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98, Feb. 1, 2011

아랍에서의 두 번째 반란: 승자와 패자들
("The Second Arab Revolt: Winners and Losers")

 




 
1916년에 일어난 아랍 반란은 후세인 빈 알 리의 주도 아래 오토만제국에 대한 독립을 겨냥했다. 오토만 제국민들은 쫒겨났다. 하지만 그 위대한 반란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이지러져버렸다. 1945년 이후, 아랍권의 여러 국가들은 점차 국제연합(UN)의 독자적 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독자성은 대부분의 경우 대영제국을 계승한 외부 통제세력인 미합중국과 더불어 마그레브와 레바논에 지속적으로 간섭했던 프랑스에 의해 이지러졌다.

그랬던 아랍에서 두 번째 반란이 여러 해에 걸쳐 지금껏 숙성중에 있다. 지난 달 1월에 튀지지에서 성공리에 일어난 봉기가 실질적인 격발점이 됐다. 용감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무릅써가며 썩은내가 진동하는 독재/전제주의 정권에 맞서 들고 일어나 실제로 대통령을 내쫒는 데 성공했으니, 갈채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튀니지 봉기는 인간다움을 향해 나아가기에 훌륭한 순간이었다. 늘 그렇듯 문제는,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던져봄직한 질문은 두 가지다. 이 봉기는 어떻게 해서 성공하게 됐을까? 수많은 나라들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여타 시도들은 그러지 못한 시점에 말이다. 또 하나는, 그렇다면 튀니지와 아랍권, 그리고 세계체제 전반에 걸쳐서 봤을 때 이 반란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내지 어느 나라)일까?

독재/전제주의 정권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정권은 제멋대로 부릴 무기와 돈이 있으며, 보통 정권에 맞서고자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도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가 있다. 정권의 대행기구들이 저지르는 변덕스런 짓들에 맞서 이뤄진 상징적 행동들, 이를테면 튀니지 변두리에서 행상을 하던 청년 무하메드 부아지지의 자기희생은 다른 이들이 시위에 나서는 데 불을 댕길 수 있다. 튀니지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이 정권의 전복으로까지 이어지려면, 정권 내부에 균열이 생겨야 한다.

튀니지의 경우엔 분명 균열이 있었다. 군과 치안기구는 그 어느 쪽도 시위대에 발포할 채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 일을 대통령궁의 엘리트 친위대 쪽에다 떠넘겼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대통령 지네 엘아비딘 벤 알리와 그의 가족은 결국 도망쳐야 했고, 겨우 사우디아라비아를 피신처로 삼을 수 있었다. 정권 내부의 균열은 반란의 폭풍에서 살아남으려는 집권 여당 소속 주요 인사들이 벤 알리 보위그룹의 핵심 측근인 아브델라와하브 아브달라를 체포하겠다고 확약했다는 사실로부터 명백해졌는데, 아브달라가 역으로 자신들을 체포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스탈린 사후 그의 후계자들이 (스탈린 집권하 대숙청기 동안 공안정보기구인 내무인민위원부 부장으로 지낸-옮긴이) 라브렌티 베리야를 즉각 체포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라.

물론, 벤 알 리가 도망치고 나서 전 세계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벤 알리의 미덕을 계속 옹호했던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와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대외적으로 벤 알리의 주요 후견세력이었던 프랑스 정부는, 자신의 판단 “착오”를 고백할 정도로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안전할 거라고 어림짐작한 프랑스의 품에 튀니지를 맡겨둬 왔던 미합중국은, 프랑스가 했던 류의 사과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주목해 왔다시피, 튀니지의 사례는 아랍권의 거리에서 유사한 행보가 이뤄지도록 고무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이집트와 예멘, 요르단에서 특히 그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가 대중 봉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진 불확실하다.

자 그럼, 승자와 패자는 누굴까? 적어도 6개월, 아마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튀니지, 이집트, 나아가 아랍권 전역에서 어느 쪽이 실질적으로 주도권을 잡게 될지는 알 수가 없을 게다. 자생적으로 일어난 봉기들은 1917년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레닌의 유명한 말처럼 “권력은 거리에 있”으며, 이에 따라 볼셰비키들이 실제로 그랬듯 조직적이고 방침이 확고한 세력이 그 권력을 받아 안았던 바로 그때 말이다.

실제로 아랍권에서 각 국가가 저마다 정치적으로 처한 상황은 (1917년의 상황과는) 다르다. 오늘날 아랍권역에서, 거리의 힘을 접수할 준비가 돼 있던 볼셰비키들과 같이 강한 조직적 응집력을 갖추고, 세속화됐으며, 근본적인(radical) 입지를 가진 정당/당파가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현 상황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계통의 운동들은 다양하게 있지만, 중요한 기반을 갖춘 건 거의 없는 듯싶다. 가장 조직화된 운동들은 이슬람주의 계통이다. 그러나 이 운동들이 단일한 색깔을 띠고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이 지향하는 이슬람 국가의 판본은, 터키에서 그렇듯이 여타 그룹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판본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강고해진 탈리반 세력처럼) 가혹한 샤리아 법을 따라야 한다는 판본, 그리고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그렇듯 두 판본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변종들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각국별로 자리잡은 정권의 유형과 관련해 이후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불확정적이며, 진화중에 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누가 승리하게 될지는 아주 불확실하다.

하지만 현 상황을 관리하려는 시도와 긴밀히 연루돼 있는 외부의 개입 권력들은 어떨까? 그 중 으뜸가는 행위자는 미합중국 정부다. 그 다음으로는 이란 정부가 있다. 나머지 국가들, 즉 터키,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하긴 해도 관련을 맺고 있다.

 

제2차 아랍 반란으로 가장 크게 패배한 건 미국이다. 우리는 이를, 현 상황에 대해 미국 정부가 믿기 어려울 만큼 우왕좌왕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현 세계의 모든 여타 주요 권력이 또한 그렇듯이) 미국이 다른 모든 것들에 앞서 적용할 잣대는 하나다. 해당 정권들이 자국한테 우호적이냐 아니냐다. 워싱턴에선 반란을 통해 승리한 이들이 자국에 적대적이지 않다면, 그 쪽 편에 서고 싶어한다. 그럼 사실상 미국의 피후견국가나 다름없는 이집트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까?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와 비폭력, 타협을 요구하는 선에서 몸을 사렸다. 무대 뒷켠에서, 그네들은 이집트 군부에게 너무 많은 이들한테 발포함으로써 미국을 당황시키진 말라고 이야기했던 듯싶다. 그러나 많은 이들을 향해 발포하는 일 없이 무바라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2차 아랍 반란은, 전지구적인 카오스/혼돈의 복판에서 진행중인데, 이 카오스/혼돈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현존 세계 내 인구에서 적어도 셋 중 둘 정도가 생활수준의 하락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상위 계층의 수입은 터무니없이 늘어나고, 이른바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권력은 운용효율상 심각한 쇠락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제2차 유럽 반란은 그 결과야 어찌 됐든 특히 아랍권역에서 먹혔던 미국 권력을 가일층 침식시킬 텐데, 오늘날 아랍권역 국가들에서 펼쳐지는 정치의 확고한 대중적 기반 중 하나가 바로 자국 현안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미국이 관여하길 원했고 그에 의존했던 이들조차, 앞으로도 그렇게 했다간 정치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외부에서 개입하는 권력 중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건 이란이다. 이란 정권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서 바라볼 수 있다는 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분적으로는 비아랍권 국가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시아파 정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의 축출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이란한테 안겨다 준 건 다름 아닌 미국의 정책이었다. 그간 이란에게 사담은 가장 사나우면서도 다루기 까다로운 적이었다. 이란의 지도자들이 이런 훌륭한 선물을 안겨준 조지 W. 부시에 대해 하루가 멀다하고 칭송하리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이런 횡재수로 재미를 본 건, 이스라엘과 그 지역 일대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하기만 하면 하마스 같은 비시아파 계열의 운동들도 언제든 지원하겠다는 명민한 정책을 아울러 추진한 덕분이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약소하나마 승리의 잇점을 누리게 된 나라로 터키가 있다. 터키는 아랍권역의 대중 세력에게는 오랜 동안 파문당한 처지였는데, 상호중첩된 두 가지 이유였다. 오토만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였다. 대중선거로 선출된 현 터키 정권은 모든 거주민들에게 샤리아 법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슬람적인 규준에 필요한 생활상의 요구(droit de cité)를 법제화하려는 이슬람주의 운동에 기반한 것으로, 제2차 아랍 반란을 지지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심지어 이스라엘과 미국과 맺어온 우호 관계를 양보·훼손하는 위험을 무릅써가면서까지 말이다.

물론, 제2차 아랍 반란에서 가장 커다란 승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랍 민중들이 거두게 될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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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4 00:00 2011/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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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월러스틴] 변화의 바람 - 아랍 세계와 그 너머

    FROM 아랍 혁명 2011/03/23 15:24  삭제

    51년 전인 1960년 2월 3일, 당시 영국 총리였던 보수당 소속 해롤드 맥밀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에서 연설했다. 아파르트헤이트(제도화·정책화된 인종주의)를 통치의 기초로 삼던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던 곳에서였다. 그가 한 연설은 훗날 “변화의 바람”이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연설에서 그가 했던 말은 충분히 되새김해볼 만하다. “변화의 바람이 이 대륙에 불고 있으며, 그게 좋든 싫든 간에,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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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앙겔부처 2011/03/23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처음에 사이트 만들 때 테스트용으로 퍼갔느라고 퍼간다고 말도 안 남겼네요< 이제야 트랙백 보냄 ㅇㅇ 그리구 저 사이트에 다종다대한 관심 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