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8일, 정부에선 기어이 이랜드그룹과의 돈독한 파트너쉽을 과시하며 노조 측에다 너무나 뻔해 가당찮은 협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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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 정부에선 교섭이 결렬될 경우 조합원 여러분들이 벌여온 점거농성을 강제로 해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여 공권력 투입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게 내심 부담스럽긴 한지, “언제까지나 인내심을 갖고서 지켜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지요.

조합원 여러분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지속가능한 삥뜯기에 골몰해온 이랜드그룹의 게걸스런 돈벌이 행태에 대해서는 지금껏 끝없는 인내심과 아량을 발휘하더니만, 그저 제대로 먹고 살아보자고 너나할 것 없이 의기투합한 조합원 여러분들의 열망, 아니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누려 마땅한 삶에 대한 열망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하는군요.

어제가 괜히 18일은 아녔던 모양입니다. 조합원들의 정당한 파업권조차 차마 지켜보질 못해 이랜드측의 용역들과 발맞춰 농성장 봉쇄로 대응해온 주제에, 더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다니, 이게 과연 가당키나 한 소릴까요, 조합원 여러분? 쌍욕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18이란 말만으론 턱 없이 모자란 판이지요.

아무래도 이 “국민참여”정부에선, 인내심의 값어치도 알량한 지갑 두께와 권세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모양입니다. 이랜드그룹 측의 기만적이고 태만한 교섭에 뒷심을 실어주고 만 정부의 오늘 협박성명은, 정부 스스로 조합원 여러분들이 그간 보여온 열망과 인내심을 한껏 능멸하고 있음을 버젓이 드러내버린 셈이니 말입니다. 교섭의 실마리가 잡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이랜드자본의 후견인 노릇을 자처하며 자신의 무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공권력 투입부터 천명하고 마는 정부의 위압적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웅변합니다.

조합원 여러분들을 철창 안에 구속하겠다는 이 참여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기껏해야 조합원 여러분은 물론 노동자들의 “삶” 자체를 구속하겠노라는 폭력의 의지에 불과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좀 제대로 먹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를 옭아매겠다는 목표가 과연 달성가능하긴 한 일일까요? 애초 불가능한 것일 뿐더러, 설사 달성한들 그 목표 자체를 놓고 정부의 존재의미를 되물어야 할 도덕적 비난을 자초하는 일일 겝니다. 이 싸움이, 내세울 건 그저 완력뿐인 이랜드그룹의 용역투입이나 정부의 공권력 행사로 여러분들이 결국 매장에서 끌려나오더라도, 여러분이 애초부터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조금은 다른 얘기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거듭되는 폭격으로 삶의 터전이 초토화되기 일쑤인 남부 레바논 사람들은, 이러더군요. “이스라엘이 우릴 다섯 번 폭격하면, 우린 여섯 번 재건한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이기는 거”라고요. 같은 지역에 사는 어느 어부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배를 띄우고 그물을 치는 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자 함이다.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 그 자체론 인정하지 않는다. 그네들이 우리에게 어떤 배를 띄우고, 어떤 그물을 치느냐가 중요하다. 저들은 우리에게 파괴의 배를 띄우고, 슬픔의 그물을 쳤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지리적으로는 비록 멀고 먼 중동 지역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와 권세를 세트로, 그것도 폭력적으로 누리는 사람들한테 시달리기로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나 남부 레바논 사람들이나 별다를 게 없는 모양입니다. 레바논처럼 폭탄만 떨어뜨리지 않는다 뿐이지, 정부와 이랜드그룹 또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합원 여러분들의 소박한 삶을 초토화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법치”를 빙자해 여러분들의 삶을 짓이기려 들고 있으니까요.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가 남부 레바논 지역 사람들한테 그러하듯, 대한민국 정부는 오직 이랜드그룹 같은 돈독과 권세욕에 찌든 자들이 불편할 때만 그들의 벗을 자처하며 조합원 여러분들한테 파괴의 질서를 강요하고 슬픔의 그물을 치려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파괴와 그물로도 “강제 해산”시킬 수 없는 게 있잖냐는 생각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건 바로, 이 터무니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 어처구니마저 없는 자본의 전횡에 맞서, 각기 존엄한 삶을 지켜내려는 조합원 여러분들의 영혼이 이뤄내온 두터운 우애와 연대의 네트워트입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여러분들과 뜻을 함께하는, 저를 비롯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자극하고 또 활력을 불어넣는 마르지 않는 샘이기도 하지만요.

그렇게, 주의 힘이 깃드는 한, 우리들을 이어주는 이 생동하는 영혼의 네트워크는 거대한 풍랑을 이뤄 이랜드그룹과 대한민국 정부가 저지르는 합법적인 테러와 폭력을 기어이 난파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런 주의 이름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조합원 여러분께 가이 없는 경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주께서 깃드신 가난하고 짐진 영혼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 끝나지 않고, 또 끝날 수 없는 투쟁에 함께하리라 다짐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조합원 여러분, 비록 힘겹고 괴로운 상황이 닥치시더라도 주눅들거나 위축되진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겪었던 고초만큼은 아닐지언정 조합원 여러분들이 지금껏 겪었고, 또 앞으로 겪게 될 상황에 짐짓 초연하시라는 당부는, 감히 말씀드릴 주제도 못되거니와, 차마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만, 보잘 것 없는 힘이나마 주의 뜻이 함께하는 여러분 곁에서, 주의 미소를 함께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애롭고 생동하는 영혼의 네트워크로 현현하기 마련인 이런 주의 힘, 주의 뜻이야말로 그 어떤 물리력과 완력으로도 결코 찍어누를 수 없는 투쟁, 아니 삶의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자신을 믿는 한, 주 예수께선 우리의 연대 속에, 우리가 맞잡는 손짓 속에, 우리의 웃음과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의 몸짓 속에 늘 함께 깃들어 계실 테니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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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2 22:25 2008/03/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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