 마찬가지로 차츰 잠식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는 투표참여율 저하, 조세회피 증가, 안전 시스템의 사사화 같은 다양한 현상들로 확인 가능하다. 일반전인 견지에서 국가 정당성을 무효화하는 그룹들이 부상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는데, 이같은 현상은 그저 여러 특정한 정치적 불만에서 연유한 게 아니다.

 

우리는 이런 구도를 아주 긴 지속longue durée이라는 맥락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근대 세계체제의 발흥기였던 16세기에, 국가는 대체로 아주 취약했고 정당성이 강고하지 못한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절대군주들은 별의별 치장을 하고선, 좀처럼 다루기 힘든 지방 귀족들과 ‘신민’들에 대해 절대군주다운 권위를 주장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중 상당수 군주는 나머지 군주들에 비하면 꽤나 성공을 거뒀다. 각 국가들에선 민족주의적 감수성이란 응고제를 써먹기 시작하면서 정당성의 하한치를 창출해냈다.

 

민족주의와 같은 응고제가 제대로 지배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프랑스혁명 이후부터였다. 이렇게 상황을 일변시킨 중요한 요소로는 주권재민이란 개념의 부상이 있었다. 이 발상이 일단 널리 퍼지자 인민들은 국민/민족으로 정의됐고, 국민/민족들은 각 국가의 지지대로 구조화됐다. 국민/민족이란 천상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창출된 것이었다. 국가와 지식인들은 국민/민족을 창출하는 데 진력했다. 초등교육과 병역은 이같은 국민/민족 주체성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기제였다. 천천히, 단일 언어나 한 어족에서 파생한 변이 형태가 국가가 조성한 압력을 통해 대부분 지배어(표준어)가 됐다. 애국주의는 이제 민족/국민의 삶에 일관된 좌표가 됐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면서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자본주의 기업의 팽창으로 국민/민족 내부에 골이 깊게 패였다. 맑스는 이를 일러 “계급투쟁”이라 했다. 보수당 소속으로 대영제국 총리를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두 국민”이라 했다. 어떻게 정식화하든 간에, 이런 현실은 국가구조 정당화 프로젝트 전반을 위협했다. 흥미롭게도, 우파와 좌파가 모두, 함께는 아니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깊게 패인 골을 메우려 했다. 우파 세력은 외부의 적들과 맞서는 데 필요한 국민/민족 통합에 무게를 실었다. 이게 어느 정도 잘 먹혔다.

 

좌파 세력은 호전적 애국주의와는 거래할 게 없었다. 그 대신, 대중의 힘으로 국가구조들을 통제하는 일이 지닌 중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좌파 쪽에선 약속하길, 이게 현실화되면 권력을 거머쥔 대중 세력은 세계를, 좀더 정확히 말해 국민/민족을 변혁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여기엔 장기적으로 성취하게 될 희망이 담겨 있었다. 대중 운동들은 그 지지자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기약했다. 오늘 정치적으로 이뤄낸 동원과 투쟁을 댓가로, 내일 더 나은 세상을 보상받고자 했다.

 

이같은 전략은 국가를, 일단 수중에 넣거나 그리 될 상황이 임박하면, 변혁에 긍정적인 힘으로 대중 운동 추종자들이 여기게끔 하는 효과가 있었다. 대중 운동들은 결국 국가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셈인데, 적어도 운동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때면 그랬다.

 

이렇게 우파들이 조성한 애국주의의 압력과 좌파들이 앞으로 자신들이 통제하리라 했던 국가에 신뢰를 부여하려는 압력 사이에는, 전 세계적으로 점증하는 어떤 믿음이 (‘독립’)국가들마다 자리해 있었다. 이로써 국가는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서비스를 안겨다 줄 수 있었다. 그것은 누진적인 과정이었다. 장기에 걸쳐 보였던 국가 정당성의 강화세는 20세기에 들어 꺽였다. 여러 전쟁을 거치며 발생한 막대한 삶의 손실 덕분에, 호전적 애국주의가 지닌 매력은 시큼하니 맛이 가기 시작했다. 일단 권력만 잡으면 당초 약속대로 세계를 변혁할 거라던 대중 운동들이 실제론 변혁에 실패하자, 국가를 사회 변혁의 한 기제로 보고 정력을 쏟는 데 대한 매력은 맛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30년 간 꾸준히, 국가에 공력을 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어디라 할 것 없이 이뤄져왔다. 이는 우파적인 화법 속에선, 이를테면 개개인들이 벌이는 여러 활동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제한하자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좌파적인 화법에선, 국가/국민/민족적 권리에 맞서, (그런 권리가 누락한) 국지적인 것들the local의 권리를 말하는 식일 수 있다. 권력의 여러 이해에 결박돼 있는 국가 일반한테서 괜찮다 할만 한 무언가가 나온다는 걸 회의하면서 말이다. 어느 화법이 됐든, 그로 인해 국가가 그간 누렸던 정당성은 어느 국가냐를 막론하고 쇠퇴를 겪는 중이다. 이같은 정당성 쇠퇴와 더불어 국가 일반의 업무수행 능력도 떨어지는 중인데, 이는 국가에 대해 가뜩이나 부정적이었던 시각들을 더더욱 정당화해주고 있다. 투표율과 납세율, 경찰/치안업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는 건 그래서다.

 

그 결과 지금 분위기는 확신에 차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두려움의 색조를 띠고 있는데, 이는 다른 그룹들에 맞서 또다른 그룹화로 조직적 대응을 꾀하는 형태의 자기-방어를 부추긴다. 주변을 둘러보면 개별 가계나 밀집해 있는 이들 가계 일대를 방어하고자 구축된, 이른바 “철조망 친 복합단지”가 세계 어디 할 것 없이 부상중이다. 여러 문제들이 불거질 때가 됐다는 뜻인데, 시에라리온에만 해당하고 말 상황이 아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원문보기  http://fbc.binghamton.edu/42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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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3 12:21 2009/07/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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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7/05 0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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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들사람 2009/07/05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잘못됐거나 어색한 대목을 잡아주셨군여.^^:: 감사~ 지적해주신 곳이 전부 일곱 군덴데, 전적으로 수긍이 가는 대목은 지적하신 대로 고쳤고, 부분적으로 수긍이 가거나 별로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에 대해선 최대한 반영하거나 그대로 뒀슴다.ㅋ 두번째와 네번째, 다섯번째 지적사항은 안 그래도 좀 찜찜했더랬는데 잘 잡아주셨네요.ㅋ 다만, "인명"손실이라 지적하신 부분은 단지 숫자 크기로 잡힐 수 없는 것들이 타격을 입었단 뜻으로 의역해 "삶"이라 한 거고요. "상수"라 할 걸 "영속적"이라 한 것도, 제가 좀 오바한 건진 몰겠지만 용어적 엄밀성보단 한결같지 않다는 데 초점을 더 맞춰얄 거 같아서..

    • EM 2009/07/05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 보니 마지막 것은 오히려 제가 너무 의역을 한 것 같군요.

      세 번째 것은 "이해관계"라고 하는 데 동의하신다면 "여러"라는 수식어는 불필요합니다. 꼭 일대일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interest가 복수형으로 나오면 "이해관계"라고 옮기는 게 보통이죠.

      다른 부분은... 뭐 들사람님 의견이 그러시다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