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께,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께서 프레샨에 기고한
5.18 광주 민중항쟁 관련 글을 읽었슴다.


근데 여기에 "국민"이란 네티즌이 5.18 학살/민중항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며 댓글을 달아놨더군요.

그걸 보자니, 좀 까칠해져선 저도 냉정하게 돌이켜본 5.18은 이렇더라며 댓글을 달았더랬슴다만.. 아래 글이 그 글임다.ㅋ;

국민이란 작자가 싸지른 글을 보고 있노라니, 아무리 극우적인 진술이라고는 해도
'국가'란 공동체 형식 안에서 과연 성원들간의 '대화합'과 '통합'이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만요.

이런 '통합의 정치'가 '진보적'이란 꼬리표로 차별화를 추구한대서
그닥 달라질 게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건 물론이고요.

보니까 (한때는 아쉬우나마 '자주민주정부'의 싹수가 보인단 평도 받았던ㅋ)
이 '참여정부'의 교육부에선 "5.18은 계획된 학살이 아니"라(고 사실은 설레발치)며
이 시기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주민들의 움직임을 어디까지나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날린 모양이던데..ㅋㅋ;

"전쟁이 (근대)정치의 연장"이라 했던 클라우제비츠나,
이걸 비틀어 "(근대)정치는 전쟁의 연장"이라 일갈했던 푸코 말마따나
이른바 '국민통합'이란 설사 이뤄진다 한들 역시나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도 싶고..

그니까, '전쟁'과 '내전'은 자본-국가를 자웅동체로 하는 현존 세계(체제)가 연명하려 드는 한,
내내 우릴 피곤케 하는 대내외적인 만성질환이 아니겠냔 검다만..ㅋ;

이런 짜증스런 체제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그런 체제를 뒤엎을 다른 삶을 구성하는 '형성'의 정치라는 이중과제가
상정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겠지요.ㅎ

일케 보믄, 어설픈 상호존중에 기초한 통합과 대단결의 정치가 아닌
'긍정적인 분열'을 자극하는 (집합적) 주체형성의 정치가
더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 아닌가시포요.

***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냉정한 평가/국민

광주폭동은 호남의 희망인 김대중 구속에 분개한 민중이 경찰서습격 도청점거 교도소 공격 등 폭동 일으킨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무장폭동의 미화는 세계인이 웃음거리다. 억울한 희생자도 있으나 희생자준 건달들도 있는데 이들 모두 국가유공자 대우해주는 참으로 웃기는 나라이다. 무슨 놈의 폭동참가자 수천 명을 국가유공자 만들고 천문학적 국가예산 펑펑 부어주는지 이런 나라가 동서고금 이 지구상 어디있나? 한심하다. 역사는 왜곡된 광주폭동을 정확히 평가해야한다.


냉정하게 말해 5.18 학살은-

미국 행정부를 오야붕으로 하는 '자유진영'의 행동대장, 달리 말해 대한민국 지부 캡장으로 활동을 명받은 전두환 도당이 (딱딱한 말로는 '내적 평정'이라고 하는) "질서와 치안" 확립차 벌인 '대국민정화' 조치다.

즉, 1945년 이후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지구적 질서로 자리잡고 있던 반공-자본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비록 야무진 몽상였다곤 하지만ㅋ) 한반도 지역에서 드높이고자 공갈협박 속에 이뤄진 연성 제노사이드였다는 얘기다. 한반도 주민들이 단지 특정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그토록 어이와 속절없이 송장처리된 걸, 그저 전두환 도당의 편견과 무식의 산물로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이후 이른바 빨갱이 척결차, 다시말해 국민됨의 '불순물'을 제거한다는 '녹화사업'차 군대에서 이뤄진 온갖 훈육(및 살인)조치들을 상기해보면, 5.18은 그저 몇몇 또-라이들의 품성이나 자질 문제로 환원하고 말 사안이 결코 아니다. 5.18로 죽어간 이들을 (터무니없게도) '국가'가 보듬어 안고 '기념'한다는 게, 정작 그들이 죽어나간, 그네들의 존엄한 생이 그토록 어이 없게 이지러져야 했던 맥락을 지워버리는 데 불과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그네들의 죽음을 능멸하지 않으려면(바꿔 말해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이네들이 항쟁 기간 동안 보여줬던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대한민국 정부의 평정 조치가 잠시 수그러든 동안 주민들이 보여준 상호부조적이고 자치적인 면모)을 '국민통합형 국가의례'의 틀 따위에 우겨넣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단 얘기가 되겠다.

대한민국의 모양새가 번듯해질수록, 달리 말해 대한민국이란 데서 점점 더 뽀대와 가오가 선다는 자본주의적 발전 양상이 도드라질수록 저런 국민 같은 부류들이 엄연한 대한민국의 구성원이자 시민-국민으로서 당당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진정한 국민됨'이라는 게 결국 5.18 같은 기억들을 누락시키거나 기억하더라도 '화장빨용' 소재로 왜소화시키는 쪽으로 수렴되기 마련임을 방증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좋은나라만들기운동본부' 식의 접근법이 사상적-문화적-정치적 내전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자, 사실상 아득한 신기루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다소 추상적이나마, 5.18의 기억을 좋은나라만들기의 질료로서가 아니라, 그 좋다는 나라의 내부로부터 나라에서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무기로 곱씹는 작업이 그래서 필요하잖나 싶다. 이런 기억의 공유과정이 '좋은나라'(라고들 하는 조직)에 너덜하니 구멍을 낼 구체적인 삶의 공간(들)로 결실을 맺어야 하지 않겠냔 거다. 내전 및 전쟁의 뇌관을 지니고서 온갖 해악적 분할선이나 조장하기 마련인 국가-자본의 광기 어린 스텝에 시달리지 않을 자율적 자치공간의 창출이랄까.

근대국가가 국민/민족의 국가란 자기규정을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하며 명실공히 자본의 국가임을 차츰 드러내온 지난 20-30년 간의 상황에 비추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그리고 이의 변주형태인 '좋은나라 만들기(내지 선진화)'라는 신기루 이종세트로부터 차차(동시에 철저히) 벗어나지 않음, 우린 21세기를 맞아 국민(대내적으론 시민)이라는 괴물의 숙주로 살아가기 십상이지 않을까 싶다--자발적이냐 수동적이냔 차이가 있다면 있달까.

이렇듯 꽃을 든 괴물이기 십상인 국가-경제발전 경로와는 '다른 길'을 찾아나서(거나 그런 길을 닦을 저변을 넓혀)야 하지 않겠냔 거다. 이는 물론 반체제 운동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이미 상당 정도 진행중인 것이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건, 지리적으로 상이한 운동(들)의 '사회적 시차'를 차츰 줄여가는 일일 터.

5.18 광주 민중항쟁을 자본의 세계화가 한껏 독이 올랐다는 이 시점에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이런 점을 환기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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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2:06 2008/03/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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